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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1 회


제 1 장


균 렬


1


지련희는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저녁해가 마지막빛발을 아낌없이 뿜을무렵 영천역에 내렸다. 가슴이 마냥 울렁이였다. 꿈에조차 늘 보이군 했던 그리도 낯익은 고향이고 그리도 정들었던 땅이다. 렬차에서 내리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마저도 다 서름하지 않은 친밀한 인상으로 안겨왔다.

(드디여 이렇게 돌아왔구나!…)

나들문을 빠지면서도 련희는 자꾸 목을 빼들고 노을속에 감겨들기 시작하는 먼 동암리쪽하늘을 바라보게 되였다. 바로 그 하늘아래 흰 연기를 무럭무럭 뿜어올리는 영천화력발전소가 자리잡고있었고 그리운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계시는것이다.

가슴은 파도마냥 뒤설레였고 그들먹이 차오르는 흥분감으로 숨이 다 꺽 막히는것만 같았다. 눈뿌리 아득한 동암땅에 그리고 아스라게 높게 뜬 파란 하늘에 대고 청고운 아이적 목소리로 웨치고싶었다.

《정든 고향아! 네가 그리워 이 딸이 돌아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처녀의 환희로운 목소리에 화답하듯 렬차는 길게 기적소리를 울리며 북쪽방향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련희는 마음이 다급하여 등에 진 배낭이며 손에 든 구럭의 무게도 의식하지 못하며 역전광장을 가로질러 뛰여나갔다. 혹시나 화력발전소로 가는 차가 있지 않나 해서였다. 광장좌측에 시내를 오가는 소형뻐스 두대가 서있을뿐 기억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화력발전소번호를 단 차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난감하여 오도카니 서있던 련희는 묵직한 배낭을 한번 추슬러올리고 결연히 걸음을 내짚었다. 걷기로 결심한것이였다. 동암리까지는 시오리길이였다. 이렇게 걷느라면 해는 꼴깍 지고 어둠이 덮일것이지만 앞서가는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그 찰나 화물자동차 한대가 그의 곁을 스칠듯 지나갔다.

《같이 가자요!》

얼결에 손을 흔들며 소리치니 고맙게도 화물차는 삑- 멎어섰다.

동시에 차창으로 나이든 운전사의 머리가 쑥 나왔다.

《어디까지 가나?》

《동암리예요, 영천화력발전소!》

《허, 안됐군. 이 차는 세멘트공장으로 간다네.》

차는 곧 사라졌다. 련회는 아쉽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끝까지 걷는수밖에 없었다.

그때 등뒤에서 서글서글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동암리까지 간다지요?》

놀래여 돌아보니 자전거에서 한발을 땅에 짚은 웬 청년이 주의깊은 눈길로 그를 지켜보며 서있었다. 키는 올려다볼만큼 흠썩 컸고 얼굴은 갱핏한게 사내다왔다. 인상적인것은 칼처럼 날이 선 코마루였다. 어떤 야릇한 경계감이 들어 련희는 촉이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청년은 히죽이 웃었다.

《뻔하지요. 차림을 보면 갓 대학을 졸업한 처녀라는것, 배낭을 졌으니 배치지로 갈게고, 가되 기계기름냄새가 풍기는것으로 보아 영천화력이 목표일것이다!… 어떻습니까?》

련희는 저으기 놀랬다. 그 모두가 거의 들어맞았던것이다. 단지 배치지가 아니라 현실체험지로 나왔다는것이 다를뿐이였다.

그런데 기계기름냄새가 난다는건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일가? 자기는 평양처녀답게 고상하면서도 아름답게 화장을 하여 아주 기분좋은 향기를 풍기고있지 않는가.

련희는 좀 싱거운 청년이라고 단정했으나 호기심도 없지 않아 슬쩍 변죽을 올려보았다.

《점을 치시는가본데 썩 신통친 않군요.》

《어떤 점에서요?》

《난 대학졸업생이긴 하지만 일정한 사회생활을 한 경력이 있구요, 또 기름냄새에 비유한건 좀 빗나가는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하여튼 동암에 가는건 사실이 아닙니까?》

이번에 련희는 대답을 피했다. 길가던 낯선 사내와 가타부타 더 시비를 가를 생각도 없었고 시간도 급했다.

련희의 얼굴에 언짢고 초조해하는 기색이 떠오르는것을 가려보았던지 청년은 다시한번 싱긋 웃으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제 좀 롱을 했습니다. 이자 자동차를 세우고 말하는걸 귀동냥했지요. 생각이 있다면 동암까지 태워다줄테니 어떻습니까?》

귀가 번쩍 열리는 제의였다. 그러면서도 련희는 한동안 망설였다.

초면에 청년과 나란히 한 자전거에 올라 먼길을 간다는것도 멋적었고 또 그의 호의를 뿌리치고 무거운 짐을 진채 허덕거릴 일도 딱했다. 이번에도 청년은 련희의 속생각을 읽어낸듯 그 망설임에 사내답게 종지부를 찍었다.

《난 범이 아니니 물려죽을 걱정은 마시오. 자, 짐을 인주시오.》 자전거주인은 성큼 손을 뻗쳐 잔등의 배낭을 벗겨내리더니 제꺽 제 잔등에 지고 구럭은 바구니에 실었다.

《갑시다. 보아하니 자전거꽁무니엔 타본것 같지 않지만 특별히 숙련할것도 없답니다. 그저 중력중심을 잘 유지하면 되는것이니까요.》

이제는 더이상 뿌리칠 방도가 없게 되였다. 련희는 새삼스럽게 청년을 훔쳐보았다. 잔등이 얼마나 넓은지 자기의 등에 꽉 찼던 배낭이 깡충하니 매달려있었다. 상대방이 응한다면 금시라도 달려보려는듯 자전거손잡이를 쥐고 인상좋은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있다. 그 표정은 안심하고 어서 타라고 재촉하는듯싶었다. 이상하게도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자전거뒤꽁무니에 타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한동안 바재이던 련희는 결심이 선듯 용기를 내여 말했다.

《좋아요, 신세는 져보겠어요. 하지만 자전거뒤꽁무니엔 탈 생각이 없어요. 규정에 위반되니까요.》

《아하, 그렇지. 규정위반이지… 역시 도시처녀가 다르군요. 할수 없군, 자전거에 짐을 실었으니 함께 걸어가는수밖에… 동의합니까?》

청년은 푸접좋게 련희의 말을 되받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련희는 웃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함께 걷자는 청년의 제의를 수긍했다. 두사람은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걸었다.

해가 저물어가지만 날씨는 따뜻했다. 4월의 봄빛이 한창 무르익는 때인것이다. 길섶에 주런이 늘어선 길나무들에도 파릇파릇 새움이 터나오며 싱그럽고도 쌉쌀한 향기를 풍기고있었다.

무엇이 흥겨운지 자전거주인은 곧 《자동차운전사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어대기 시작했다. 휘파람솜씨가 역시 멋지였다. 련희의 마음도 흥그러워졌다.

갑자기 청년이 휘파람을 뚝 그치고 물었다.

《어떻습니까? 우리 화력에 오는 손님이 맞지요?》

《예, 그런데 동진?…》

《아하, 내 소개를 해달라 그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난 화력발전소 로동잡니다. 이름은 서봉철, 동무는요?》

《지련희예요. 저도 역시 화력발전소에 간답니다.》

《그러니까 배치가 맞군요.》

《저… 큰아버지가 거기 계셔서 찾아가요.》

《무슨 일을 하시게요?》

응당한 질문이였다. 그럼에도 련희는 초면에 자기를 너무 말짱 드러내는것이 언짢아 슬쩍 둘러쳤다.

《전기를 생산하지요.》

《전기를 생산한다! 명백해서 좋군요.》

자전거는 잠간사이 영천갑문을 통과하여 장성강동뚝길에 들어섰다.

해는 어느사이 지고 하늘가에 화광이 깃든 저녁노을이 짙게 타올랐다.

그 노을에 잠긴 화력발전소의 웅장한 자태가 련희의 시야에 안겨왔다.

눈굽이 쿡 쑤셔났다. 아아, 15년전 쬐꼬만 계집애였던 자기가 동심의 발자욱을 다복다복 찍었던 발전소구내며 동구길, 그 길에 자기가 다시 들어서고있는것이였다.

《제가 왔어요.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토록 사랑을 기울여 키워준 이 딸이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련희는 목이 꽉 잠겨 속으로 뜨겁게 뇌여보았다. 그러자 고막속으로 15년전 그날에 울리던 역두의 기적소리가 애절하게 파고들었다.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목화송이같은 함박눈이 미여지게 내리던 겨울이였다. 쌍둥이자매처럼 함께 자라온 큰아버지네 딸 영희와 함께 손을 맞잡고 깔깔 웃으며 방에 뛰여든 련희는 웬 낯선 녀인이 큰어머니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말고 자기를 유심히 지켜보는것을 보았다.

웬 손님이거니 하고 굽석 인사를 하고난 련희는 책가방도 채 못 벗은채 대뜸 큰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엄마, 나 오늘 국어시험 5점 맞았다. 영흰 4점이야!》

《피- 4.5인데. 겨우 받침 하나 틀렸을뿐이야!》

영희도 지지 않고 볼에 밤알을 문채 토달거렸다.

여느때 같으면 《어이구, 우리 련희 곱구나. 영희간식절반은 련희거다!》 하며 볼을 다독여주셨을 큰어머니가 그날은 어째서인지 서글픈 눈매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련희야, 너희 새 어머니가 오셨다. 이분이시다.》

《새 엄마?》

련희는 그만 눈이 올롱해졌다. 전력공업성 과학기술국장을 하는 아버지 지용수는 알아도 어머니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 그였다.

련희는 한자리에 얼어붙은듯 이쪽저쪽 두 어머니를 번갈아보았다.

(영희와 난 쌍둥이형제인데 어떻게 내게만 두 어머니가 생겼을가?)

영희도 련희처럼 머루알처럼 까만 두눈동자를 깜빡이며 서있었다.

사슴처럼 겁먹은 두 소녀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 두 눈길은 《이럴수도 있을가?》 하고 묻는것만 같았다.

《련희야, 여기 와앉아라.》

두 딸의 질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대답이나 하듯 어머니가 목갈린 소리로 련희를 불렀다. 련희는 까딱 않고 서서 한쪽구석에 앉아 덤덤히 담배를 피우고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련희는 소학교에 입학할 때 처음으로 봉선화꽃잎같은 입술로 아버지를 《아버지!》 하고 불러보았다.

련희는 1년에 대여섯번씩 찾아와 성가스러울 정도로 어린 자기를 안아주고 볼을 부벼주던 아저씨가 자기 아버지라는것을 알았을 때 오늘처럼 뻥해있군 하였다. 그런것을 큰아버지가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어서야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고 어린 자기를 막역한 친구인 큰아버지에게 맡긴채 평양으로 소환되여갔다는것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자기에게 새 엄마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던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아버지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련희야, 어서 어머니에게 인사해라.》 하고 말했다.

련희는 선채로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리고는 큰어머니의 목을 꽉 부여안으며 도리질을 해댔다.

《싫어싫어, 난 엄마밖에 몰라. 새 엄만 싫어!》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그 새 엄마가 자기를 데려가려고 왔다는것, 그렇게 되면 영희와 함께 쌈싸우듯 하며 젖을 빨던 이 엄마품을 잃을수 있다는것을 직감한것이였다.

큰어머니도 그만 눈굽을 찍으며 울먹울먹했다.

《그러지 말아, 련희야. 네 엄만 네가 요만할 때 몹시 아파 멀리에 치료받으러 갔다가 이제야 돌아왔단다. 자, 봐라. 네게 주려고 새 솜옷이랑, 내의, 장갑에 멋진 구두까지 사오지 않았니.》

새 엄마도 한무릎 다가앉으며 다정히 손을 잡았다.

《우리 련희 곱구나. 널 보고파 이 엄만 혼났다. 이 옷들을 입고 우리 평양 가자. 좋지, 응?》

《안 갈래, 안 갈래!》

련희는 너무 서럽고 억울해서 손을 뿌리치며 발버둥했다.

곁달아 영희도 왕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련희 뺏지 말라요! 뺏지 말라요!》

마침 그 순간 밖에서 승용차소리가 울리더니 잠시후 큰아버지 리성복이 들어섰다.

《큰아버지!》

련희는 총알같이 뛰쳐일어나 리성복의 품에 몸을 던졌다.

《나 못 데려가게 해줘요. 난 안 갈래요, 예?》

영희에겐 때로 엄하게 굴어도 련희만은 늘 등등 업고다니다싶이 사랑해준 큰아버지였다. 이제 이 옷자락을 놓치면 자기는 정든 학교는 물론 웅웅 거세찬 동음으로 어린 넋에 아롱다롱한 갖가지 꿈을 심어주던 발전소며 애틋한 정을 주고 사랑을 주던 엄마 그리고 영희도 영영 잃게 될것 같았다.

큰아버지는 파들파들 떨며 품에 파고드는 련희의 머리를 마치 얼이라도 나간듯 오래오래 쓰다듬었다. 그 역시 목이 그냥 잠긴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련희야, 그래 옳다. 넌 내 딸이다. 그러나… 내가 늘 말했지? 넌 머리가 좋아서 이담에 큰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잊지 않았지?》

그제야 련희는 고개를 들어 말끄러미 큰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끄덕였다.

《용쿠나! 그래서 말이다, 평양 가서 학생소년궁전에서 공부해야 큰사람이 될수 있기때문에 널 보내는거다. 알겠니?》

《거 어리다고 너무 응석을 받아주는게 아니요? 이제 새 엄마에게 정도 붙여야겠는데…》

아버지 지용수가 좀 불만인듯 나직이 수군거렸다.

그러자 큰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였다.

《날 울리지 마오. 지금 나도 심장이 찢기는것 같아!》

그다음 허리를 굽히고 련희의 손을 따뜻이 어루만졌다.

《련흰 내 말을 잘 듣지, 응?》

리성복의 앞에서 갖은 응석을 다 부리지만 그의 말을 단 한번도 거역해보지 못한 련희였다. 자기를 그토록 생각해주는 큰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제 막 성을 내실지 몰라. 정말 평양학생소년궁전이 그렇게 희한하다는데 한번 가서 공부해볼가? 그러다 싫증나면 냉큼 되돌아오고!

그렇게 되여 련희는 팔목으로 눈물을 닦으며 두번째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새 엄마의 손에 이끌린채 렬차에 오르고 우렁찬 기적소리가 울렸을 때 련희는 그만 왕왕 소리쳐 울며 차창으로 멀어지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영희에게로 돌아가겠다고 발버둥질을 쳤다.

《안 갈래!- 안 갈래, 날 내려줘요. 큰아버지!-》

…어느덧 련희의 속눈섭은 촉촉히 젖어들었다.

평양에서의 생활이 그토록 환회로왔지만 떠나온 그 고장에 대한 그리움을 언제한번 버려보지 못한 그였다.

련희는 감회깊은 눈으로 정든 땅을 빨아들일듯 지켜보았다. 눈길이 모자라게 아찔하니 치솟은 굴뚝, 산같이 큰 발전기실에서 뻗쳐나오는 세찬 증기발, 장엄한 대교향악처럼 가슴을 울려주는 발전기의 동음… 대동력기지의 웅자를 물결우에 그림처럼 떠싣고 흐르는 장성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릴 때 물오리 유유히 노니는 이 장성강에 나와 해지는줄 모르고 물장구 치던 기억도 새삼스러웠다. 자전거주인만 아니라면 장성강반에 대고 어린애처럼 소리치고싶었다.

《장성강아- 내가 왔다!》

어느덧 두사람은 동암산뒤산에 즐비하게 늘어선 발전소사택으로 향한 길에 들어섰다. 련회는 어릴적 기억을 되살리며 자전거주인을 이끌고 이골목저골목 큰어머니의 집을 찾아 걸었다. 서봉철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자전거주인도 우연히 만난 평양처녀가 과연 어느 집을 찾아가는가 호기심이 잔뜩 동했는지 슬금슬금 열심히 따라왔다. 련희의 걸음이 빨라졌다. 이제는 큰어머니의 집을 눈감고도 찾아갈만큼 뚜렷해졌기때문이다. 세멘트로 포장한 경사길로 얼마쯤 올라가던 련희는 어느한 집앞에서 멈춰섰다.

자전거주인은 그 집을 바라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 집이 화력발전소 당비서의 집이였던것이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 당비서동지의 집을 찾아왔구만요?》

련희는 고개를 까딱이며 생긋 웃었다.

《챠, 그렇다면 진작 말해야지요.》

자전거주인은 별스레 좋아하며 자전거버티개를 세우는것이였다.

《정말 고마왔어요.》

련희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어조로 인사했다.

《고마울게 있습니까? 우리 발전소에 찾아오시는 손님이면 다 귀빈이지요.》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련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련희의 마음은 조급해있었다. 자전거주인을 돌려보내고 한시바삐 큰어머니와 상봉해야겠는데 노는 모양을 보니 인츰 돌아갈 자세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잘 가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덩지 큰 사람들은 저렇게 눈치가 무딘가부지?…)

련희는 대문을 두드렸다.

《큰어머니!》

얼마후 신발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려졌다.

《큰어머니! 련희예요.》

큰어머니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 련희구나?!》

련희는 큰어머니의 품에 총알처럼 날아들며 안겼다. 두사람은 기쁨의 한덩어리가 되여 얼싸안았다. 얼마나 보고싶던 모습들인가.

련희는 영천화력발전소로 현실체험파견장을 받은 날부터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서려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정작 큰어머니를 만나고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큰어머니의 주름진 두볼에서도 눈물이 구울러떨어졌다.

련희를 품에 안고 그의 등을 따뜻이 어루쓸던 큰어머니가 물었다.

《그래 아버지와 어머닌 무고하시겠지?》

《예.》

그러던 큰어머니의 눈길이 아직도 길가에 서서 두사람의 상봉을 홀린듯 지켜보고있는 자전거주인에게 옮겨갔다. 그제야 자전거주인은 꺼덕 인사하며 멋적게 말했다.

《전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련희동무, 다시 만납시다.》

자전거주인은 련희와 오랜 친구지간인듯 손까지 흔들어보이고는 자전거를 타고 훌 가버렸다.

《아는 사이냐? 분명 서재필아바이의 아들같은데…》

큰어머니는 아리숭한 인상으로 물었다.

《알기는 한시간전에 알았어요. 역전에서 만나 여기까지 데려다주었지요 뭐.》

《그래? 어서 들어가자!》

큰아버지의 집은 그전과 별반 달라진것이 없었다. 어릴 때 영희와 줄넘기를 하던 앞마당이며 잎새를 한창 피우는 울타리주변의 복숭아며 추리나무들, 가운데 자그마한 전실이 있고 두개의 방이 달린 집안도 이전 그대로였다.

련희는 정깊은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래방벽면에는 큰아버지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들이 꽉 차있었다. 훌륭한 큰아버지를 둔것으로 하여 련희는 다시금 긍지를 느꼈다. 기념사진앞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련희를 정깊게 주시하고있던 큰어머니가 감탄처럼 말했다.

《련희야! 너 곱게 번졌구나.》

수집은 웃음을 짓던 련희는 그제야 생각나서 가방에서 편지한통을 꺼내들었다.

《참, 내려올 때 영희를 만났어요. 그가 보낸거예요.》

《그래? 어디 좀…》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예, 방금 도착했어요.》

련희는 전화를 받는 큰어머니에게 다우쳐물었다.

《큰아버지시지요?》

《응, 너와 바꾸란다.》

련희는 큰어머니의 손에서 송수화기를 빼앗다싶이 했다.

《련희예요, 큰아버지.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수화기공명통으로 큰아버지 리성복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우리 련희가 정말 용쿠나. 대학을 나오구, 사회생활을 시작하구. 아버지한테서 네가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 역에 차를 마중보냈는데 허탕쳤더구나. 그래, 허허…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그런데 련희야! 참 미안하게 됐구나. 큰아버진 발전소에 일이 생겨 저녁에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니 큰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푹 쉬거라. 응, 알겠다!…》

련희는 아쉬운대로 전화를 놓았다. 큰어머니가 물었다.

《그래 뭐라시더냐?》

《오늘 저녁 일이 있어 못 들어오신대요.》

《그럴줄 알았다, 노상 그런걸.》

큰어머니의 지청구 비슷한 말이였다. 련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려장을 풀었다. 마침내 오래동안 돌이켜보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토록 익숙한 체취를 페부로 절감하게 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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