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64 회


제 4 편
나무는 세월을 새긴다


제 31 장


2


《섯!》

새 공정정문을 통과하려던 리진은 등뒤에서 들리는 불의의 단속에 깜짝 놀랐다. 그는 오복의 장난인줄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재빨리 뇌까렸다.

《벌써 나왔나? 오복이, 빨리 시작하세. 시간이 없어.》

《흥, 오복은 무슨 말라빠진 오복!》

리진은 움찔 몸이 과다들었다. 팔에 로동안전원완장을 두른 승표가 두툼한 입술에 비웃음을 긋고 슬렁슬렁 다가왔다. 어제 기사장이 오늘 시운전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여러가지 사업들을 면밀히 포치하면서 로동안전원으로 승표를 임명하였다. 승표가 밤을 밝혀가며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것 같았다.

리진은 승표를 구슬리였다.

《승표동무, 수고하누만. 수소분리탑안전변을 점검해야겠네.》

《시운전시간까지는 그 누구도 공정안에 얼씬 못하게 하라는 기사장동지의 엄명이네.》

《미리 정비해놓지 않으면 시운전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니까.》

《기사장동지가 그걸 몰라서 지시했겠나.》

《아, 뭘 그다지나 쇠고집인가. 나야 공정의 주인이 아닌가.》

《하, 그렇다면 밤새껏 손님이 여길 지켰다는건데… 섭섭하구만.》

하늘소발통같은 승표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그의 말투가 이죽거리면서도 제법 뼈가 있어 리진은 어지간히 기가 눌렸다. 이런 식으로 낮추붙었다가는 시간이고 뭐고 다 놓칠것 같았다.

《좋네. 나도 권한을 행사해야겠어. 난 오늘 시운전을 담당한 책임기사야.》

리진은 무작정 공정조작실로 향했다. 승표의 투박한 손이 등뒤로 그의 어깨를 탁 잡았다. 리진은 그 무례한짓에 울컥 부아통이 터져 홱 돌따섰다. 승표는 두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한참 그를 지켜보다 이어 꺼지는 한숨을 내쉬였다.

《리진이, 날 또 공정에 뛰여들던 전번처럼 곤경에 처박으려고 그러나. 마음같아선 나도 동무가 몰래 하려는 그 일을 돕고싶단 말이야!》

(그럼 이 친구 눈치챘는가?…)

리진은 사뭇 어정쩡했다. 그처럼 거칠고 데설궂은 인간이 이렇듯 진심을 토하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거동을 보느라니 눈뿌리가 시큰해났다. 승표가 감사나운 눈빛을 공정쪽에 얼핏 던졌다.

《좀전에 기사장도 왔네. 지금 조작실에 있어.》

《뭣이?!》

청천벽력같은 그 소리에 리진은 대뜸 얼굴이 시꺼멓게 질려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까지 하였다. 기사장이 뭣때문에 이 시각에 나타났단 말인가. 오복이 토설했을가. 아니, 그럴리 없다. 그들의 밀약이 루설될가봐 리진이한테 수차 말침을 놓던 오복이였다. 그렇다면 기사장이 있을수 있는 일을 예감하여 선손을 쓴것인가.

리진은 극도의 실망에 땅이 꺼져내리는것 같았다. 더는 피할수도, 우회할수도 없었다. 그는 기사장한테 정면으로 나설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조작실에 들어서자 전준혁은 무엇인가 비밀리에 하려다 들킨 사람처럼 당혹해하면서도 신경이 사나와졌다. 이마와 관자노리에 땀발이 흥건히 밴 그는 단박에 표정이 엄하게 굳어지여 격노한 시선으로 리진을 쏘아봤다.

《동문 왜 왔소? 여길 왜 왔는가 말이요. 시운전시간은 정각 9시, 9시란 말이요. 가시오!》

《…》

《못 들었는가?》

《기사장동지!》

리진은 타는듯 한 초조감과 흥분에 숨을 죽이고 준혁을 면바로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눈길과 눈길이 부딪쳤다. 리진의 눈에서는 두줄기의 강렬한 빛이 뿜어나오며 속마음을 웨치였다. 전준혁은 눈의 그 웨침을 듣고있었다. 그는 바람과 해빛에 청동빛으로 그슬린 리진의 얼굴을 모난 눈길로 뚫어지게 보며 어떻게 나만 아는 일을 알아맞혔을가, 이 내성적이면서도 소심스럽던 녀석은 날이 갈수록 훌륭한 면모를 드러내거던, 속도 깊고 정신적기개도 지혜도 가늠할수 없이 높단 말이야, 그래, 이 용암처럼 끓어번지는 70일전투는 인간들을 얼마나 크고 아름답게 하는것인가 하는 생각을 굴리였다. 하면서도 엄엄한 기색은 풀지 않았다.

《안돼. 그런 모험은 허용할수 없어. 우린 질소불어내기로써 공정의 안정성을 믿어야 한단 말이요.》

《하하…》

갑자기 조작반뒤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기름칠갑을 한 오복이 불쑥 나타났다.

《기사장동지, 어물쩍 넘기지 마십시오. 제 아까부터 여기 숨어 기사장동지가 혼자 수소불어내기 준비작업을 하는걸 실컷 구경했습니다. 우린 같은 동업자란 말입니다. 하하…》

《동문 어떻게 여길 들어왔소?》

《말두 마십시오. 저 지옥의 사자와 같은 승표 그 친구 눈을 피해 담장을 뛰여넘어 기습했습니다.》

전준혁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들의 앙양된 기세에 더 어쩌지 못하여 무거운 숨결을 톺으며 시꺼먼 눈섭만 찡긋거렸다. 리진은 막혔던 숨결이 활 열리고 심신이 날을것만 같았다. 기사장이 눈물나도록 고마왔다.

《기사장동지, 제발 이 자리를 떠나주십시오. 저희들끼리 하겠습니다.》

《뭐, 최후의 결사전을 앞두고 지휘관인 내가 참호에서 물러나라?》

《저희들을 믿어주십시오. 어떡하든 오늘의 시운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겠습니다.》

《!…》

전준혁은 뜨거운것이 욱 치밀어 눈굽이 후끈해났다. 이런 순결한 젊은이를 갖고 자신의 명예를 낚으려 했던 지난 일들이 뼈저린 자책과 아픔으로 가슴을 허비였다.

《이 사람, 우린 70일전투의 승리자가 되자고 했지? 그 승리는 모든것이 충분히 갖추어질 때만이 이룩되오. 자, 우리 함께 해보자구.》

《기사장동지!》

리진은 가슴을 치는 열파에 떠밀리워 준혁이한테 몸을 던졌다. 준혁이도 싱싱한 혈기가 넘쳐나는 리진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고 눅눅히 젖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고맙소, 고맙소.…》

곁에 서있던 오복은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응결되는 그 격동적인 모습에 눈을 슴벅이며 뜨거움을 삼키였다.

창밖이 어느결에 푸름해졌다. 미구에 려명을 맞이할 동켠하늘 한 귀접이가 훤히 트이였다.

《이렇게 하기요.…》전준혁은 자기가 찾은 수소불어내기방법을 설명하였다.

《먼저 공정안에 불연소가스인 질소부터 쏴넣기요. 거기에 수소의 약간량을 섞어 순환시키면서 차츰차츰 수소량을 불구어 나중에는 완전한 수소불어내기로 이전합시다.》

비교적 안전한 방법이였다. 전준혁의 지휘하에 책임조작은 리진이 맡고 발브조절은 오복이 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초긴장과 열띤 흥분속에서 전원이 투입되였다. 조작반에 촘촘히 박힌 바둑알같은 표식등에 푸른 빛들이 반짝이였다. 3천마력압축기가 우―웅 하고 지심을 울렸다. 이어 쏴― 하는 거센소리가 공정쪽에서 들려왔다. 질소가 탑에 장입되는 소음이였다. 이제 몇분이 흐른 뒤에 수소를 넣어야 한다.

리진은 생명을 찍어가는 초침바늘을 지그시 지켜보다 무선마이크로 바깥탕크장에 대기하고있는 오복이한테 수소발브를 열것을 지시하였다. 그다음 압조절은 여기 조작실에서 하게 되였다. 조금 지나 오복의 신호가 왔다. 수소압조절답브를 쥐고있던 리진의 손이 가늘게 떨었다. 몸도 얼대로 얼어들었다. 아무리 모진 마음을 먹었어도 습관될수 없는것이 위험이였다. 이런 순간에도 자기 정신을 지배할줄 아는 사람만이 위험과 공포를 이겨낼수 있었다.

리진은 들숨을 길게 호흡하며 수소압조절답브를 오른쪽으로 약간 돌리였다. 압력계바늘이 파르르 떨면서 머리를 쳐들었다. 계속 답브를 약간씩 틀었다. 바늘이 가운데로 치달았다. 그런데 별안간 조작반웃면 신호등들에 노랗고 빨간 불빛이 깜박이면서 아츠러운 전기종소리가 울렸다. 위험신호였다. 뒤전에 서있던 전준혁이 달려와 수소압조절답브를 제자리에 떨구었다.

《너무 흥분하지 마오.》

리진의 얼굴과 잔등으로는 식은땀이 물흐르듯 흘러내렸다.

《가벼운 수소가 질소를 타고 탑머리에 압을 가하는것 같습니다.》

《옳소. 조작방법을 달리해야 할것 같소.》

《질소압을 최대로 높이면 상대적으로 수소상승을 억제할것 같습니다. 그다음 서서히 질소압을 낮추면서…》

《좋소. 그렇게 해보기요.》

시험은 다시 시작되였다.

수소불어내기작업은 그렇게 곡선그라프를 긋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위험과 절망, 성공사이를 수십차나 오락가락하며 가슴들을 비틀어짰다. 그들의 얼굴은 콩죽같은 비지땀으로 범벅되여버렸다. 하지만 세사람은 한마음, 한덩이가 되여 순간도 자기의 위치들을 드티지 않았다.

마침내 탑과 공정에 질소대신 수소가 순환되면서 고르로운 음향을 울릴 때 수정같이 맑은 아침이 밝아왔다. 그때 구내포장길로 한 처녀가, 까만 잠바형작업복을 가뜬하게 입은 방울이 장달음쳐왔다. 은백양나무앞으로 뻗은 경사진 길을 따라 재게 놀리는 방울의 두다리는 탄력있고 억실한 두눈에서는 불꽃같은 기쁨이 발산했다. 무슨 일인지 어서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줄 생각으로 정신없이 달려오던 방울의 한쪽신발이 어딘가 걸채여 벗겨졌다. 처녀는 어떻게나 급했던지 부끄러움도 다 잊고 벗겨진 신발을 한손에 쳐들고 뛰여오면서 뭐라고 소리쳤다.

수소불어내기작업긴장이 채 풀리지 않은 시선으로 방울의 헤덤비는 거동을 아무 생각없이 내다보고있던 리진은 급기야 뇌리를 때리는 어떤 감각에 창문을 활 열었다.

《기사동지! 언니가 와요! 주경언니가. 강대철아바이와 함께 온대요.―》

방울의 두두룩한 가슴이 풀무질하듯 오르내리고 벅찬 소식에 눈물이 끓었다.

《당비서동지랑 주경언니랑 도병원에 들려 완쾌된 강아바이를 데리고 이제 곧 도착할거라고 해요. 공장에서 차를 보냈대요.》

첫순간 리진은 방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유난히 하얀 덧이를 그저 얼없이 쳐다봤다. 뒤이어… 심장이 쿵 뛰였다. 전률같은 기쁨이 가슴복판을 꿰지르는 현훈증에 눈앞이 휭 돌았다. 그는 강대철아바이가 건강을 회복한 소식은 이미 알고있어도 아무 기별도 없던 전주경이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참, 오늘 시운전이 의의깊구만. 있어야 할 사람들이 다 오니 말일세.》

뒤짐을 지고 천천히 조작실을 거닐던 전준혁이 진중히 뇌이였다. 오복이 그 말에 주해를 달았다.

《그건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들이 하나의 지향속에 살기때문이겠지요. 뜻깊은 오늘이 마치도 친애하는 그이의 품으로 달려가는 날 같단 말입니다.》

《아주 훌륭한 표현이요.》 전준혁은 오복의 의미심장한 말을 수긍하여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세찬 감동의 물결이 굽이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온 나라에 70일전투 승리의 함성이 울려퍼지고있습니다. 저희들도 70일전투의 제품생산을 초과완수한 기쁨과 함께 오늘은 페불을 전부 리용하는 시운전도 하게 됩니다. 무궁한 세월속에 70일이라는 날과 시간은 극히 짧디짧은 순간이나 다름없어 이렇듯 세상을 들었다 놓을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였습니다. 실로 전당, 전국, 전민을 70일전투의 공격전에로 대담하게 이끄신 지도자동지의 령도력은 비범하고 령활하시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이 나날을 통하여 지도자동지의 높으신 뜻과 리상을 사심없이 결사관철해나가는 길은 우리의 삶과 투쟁, 행복이며 거창한 창조와 변혁으로 승승장구할 이 땅의 미래라는 신념을 심장깊이 새기게 되였습니다.)

지난주에 전준혁은 공장당확대회의에 새 공정시운전날을 정류직장분초급당비서 강대철이 퇴원하게 되는 날로 정하자고 제기하였다.

《이 사람 리진이, 우리 주경이 뭘 가지고 오는지 모를테지?》

전준혁은 얼굴에 능청스런 미소를 띄웠다.

《그앤 그사이 수소정제용흡착제를 새로 개발했네. 수소순도를 거의 100%나 올릴수 있다더군. 공장과 자네한테 빈손으로 오지 않겠다더니 끝내 해냈단 말일세.》

전준혁은 흡족하고 은근한 시선을 리진이한테 던지였다. 리진은 그 눈길에 당황하여 얼른 머리를 숙였지만 가슴에서는 형언할수 없이 즐겁고 상쾌한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꿈속에서만 그려봤던 소원이 저 멀리 구름을 뚫고 비쳐오는 해빛처럼 찾아오는 꿈아닌 이 현실앞에서 그는 거대하고 억세고 뜨거운 품에 안긴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위대한 품은 삶의 영원한 융합이고 화목이고 사랑이였다. 그리고 광휘로운 빛발로 길이길이 번영할 어머니조국이였다.

리진의 눈앞에는 별안간 세월의 증견자인양 은백양나무의 풍만한 자태가 우렷이 안겨왔다. 고색짙은 아름드리줄기와 머지 않아 새 순이 돋을 아지들에서는 깨끗하고 신선한 향취가 풍겼다.

리진은 꿈속 이 나무아래서 보았던 주경의 장난궂고 정갈하고 명쾌한 모습이 떠올라 심장은 다시 기쁨에 뛰고 환희로 울렁이였다.

주경이, 우린 과연 꿈속에서처럼 이 나무아래서 다시 만나는구려. 오, 가고오는 세월을 새기는 나무야. 어버이수령님의 위업을 이룩하려 새 세기의 태양을 받들어올린 영광의 시대, 진정 우리의 사랑이, 분렬을 모르는 영원한 결합과 행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새겨다오. 그리고 그 불멸의 진리가 세대와 세대를 이어 련련히 계승될 때 우리는 강성으로 번영할 이 땅에서 무궁토록 삶을 누리리라는것을 너 두터운 껍질과 년륜에, 년년이 푸르러갈 줄기와 잎새마다 새기여다오.

리진은 은백양나무너머 끝간데 없이 푸르고 창창한 하늘처럼 펼쳐질 자신의 앞날을 내다보고있었다.

시운전시간은 각일각 다가왔다.

밤새 땅김이 흐늘흐늘 피여흐르던 공장구내를 기름냄새가 섞인 산뜻한 기운이 진붉은 노을을 펴나갔다.

어느새 시운전장에 들이닥친 방송선전차에서는 혁명적인 관현악선률이 울려퍼지여 들썩하게 하였다. 진회색제낀깃양복을 쭉 빼입어 무게있고 점잖아보이는 승학반장이 작업반원들을 데리고 시운전현장을 꽃테프로 장식하고있었다.

그속으로 승용차들이 여러대 들어섰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머리가 희슥한 지배인과 화학공업부일군들 그리고 출판보도기관 기자들이 촬영기와 취재수첩을 들고 서둘러 내렸다. 종업원들이 직장단위로 대렬을 맞춰오는가 하면 구내길 여기저기에는 명절옷차림을 하고 손에 갖가지 꽃묶음을 든 사람들의 물결도 나타났다. 그속에는 유선림의 손을 잡고 씨엉씨엉 걸어오는 강대철 부인의 모습이며 옥동자를 품은듯 몸이 무거워진 오복의 안해도 보이였다.

감격의 선풍이 환희롭게 이는 그 시각 비파봉하늘가에 쇠물처럼 이글거리던 노을속으로 아침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하늘과 땅은 삽시에 눈부시고 찬란한 빛발에 휩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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