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1장. 고뇌


6


항간에 떠도는 말이 년로보장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인생이 끝나는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고 한다. 직장생활이 전생이라고 하면 년로보장을 받은 때부터는 후생이라고 하겠는지… 낚시질에 취미를 붙인다든가, 벌치기나 염소를 기른다든가, 아니면 후세를 위해 글을 남기든지… 하여간 자기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후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이 후반생활에도 제나름의 새로운 정서와 삶의 보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강소현대화라는 큰일을 남겨놓고 들어온 리규택이 새로운 후생을 터득하기 전에 먼저 느끼게 된것은 고르롭고 규칙적이던 생활의 리듬이 파괴되였다는것이다.

처음 며칠동안은 공장에 출근하던 생활의 타성으로 해서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닭장문을 열어주었다. 인민보건체조와 간단한 운동을 하고(중학시절 롱구주장을 할 때부터 한생을 거쳐 굳혀온 습관이다.) 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직장에 출근하는 자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다음이 문제다. 아들, 손자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가는것을 거들어주고나서는 대문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쁜 걸음으로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들이 몹시 부러웠으나 서글프게 웃으며 돌아섰다. 집안과 마당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오락가락하면서 불안스레 서성거린다. 동물원에 갇힌 짐승처럼… 무엇이나 바쁜것이 없다. 생활의 목표가 없어진것이다. 급하고 우뚤우뚤한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어떤 날엔 동창이 훤해지도록 따뜻한 이불속에서 궁싯거리기도 했다. 그러면 뜨락의 닭우리에서 수닭이 홰를 치며 고아대는 소리가 소란하게 들려온다, 눈을 뻔히 뜨고서도 벌떡 일어나 닭장문을 열어주지 않고 이불밑에서 꾸물거리는 그의 게으름을 비난하는듯… 도대체 무엇으로 이 후반생활의 공허를 메꾸어야 하는지…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리규택은 낚시질에 취미를 붙이리라 결심했다. 며칠동안 끙끙거리며 낚시대와 낚시도구를 준비하는 그를 보고 로친이 퉁을 주었다.

《어휴, 령감성미에 가만히 앉아 낚시질을 할것 같소?》

《왜 못해, 사색도 하고 고기도 잡고 좀 좋아서.》

동료들을 따라 낚시터로 나갔다. 헌데 그 낚시터란 한때는 제강소 가열로들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만 차고넘쳐 제강소마을녀인들의 훌륭한 빨래터였다. 그러던것을 리규택이 가열로에 증발랭각장치를 창안도입한 후부터 더운물대신 찬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한해가 지나 물풀이 돋아나고 고기가 서식하기 시작했다. 몇해후에는 강선땅에서 손꼽히는 낚시터로 된것이다. 참 공교롭기란, 그 호수에서 낚시질을 하게 되다니?…

그는 입을 쩝쩝 다시며 어쩔수없이 물우에 낚시대를 드리웠다. 흔히 낚시질이란 고기도 잡지만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사색과 정신육체적안정을 주는 매우 유익한 오락이기도 하다. 허지만 리규택에게는 정신적안정이 아니라 왜서인지 지나온 인생의 자취가 서운하게 돌이켜진다.

달마산마루에서 붉게 타는 저녁노을과 같이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한 후회처럼…

…리규택은 연기자욱한 제강소마을에서 사내자식이 다섯이나 득실거리는 로동자가정의 막내로 태여났다. 그의 어린시절은 싫든좋든 형들의 자질구레한 심부름과 닥달속에서 흘러갔다. 어릴 때부터 그는 손재간이 좋았다. 종이를 접어 배를 만들었고 진흙을 이겨 자동차며 여러가지 장난감을 신통하게 빚었다. 그럴 때면 형들은 저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려들었다. 형들의 말대로 하면 배가 학으로도 되였고 자동차가 땅크로 되고말았다. 자기가 생각했던것은 형체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엇서나갔다. 어떤 형들은 제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장난감을 망그러뜨리기도 했었다.

약이 오른 규택은 형들에게 대들었다가 한대 얻어맞고는 엉엉 울면서도 고집스레 다시 장난감을 빚었다. 제 밸대로 기어코 만들어보고서야 형들에게 혀를 삐쭉 내보이며 헤벌쭉 웃었다. 그런 일이 여러번 있은 후부터는 형들의 닥달질도 뜸해졌다. 그때 생긴 버릇인지 그에게는 무슨 일이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제 배짱대로 해보려는 고집이 생겨났다고 할가.…

중학교시절엔 구기종목의 체육을 잘했다. 학교롱구주장으로 전국청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하여 1등을 한 전적도 있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그에게 형들은 체육부문으로 나가라고 권고하였지만 규택은 제 고집대로 송림금속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린시절 진흙으로 자동차를 빚듯이 거창한 기계들을 제 손으로 만들어내고싶었던것이다. 천리마대고조시기 전문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제강소설계실 설계원으로 배치받았다. 결혼도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정해준 처녀와 하지 않았다.

중학교때부터 체육을 함께 한 처녀와 련애결혼을 하였다. 그 노염이 풀리지 않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양으로 시집간 그 녀인을 며느리처럼 생각하며 자주 찾아다니군 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앞에 미안하다.…

《여보게, 고기가 미끼를 물었네!》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바람에 언듯 정신을 차린 리규택이 성급하게 낚시대를 잡아챘다. 미끼를 떼운 빈 낚시만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동료가 푸들쩍거리는 손바닥만 한 붕어를 낚아올리며 핀잔을 주었다. 《자넨 낚시질을 나왔나 아니면 뭘 연구하러 나왔나. 깜부기에 주의를 집중하라구!》 리규택은 하지 않을 걱정을 한다는듯 태연하게 미끼를 꿰였다.

《상관말게, 낚시질이란 이런것이지 뭐…》

《쯔쯔, 고집두 원…》

그러거나말거나 물우에 낚시대를 드리운 규택은 다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자기에게는 딴 사람들의 말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무엇이든 불가능하다고 하면 기를 쓰고 엇서나가는 괴벽스러운 성미가 있는것 같았다.

그것이 사람들속에서 건방지다느니, 고집이 소발통같다는 뒤소릴 듣기는 했어도 유익할 때도 있었다. 생각은 끝없이 가지를 쳤다.

젊은 시절 언제인가 위궤양에 걸려 몹시 신고한적이 있었다. 그때 제강소에 치료대로 나왔던 의학대학병원 박사선생이 오래동안 깐깐히 진찰해보고나서 한숨을 내쉬며 《참, 나이가 아깝구만.》 라고 말했었다.

리규택은 그게 무슨 소린가, 솔직히 말해달라고 집요하게 달라붙으니 악성궤양은 현대의학으로는 고치기 어렵다며 몇해를 넘기지 못할것 같다고 했다. 규택은 성미그대로 반발심이 욱 치밀었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치료를 하고 낫는다면 선생님은 박사증을 내놓겠습니까?》 하고 들이댔다.

어이가 없었던지 박사선생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좋다! 병이 이기는가, 내가 이기는가 어디 해보자!

규택은 입술을 사려물고 덤벼들었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숱한 의학서적들을 탐독하였다. 자체로 궤양에 효과가 좋다는 고려치료를 완강하게 들이댔다. 그래도 차도가 없었다. 궤양에 꿀이 좋다는것을 알고는 토종꿀을 구해왔다. 눈물이 글썽한 안해에게 방문을 든든히 잠그라고 이르고는 단번에 꿀 두사발을 마시고 자리에 쓰러졌다. 속에서 쇠물이 끓었다. 바다라도 통채로 들이킬듯 갈증이 났다. 이발을 악물고 온 방안을 태질하며 딩굴다가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잤는지 눈을 떠보니 찐득찐득한 꿀진액이 온몸에 배여나 번들거렸다. 이렇게 몇번 하고나니 악성궤양은 물론 온갖 잡병이 다 떨어졌다.

다음해 다시 제강소에 나왔던 박사선생은 그를 진찰해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치료를 받았기에 이렇게 완쾌됐소?》

《선생님덕분이지요!》

《무슨 롱담소릴?…》

리규택은 그동안 병을 고치기 위해 악을 쓰며 신고해온 모든 일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선생님이 솔직히 말해주었으니 살아났습니다. 그때 절 위안하느라고 거짓말을 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선생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을것입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박사증을 내놓으셔야지요!》

박사선생은 통쾌하게 웃었다. 당신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감탄하면서 림상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했었다. 괴벽스러운 성미덕에 살아났다.

그 시절엔 무서운것이 없었다. 못해낼 일도 없었다.

쇠바줄을 꼬는 페쇄식강삭기, 가열로증발랭각장치며 전기로수랭로벽장치를 비롯한 수십건의 새 기술혁신과 창안을 했었다. 그 모든것은 결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이 가열로증발랭각장치를 도입할 때 일이다.

그것을 도입하면 가열로들을 랭각시킨 뜨거운 물을 버리지 않고 증기를 생산하여 기업소구내의 난방을 해결할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지배인과 일부 일군들이 완강하게 반대해나섰다. 그것을 도입하는 과정에 높은 증기압력으로 자칫하면 가열로가 폭발할수도 있다는것이다.

그래도 규택은 굽어들지 않았다. 새 기술혁신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일군들을 신소했었다. 어느날 중앙기관에서 내려온 일군이 그를 불렀다.

나이지숙한 그 일군은 방에 들어서는 규택을 쏘아보며 대뜸 소리쳤다.

《동무가 리규택이야?》

울컥 화가 치민 규택이 맞받아 소리쳤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데 반말질이요? 시시하오.》 하고 문을 차고 나오려는데 그 사람이 규택의 손을 덥석 잡고 신분증을 내보였다.

《간부라고 아래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됩니까?》

리규택이 쏘아붙이자 그 일군이 껄껄 웃었다.

《미안하오. 내 그렇듯 기발하고 대담한 착상을 제기한 동무의 담을 떠보느라고 그랬소. 자, 앉아 이야기해보기요!》

《!…》

증발랭각장치도입은 승인되였다. 그때 3대혁명소조분책임자로 나와있던 김성남과 소조원들의 적극적인 방조속에서 성공하였다.

수많은 기업소들에서 그것을 와서 보고 도입해갔다. 몇해후 어느 한 기업소에서 증발랭각장치를 자기네가 창안한것이라고 하면서 발명권을 신청한 일이 있었다.

그때 중앙에서 내려왔던 일군이 그것은 강선의 리규택이 먼저 창안한것이라고 부결해치우고 뒤늦게마나 그에게 발명권을 주었다.

그 일군이 왜 제때에 발명권을 신청하지 않았는가고 묻자 규택은 《나라에 리익을 주었으면 됐지 발명권은 해서 뭘하겠습니까.》 라고 대답했었다.

한생을 설계가로 일해오면서 수많은 새 기술혁신과 발명을 한 리규택이였지만 마지막을 떳떳치 못하게 마무리한것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강철공장을 들여오기 위한 1차납입작전이 좌절된 후 그에게 초고전력전기로설계를 해보라고 해놓고는 또다시 2차납입작전을 벌린 김성남의 처사에 분격하여 집에 들어오고만 리규택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도 리해가 되지 않는다.

3대혁명소조로 나왔을 때에는 책임일군들도 반대해나서던 증발랭각장치를 두팔 걷고나서 도와주던 김성남이다. 자기와 성격도 배짱도 맞았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칭찬했었다. 그러던 그가 어째서 책임일군이 되더니 제강소현대화를 제힘으로 할 생각을 안하는것인가.…

우리 기술자들을 믿지 못해서…

하다면 책임이 두려워서인가.…

그러면 나는 현대화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김성남에게 의견이 있다고 해서 우뚤거리며 집에 들어오고말았으니 그 누구를 탓할게 못된다.

리규택은 물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날 지경으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마치도 기술자로서의 자기 한생이 낚시터를 만들어놓고 편안히 앉아 낚시질이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일해온것처럼 느껴졌다. 허무감이 숨가쁘게 밀려들었다.

물고기들이 달라붙어 낚시에서 미끼를 떼먹을 때 리규택은 추억의 강물속에서 헤염치다나니 저녁이면 김빠진 고무공처럼 훌쭉한 구럭지를 들고 집으로 왔다. 손가락만 한 물고기가 댓마리 말라붙은 구럭지를 들여다본 안해가 지청구를 했다.

《해종일 잡았다는게 이게 다요? 남들은 두키로요, 세키로요 한다는데.》

리규택은 감탕이 묻은 신발을 벗으며 허구프게 웃었다.

《처음이니 그렇지.》

그렇게 여러날이 흘렀다. 결과는 매한가지다.

호수의 물고기가 마르면 말랐지 살아온 추억의 강물은 마르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낚시질을 걷어치우고말았다.

이번에는 편의협동에 적을 걸고 자전거수리에 손을 댔다. 워낙 기술이 있고 손재간이 좋은 그는 잠간새에 수리기술을 터득했다. 동네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도 자전거바퀴가 터지거나 고장이 나면 그를 찾아왔다.

그러나 마음은 늘 허전하였다.

터진 자전거바퀴처럼…

대문가에 앉아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보고있느라면 가슴에서 불이 일었다.

드문히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못된 장난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비웃는것만 같았다. 하여 그일도 얼마 못하고 걷어치우고말았다.

하루종일 로친과 마주앉아 빈둥거릴수도 없었다.

문득 시집간 딸생각이 났다. 언제부터 오라는걸 미루어왔던것이다.

리규택은 배처럼 큰 신발을 털썩거리며 딸집으로 갔다. 셋이나 되는 쪼무래기들과 씨름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던 딸은 옷에 묻은 먼지도 살뜰히 털어주며 몹시 반가와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다고, 며칠 푹 쉬라고 하면서 잘 대접해주었다. 역시 부모 생각해주는건 딸이구나 하고 좋아했다.

며칠후 곱게 화장을 하고 몸치장을 한 딸은 집과 애들을 그에게 맡겨놓고는 제 볼장만 보면서 다녔다. 결국 집지기, 아이보개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것도 안하면 무엇을 하겠는가.·

내가 이 지경이 되다니?… 참, 어이가 없고 은근히 화가 동해 집으로 오고말았다. 그러니 이제는 무슨 노릇을 해야 할지…

년로보장나이가 되여 나라의 혜택으로 집에 들어온 동년배들이 손자손녀의 손목을 잡고다니거나 낚시질로 시간을 보내는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될 지경이다.

문득 먼저 들어간 유진섭이 생각났다. 그는 도대체 뭘하고있을가?

성격이 덜렁덜렁하고 개방적인 리규택은 내성적인 유진섭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높은 기술과 실력만은 인정했다.

외국설비의 기술제안서심의때 젊고 완력이 강한 지배인과 맞서 자기 주장을 세우던 유진섭을 보고 크게 공감이 갔었다. 그래서 그를 지지해나섰으나 책임일군들의 주장을 꺾을수 없었다.

하긴 내각과 성에서도 비준한것을 일개 기술자가 어쩔수는 없는것이다. 젊었을 때 같으면 참지 못했을것이였으나 나이를 먹고보니 저도모르게 주눅이 들고 조심스러워졌다. 늙은게 쫄딱 나서면 젊은 일군들이 좋아할리 없다.

리규택이 크게 놀랐던것은 강철공장을 들여오기 위한 외교작전때였다. 지배인이 자기의 제안을 반박해나선 유진섭을 기술대표단성원으로 넣은것이였고 유진섭이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집으로 들어간것이다.

그게 참된 기술자다!…

언제 봐도 입이 무겁고 조용한, 어찌 보면 소심해보이던 그에게 그런 결단성있는 성격일면이 있었다는것이 매우 놀랍고 머리가 숙어졌다.

그것은 성격이라기보다 기술자의 참된 량심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어쩐지 그가 몹시 보고싶다. 그래서 술병을 차고 찾아갔다.

마당에 쭈그리고앉아 딸따리바퀴를 수리하고있던 유진섭이 심울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어떻게 우리 집에 다,》

《가슴이 답답하고 자네도 보고싶고, 그래서 왔네.》

《…》

방에 들어간 그들은 소박한 음식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술을 좋아하는 리규택은 연거퍼 서너잔 마시였으나 유진섭은 입에 댔다 뗄뿐이다.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도 있었지만 무슨 기분에 마시겠는가.…

《그래 자넨 무엇을 하며 세월을 보내나?》

리규택의 물음에 유진섭은 심드렁히 대답한다.

《별루 하는게 없네.…》

아래목에 앉아 바느질하던 로친이 혀를 끌끌 찼다.

《어휴, 말두 마시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파철을 수집해바치느라 정신이 없수다. 저녁에는 무슨 기술서적하구 밤늦도록 씨름질을 하구요.》

《파고철?… 그래서 딸따리를 수리하댔구만!》 이렇게 말하고보니 리규택은 어쩐지 얼굴이 뜨끈했다. 유진섭이 진국은 진국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는 일없이 빈둥거린 자신이 진짜 파고철처럼 느껴져 허구프게 웃었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웅크리고있는 허전한 마음은 달랠수 없다. 그래도 한때는 기업소에서 1인자라고 하던 전기기사가 이제는 파철이나 수집하게 되였으니 참… 하긴 그 누굴 동정할 처지가 못되였다. 숱한 창의고안과 기술혁신으로 속보판에 대문짝같은 이름이 뜨르르 나붙던 자기도 이제는 집에 들어온 처지가 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 약속한듯 컴컴해지는 제강소의 저녁하늘을 내다보았다. 그전같으면 아름다운 쇠물빛노을로 붉게 탔을 하늘이다. 그런데 지금은… 가슴이 쓰렸다. 자기들의 인생말년이 스러져가는 쇠물빛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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