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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2장. 돌아오다


1


나이를 먹으면 잔근심이 많아진다고 하였지만 안신옥의 근심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어제 그는 금속공업성에 다니는 막내딸에게서 놀라운 전화를 받았다.

여러해를 끌면서 진행되여오던 대외사업이 좌절된것과 그후에도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현대화하지 못한 문제가 심각하게 론의되였고 지배인의 책임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였다는것이다.

그 말을 들은 때부터 안신옥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이름할수 없는 불안이 밀물마냥 가슴속으로 밀려드는것을 도무지 막을수가 없었다.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면서도 가마에서 밥이 타는것을 느끼지 못했다. 밥상에 마주앉아 숟가락을 든채 멍하니 근심에 잠겨있어 외손녀의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리뒤척 저리뒤척 한숨만 내쉬며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정상을 보다못해 맏딸이 근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갑자기 웬일이세요. 어디 몸이 편치 않으세요?》

안신옥은 절레절레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무 일도 없다. 그저 좀…》

그러면서도 또 한숨이다.

《?…》

오늘 아침 청진광산금속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딸과 사위가 출근하고 학교로 가는 손녀까지 바래주고난 안신옥은 전실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천천히 웃방으로 올라갔다.

번쩍번쩍 라크칠을 한 현대류행의 옷장이며 이불장이 주런이 놓여있는 방구석에는 놋쇠로 장식한 초라한 장농 하나가 끼여있다.

그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앉은 안신옥은 한동안 장농을 어루쓰다듬었다.

언제인가 퍽 오래전…

새 아빠트로 이사올 때 딸과 사위가 낡은 장농을 버리자고 한것을 한사코 우겨서 싣고왔었다.

거멓게 색이 바래고 칠이 벗겨진, 옛식의 장농이였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한적이 없지만 그것은 신옥이 시집왔을 때 시어머님이 주신것이였다.

세월은 흘러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이 장농만이 서글픈 추억을 불러내며 남아있다. 떨리는 손으로 장농을 연 안신옥은 밑바닥에 깔아두었던 작은 나무함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비닐로 싸고 깨끗한 종이로 차곡차곡 덧싸놓은 손바닥만 한것을 풀어헤쳤다. 거기에는 금빛의 천리마휘장과 자그마한 사진 한장이 있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아이의 돌사진이다. 앞섶에 천리마휘장이 달린 흰 무명옷을 입은 사내애가 한손엔 과자를, 다른 손에는 굵직한 만년필을 꼭 쥐고서 장한듯이 빙그레 웃고있다. 불쑥 아들애가 사진속에서 튀여나와 품속에 안겨들며 젖을 찾을것만 같았다. 젖꼭지를 물고 말끄러미 쳐다보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순간 짜릿한 모성애가 전류처럼 온몸에 흘러퍼졌다.

(내 아들 성남아!)

흘러간 세월의 년륜인양 실주름이 잡히긴 했어도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흔적이 남아있는 그의 눈가에는 회오의 눈물이 어려올랐다.

…전후복구건설시기 고중학교를 졸업한 안신옥은 ㄱ공업대학 금속학부에서 공부하였다.

얼굴이 환하고 체격이 미끈한 그가 예술이 아니고 금속부문을 택한것은 용해공출신으로 금속공업성에서 책임적지위에서 사업하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갸륵한 마음에서였다.

신옥은 부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외동딸이였다.

쌍까풀진 그윽한 눈매에 학과실력이 뛰여난 안신옥은 학부학생들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그런 처녀였다.

학급에는 견장뗀 자리가 또렷한 색바랜 군관복차림의 김철우란 학생이 있었다. 그는 제대군인들가운데서도 학과목실력이 형편없이 떨어진, 얼굴에 병색이 도는 청년이였다.

학부에서는 그가 전선에서 싸운 제대군관이라는것을 고려하여 그를 도와주기로 하였다.

어느날 귀밑머리가 희슥한 학부장이 안신옥을 따로 불렀다.

김철우의 과외시간학습을 도와주라는것이였다.

안신옥은 초리긴 속눈섭을 내리깔았다.

《실력이 높은 남학생들도 많은데 꼭 제가 도와주어야 합니까?》

학부장은 타이르듯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남학생들을 붙여줄수도 있소. 하지만 난 신옥동무가 도와주었으면 하오. 뒤떨어진 학습을 도와주는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치 못하니 생활적인 따뜻한 보살핌도 필요한것이요.

신옥동무야 집이 평양에 있지 않소.…

하지만 어쩌겠소. 정 내키지 않는다면 다른 동무를 붙여줄수밖에…》

안신옥은 호-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후방에서 공부하고있을 때 그는 전선에서 싸운 제대군인이라는 그 숭엄한 감정이 안신옥의 깔끔한 마음을 돌려세우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하루강의가 끝나면 교실과 새로 개건된 대학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저녁늦게까지 수학문제를 풀고 외국어단어들을 암기하였다. 리해하기 힘들어하는 공식들과 외국어문법들은 알기 쉽게 도식화하여 설명해주었다. 저녁식사시간마저 잊고있는 때가 드문했다.

전후의 복구건설장에서나 농촌지원의 나날에도 안신옥의 학습방조는 중단되지 않았다.

딸의 소행을 기특하게 여긴 부모님들의 권고로 휴식일이나 명절에는 집에도 초청했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보자기에 싸들고 기숙사에 찾아갔다. 큰 빨래들과 바느질, 그밖의 일감들을 찾아내여 성의껏 해주었다.

친오빠를 위하듯 어찌나 극성스러웠던지 학급의 제대군인들은 그의 소행을 두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심없고 진심인 안신옥의 성근한 학습방조는 김철우에게 큰 고무를 주었고 그의 향학열을 높여주었다. 손에서 보풀이 인 책이 떨어질줄 몰랐다. 기숙사식당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강의실에 오가는 길에서도 언제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전이 되는 밤에는 석유등밑에서, 석유마저 떨어지면 창문곁으로 의자를 옮겨놓고 흘러드는 달빛으로 밤이 깊어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욕에 발을 맞추자니 신옥은 바빴다. 어디서 구해오는지 자기도 보지 못한 참고도서를 읽으며 질문의 소나기를 퍼붓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선뜻 해답을 줄수가 없어 한동안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도 있었다.

피타는 노력은 열매를 맺기마련이다.

김철우는 학기말시험에서 전과목 5점을 받았다. 제대군인들가운데서는 그 하나뿐이였다. 처음엔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를 고무해주느라고 점수를 올려준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학년말시험에서 다시 전과목최우등으로 진급하자 모두 깜짝 놀랐다. 학부장선생님도 기뻐하였고 학급동무들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신옥은 흐뭇했다.

그후에도 신옥의 학습방조는 계속되였고 여전히 김철우는 인류가 파놓은 과학기술의 신비로운 호수에서 지식의 살진 물고기를 낚아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나날 어느때부터였는지 딱 짚을수는 없지만 신옥은 이상한 촉감을 가지게 되였다.

쉴 틈도 주지 않고 곁에 바싹 붙어다니던 김철우의 발걸음이 점점 떠지기 시작한것이다. 대학적인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앉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참고서를 쥐고 자기옆에 자리잡느라 왼심을 쓰던것도 다 없어졌다. 안신옥의 높은 실력에 탄복한 제대군인들이 학습방조를 해달라고 지꿎게 따라다니는것을 보고도 빙긋이 웃기만 할뿐 롱담 한번 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날 명절을 앞두고 군중무용보급을 할 때였다.

수학학과목책임자였던 그가 학급수학문제풀이장들을 강좌에 가져다주고 나오니 늘 기다리군 하던 김철우가 다른 녀동무에게서 춤을 배우느라 열성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자기를 얼핏 한번 보고는 춤동작을 익히는데만 정력을 쏟는것이 아닌가. 의례히 자기가 모든것을 배워주는데 습관된 신옥으로서는 별스레 허전해지는감이 불쑥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더우기 놀라운것은 이따금 하군 하던 자기의 초청마저도 거절할 때가 있는것이였다.

이것은 학생들의 선망속에서 도고해진 신옥의 자존심을 은근히 자극하였다. 어찌보면 실력을 높여주기 위해 애쓴 자기에 대한 무관심으로까지 생각되였다.

남학생들중에서 우수한 실력자가 되더니 민충이 쑥대우에 올라간것처럼 우쭐해진게 아니야?… 이젠 나의 방조가 필요없다는건데… 은연중 반발심까지 생겨났다. 이제부터는 나도… 했건만 신옥은 한번 골탕먹여주어야 속이 풀릴것 같았다.

자기는 여전히 학부장선생님의 특별임무를 받고 모든것을 방조해주는 위치에 있다는것, 자기에 대한 무관심은 례의에 어긋난다는것을 옆구리를 찔러 깨닫게 하고싶었다.

한동안 생각을 더듬던 신옥에게 피끗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매일 저녁 실력에 맞게 적당히 과제를 주군 하였는데 이제 한단계 높은 수준에서 어렵고도 아름찬 학습과제를 잔뜩 준다면?…

그날 저녁 제시해준 과제를 훑어보던 김철우는 난감한듯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너무 과도하지 않는가 하는 말없는 하소연이 얼굴에 언듯 떠올랐다가 인차 사라지더니 고개만 끄덕거렸다.

자기가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날 과제를 수행 못한 그를 쩔쩔매게 닦아세우리라는 천진한 생각으로 밀어버리며 부지중 심술궂은 웃음을 지었다.

이튿날 아침 퍽 늦어서야 교실에 들어서는 김철우를 흘끔 곁눈질해보던 안신옥은 깜짝 놀라 굳어졌다. 벌겋게 충혈되고 푹 꺼져든 눈이며 두볼, 꺼실꺼실 부르튼 입술,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얼굴, 걸음마저 쓰러질듯 절름거렸다.

하루밤사이에 그는 딴 사람이 되였다.

걱정하는 학급동무들의 물음에 그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일없소. 어제 밤 잠을 좀 설쳤더니…》

《?…》

안신옥은 대뜸 모든걸 알아챘다. 그러니 그 과제를 푸느라고…

아니, 그럴수가 없어…

신옥은 그날 강의가 어떻게 시작되고 끝났는지 몰랐다. 눈앞에는 칠판이 아니라 김철우의 병색짙은 얼굴이 얼른거렸고 잠을 좀 설쳤다던 그의 목소리만이 들려왔기때문이다.

수업이 끝난 후 신옥은 그가 내민 학습장을 성급하게 번지였다. 단 하루밤사이에 다 풀었다는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과제에 대한 해답이 수십매에 걸쳐 적혀있었다.

소학교아이들 글씨처럼 둥글둥글하고 큼직한 글자와 수자들이 펜촉마냥 신옥의 눈을 찔렀다. 그 해답이 맞았는지 어쨌는지 도저히 분간해볼수가 없었다.

밤새껏 무겁게 몰려드는 피로를 이겨내며 참고서들을 번지고 어렵고 힘든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을 김철우의 모습이 흐릿한 눈물속에 떠올랐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

그가 불편한 몸이라는것도 까맣게 잊고있었으니, 난 정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우동진, 너무해요! 너무해!… 자기를 그렇게 혹사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아니예요, 아니… 이 모든게 다 맹꽁이같은 내탓이예요. 내탓… 절 용서해주세요! 네?》

자기를 질책하는 신옥을 바라보며 그는 열정에 넘쳐 말했다.

《어린애처럼 울긴, 내가 왜 신옥의 진정을 모르겠소. 난 어제 저녁에 있은 일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오. 앞으로도 그렇게 채찍질해주오. 지금은 우리가 시간을 쪼개며 공부할 때가 아니요? 난 오직 과학기술을 배우고 또 배워 나라의 강철공업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뿐이요!… 신옥이, 그동안 나때문에 힘들었지? 사실 신옥의 학습시간을 더는 빼앗고싶지 않아서…》

《!…》

그들은 그후에도 아름다운 미래에로 서로 떠밀고 이끌어주면서 오직 학업에 모든것을 다 바쳤다. 몇해후 그들은 최우등의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김철우는 금속연구소에 배치받게 되였으나 고향인 강선으로 내려가겠다고 제기했다. 안신옥은 놀랐다.

《남들은 평양에 떨어지지 못해 그러는데 무엇때문에 부디 제강소로 내려가려는거예요. 나서자란 고향이라는 향토적감정때문인가요?》

《아니, 강선이 내 고향이기때문만이 아니요. 신옥이도 알겠지만 강철이 얼마나 귀중했으면 해방직후 수령님께서 지척에 있는 고향 만경대에도 들리시지 않고 우리 강선제강소를 먼저 찾아주셨겠소.

지금 강선땅은 수령님께서 지펴주신 천리마대고조의 봉화를 높이 들고 더 많은 강철을 뽑아내기 위해 쇠물처럼 끓고있소. 난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을 깡그리 제강소에 바치고싶소!》

《!…》

《신옥이… 나와 함께 강선으로 가기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옥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단호하고 열정에 넘친 그의 말은 안신옥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평양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안신옥은 마음의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제가… 싫다고 한다면…》

안신옥이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자 김철우는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아니, 난 신옥이가 안 가겠다고 발버둥쳐도 억지로 끌어안고서라도 데려가겠소. 난 신옥이를 사랑하오!… 우리 함께 강선의 하늘을 꺼질줄 모르는 쇠물빛노을로 물들이기요!》

《!…》

그에게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사랑의 고백이였건만 신옥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열렬한 사랑과 앞날에 대한 락관으로 충만된 그의 목소리는 순간이나마 동요하던 신옥의 마음을 틀어잡았다. 그때 김철우가 자기는 혼자서라도 강선으로 내려가겠다고 선포했더라면 신옥의 운명은 달리되였을지도 모른다.

외동딸인 자기를 금이야, 옥이야 하는 부모님들의 곁을 떠나지 못했을것이다. 김철우의 그 말 한마디, 억지로라도 기어이 데리고 가겠다고 한 사나이다운 기개, 시대가 부르는 보람찬 생활의 한복판에 서겠다는 그 숭고한 리상에 매혹되고 이끌리워 신옥은 그와 함께 강선으로 갈것을 결심했다.

제강소에 내려온 김철우는 강철직장 현장기사로, 안신옥은 설계실에서 일했다.

김철우의 가정은 제강소마을에서 흔히 보게 되는 쇠물집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녀동생 그리고 일가친척들도 제강소에서 일하고있었다. 그들은 안신옥을 친혈육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녀동생이 언니가 생겼다고 무척 좋아하였다. 집에서 다니라는 부모님들의 살뜰한 권고를 마다하고 안신옥은 합숙으로 나왔다.

그들은 제강소를 위해 보람찬 일을 해놓은 다음에 가정을 이루자고 약속했던것이다.

당시 제강소에서는 진응원천리마작업반의 뒤를 따라 천리마작업반운동이 힘차게 벌어지고있었다.

사회주의건설장 그 어디에서나 요구되는것이 강철이였다.

그때 김철우는 전기로에 산소취입법을 도입하여 강철생산을 늘일수 있는 안을 제기했다. 그것은 전기를 절약하고 쇠물끓이는 시간을 단축할수 있는 새 기술혁신안이였다.

김철우는 현장에 침식을 옮기였다. 밤을 새우며 기술문헌을 연구하고 도면을 그리였다. 안신옥이 식사를 운반해주고 도면을 그려주면서 도와나섰다.

그러던 어느날 김철우는 현장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그러나 며칠 안있고 현장으로 다시 뛰쳐나왔다.

안신옥이 놀라서 질책했다.

《왜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요? 산소취입법은 하루이틀에 끝날 일도 아닌데 그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겠어요. 그동안 내가 맡아 내밀겠으니 마음놓고 입원치료를 받으세요.》

《신옥의 그 마음은 고맙소. 하지만 병원침대에 누워있을수가 없었소. 이제 산소취입법을 도입한 전기로에서 첫 쇠물을 뽑는것을 보게 된다면 내병도 나을게요!》

신옥은 그날부터 현장사무실에 침식을 옮겼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용해공들과 제강소기술집단의 도움에 의하여 마침내 산소취입법이 도입된 전기로에서 주홍색쇠물이 쏟아져나왔다.

만사람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는 그들의 가슴에는 금빛천리마휘장이 자랑스럽게 번쩍이였다.

신혼의 밀월은 행복하게 흘러갔다. 몇달후 신옥은 태기를 느꼈다.

환희에 넘친 철우는 호기심에 넘쳐 속삭였다.

《신옥이, 이제 무엇을 낳을것 같소. 아들일가, 딸일가?》

안신옥이 얼굴을 붉히며 곱게 눈을 흘겼다.

《아이참,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당신은 무엇을 바라시나요?》

철우는 빙긋이 웃었다.

《신옥이를 꼭 닮은 딸을 낳았으면 좋겠소!》

《거짓말, 아들을 바라면서도…》

철우가 정색해서 말했다.

《처음엔 그랬는데… 다시 생각했지.》

《어째서요?》

《맏딸은 금주고도 못 바꾼다는 말이 있지 않소. 어머니를 잘 도와주는것도 딸이고… 그리고 난 말이요, 당신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오.

옛날 강선땅에 내렸다는 선녀같은 당신이 왜 영화배우가 되지 않고 야금기사가 되였을가 하고 말이요.

그래서 당신을 닮은 딸을 낳게 되면 꼭 영화배우를 시키고싶소!》

《당신도 참… 만약 아들을 낳는다면요?》

철우는 창문가로 눈길을 돌렸다. 전기로의 동음이 은은히 들려오는 제강소를 내다보았다.

《아들을 낳게 되면 우리 쇠물집의 대를 이을 야금기사로 키워야지. 제강소를 현대적인 야금기지로 전변시켜나갈 기둥감으로 말이요.… 언제면 우리 애가 고고성을 터치겠는지… 정말 보고싶구만!》

《아이, 당신도!…》

신옥은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안신옥은 행복한 신혼생활속에서 이제 태여날 어린애를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 행복만이 깃들줄 알았던 그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덮쳐들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남편 김철우는 무리한 후과에 불치의 합병증까지 겹쳐 그처럼 기다리던 어린애가 태여나는것도 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이게 웬일이예요. 이렇게 혼자 가면 난 어쩌라는거예요. 어서 눈을 떠요. 못 가요, 못 가…》

안신옥은 남편의 시신을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정신적타격은 너무도 컸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만 같았다. 밤에도 낮에도 저도 모르게 남편의 부드러운 손길을 더듬어찾았다. 그렇지만 떨리는 손에 안겨지는것은 허공뿐이였다. 시부모님과 동무들의 위로도 그에게 힘을 주지 못했다.

이 세상에 더는 살고싶은 생각마저 없었다. 남편을 따라가고싶었다. 크나큰 비애는 사람을 외롭게 하며 말못할 괴로움과 피타는 회상으로 가슴을 허비게 한다. 신옥은 생활을 포기하고 자리에 눕고말았다.

생명의 등불은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시부모님들이 전혀 밥술을 뜨지 못하고 누워있는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 눈물은 내려와도 밥술은 올라간다고…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이야 살아야 할게 아니냐.》

자기를 위로해주는 시아버지의 말에 신옥은 오히려 설음이 북받쳐 얼굴을 싸쥐고 오열을 터뜨렸다. 시어머니가 신옥을 다정히 껴안으며 타일렀다.

《애야, 앞으로 태여날 어린애 생각도 해야지.…》

그랬다. 그때 배속에서 툭툭 발길질하는 새생명의 태동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신옥은 남편을 따라 영영 갔을지도 모른다. 신옥은 이제 태여날 아이를 생각했다. 거기서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났다.

몇달후 유복자가 태여났다. 시아버지는 손자이름을 김성남이라고 지어주었다. 신옥은 넋을 아들애에게 빼앗겼다. 기저귀를 갈아주며 포동포동한 엉뎅이에 입을 맞춰주었다. 부풀어오른 젖을 빨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들애의 얼굴에서 애써 남편의 모습을 찾아보며 자신을 위안하였다. 신옥에게 있어서 성남은 마음의 기둥이였고 기쁨이고 희망이였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 틀고앉은 고독과 서글픔은 누를수 없었다. 달빛이 처량하게 흘러드는 깊은 밤 아들애를 옆에 끼고 누워있느라면 마치도 하늘의 둥근달이 남편의 얼굴처럼 생각되였다. 은은하게 흘러드는 푸릿한 달빛이 자기 모자에게 보내는 남편의 구슬픈 사랑처럼 느껴져 눈물을 머금고 속삭였다.

(여보, 당신은 왜 그리도 빨리 내곁을 떠나셨나요. 정녕 내 사랑과 정성이 부족하였던가요. 당신없이 난 어떻게 살라는거예요. 아…)

그리고는 조심히 손을 뻗쳐 남편의 따스한 체취가 느껴지는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혹시 시부모님들이 들으면 가슴아파하실가봐 소리없는 눈물로 베개를 흠뻑 적시였다. 마음같아서는 부모님들이 계시는 친정집으로 훌쩍 가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시집온 몸이고보니 마음내키는대로 할수도 없었다. 더우기 아들을 잃고 괴로와하는 시부모님들과 오빠를 잃고 외로와하는 시누이의 슬픔을 더해줄것만 같아 그냥 눌러있는것이다.

길가에 홀로 핀 아름다운 꽃을 무심히 보지 않듯이 생활은 홀로 사는 미모의 녀인을 그대로 두려고 하지 않았다. 신옥을 위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새파란 나이에 어떻게 먼저 간 남편만 생각하며 혼자 살겠는가고 대상자를 소개해주었었다. 그에게 반한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옥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맞춤한 대상자가 나타났다. 신옥이 고급중학교시절 민청위원장을 했던 리경준이라는 청년이였다. ㅊ공업대학을 졸업하고 북방의 김책제철소에서 책임기사로 일하고있었는데 제강소에 출장왔다가 우연히 신옥을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대상자가 찾아왔어도 호수마냥 고요하던 신옥의 가슴에 운석이 떨어진듯 파문이 일어났다. 고중동창이라는 연고도 있었지만 어쩐지 남편 김철우와 성격이나 모색이 비슷한것이 신옥이로 하여금 마음속 동요를 일으켜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신옥은 여러번 찾아온 경준을 강잉히 물리쳐버렸다.

어느날 시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내 어제 경준이 그 사람을 만났다. …나한테 찾아왔더구나.》

신옥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시아버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깊은 눈길로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신옥은 시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면구스러워 고개를 떨구었다. 어쩌면 그럴수 있단 말인가. 나를 찾아온것은 그래도 리해가 된다. 그러나 아들을 잃고 상심해있는 시아버지에게까지 찾아갔다니 이것은 너무도 지나친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내가 승인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몸둘바를 몰라하는 며느리가 측은해보였던지 시아버지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내 다 들었다. 너희들은 고급중학교 동창이라면서? 내 보기엔 그사람이 괜찮아보이더라. 인품도 사회적지위도 있고… 난 다른 의견이 없다. 그래서 내 로친하고도 조용히 토의했다. 동창이라니 리상도 맞을게고… 네 마음에만 든다면… 우린 반대없다.》

《?!…》

신옥의 눈가에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신옥은 시아버지의 말씀이 죄다 진심에서 나온것이라고 생각되였지만 어쩐지 서러움을 참을수가 없었다.

죽으라는 소리보다 가라는 소리가 더 섧다고 하지 않았는가.…

신옥은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쳤다.

《아버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이미 결심했습니다. 성남이를 데리고 혼자 살겠다고…》

시아버지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내 다 안다. 혼자 사는 네 마음이 오죽하겠니… 요즘 네 신상이 말이 아니다. 예로부터 혼자 사는 과부의 허벅다리는 성한데가 없다고 했지… 그게 무슨 소린고 하니 남편생각이 날 때마다 인두를 달구어 다리를 지져 그 아픔으로 남편생각을 잊었다는 소리다. 옛날에는 봉건이 심해서 그랬다치고 개명한 오늘날에 와서도 그런 설음을 참으며 혼자 살아야 하겠느냐. 그러지 않아도 네가 자식 하나 데리고 외롭게 사는걸 보면… 난 죽어도 눈을 감을것 같지 않다. 그래서 로친네하고도 좋은 자리를 탐문해서 재가를 시키자고 약조가 되여있었는데… 그 사람이라면 우리도 마음이 놓인다.》

부엌에서 동자질하며 그들의 말을 귀동냥하던 시어머니도 물묻은 손을 앞치마에 문대며 올라와앉았다.

《성남이는 내가 맡아키우겠으니… 아무 걱정말고 다시 가정을 이루거라.…》

그러는 시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오른다. 신옥은 어머니무릎우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어머니… 전 철우동지를 사랑했어요.… 그렇게는 못해요.…》

시어머니의 눈물이 신옥의 볼우에 떨어졌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어깨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아니다.… 너를 그처럼 사랑하던 철우도… 너의 행복이라면 리해할게다.… 그게 다 생활이지… 난 어쩐지 경준이가 철우처럼 생각된다. …》

신옥은 편견이 없이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시부모님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동되여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가지 말라고 잘 돌봐주겠으니 우리와 함께 살자고 잡아끌었더라면 이렇게 감동되지 않았을것이다.

남편을 잃은 뒤 시부모님들은 신옥의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되여주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자기 딸을 잘되게 해주자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마음의 기둥처럼 믿고살던 시부모님들까지 한사코 떠밀자 가까스로 지탱하던 마음의 탕개는 풀리고말았다. 그런데 아들애가 마음에 걸린다.

시부모님은 자기들이 키우겠다고 두고 가라고 하지만…

신옥은 아들애와 떨어질것 같지 않았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여 이제는 아장아장 걸어다닌다. 자기 시야에서 조금도 엄마를 놓치려 하지 않는 아들, 그 어디에 가 살던 성남이를 데리고가고싶다. 문득 신옥의 귀전에 아들애까지 맡아키울 의지가 있다고 하던 리경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가서도 야금기술자로 키우면 될게 아닌가.… 아들을 데리고가자.

다음순간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평양에 배치받았지만 제강소의 하늘을 지지 않는 쇠물빛노을로 물들이고싶어 굳이 고향 강선으로 내려왔던 남편, 아들이 태여나면 쇠물집의 넋을 이어 제강소를 현대적인 야금기지로 전변시켜나갈 기둥감으로 키우겠다고 하던 남편의 그 유언이 못 견디게 가슴을 친다. 그렇다. 그 애를 낳은것은 남편의 넋이 깃든 강선땅에서 아버지를 닮은 훌륭한 야금기술자로 키워 남편이 이루지 못하고 간 소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더우기 금이야, 옥이야 하는 성남이를 데리고간다면 시부모님들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텅 빈방에 웃음도 없이 쓸쓸하게 앉아계실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신옥이 시부모님께 바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들애일것이다.

남편과 시부모님들에 대한 의리심이 본능적인 모성애를 지그시 눌렀다. 일시 가슴이 아프더라도 성남이를 강선땅에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자면 아들애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다시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일생동안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신옥의 결심을 들은 시어머니가 펄쩍 뛰였다.

《아니다. 애가 엄마를 알게 되고 정이 들게 되면 헤여지지 못한다. 우리는 성남이를 이 강선땅에서 자래우고싶다. 이젠 젖도 떼고 걸음마를 뗐으니 내가 얼마든지…》 라고 하던 시어머니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신옥의 얼굴을 보았던것이다. 시어머니도 녀성이고 아이를 낳아 키워온 어머니였다. 같은 녀성으로, 어머니로서 자식과 떨어지게 되는 며느리의 가슴아픈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는것이다.

《네가 성남이와 헤여지자니 가슴이 아파 그러는구나. 그럼… 애를 데리고…》

순간 시어머니는 마치도 손자와 당장 리별하게라도 된듯 설음에 북받쳐 돌아앉으며 옷고름을 눈에 가져갔다. 신옥이도 시어머니를 붙들고 함께 울었다. 어린 아들을 두고 가자니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데리고가자니 시부모님들앞에 죄스러웠다.

아니다. 그렇게는 못한다. 이건 어머니로서, 녀성으로서 도무지 하지 못할 일이다.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남편 잃은 슬픔에 합쳐 이런 고통까지 당해야 하는가. 단념하자. 모든걸 잊어버리자. 이제 더는 딴생각 하지 말고 성남이를 잘 키우자. 사랑하는 아들아!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그러나 시부모님들의 고집은 집요하였다.

맞춤한 대상이 나선데다가 신옥을 친딸처럼 생각하고있는 시부모님들은 진심으로 딸자식의 앞날을 걱정하고 마음쓰셨던것이다. 그들의 진정이 없었더라면 신옥은 아마도 자기 결심을 굽히지 못했을것이다.

몇달후 시부모님들의 간곡한 권고는 신옥이로 하여금 최대의 의지력을 발동하여 어린 아들을 강선에 남겨놓고 떠날것을 결심하게 하였다.

신옥은 리성이 바른 녀자였다. 그 결심을 하는 순간 자기는 아들앞에 죄를 짓고있다는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장차 아들이 어른이 된 다음 이 모든 사연을 이야기해준다면 너그럽게 리해하여줄것이라고 믿고싶었다.

그러나 신옥은 아들이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수록 어린 그를 할머니손에 남겨두고 떠난 죄의식때문에 아들앞에 떳떳이 나설수 없게 되리라고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람을 따라 떠나는 날 신옥이 장농을 두고 가려고 하자 시어머니가 기어이 지워보냈다.

《네가 간다고 해도 난 언제나 우리 집 며느리로 생각한다. 장농이 뭐라고 그러느냐.》

신옥은 장농과 함께 천리마휘장을 고이 간직하고 떠나갔다.

강선땅에 심장의 한절반을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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