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1장. 고뇌
2
음식준비를 끝낸 리영실은 나들문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다.
기다리기에 지친 설송이가 밥을 먼저 먹자고 졸라대는것을 겨우 눌러놓았다.
이윽고 문소리가 났다. 영실은 앞치마에 손을 문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잊지 않으셨군요.》
김성남은 아무 대꾸도 없이 가방을 받아드는 안해에게 무뚝뚝하게 물었다.
《무슨 일로 빨리 들어오라고 했소?》
안해가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저… 오늘은 설금이 생일이고 우리가 가정을 이룬지 열다섯해 되는 날이예요.》
《그런것때문에 전화한단 말이요?》
영실은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래년이면 설금인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뜰수도 있지 않아요.》
《벌써? 그래두 그렇지.》
《?…》
세면장에서 몸을 씻고난 김성남이 책을 쥐고 상앞에 나앉자 영실이 슬며시 귀뜀했다.
《오늘만은 식사하면서 책을 보지 마세요.》
《습관된걸 어쩌겠소.》
《그래서 오늘만이라 하지 않아요.》
어정쩡해서 책을 놓은 김성남은 오누이가 날라들여오는 음식그릇에 눈길을 주었다. 색다른 음식인데다 그가 좋아하는 비지와 인조고기, 콩나물도 빠지지 않았다.
그제야 배고픔을 느낀 김성남은 군침을 삼켰다.
그것도 한순간, 그는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음식이 여유가 있겠지?》
《왜 그러세요?》
《오늘 저녁 용해공들이 힘들게 일하는데 현장에 좀 내가야겠소.》
《당신두 참, 그럴줄 알고 다 준비해놨어요. 식사를 하고 내가자요.》
그러거나말거나 김성남은 전화로 대기차를 불렀다.
설송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들이 막 식사를 하려는데 마당에서 대기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온 집안식구가 들썩거리며 음식그릇들을 내다실었다.
《현장에 나갔다 오겠는데 먼저 식사를 하오.》
《?…》
아버지가 차를 타고 떠나가자 설금이가 울먹거렸다.
《아버진 너무해.》
옆에 있던 설송이가 덩달아 투덜거렸다.
《아버진 집에 들어와서도 관료주의를 하면서… 사람들이 아버지보구 뭐라는지 알아요, 큰소리만 치는 지배인이라고 해요.》
깜짝 놀란 영실이 《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말본새들이냐. 그럼 못써.》 하고 애들을 나무라긴 했으나 그로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요즘 현장에서 자주 침식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짜증을 내는걸 보면 일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전기로현대화문제때문에 남편이 고충을 겪는다는것을 녀성특유의 감각으로 느끼고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고 피로하겠는가.…
오늘은 설금이 생일이고 해서 간단히 음식을 준비하였는데 참… 일밖에 모르는 남편이다. 늘 밤이 깊어서야 들어왔고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곯아떨어졌다. 아침에는 애들이 깨나기 전에 밥을 몇술 뜨는척 하다가 서둘러 현장으로 나갔다.
휴식일도 명절도 없었다. 현장, 생산총화, 출장 늘 사업에 다몰리웠다. 애들이 아버지얼굴을 잊어버릴 지경이다.
그런 남편이 애들에게서마저 관료주의라는 소릴 듣는것이 가슴이 아팠다.
일에 들어서면 쇠물처럼 펄펄 끓고 내밀성이 강하지만 주관이 강한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영실이였다.
언제인가 남편이 자기의 주장을 반대해나선 로기술자를 집으로 들여보냈다는 소릴 듣고 영실이 잠자리에 누워 조용히 충고를 준적이 있었다. 그때 성남은 버럭 화를 냈었다.
《그건 당신이 삐칠 일이 아니요. 그럼 나이가 지난 사람들을 어자어자하면서 끼고돌아야 하겠소. 그 사람들이 아니라도 제강소현대화는 젊은 기술자들이 얼마든지 할수 있소.》
《그래도 욱욱하는 그 성미는 제발 고치세요. 큰소릴 치고 독단을 부린다고 일이 잘되는건 아니잖아요.》
《원래 돼먹은 성미가 그런걸 어떻게 하란 말이요. 됐소. 피곤한데 빨리 자기요.》 하고는 벽쪽으로 훌 돌아눕고말았다.
이불속의 송사는 제왕도 듣는다는데 무슨 성미가 그런지.…
오늘 일도 그렇다.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먼저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로동자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좋은것이다. 그렇다고 집식구들의 마음같은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하다나니 자식들에게서까지 비난받지 않는가.
비록 가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표현이지만 사업에서도 왕왕 나타날것이다.
남편은 한가정의 가장이기 전에 큰 련합기업소를 책임진 지배인이 아닌가.…
영실은 가정일의 크고작은 부담을 자기의 작은 어깨우에 지워놓고 늘 현장에 나가사는 남편을 언제나 리해하였다. 가정에 대한 무관심으로 하여 산후탈까지 만나 신고하면서도 남편을 나무라지 않았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와주겠는가를 생각했다.
공장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영실은 자기나름으로 바쁜 몸이지만 애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면서 가정을 이끌었다. 설송이가 오죽했으면 다른 집 애들은 아버지에게 숙제검열을 받고 종아리를 맞으며 공부한다는데 자기는 그것이 제일 부럽다고 했겠는가.
해외출장을 자주 가도 애들에게 소박한 기념품 하나 없이 오는 남편이기에 상점에서 몰래 사다놓았다가 아버지가 가져온것이라고 하며 안겨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젠 애들까지도…
사랑이란 결혼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은
영실은 긴숨을 호- 내그었다.
결국 이날 남편을 위해 모처럼 준비한 가족연회는 이렇게 흐지부지 되고말았다.
시쁘둥해서 상을 물린 애들이 꿈나라에 간지도 퍼그나 되여서야 남편이 돌아왔다. 영실이 상을 차리려 하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용해공들과 함께 먹었소.》
이렇게 말하고난 김성남은 자기 방에 올라가 실내옷을 갈아입고 쏘파에 가앉았다. 탁상등을 켜놓고는 며칠째 보고있는 기술서적을 펼쳐들었다.
《이젠 좀 쉬세요.》
들고온 물고뿌를 앞차대우에 내려놓은 영실은 무슨 말인가 할듯 좀자르며 잠시 서있었다.
그제서야 김성남은 오늘 저녁일이 떠올랐다. 어쩐지 안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기에 와서 좀 앉소.》
영실은 자리에 앉으며 남편의 손에 쥐여져있는 책을 슬쩍 곁눈질해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설송이 아버지, 책을 보는데 방해가 안된다면 말 좀 해도 되겠어요?》
김성남은 책을 내려놓으며 빙긋 웃었다.
《방해는 뭘… 어서 말하오.》
영실은 큰마음을 먹고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껄껄 웃었다. 영실이 얼른 그의 입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정신있어요? 애들이 놀라 깨나겠어요.》
한동안 소리없이 웃고난 김성남이 안해의 따스한 손을 꼭 잡았다.
《그녀석이 참, 아무리 소학생의 말이라고 해도 옳은거야 접수해야지.》
울뚝할줄 알았던 남편이 웃는것을 보며 영실이 말머리를 돌렸다.
《설송이 아버지, 우리가 처음 만나던 일이 생각나세요?》
《생각나오. 참, 오늘이 우리가 가정을 이룬 날이라고 했지? 세월도 참…》
창문으로 흘러드는 유정한 달빛이 영사기의 빛발처럼 담벽에 비쳐들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멀리 흘러간 그 시절의 나날들이 영화화면처럼 안겨왔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오는 어느날 김성남은 도서관으로 급히 가고있었다.
제강소구내의 백양나무들에는 신록이 짙어가고 구내길 량쪽에 잘 가꾸어놓은 꽃밭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있었으나 김성남은 바쁜 걸음만 옮긴다.
압연직장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 분책임자인 그는 현장책임기사 리규택이 창안한 분괴압연가열로의 증발랭각장치도입때문에 마음을 쓰고있었다.
그것은 가열로를 랭각시키고 나온 더운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증기를 생산하여 기업소구내의 난방을 해결하자는 기발한 착상이였다.
그것만 도입되면 구내의 보이라를 다 페기시키고도 난방과 생산을 얼마든지 보장할수 있는 큰 예비가 나온다.
그런데 지배인을 비롯한 일부 일군들이 반대해나섰다.
증발랭각장치를 설치하여 운영하는 과정에 높은 압력으로 하여 가열로가 폭발할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있기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가열로가 폭발하면 강재생산이 완전히 멎게 되고 나라에 주게 될 손실이 막대한것이다.
그래서 리규택이 3대혁명소조에 찾아왔었다.
모든 기술적문제는 자기가 다 맡아하겠으니 소조에서는 지지만 해달라는것이다. 만약 소조에서도 밀어주지 않으면 성에 제기해서라도 기어이 도입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한번 해볼만 한 일이지만 김성남이 랭정하게 물었다.
《만약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 법적추궁같은걸 생각해보았습니까?》
《그런걸 생각하면 손이 떨려 아무것도 못하지요. 난 오직 이것이 성공하면 나라에 큰 리득을 준다는것만 생각합니다.》
《!…》
그 어떤 타산에 앞서 나라의 리익부터 먼저 생각하는 그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그 문제를 료해하러 나왔던 성의 일군과 당시 기사장으로 사업하던 박상근이 지지해주었다.
그러나 많은 일군들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다른 야금공장들에서도 그것을 시도하다가 여러가지 난문제들이 제기되여 포기하고말았다고… 만약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젊은이의 앞길에 큰 오점을 남길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것은 김성남에게 주저감이 아니라 더 큰 호기심과 용기를 주었다.
무엇이든 안된다고 하는 일은 기어이 해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데다 짜릿한 모험심으로 심장을 끓이던 20대의 청춘이였던것이다.
설계를 하나하나 검토해나가던 어느날, 조용한 기회를 타서 리규택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소조원동문 꼭 아버지의 성미를 그대로 닮았수다.》
《예?… 우리 아버지를 아십니까?》
리규택이 아무말없이 주머니에서 마라초를 꺼내 종이에 말아 입에 물고는 성냥을 켠다.
김성남은 그러는 리규택을 존경어린 눈길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3대혁명소조로 제강소에 나와있는동안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드문히 있었다. 수십년세월 흘렀어도 아버지를 잊지 못해하는 그들이 고마왔다.
리규택은 깊숙이 들이켰던 담배연기를 후- 내보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다마다. 아버지뿐아니라 어머니도… 내가 금속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설계실에 배치받았을 때 아버지는 강철직장 책임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설계실에서 일했지. 아버지는 그때 전기로에 새 제강법을 도입하느라 무척 애쓰고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참가했었지.…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못하였수다. 그때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었지요. 설계를 하고 밥을 나르고 치료도 해주고…
끝내 그것을 성공시키고는… 현장에서 순직했수다.…
그때 우리가 받은 충격은 컸지요. 난 소조원동무가 압연직장에 왔을 때 대뜸 알아보았수다. 모색도 그렇고 그 성미랑… 소조원동무의 부친을 보는것만 같았지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일것이라고 생각했수다.》
《!…》
김성남의 얼굴을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리규택이 조심스럽게 말을 비쳤다.
《참, 어머니소식은 알고있소?》
《아직은…》
《음, 어머니도 참 훌륭한분이였지.… 아버지일을 성심성의로 도와주었소. 꼭 찾아보라구. 자네가 이렇게 성장한걸 보면 얼마나 기뻐하겠나.…》
《…》
할머니가 종종 이야기해주었어도 어린시절 가슴속깊이 못박힌 재가한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은 풀리지 않았었다.
부모님들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제강소에 나와 일하면서부터 더우기는 아버지의 친지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어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군 하던 성남이였다.
김성남은 리규택에 대한 친근감이 새롭게 북받쳐오름을 느끼며 그의 창안을 잘 도와 꼭 성공시키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 그와 관련한 참고도서를 빌리려 도서관으로 걸음을 다그치고있는것이다.
제강소정문을 나선 김성남은 철길다리밑 통로를 지나 수삼나무들이 위병대처럼 늘어서있는 뒤길에 들어섰다. 드문히 자동차들이 오갔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갈뿐 조용했다.
교대시간이 훨씬 지난 뒤여서 행길은 별로 복잡하지도 않았다.
김성남은 쥐고가던 기술잡지를 펼쳐들었다. 한동안 글줄에 눈을 팔며 걷던 그는 다급히 울리는 신호종소리에 놀라 눈길을 들었다.
안경을 낀 처녀가 그의 앞으로 씽- 마주왔다. 김성남은 얼결에 왼쪽으로 몸을 피했다. 처녀도 같은 방향으로 손잡이를 돌렸다.
서로가 피한다는것이 공교롭게도 행동의 일치가 되였다.
앗 소리칠새도 없었다.
체대가 건장하고 단단한 김성남이였으나 속도가 있는 자전거의 타격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강한 충격을 받고 옆으로 넘어졌다.
비칠거리기는 했으나 요행 균형을 유지한 처녀는 얼른 자전거를 세웠다.
길가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녀인들은 무엇이 우스운지 입을 싸쥐고 지나간다.
보기 좋은 둥실한 얼굴에 노란테안경을 낀 처녀는 자전거에서 내려 땅에 떨어진 잡지를 집어들더니 그의 곁으로 조심히 다가왔다.
《제 잘못으로 그만… 부축여드릴가요?》
처녀의 목소리는 그지없이 부드럽고 온순했다.
하지만 녀자의 자전거에 치워 넘어진 창피스러움으로 하여 울컥 화가 치민 김성남이 땅바닥에서 일어서며 성격을 살렸다.
《동문, 처녀라는게 네눈을 해가지고도 그 모양이요. 어서 가보기나 하오.》
순간 처녀의 얼굴이 꽈리처럼 빨개졌다. 난생처음 당해보는 모욕이였던것이다.
처녀는 자기를 자제하는듯 봉긋한 가슴에 두손을 대고 한동안 쏘아보더니 잡지를 돌려주고는 아무말없이 돌아섰다. 례의도 모르는 사람과는 상대도 하고싶지 않다는듯…
김성남이 그 처녀에게 인격모욕을 주었다는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늦었다. 처녀는 자전거를 끌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어쩐지 처녀가 측은해보였다. 그제야 처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욕이라도 콱 해주고 갈것이지.
김성남은 처녀를 뒤따라가 사죄하고싶었지만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더우기 안경낀 처녀들은 다 꽁한 축들이라고 시답지 않게 여겨오던 그였다.
(뭐, 두번다시 만나겠다고…)
며칠후였다.
증발랭각장치의 복잡한 열공학적계산이 제기되여 김성남이 공장대학에 찾아갔다. 나이지긋한 열공학강좌장이 리영실이라는 한 녀교원을 소개했다.
그 녀교원을 보는 순간 김성남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자전거에 부딪쳤을 때 인신모욕을 준 그 처녀였던것이다. 그렇다고 주눅이 들 김성남이 아니였다.
그는 헌헌하게 말을 건넸다.
《전번날엔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화김에 그만… 좀 도와주십시오.》
그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생각하면 애당초 대상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영실은 개인감정을 중요한 사업에 뒤섞을 정도로 협애하지 않았다. 그가 가져온 도면과 계산자료들을 훑어보고난 영실은 쌀쌀하게 말했다.
《이틀후에 와서 찾아가세요.》
김성남이 넉살좋게 들이댔다.
《시간이 바빠 그러는데 래일까지 꼭 해주시오.》
《동무만 시간이 바쁜게 아니예요.》 라고 꽉 쏴주고싶었지만 영실은 애써 자기를 자제했다.
《가능한껏 노력해보겠어요.》
이렇게 그들의 교제가 시작되였다. 처녀는 약속을 지켰다.
때로는 시간을 내여 증발랭각장치도입현장에도 찾아왔다.
걸린 기술적문제들을 도와주었고 어성을 높이며 론쟁도 하였다.
알고보니 처녀는 학구적이고 응용능력이 높았으며 매우 겸손하고 다감하였다. 무뚝뚝한 성미인 리규택기사도 눈을 끔뻑해보이며 저런 처녀를 안해로 맞는 총각은 한평생 행복할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성남은 은근히 그 녀교원에게 끌리는 마음을 누를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그려보던 처녀를 현실에서 만난것만 같았다. 그것과 다른것이 있다면 노란테가 가느다란 안경을 낀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처녀의 체취에 고상한 지성미를 더해줄뿐이다.
그는 자기 심장속에 사랑이 찾아온 순간을 정확히 알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되여 그를 사랑하게 되였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그의 온넋은 놀람과 기쁨속에서 처녀에게 쏠리고있었다.
드디여 증발랭각장치가 성공되던 날 압축되였던 포화증기가 내뿜을 때 김성남은 사랑을 고백하였다.
영실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것을 감촉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눈이 높은 처녀였다. 남성적인 활달한 성격이면서도 학식과 지성을 겸비한 상냥한 대상자를 그려보았었다. 그의 눈에 비낀 김성남은 남성이상의 남자였다. 새것에 대한 탐구심이 강하고 배짱과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 거칠고 투박한 성미는 질색이다. 그런 사람과
《동무가 아무리 그런대도 난 물러서지 않겠소. 이제 두고보오. 온 지구를 돌고돌다가도 꼭 나한테 오구야말거요.》
영실은 자기과신으로 배포유한 그에게 랭정한 미소를 던지며 돌아섰다.
제강소 강철직장에 배치받은 후에도 김성남이 끈질기게 찾아왔으나 영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김성남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구슬렸는지 공무직장에서 일하는 과묵한 아버지마저 그를 두둔해나섰다.
《내 알아보니 그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일하지만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발전성있는 청년이라고 하더라. 그런 사람을 나무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을 찾는다는거냐?》
《…》
하긴 아버지를 《네눈》이라고 모욕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말을 해줄수도 없었다. 그러나 영실은 다시 생각해보았다. 결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가 너무하지 않았는지.…
그런데 김성남이 갑자기 발길을 딱 끊었다. 간다온단 말도 없이, 이젠 지쳤는가?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되여와도 나타날줄 모른다.
매일이다싶이 찾아올 땐 몰랐는데 정작 그가 오지 않으니 마음이 텅빈것처럼 허전하였다. 왜 그럴가?… 영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마음이 끌렸었다는것을 자인하며 놀랐다. 사랑이란 이런것인가?…
찾아갈수도 없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대담해진다.
영실이는 슬며시 강철직장에 전화를 걸었다. 놀라운 소식이 왔다. 그가 당위원회로 소환되였다는것이다. 아, 그랬댔구나. 그러니 이젠 나같은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것인가. 구실도 좋을것이다. 내가 싫다고 했으니…
이제야 그의
그러던 어느날 리규택이 찾아왔었다.
그는 증발랭각장치를 도입할 때부터 두사람의 관계를 눈치채고있었던것이다. 자기는 김성남에 대하여 잘 알고있다고, 부모가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제 배짱대로 자라다보니 성격이 좀 이그러졌다, 그건 영실이가 사랑의 힘으로 잘 다스려주고 도와준다면 얼마든지 고칠수 있고 앞으로 큰일을 할수 있다고 했다. 요즘 새 직무를 맡고보니 사업이 바쁜데다가 야금전문가가 당일군이 된것이 별스러워 찾아오지 못한다는것이다.
영실은 그를 한순간이나마 오해했던것이 부끄러웠다.
김성남이 부모없이 자랐다는 말이 가슴에 맺혀 눈물이 그렁해지기까지 했다.
그후에도 리규택은 성남과 영실의 사랑을 무르익혀주기 위해 자기 자식일처럼 나섰고 그들 역시 리규택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다시 만났고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한 첫날밤에 김성남은 안해의 손을 잡고 약속했었다.
자기의 덜된 성격을 꼭 고치겠다고…
그는 오누이를 낳고 살아오면서 안해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고 애썼다.
영실은 안해로서뿐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까지 다 합쳐 남편을 사랑하였고 극진히 도와주었다.
그후 당일군으로 일하던 남편이 다시 기술일군으로 돌았다.
점차 기사장, 지배인으로 승급하면서 그 성격이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제강소의 현대화라는 거창하고 복잡다단한 사업에 맞다들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던것이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달의 후광이 창문으로 희미하게 비쳐들었다. 리영실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있는 남편의 옆모습을 곁눈질해보았다.
《결혼식 첫날밤에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요?》
《음, 생각나지 않구.… 그 거친 성미를 고치자구 하는데 잘 안되는구만.…》
《진짜 강한 사람은 적과 싸워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김성남은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내 다시 약속하오. 꼭 고치겠소.… 자, 이젠 밤도 깊었는데 먼저 자오.》
안해가 침실에 내려간 후 김성남은 다시 책을 펼쳐들었으나 글줄들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기의 그 거친 성격때문에 로기술자들이 다 떨어져나갔다. 그들은 우리 힘으로 제강소를 현대화해보자고 나섰던 천리마시대의 체험자들이였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게 된것이 과연 나의 거친 성격때문만이였던가.
김성남의 눈앞에는 몇해전 지배인으로 임명받았을 때의 일들이 가슴아프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