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1장. 고뇌


3


《내 오래동안 지배인을 해오면서 전기로 하나 현대화하지 못한 제강소를 성남동무에게 넘겨주고 가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구만. 그러나 너무 걱정말라구, 내 성에 올라갔어도 제강소를 힘껏 도와주겠네!》

성기관의 부상으로 소환된 박상근이 이렇게 힘을 주고 떠나갔으나 김성남은 지배인으로 된 승급의 기쁨보다 걱정이 더 앞섰다.

책상우에 다섯개나 주런이 놓여있는 전화기들이 저마다 울어댔다.

어떤 때에는 량쪽귀에 송수화기를 대고 번갈아 말할 때도 있다.

현장에서는 무엇이 걸렸으니 해결해달라는 성화이고 내각과 성에서는 생산이 떨어진다고 추궁이다.

하루종일 련달아 전화종이 울렸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마치도 그에게 흔들면서 무엇이나 요구하면 척척 생겨나는 신기한 요술막대기라도 있는것처럼 저마다 손을 내밀었다.

환강이요, 인발관이요, 자재와 설비는 물론 식량이며 살림집까지도 …

지도력이 있는 박상근지배인밑에서 기사장사업을 할 때에는 기술실무적인 문제만 보면 되였지만 이제는 기업소의 크고작은 모든 일이 그의 작은 어깨우에 놓여있다.

게다가 생산설비들은 더더욱 말이 아니였다.

사회주의시장이 없어지고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 련달아 들이닥친 자연재해로 인한 고난의 행군까지 겪다보니 지난 세기 60년대에 자체로 제작한 전기로들은 현대야금공업발전추세에 대비조차 할수 없게 뒤떨어졌다.

기술공정도 갱신하지 못한탓으로 일반 건설에서나 쓸수 있는 보통 강만을 겨우 생산하는 형편이다. 그것마저 전기소비기준이 너무 높아 전기도적놈이라고 할 정도로 전기를 많이 쓰고있다.

결국 대포로 참새를 잡는 격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그 모든것을 예리하게 통찰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제강소를 현대화할데 대하여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떻게 제강소를 현대화할것인가. …각이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김성남은 생산을 늘여 자금을 확보해가지고 현대화된 설비들을 한공정씩 들여오자는 안을 내놓았다.

허나 전기사정, 원료사정으로 생산은 점점 떨어지기만 했다. 온 나라가 어려운 때여서 나라에 손을 내밀수도 없었다.

과연 타개책이 무엇이겠는가.

속수무책으로 있을 때 금속공업성 부상으로 올라간 박상근이 새로운 안을 가지고 강선에 내려왔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10년이 걸려도 현대화를 못한다. 또 그러느라면 남들은 그만큼 더 발전해나간다. 대담하고 통이 큰 외교전을 벌려 대부로 현대적인 강철공장일식을 들여오자는것이다. 유럽의 어느 한 나라와 교섭중이라고 했다.

로기술자들은 머리를 기웃거렸으나 김성남과 기업소의 적지 않은 일군들이 동조해나섰다.

빠르면서도 실리에 맞는 현실적인 안이였다. 방법은 달랐어도 목적은 같았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의심스러운것은 그것이 과연 실현되겠는가 하는것이다.

성에서도 적극 밀어주겠다니 안심이 된다.

하여 강철공장일식을 대부로 들여오는 문제는 락착되였다. 얼마후 박상근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대표단이 해외로 나갔다가 강철공장일식에 대한 부문별 기술제안서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X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에 오셨던 단층사적건물에 있는 지배인방에서는 해외로 나갔던 실무대표단의 사업총화 겸 설비기술제안서에 대한 종합심의회가 열리였다.

방에는 빈 자리가 없이 공장내 기술일군, 행정일군들이 꽉 들어찼다.

박상근부상과 성 해당 부서 일군들도 참가한 요란한 협의회였다.

여러대의 전화기와 서류들이 무드기 쌓여있는 지배인책상에는 누구도 앉지 않았다. 그 책상과 T자형으로 길게 가로놓인 보조탁에 박상근과 김성남이 마주앉았다. 박상근의 곁에 이번에 해외로 함께 나갔던 ㅌ설계연구소 기사장 서승민이 벗어진 머리에 자주 손을 가져가며 앉아있다.

협의회참가자들이 다 모이자 김성남이 다부진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 진행된 제강소현대화를 위한 실무진의 대외활동총화를 성의 위임에 의하여 제가 간단히 하겠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강철공장생산업체인 A그룹이 제안한 년산 80만톤의 각종 형강을 생산할수 있는 미니미니형의 최첨단금속공장을 참관하였습니다. 이 공장은 단아크식초고전력전기로에 의한 강철생산, 남비정련로에 의한 강질의 개선, 완전무결한 련속조괴기, 최첨단압연기들로 생산공정을 완비함으로써 오늘 세계적으로 공인하고있는 강철생산에서의 4위1체계의 완성된 흐름선으로 되여있습니다.

한차지 제강시간은 1시간미만이며 5. 5미리환강생산시의 최종압연속도는 초당 120메터입니다.

원료입하로부터 완성제품이 나와서 포장, 검사, 계량 등 모든 생산공정은 자동화 2준위체계로 되여있어 생산자들은 앉아서 감시만 하면 됩니다.》

자동화준위 1체계는 한개생산공정이 즉 전기로 하나만이 완전자동화된것이고 2체계는 련속생산공정 즉 전기로, 련속조괴, 련속압연 등 한계렬이 완전히 자동화된것이다. 그리고 자동화준위 3체계는 온 공장이 완전히 자동화된 상태이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탁에 놓여있는 보온병에서 물 한고뿌를 부어 천천히 마시며 목을 추기고난 김성남은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장내를 둘러보더니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들여오려는 강철공장으로 제강소의 현대화를 실현한다면 우리도 분명코 금속공업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적진보와 비약을 이룩할수 있는 높은 도약대에 올라서게 될것입니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현시대 발전하고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하는 계기로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박수소리가 울렸다.

자리에 앉은 김성남은 만족한 표정으로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였다.

《그럼 이제부터 각 부서들에 내려보냈던 설비기술제안서에 기초한 부문별 종합의견들을 들어봅시다.》

기사장의 사회에 이어 의견들이 제기되였다.

그 모든 부문들은 전력이 제대로 보장되는것을 전제로 해서 작성된 기술제안서인만큼 크게 별다른 의견이 제기되지 않았다.

비교적 순조롭게 합의를 보았다.

협의회에 참가한 일군들과 기술자들의 얼굴에는 이제 들여오게 될 최첨단설비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여 흥그러운 표정이 어려있었다.

기분이 유쾌해진 김성남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일군들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수그리고 생각에 잠겨있는 기술공정실 전기기사 유진섭이 눈에 띄우자 소리쳤다.

《유진섭동무, 무슨 생각을 하는겁니까? 어디 말해보시오. 무슨 다른 의견이 없겠습니까?》

돋보기안경을 꺼내 코허리에 건 유진섭이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서며 사업수첩을 펼쳐들었다.

《A그룹의 기술제안서는 어느것 하나 미흡한 부분이 없으며 흠을 잡을래야 잡을수 없는 완전무결한 기술제안서였습니다.》

유진섭은 잠시 말을 끊고 장내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기술제안서를 연구해보는 과정에 무시할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는것을 찾아보게 되였습니다.》

미간에 소나무뿌리같은 주름살을 모으며 김성남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거요?》

유진섭은 오른발에 유지하고있던 몸의 중심을 왼쪽다리로 옮기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초고전력전기로가 우리 실정에 맞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고요한 호수에 운석이 떨어져 큰 파문이 일어난듯 했다. 사방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운 시선들이 화살처럼 유진섭에게 날아왔다.

김성남은 어이가 없어 입을 다시고있느라니 박상근의 침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기술적근거는 무엇이요?》

유진섭은 단호히 입을 열었다.

《그럼… 지난 세기 외국에서 들여다가 지금 운영하고있는 초고전력전기로들의 실태를 보도록 합시다. ㅎ제철소나 ㄱ제철소의 초고전력전기로들의 기술지표는 전력사정으로 일반전기로나 다름이 없습니다. 차지당 한시간내지 한시간반이라는 공칭능력에 비하면 너무도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 단편적인 자료는 우리가 들여오려는 초고전력전기로뿐만아니라 강철공장일식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볼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유진섭이 계속하여 다른 자료들을 더 말하려는데 김성남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내리쳤다.

그 서슬에 수첩우에 올려놓았던 원주필이 방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만하시오. 동문 이 협의회를 어디로 끌고가자는거요?》

김성남은 공장대학졸업생인 동무가 무얼 안다고 그러는가고 소리치고싶었으나 참았다.

《동무가 렬거한 그 초고전력전기로들은 지난 세기 70년대초에 제작한 중고품이란 말이요. A그룹의 설비들은 그에 비할바 없는 최첨단설비란걸 망각한게 아니요? 됐소, 동무의 의견은 더 들어볼것이 없으니 앉으시오.》

유진섭은 그의 명령조의 말투에 위압되여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방금전만 하여도 흥분과 화기에 넘쳐있던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떠돌았다. 일부 기술자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한동안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던 유진섭이 다시 일어났다.

김성남이 버럭 소리쳤다.

《왜, 맞서보자는거요?》

그래도 유진섭은 떡 버티고 김성남을 마주본다.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다.

이때 허우대가 큰 기술공정실의 리규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배인동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술문제에서 일치가결이란 있을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진섭동무의 의견을 막지 말고 다 들어봅시다.》

옆에 앉은 로기술자들이 옳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린다. 김성남은 다른 사람도 아닌 리규택의 의견을 무시할수가 없어 가까스로 자신을 자제하며 눈길을 떨구었다.

유진섭이 결연히 입을 열었다.

《저는 제기된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도로 자동화되고 첨단기술이 도입된 현대화된 공장, 다시말해서 수많은 전동기와 자동화된 설비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완벽한 전력공급능력과 전력의 질 즉 전압과 주파수를 정격수준에서 보장하여야 합니다.

우리 제강소의 전력공급문제는 의연히 어렵습니다.

강철공장일식을 들여다놓은 다음 전기보장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전기가 풀릴 때까지 스위치 한번 눌러보지 못하고 한정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론거가 나옵니다.

그럴바치고 무엇때문에 숱한 외화를 들여 강철공장을 들여온단 말입니까. 차라리 우리 실정에 맞는 초고전력전기로를 개발하는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말을 끝낸 유진섭이 자리에 앉았으나 누구도 반박해나서지 않았다.

방에는 고요한 침묵이 드리웠다. 그만큼 그가 던진 충격은 큰것이였다.

그의 말속에는 무시할수 없는 심각한 론거가 있었던것이다.

박상근도 원주필로 사업수첩을 툭툭 두드릴뿐 생각에 잠겨 말이 없다. 리규택이 의자를 삐그덕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나이는 유진섭이보다 우이지만 행동이 재빠르고 성미가 급한 그는 에돌지 않고 직방 말했다.

《나도 유진섭동무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난 기계부문 설계가이다보니 전기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외국의 첨단기술과 대부라는데 현혹되였었지요. 허지만 아무리 첨단설비라고 해도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면야 그림의 떡이지요. 나는 외국의 기술제안서들을 연구해보면서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기술로 제강소실정에 맞는 전기로를 만들수도 있습니다. 더우기 우리 강선이야 모든것을 제힘으로 해제낀 전통을 가지고있는 천리마의 고향이 아닙니까! 문제는 결심할탓이지요.》

그랬다. 천리마강선의 사람들이 결심하고나서면 그 무엇이든 못해낸 일이 있었던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박상근은 술렁거리는 장내를 둘러보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알만합니다. 제힘으로 해보자는 그 정신은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설비도 자금도 모든게 다 부족합니다. 이런 형편에서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현대화를 실현해야겠는지 누구든 방안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모두들 벙어리가 된듯 말이 없다. 유진섭도 리규택이도 침묵을 지킬뿐…

제강소의 운명이 담긴 그 책임적인 물음에 어찌 한마디로 대답할 사람이 있겠는가.

부상의 곁에 앉아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던 ㅌ설계연구소 기사장 서승민이 조용히 일어섰다.

일군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서승민은 지난 시기 많은 야금설비와 기계들을 설계하고 개발한 로련한 일군이다. 그는 세계 많은 나라들을 다녀왔고 수십여차의 대외활동경험이 있는 실무가였다.

때문에 금속공업성에서 대외활동하면 의례히 그를 지목하였고 그때마다 그는 매우 책임적으로 일을 결속짓군 하였다.

반나마 벗어진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조심히 쓸어넘기고나서 그는 얄팍한 입술을 뗐다.

《제강소현대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진섭동무의 주장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리규택동무의 제의도 옳은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하자고 하는데 첨단설비를 맨주먹으로 건설하는것은 주관적욕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로 주겠다고 할 때 빨리 들여다가 쇠물을 뽑아내는것이 더 실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의 전력조건이 문제로 되고있는데 너무 비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전국적으로 크고작은 발전소들을 얼마나 많이 건설하고있습니까.

앞으로 전기가 풀린다는 전망도 내다보아야 할게 아닙니까.》

서승민은 부상의 얼굴을 피끗 쳐다보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박상근은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옳습니다. 제강소현대화를 가장 빨리 실현할수 있는 길은 강철공장일식을 들여오는것입니다.

그러니 강철공장설비를 우리의 실정과 조건에 맞게 들여오기 위한 외교작전을 잘하면 됩니다. 기술제안서심의에서 긍정적인 의견들이 기본적으로 종합된 이상 더 다른 의견이 없으면 협의회를 이만 끝냅시다.》

적지 않은 일군들과 기술자들이 그의 말을 긍정하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박상근은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며 결론적으로 말했다.

《난 오늘 협의회에서 토의된 내용을 성에 사실대로 반영하겠습니다.》


X


협의회가 끝나고 박상근과 서승민을 바래주고 방에 들어온 김성남은 생각이 많아졌다.

40대 젊은 나이에 련합기업소 지배인이라는 중책을 지니다보니 사업에서 고충이 컸다. 거의 모든 일군들이 그보다 나이가 훨씬 우였고 사업년한은 물론 공적도 많았다. 그런 조건에서 일군들과 기술자들을 대할 때 나이와 사업년한을 고려해주다가는 할소리도 못하고 사업권위도 세울수 없다는것을 느꼈다. 그래서 일단 사업에 들어가면 모두 무시해버렸다. 어려서부터 굳혀진 성격적약점이 되살아났다. 아버지벌되는 사람도 동년배라고 생각하며 동무라고 불렀고 엄하게 대하였다. 자기의 지시와 요구를 잘 받아물지 않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인간적으로 가깝다 해도 용서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일부 나이가 많은 일군들과 기술자들속에서는 젊은 지배인이 성격이 거칠고 관료주의적인 사업작풍이 심하며 선배들을 존경할줄 모른다고, 그런 사람이 거창한 제강소의 현대화를 과연 이끌어나갈수 있겠는가 하는 뒤소리까지 들려왔었다.

김성남은 그 소리에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까지 귀기울이다가는 도대체 사업권위는 물론 일을 해나갈수 없는것이다.

더우기 강철공장을 들여오는것은 이미 성과 락착을 본 문제이기에 그것을 반대하는 작은 의견이라도 단호하게 눌러치웠다.

고모의 말을 통해 유진섭이 한때 아버지의 일을 진심으로 도와주었다는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라고 례외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유진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김성남이다. 기사장으로 일할 때 동력문제로 자주 만나긴 했지만 그에게 그렇게 높은 기술적안목과 주장이 있는줄은 다는 몰랐었다. 하긴 지난세기 중엽의 낡은 설비들만 가지고 씨름하다나니 기술을 보여줄수 있는 계기가 없었던것 같았다.

오늘날에 와서 첨단설비의 기술문제가 론의되자 유진섭이라는 인간이 뚜렷이 나타났다. 생각이 깊어진다.

비록 유진섭이 반대의견을 내놓긴 했어도 그의 분석은 매우 정확한것이다.

강철공장을 빨리 들여오는데만 급급하면서 중요한 전기문제를 소홀히 한 자신의 실책이 느껴졌다.

정격화된 외국의 설비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선택하고 제작하여 들여오자면 유진섭과 같은 현장경험이 많고 량심적이며 능력이 있는 기술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으로도 이름있는 A그룹의 기술진과 당당하게 맞서 면담을 할수 있고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수 있다.

김성남은 급히 기사장을 불러 유진섭을 이번 기술대표단성원으로 넣자고 했다.

기사장은 어지간히 놀란 표정이다.

《그의 주장은… 강철공장납입을 반대하는 립장인데…》

《그렇소. 그건 사실이요. 그러나 그도 무슨 뾰족한 방도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지 않소. 우리의 전력조건에 맞는 전기로를 들여오자면 유진섭과 같은 유능한 전기기술자가 있어야 하오.》

기사장은 리해가 된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부상동지가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이번에도 부상동지가 기술대표단 단장으로 나가는것만큼 그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김성남이 딱 찍어 말했다.

《주인이야 우리가 아니요. 당신과 내가 결심하고 당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되는거지, 안 그렇소? 난 찬성이요.》

말이 끝나는것과 함께 김성남이 손을 쳐들었다.

기사장도 손을 쳐들며 말했다.

《저도 반대없습니다.》

《그럼 됐구만. 간단한걸 가지고 뭘 그러오.》

이때 문이 열리며 자그마한 려행가방을 든 박상근이 다시 나타났다.

기사장은 얼른 손을 내리웠으나 김성남은 그대로 쳐들고있다. 박상근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물었다.

《동무들은 뭘하고있소?》

김성남이 정색해서 대답했다.

《우린 중요한 토론을 했습니다.》

《중요한 토론이라니?》

《유진섭을 이번 해외로 나가는 기술대표단성원으로 추천했습니다.》

박상근이 빙긋 웃었다.

《오, 그래서 손을 들고있소? 허참, 내가 때마침 왔구만. 나도 찬성이요.》

《예?!… 그럼 부상동지도 그 문제때문에 다시 오셨단 말입니까?》

《그렇소, 허허.》

김성남이도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니 우리 생각이 일치된셈입니다.》

《유진섭은 나와 한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하였고 제강소에도 함께 배치받았소. 공장대학졸업생이긴 하지만 현장경험이 많고 량심적이지.… 그런데 소심한것이 탈이요. 그래서 발전 못했소. 이 기회에 잘 도와주고 이끌어줍시다.》

박상근이 계획하고 준비하는 외교작전이 순조롭게 진척되고있다. 이번에는 본국에서가 아니라 강철공장판매를 위한 A그룹지부가 주재하고있는 중국 베이징에서 기술면담을 해야 한다.

이 대표단도 그가 단장으로 가게 된다.

비록 들여오는 강철공장의 가격이 막대한것이긴 하지만 대부금이라는 점에서는 마음이 놓인다.

10년이라는 기한이면 얼마든지 대부금을 처리하고도 남을뿐아니라 제강소의 생산수준도 비할바없이 높아질것이다.

제강소현대화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이 작전을 성공시키는 사람은 곧 애국자로 승리자의 영예로운 월계관을 쓰게 되리라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라의 금속공업발전을 위해 큰일을 해놓고 인생말년을 빛나게 장식할수 있다는 긍지와 희열로 해서 가슴이 후더워졌었다. 그러자면 이번에 가게 되는 기술대표단성원들을 기술실무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잘 꾸려야 한다.

특히 전기문제가 중요했다.

외국의 첨단설비를 우리 전기조건에 맞게 선택하고 제작하여 들여오자면 유진섭과 같은 유능한 전기기술자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선것이다.

《이번 대외사업은 매우 중요한만큼 대표단성원선발을 능력있는 사람들로 해야겠소.… 참, 이걸 영재에게 전해주오. 겨울내의와 솜옷이라던지.… 하마트면 그냥 가지고 갈번 했소.》

《아, 그래서 하루밤 묵어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재도 만날겸.》

《일이 바빠 그러네, 당장 해외출장조직도 해야 하니까.》

김성남은 그가 가방에서 꺼내주는 비닐구럭을 받아들었다.

박영재는 부상의 아들이다. 딸 셋을 내리낳다가 행여나 하여 본 외아들이다. 그래서인지 영재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은 류별했다.

그러나 귀한 자식 매로 다스리라고 박상근은 아들을 엄하게 다루었다.

앞으로 훌륭한 일군으로 키우자면 현장에서 쇠물내도 맡고 고생도 해보아야 한다며 제강소에 내려보냈던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안해는 남편이 제강소에 나갈 때마다 이것저것 필요한것들을 자주 꾸려보냈다. 그것이 아들에게 좋지 않은 버릇을 붙인다고 생각한 박상근이 제강소에 나간다는 소릴 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안해가 강선에 내려와 아들을 만나고 어떤 땐 합숙에서 며칠 묵어갈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박상근은 어쩌는수가 없어 안해의 부탁을 들어주군 했다.

김성남이 부드럽게 말했다.

《영재 어머니에게 아들걱정을 말라고 하십시오. 나도 있고 우리 처랑 있지 않습니까.》

《고맙네!》

이튿날 김성남은 유진섭을 만났다.

유진섭은 기술대표단으로 함께 가자는 그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김성남은 몹시 놀랐다. 유진섭이 소심한 성격때문에 발전 못했다던 박상근의 말이 떠올랐다. 목전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줄 모르는 고루한 성격, 이제 제강소현대화가 실현되였을 때 그는 오늘을 꼭 후회하게 될것이다. 하지만 후회란 언제나 때늦은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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