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고 뇌
1
김성남은 사무실 책상앞에 앉아 어두워지는 제강소의 밤하늘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요즈음에 와서 할머니가 들려준
제강소현대화가 여러해동안 추진되지 않고있는 문제때문에 김성남은 기업소에 료해나온 일군과 만났었다.
일군은 그가 지배인으로 임명받은 후 강철공장을 들여오기 위한 여러차례의 작전이 실패로 끝난 책임과 그후에도 제강소현대화를 미루어온것에 대하여 따졌다.
《지배인동문 전기로가 제강소현대화에서 기본을 이룬다는것을 알고있었습니까?》
《예.》
《그런데 무엇때문에 지금까지 전기로현대화를 하지 못하고있습니까?》
《…》
김성남은 대답을 못하였다.
그것을 한두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기때문이다. 또 설명한댔자 현실적으로 전기로현대화가 실현되지 못한 상태에서 구차한 변명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 일군은 지배인의 침묵을 제나름으로 리해하였다.
《제강소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지배인동문 제강소현대화에는 관심이 적고 책임추궁이 두려워 생산에만 치우치는 생산주도형일군이라고 합니다.
지배인동무를 믿다가는 제강소현대화를 실현할수 없다는겁니다. 그러니
김성남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손에 꼭 쥐여주고간 천리마휘장을 소중히 간수했었다. 동심으로 가득찼던 유년시절, 자기도 천리마를 타고싶어 항상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슴에 달아보던 천리마휘장! 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로 제강소에 파견되였을 때나 제강소에 배치받고 일하던 나날 어렵고 힘들 때마다 그 휘장을 꺼내보느라면 《신심을 잃지 말고 난관을 뚫고나가면 꿈은 꼭 이루어진단다.》라고 하면서 천리마전설을 들려주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히 들려왔었다. 그러면 새로운 흥분과 환희,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꿈으로 심장이 쇠물처럼 끓어올랐다. 힘든줄 몰랐다. 무서운것이 없었다.
그 나날에 그는 어엿한 일군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새 세기에 들어와서, 더우기는 제강소현대화문제가 제기되여 몇해동안 해외로 나다니다보니 할머니가 들려주던 아름다운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였다. 자기를 믿어주고 제강소지배인으로 내세워주신
김성남은 무거운 숨을 내쉬였다. 강철직장쪽에서 전기로의 동음이 둔중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걸 보니 로의 상태가 신통치 못한것 같다. 아픈 머리도 쉬울겸 현장에 나가보자고 생각한 김성남이 막 작업복을 입으려는데 책상우에서 따르릉-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손을 뻗쳐 송수화기를 들었다.
《지배인입니다.》
《설송이 아버지군요. 저예요!》
귀에 익은 안해의 목소리다. 김성남은 미간을 찌프렸다.
안해나 애들에게 사무실에 전화를 걸지 않도록 엄하게 통제하는 그였던지라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무슨 일이요?》
《저… 지금 일이 바쁘세요?》
《언젠 뭐 한가했소?》 여전히 덜통스럽다. 한동안 전류흐르는 소리만이 잉- 들렸다. 김성남이 짜증을 냈다.
《아, 이거 빨리 말하오. 전화를 놓겠소.》
《다시 알려주지 않겠는데 오늘 저녁엔 좀 일찍 들어오세요.》
《왜?》
《와보시면 알거예요. 저와 설금이 부탁이예요.… 기다리겠어요!》
안해는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송수화기를 놓았다.
그러니 무조건 들어오라는 소리다.
《허 참.》 김성남은 허구프게 웃었다.
웬간해서는 그런 전화를 걸지 않는 안해였다.
혹시 장난이 세찬 설송이녀석이 무슨 재구를 쳤는가?
하긴 안해와 설금이 부탁이라고 했지.…
문득 자기가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문인가, 아니, 일이 바쁠 때는 늘 그러지 않았는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그것도 한순간, 그는 한가지 생각에 옴해있는 성미가 아니였다.
지배인이라는 직책이 그것을 요구했던것이다.
옷걸이에서 작업복을 벗겨입고 갈색비닐안전모를 쓴 김성남은 방을 나섰다.
안해의 전화를 감감 잊은듯 강철직장쪽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전기로의 불빛으로 늘 환하던 구내길은 컴컴했다.
한두기의 전기로를 겨우 운영하고있는데 그것마저 전기사정, 원료사정으로 드문히 돌리는 형편이다. 웬일인지 전기로의 동음이 들리지 않는다.
어디선가 함마질소리가 떵- 떵- 들려올뿐 제강소구내는 괴괴한 정적속에 잠겨있다.
어린시절 천리마가 불쑥 날아오르지 않겠는가 지켜보던 제강소하늘에는 별들만이 잠에 취한듯 껌벅거린다.
천리마대고조시기의 상징인양 붉게 타오르던 쇠물빛노을은 점점 스러져갔다. 모든것이 지배인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기때문인것처럼 느껴져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강철직장건물 가까이에 이르니 전기로의 동음이 다시 들려왔다.
김성남은 철대문을 열고 전기로작업장에 들어섰다.
전호의 굉음이 귀청을 때렸다.
로조작공실에서 내다보던 강선희가 그를 알아보고 생긋 웃었다.
고모사촌동생이다. 고모의 안부를 묻고싶었으나 운전중에 말을 시키면 사고를 칠수 있기에 그대로 로앞으로 다가갔다.
로장입구앞에서는 방열복을 입은 용해공들이 길다란 쇠장대로 슬라크를 끌어내고있었다.
엿가락처럼 눅진눅진한 슬라크가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쇠물찌가 사방으로 탁탁 튀여났다.
그들에게 다가간 김성남은 쇠장대를 함께 잡고 슬라크를 걷어냈다.
화염이 확확 풍겨왔다.
잠간사이에 온몸이 땀주머니가 되였다.
슬라크를 다 처리하자 김성남은 곁으로 다가온 작업반장 조인철에게 로상태가 어떤가고 물었다.
조인철이 장갑을 낀 손을 귀가에 대고 소리쳤다.
《뭐라구요?》
요란한 동음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김성남은 벌컥해서 고함쳤다.
《젠장, 귀가 먹었나. 로상태가 어떤가 말이요?》
조인철이 수갑낀 손을 흔들었다.
《말두 마십시오. 전극승강장치가 고장나 겨우 수리했는데 전압까지 떨어지니 온도가 오르지 않아 출강 못하고있습니다.》
《음-》
김성남은 주머니에서 담배꽉을 꺼내 땀을 들이고있는 용해공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받았다.
어떤 사람은 귀우에 예비로 끼우기도 한다. 그리고는 떨어진 쇠물찌에 불을 붙여 맛스레 피웠다. 주머니에 라이타가 있었으나 김성남이도 슬라크에 담배불을 붙였다.
용해공시절에 붙인 습관이다.
땀을 흠뻑 흘리고나서 탄산수 한고뿌 쭉 마신 후 슬라크에 불을 붙여 피우는 담배맛이란 류별난것이다. 그것은 용해공들만이 느껴볼수 있는 특전이 아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철을 다루는 제강소의 어느 직장에 가도 그런 생활은 다 있다.
련속조괴, 압연 , 인발, 프레스, 단조…
김성남은 담배를 피우며 용해공들과 한담을 했다. 그는 로동자들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안정되였다. 그래서 무엇이 걸렸거나 골치아픈 일이 생기면 현장에 나왔다.
땀을 흠뻑 흘리고나서 담배를 피우며 로동자들과 우스개소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나면 막혔던 가슴이 확 열리고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군 했다. 어찌보면 그것은 정신치료료법이라고 하겠는지…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전기로의 굉음이 뚝 끊어졌다.
조인철이 조작실에 대고 고함쳤다.
《무슨 일이야?》
대답은 장입구앞에서 먼저 날아왔다.
《전극이 부러졌다!》
사방에서 욕설이 터졌다.
《제기랄, 졸면서 배전을 했나.》
《헛딴 생각을 했구만. 에익, 혼날줄 알라.》
용해공들은 강선희가 지배인의 사촌동생이란것도 아랑곳없이 조작실에 대고 주먹을 흔들어댔다.
고장난 전극승강장치를 수리했다고 하더니 끝내 말썽이다.
김성남은 피우던 담배를 슬라크무지에 집어던지며 일어섰다.
X
하루사업총화가 끝나고 전화종소리도 뜸해지자 사무실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저녁 7시가 퍽 지났으나 긴 여름해는 달마산우에서 아직도 빛을 뿌리고있다. 류준권은 조용한 시간을 리용하여 책상우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책들속에서 두툼한 책 한권을 뽑아들었다.
야금기술서적이다. 책을 펼친 그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장두장 읽어나갔다.
잘 리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다시 읽었고 중요한 대목들에는 빨간 원주필로 밑줄을 그었으며 때로는 수첩에 발취도 하면서 탐독에 여념이 없다.
용해공으로 일하던 그는 당학교를 졸업하고 군당과 공장기업소에서 당사업을 해오다가 올해초 제강소련합당책임비서로 임명받았다.
오래동안 당사업을 해온 그는 정보산업시대의 당일군들은 높은 실무적자질을 겸비할 때만이 사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다는것을 자각하고
젊은 시절에 그는 눈을 부비며 공장대학을 졸업했다.
당사업을 하면서도 여러건의 기술혁신을 하여 발명권과 학위까지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당일군이 학위를 받아서는 뭘하는가고 했으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산현장에 나가면 먼지투성이 방열복을 입고 용해공들과 함께 쇠장대를 틀어잡고 땀을 흘렸다. 기술자들속에 들어가면 도면을 펼쳐놓고 목청을 높여 기술적론쟁도 벌리면서 자기 견해를 내놓을줄 알았다.
요즘 류준권은 책임비서로 부임되여온 후 지난 기간 제강소현대화를 실현하지 못한 원인을 심각하게 분석해보았다.
문제는 일군들이 기업소의 취약한 생산실태와 락후한 기술만 보고 천리마제강소의 전통 즉
제강소현대화의 방도는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전기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설비와 생산공정을 점차적으로 현대화하는것이다.
하다면 제강소에 어떤 형태의 전기로를 건설해야 하는가가 초미의 문제다.
하여 류준권은 요즘 밤이 새도록 기술서적을 탐독하며 모색에 여념이 없는것이다.
다급한 전화종소리가 방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그는 손을 뻗쳐 송수화기를 귀가에 가져갔다.
《류준권입니다. 뭐라구요? 알았습니다.》
그는 옷걸이에서 작업복을 벗겨입고 재빨리 안전모를 눌러썼다. 그가 1호전기로에 달려갔을 때는 용해공들이 로체우에 올라가 부러진 전극을 해체하고있었다. 로주변에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긴장한 눈길로 로체우를 지켜보고있다.
로조작실곁에는 빨간 수건으로 꼭 졸라맨 머리우에 노란 안전모를 쓴 조작공처녀가 얼굴을 싸쥐고 쿨쩍거린다.
《선희가 아니냐?》
울고있던 처녀는 창황중에도 책임비서를 알아보고 머리를 숙여 인사한다.
《어찌된거냐?》
강선희는 어찌나 울었던지 흑흑 흐느끼며 떠듬거렸다.
《제가… 그만… 조작을…》
《음…》
류준권은 더 묻지 않고 로우를 살펴보았다. 로는 세웠지만 전극구멍사이로 검붉은 불길이 확확 뿜어나왔다. 그속에서 대여섯명의 용해공들이 함마로 까고 지레대로 쑤시면서 끊어진 전극을 분리시키고있다.
아래에서도 전투다.
여럿이 기다란 쇠장대로 쇠물에 빠진 전극쪼각을 꺼내느라고 모지름을 쓴다. 벽돌색안전모를 쓴 지배인의 모습도 보인다.
쇠물이 흘러나오며 파편쪼각처럼 사방으로 튕긴다. 물이 질벅한 바닥에 떨어진 쇠물찌들이 칙칙 소리를 내며 흰김을 피워올린다.
육중한 천정기중기가 새로 교체할 전극을 물고 우르릉우르릉 로체우로 다가온다. 다급한 종소리가 울리고 신호공의 호각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사람들은 황황히 흩어졌다가 기중기가 지나가자 다시 로곁으로 모여든다.
소리치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말없이 잽싸게 제 할바를 찾아한다.
로곁에 놓인 커다란 선풍기가 윙윙거리며 로체우로 바람을 불어보낸다.
그야말로 치렬한 격전장이다.
로동안전규정상 이런 땐 로가 일정하게 식은 다음에 작업해야 한다.
그러면 쇠물이 로속에 얼어붙게 되고 그것을 다시 녹이자면 숱한 전기가 랑비된다. 용해공이였던 류준권은 그 어떤 규정으로도 용해공들을 막아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이런 땐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
물통곁으로 뛰여간 류준권은 바께쯔로 물을 퍼서 옷에 끼얹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책임비서를 알아보았으나 붙잡을새가 없었다. 류준권은 익숙된 동작으로 철사다리를 탕탕 구르며 로체우로 올라갔다.
그는 누구인가의 지레대를 나꾸어챘다.
지지틀에 끼워있는 부러진 전극에 달라붙어 든장질을 했다.
컥컥 숨막히는 열기가 온몸을 달구었다. 젖었던 옷에서 파릿한 연기가 피여오르고 천누린내가 났다. 이마에 내돋혔던 땀마저 말라들었다.
몇분이나 흘렀는지… 그가 그랬던것처럼 누구인가 지레대를 덥석 빼앗았다.
교대자들이 련달아 올라왔다. 아래로 내려온 류준권에게 조인철이 물을 끼얹었다,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이크, 시원하다. 이러다간 말하는 빨래가 되고말겠구만, 허허.》
그에게 물을 끼얹어준 조인철이 호기심이 동했는지 다우쳐물었다.
《말하는 빨래란 무슨 소립니까?》
《허, 거저야 어떻게.》
누구인가 탄산수 한고뿌를 떠왔다.
꿀꺽꿀꺽 탄산수를 달게 마시고난 류준권이 입을 훔쳤다.
《그건 옛날 봉이 김선달이 한 말이요. 한번은 김선달이 밤이 깊어 통행시간이 지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순라군들과 맞다들렸지. 잡히면 벌금을 물어야겠기에 하는수없이 도망쳤는데 그만 막힌 골목에 들어서게 되였네. 어쩔수 없게 된 김선달은 어느 집 토담울타리우에 펄쩍 올라가 길게 누웠다네. 뒤따르던 순라군들이 이상해서 거기 누워있는게 누구냐고 소리치자 김선달은 제꺽 〈빨래요.〉하고 대답하였소.
〈빨래가 어떻게 말하느냐?〉고 순라군들이 따지자 김선달은 태연하게 〈갈아입을 옷이 없어 통채로 빨았소.〉하고 대답하였지. 순간 순라군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다가 김선달의 기발한 기지에 탄복하여 그냥 돌아서고말았다누만.
그래서 〈말하는 빨래〉라는 일화가 생겨났단 말이요.》
즐거운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긴장하던 사고현장분위기는 삽시에 달라졌다. 얼마후 전극이 교체되고 전기로의 굉음이 다시 터졌다.
김성남과 류준권이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문대고있는데 작업반장 조인철이 다가왔다. 그는 마침이라는듯 맞대거리로 토설했다.
《이거 어디 일해먹겠습니까. 전극이 부러지지, 전압이 떨어지지… 언제까지 낡은 전기로를 그러안구 씨름해야 합니까?》
《조금만 참으라구… 이제 현대적전기로를 건설하겠소.》 하고 김성남이 한마디 하자 조인철이 거기에 매달렸다.
《우리 1호전기로부터 합시다!》
류준권이 빙긋 웃었다.
《해낼
《명령만 주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단숨에 제끼겠습니다.》
두사람은 꺼먼 연진이 묻긴 했어도 코날이 성큼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조인철의 사내다운 모습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몇해전 인민군대에서 제대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용해공이 되였고 능력있고 날파람있는 작업반장으로 자라났다.
이런 불같은 새 세대 청년들이 우리 제강소에 얼마나 많은가.…
강철직장에서 나온 김성남과 류준권은 정문으로 길게 뻗은 구내길에 들어섰다. 어슬어슬해진 구내길엔 인적이 뜸했다. 길옆에는 키낮은 여러 종류의 꽃나무들이 규모있게 자라났고 그 사이사이에 동물조각상과 의자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다.
두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말없이 돌의자에 가서 앉았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류준권이 먼저 말을 뗐다.
《담배 넣은게 있습니까, 내것은 다 젖어놔서…》
담배를 별로 피우지 않는 김성남이였으나 현장에 나올 때면 꼭 넣고 나왔다.
《예, 몇대 있습니다.…》
그들은 담배를 피워물었다. 류준권은 주머니에서 눅눅하게 젖은 종이를 꺼내 오그려쥐고 거기에 재를 털었다, 김성남이도 종이를 꺼내 그렇게 했다.
두개의 빨간 불빛이 반디불처럼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
강철직장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전기로의 불빛이 가까이에 있는 동물조각상을 비쳐준다. 장훈을 부른 토끼가 엄지손가락을 펴들고 장한듯이 웃고있다. 잔뜩 울상이 된 곰이 장기쪽을 들고 딱 한번만 물려달라고 애걸하는 조각상이다. 과연 언제면 물려주겠는지…
그걸 보는 사람마다 저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를 짓게 한다.
원래 제강소구내는 정리되여있지 않아 어수선했었다.
곳곳에 슬라크덩어리며 물웅뎅이, 페기된 기계부속품, 쇠물남비들이 널려있었다. 건물과 구내도로들은 관리하지 않아 말이 아니였다.
일군들은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것때문에 골머리를 앓다보니 그런데 관심을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새로 부임되여온 류준권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당의 의도대로 생활을 락천적으로 깨끗하고 명랑하게 해야 한다며 각 직장과 부서들에 분담을 주었다.
구내길을 포장하고 꽃밭과 록지를 꾸렸다. 길옆과 소공원에 여러가지 형태의 동물조각상을 만들어세웠다. 낡은 건물들을 보수도색하고 지붕도 산뜻하게 씌웠다.
류준권은 강연회나 모임장소에서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거나 구호는 웨치지 않았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처음 부임되여왔을 때였다. 일군들과 함께 구내를 돌아보던중 길옆에 앉아 휴식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태운 일군들은 아무 생각없이 꽁초를 집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낸 류준권은 자기가 피운 꽁초는 물론 사방에 내던진 꽁초까지 종이에 싸가지고 주머니에 넣었다가 휴지통에 가져다버렸다. 비록 말 한마디 없었으나 일군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그의 소행은 일시적인것이 아니였다. 생활습관으로 굳어진것이여서 생산현장에 나가 로동자들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다가도 꽁초를 꼭 종이에 싸서 주머니에 넣군 하였다.
그것이 한입, 두입건너 온 천리마군이 다 알게 되였다. 아름다운 소행은
그때부터 기업소구내는 물론 거리와 마을 그 어느 구석에도 막 내던진 꽁초를 볼수 없게 되였다. 자기 직장, 자기 인민반, 자기 마을을 알뜰히 꾸리는 기풍이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류준권은 유모아로 사람들을 웃길줄은 알아도 욕설이나 신경질은 몰랐다.
사업포치를 할 때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럴수록 모든 일이 조직하는대로 잘되여나갔다.
김성남은 그의 사업작풍을 통해 책임일군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천백마디 말이나 호소보다 더 힘이 있다는 철리를 새롭게 느꼈다.
불을 끈 꽁초를 종이에 싸 주머니에 넣은 류준권이 침묵을 깨뜨렸다.
《오늘 전극부러지는 사고를 보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내가 갓 제대되여 용해공으로 일할 때도 그런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 애를 먹었지요. 아마 지배인동무도 용해공으로 일해보았으니 겪어보았을겁니다.
헌데 수십년이 흘러간 오늘까지도 수동조절을 하고 이런 사고가 계속 반복되고있으니…》
《…》
김성남은 그의 말이 지금까지 제강소에서 일해왔다는게 전기로 하나 현대화하지 못하고 뭘하고있었는가 하는 비판처럼 생각되여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해외에서의 납입작전이 좌절된 후 현대화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욱 치미는 욕망같아선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하고싶었다. 꿈속에서도 그에 대한 헛소릴 쳐서 안해를 놀래웠다.
몇몇 기술자들을 만나 의논해보았지만 선뜻 응해나서지 못하였다. 고전력전기로수준에서 해보자고 할뿐이였다. 하긴 그들의 주저도 리해가 되였다. 현장경험이 어린데다가 세계야금공업의 최첨단기술인 초고전력전기로를 구경도 못하지 않았는가.·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하자니 힘에 부치고 고전력전기로는 눈에 차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왔던것이다.
로동자들은 여전히 낡은 전기로를 끌어안고 힘겹게 씨름질을 하고있고 전극부러지는 사고는 더욱 빈번해지고 생산은 점점 떨어지고있다.
이제는 무엇을 하던 결심할 때가 되였다.
고전력전기로정도에서 해볼
왜서인지 년로보장을 받고 집으로 들어간 로기술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