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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1 회


제 3 편
70일전투의 열풍속에서


제 30 장


1


아침마다 강대철의 작업지시뒤끝이면 방울은 매 사람들한테 새 로동장갑 한컬레씩 내놓군 하였다. 방울은 전날 저녁 후방과에서 로동보호물자들을 받아서는 매일아침 어길수 없는 일과처럼 집행하였는데 그때마다 현장은 웃음꽃으로 환해졌다. 그렇잖아도 오복은 방울이만 있으면 이 어둑한 휴계실 난로연기에 그슬고 담배내가 푹 밴 이 집은 당대 회벽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하군 하였다.

방울은 공사장의 한송이꽃이였다.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산뜻한 덧이며 볼에 피여나는 홍조며가 보람찬 일에 뛰여다니는 왕성한 처녀에게서만 볼수 있는 아름다움이였으나 이 아침 그 미모는 종작없이 사라지고 볼이 잔뜩 부어 출근하자바람으로 강대철의 귀전에 뭐라고 쏙닥이였다. 강대철이 흠흠 영문모를 코소리를 지르더니 얼굴이 점점 사납게 이지러지고 입귀가 실그러졌다.

《다들 자리에 앉게.》

강대철의 칼칼한 눈빛이 노기로 번뜩이였다. 사람들은 그 돌연한 태도가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알수 없어도 벼락칠 일이 불거지리라는 예감으로 긴장해졌다. 팽팽한 침묵속에 자리가 정돈되였다.

《지난 밤 4호분리탑기초를 누가 팠는가?》

강대철이 얼음장같은 분위기를 깨치며 부리부리한 눈길로 장내를 휘둘러보았다. 다들 예상밖의 물음이여서 서로 무언의 눈길들을 주고받았다. 눈가에 웃음이 잔즐거리는 오복이도 정색해졌다. 오복은 기초굴착조를 책임진 조장이였다. 그는 아침 출근길에 4호분리탑기초가 말끔히 파제껴진것을 보고 속으로 방울이에 대한 찬사를 금치 못했다. 그 기초굴착은 방울이 맡은 구간이였다. 사실 방울의 기본전투임무는 설계실에서 도면이 나오면 그걸 복사하는 사도공일이였다. 그러나 방울은 그 일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오복이한테 자꾸 성화를 먹여 할수없이 그의 몫으로 기초굴착작업의 한 구간을 떼주었다. 방울은 틈틈이 작업장에 달려나와 제가 맡은 구간굴착작업을 하군 했는데 간밤에 다 끝냈던것이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오복의 물음이였다. 강대철이 책상을 쳤다.

《이런 엉터리가 어데 있어. 잘못 팠단 말이요!》

공기는 더욱 싸늘히 얼어들고 숨막혔다. 그때 리진이 벌떡 일어나 숨막히는 정적을 툭 깨버렸다.

《뭐가 잘못되였다고 그럽니까? 설계대로 파지 않았습니까.》

이 돌발적인 항변에 강대철이 이마에 주름을 모으고 한동안 리진을 노려봤다. 까딱 움직이지 않고 쏴보는 그 눈빛은 그 무슨 추적의 단서를 잡은듯 고소해하는 표정으로 뒤번져졌다. 아닐세라 강대철의 한쪽 입귀가 실룩하더니 비주름히 웃었다.

《흥, 장본인은 동무였군. 얘 방울아, 어서 체포해라.》

장내는 그때에야 강대철의 의뭉스러운짓에 긴장이 풀어지여 가벼운 웃음파도가 일었다. 입술을 감쳐물고 토라져있던 방울은 머리를 번쩍 쳐들고 새초롬하여 리진이한테 돌아섰다.

《기사동진 뭐예요? 남의 구간에 함부로 손을 대면서. 난 그런 도움은 싫어요.》

《아, 방울동무…》

리진은 얼결에 주위를 살피며 누구인가 찾았으나 방울은 그런 어물쩍한 능청에 속지 않을양으로 의연히 눈초리에 가시를 박고있었다. 하지만 그 흘기는 눈총속에는 그만이 알고있는 행복이 은밀히 감추어져 물결치고있었으니 그 뉘가 알랴. 방울은 눈을 내리깔며 샐쭉한 미소를 짓고 재빨리 속삭이였다.

《어쨌든… 밤새껏 수고했겠으니 내 몫으로 차례진 장갑 한컬레 더 드리겠어요.》

리진은 방울의 헛총질에 더욱 바빠맞았다.

《아, 그건 내가 받아서는 안되오. 이건 말이요.…》

그 순간 출입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황황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람에 탕 닫기는 문짬으로는 털모자 한쪽귀덮개가 너펄거리는 승표의 뒤모습이 얼핏 스쳐 다들 깜짝 놀랐다.

《아하, 진짜도적이 발이 저려났군.》

오복의 입이 함박만 해져 제 무르팍을 쳤다. 그건 사실이였다. 지난밤 늦게야 탑조립권양기설치작업을 끝낸 리진은 4호탑장구간에서 들려오는 곡괭이질소리에 그리로 가보았다. 승표가 헐썩이며 굴착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입에서 비자루같은 단김이 쓸어나와 찬바람에 날리였다. 리진은 그가 자기가 맡은 과제를 늦도록 수행하는줄 알고 저윽 감심했다. 정말 누구라 없이 최후돌격전에 나선 병사들처럼 치렬한 전투속에서 새날을 맞이하고 밤을 불태우고있었다.

리진은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승표의 얼어들었을 몸을 걱정하여 여기저기 널린 나무개비들을 주어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승표는 돌아서 곡괭이만 드세차게 휘둘러댔다. 하지만 리진이 불을 피워놓고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리진이, 좀 서라구.》

승표는 곡괭이를 땅에 쿡 박고 구뎅이에서 훌쩍 뛰여나왔다.

그의 낯빛은 꺼멓게 질려있었다.

《동문 날 이런 식으로 또 자빠뜨릴려구 그러나?》

《자빠뜨리다니?!》

《모르는체 말아. 씨름장에서 날 납작하게 했지 뭘 그래. 못 본체 그냥 지나치란 말야!》

승표는 통장갑낀 손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리진은 밸통사납고 자존심이 센 그의 내심의 고충을 들여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됐네, 어서 불이나 쪼이게.》

《…》

승표는 이즈막에 와선 리진이한테 완전히 제압당한 심정이였다. 최우승자가 되였던 씨름경기마저도 쓰디쓴 패배감을 맛보았다. 자기가 어리석게도 이기겠다고 이발을 갈며 경기장에 나섰을 때 상대인 리진은 자기의 승리와 사랑까지도 지켜주려 하지 않았던가! 승표는 오복이를 통하여 그 사실을 전해듣고는 난생처음 수치와 치졸, 보잘나위없이 허약하고 혐오스러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였고 도덕적패배감에 리진을 탕쳐놓고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가까울수 있었던 친구를 이제껏 오해하고 모욕하고 차버린 몰지각한 자신을 타매하고있는중이였다.…

《하핫, 승표 그 친구 제법 할줄 알거던. 알맞춤하게 말야.》

오복이 흥에 겨워 수수께끼같은 말을 던지였다. 효남이 호기심어린 눈을 깜박이였다.

《알맞춤하다니요?》

《오, 애송아지 넌 잘 모를수 있는데 말야. 거, 처녀총각 호상 아기자기한게 있잖나. 그걸 정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그 정은 지내 뜨거워도 안되고 지내 미지근해도 안되지. 그런 정을 쌀되박같은데 담아 알맞춤하게 퍼주는것이 이를테면 사랑의 묘리인데 저 친구가 그걸 할줄 안다는거야.》

《흥, 난 그따윈 몰라요. 정말 오복동진 말 다했어요?》

방울은 울상이 되여 발을 동동 구르다 한아름 안고있던 장갑뭉테기를 오복이한테 뿌려던지였다. 오복은 그걸 냉큼 받아안고 《오, 내 사랑.》 하며 입을 쪽 맞추고는 선자리에서 잦은발춤동작을 멋들어지게 넘기여 사람들이 서로 어깨와 잔등을 두드리며 한바탕 웃음주머니를 터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장난짙은 유쾌한 웃음은 전화종소리가 울리여 뚝 멎었다.

강대철이 송수화기를 들고 얼마간 진지한 통화를 한 후 작업지시를 주었다.

《리진이, 빨리 나가 작업준비를 다그쳐야겠네. 바람이 터질것 같다누만. 오복이, 기사장동무가 오늘 금요로동대상을 공사장에 집중시키겠다고 하는데 그들한테 무슨 작업을 맡겼으면 좋겠나?》

《5호탑기초굴착이 어떻겠습니까?》

《음, 그게 좋겠군.》

잠시후 돌풍이 터졌다. 비파봉산줄기우에 얼럭덜럭한 구름을 몰아오던 바람은 휘유― 휘유― 휘파람소리를 지르며 공사장의 눈먼지와 비닐쪼박들을 걷어안고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하고 은백양나무가지를 붙잡고 아우성치기도 하였다. 공사장 사처에 세워놓은 투광등전주대들이 휘청거리고 휴계실지붕우의 포신같은 연통아구리에서 쓸어나오는 삼단같은 연기가 찢기여 날리였다. 삽시에 은백색의 눈에 덮였던 강산은 지독스러운 먼지광란속에 잠겨버렸고 하늘의 해도 희뿌옇게 보였다.

《젠장, 날을 잘 골랐군.》 밖에 나선 강대철이 입안으로 쓸어드는 눈먼지를 퉤퉤 뱉으며 두덜거렸다.

《방금 기사장도 우려하던데 이런 날 시험조립이 일없겠느냐고 말일세.》

《뭐랬어요?》

리진은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통장갑낀 팔을 쳐들어 막으며 걸음을 옮겼다. 강대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랄게 있어? 그냥 냅다 밀겠다고 했지. 겨울날치고 얌전한 날이 얼마 된다고.》

《차라리 이런 날 시험조립이 더 좋을것 같애요, 경험도 쌓고. 서북쪽 하늘이 훤히 트이는걸 보니 바람세도 그리 오래갈것 같진 않아요.》

그들은 오늘부터 탑 두토막조립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사이 공무직장과 제관직장이 모다붙어 활차와 권양기들을 만들어 탑조립장 여러곳에 땅을 파고 설치하였다. 탑조립은 아침부터 시작하여 오전중에 한토막을 끝내고 뒤이어 오후에 마저 조립해놓으면 지금까지 사흘품 실히 걸리던 시간이 하루면 될것으로 타산하고있었다.

오늘 탑조립지휘는 리진이 맡았다. 두토막조립방법은 그의 구상이고 또 지난주에 전문설계기관에 가서 조립공법을 의논한것도 그였다. 리진은 다소 긴장되였다. 기중기와 권양기배치, 운전공들과의 호흡, 연공들의 분담 등 선행하여야 할 작업준비들은 빈틈없이 해놓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공교롭게도 금요일인 오늘 당, 행정부서 금요로동대상들이 5호탑기초굴착에 붙게 되여 그들의 면전에서 하게 된 사정때문이였다.

아침 9시가 되여 연공들이 추레라에 거물의 탑동체를 실어 조립장에 운반해놓았다. 먼저 30톤기중기와 권양기가 협공하여 육중한 동체의 한쪽면을 45도각이상으로 천천히 들어올리면 여러곳에 배치된 권양기들이 바통을 받아 일시에 동체를 끌어당겨 세우는 방법으로 진행하려고 하였다. 바람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바다쪽에서 용수천강바닥을 거슬러올라오면서 더 기승을 부렸다.

리진은 더는 시간을 끌수 없었다. 입에 호각을 물고 기발을 쳐들려던 그는 돌연 비수처럼 날아오는 륙감에 목덜미가 선득하여 멈추었다. 멀지 않은 5호탑기초구뎅이안의 많은 사람들속에서 자기를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종섭의 눈길이였다. 리진은 등마루에 찬바람이 스치는것 같았다. 종섭의 눈빛이 너무도 무표정해서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힘과 용기를 주고 기대와 성공의 눈인사를 보내는 이 엄숙한 시각 그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혹독한 침묵의 비난처럼 느껴졌다. 한때는 전투의 종합부서를 책임지고 누구보다 목청에 피대를 세우고 페불을 떠드는것 같더니 이제는 자기 권능밖의 일이여서 아닌보살인가?

종섭은 며칠전에 전투지휘부 생산담당부서로 자리를 옮기였다. 생산과 기술전반사업을 책임지고있는 기사장이 페불에 더 몸을 잠글수 있게 생산부서를 보강했던것이다.

리진은 그리도 호기등등하던 그가 딴 사람처럼 변태된것에 구토감이 치밀어 외면하고말았다. 그도 리진의 심중을 읽은듯 머리를 구겨박았다.

리진은 온몸에 힘살이 쭉쭉 뻗치는 벅찬 기운을 안고 힘차게 호각을 불며 기발을 쳐들었다.

와릉와릉… 우람진 동체의 량쪽에 배치된 기중기와 권양기가 동시에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탑동체를 물고있던 쇠바줄이 감기면서 땅에 길게 누웠던 탑머리가 약간 쳐들렸다. 그러자 동체는 중심을 잃고 잠시 이쪽저쪽으로 흔들거렸다. 리진은 정지신호를 보내여 동체가 중심을 유지하기를 기다렸다. 작업장에 요동치는 광풍이 잦아든 틈에 다시 신호를 주었다. 기중기의 발동소음이 더 세차지고 권양기가 가르릉거린다. 한치한치 탑머리가 키를 솟군다. 리진은 모래먼지가 뺨을 때리고 입안에서 모래알들이 자금거려도 기꺼웠다. 일은 바라던대로 돼가고있었다.

탑머리가 퍼그나 쳐들렸을 때였다. 머리우로 구름떼를 무섭게 몰아가던 세찬 바람이 휘익 들이닥치였다. 묵중한 동체가 기우뚱 권양기쪽으로 쏠리였다. 리진은 기중기에 신호를 주어 그쪽에서 좀더 힘을 쓰게 하였다. 하지만 기중기가 최대마력으로 용을 써도 바람의 힘을 당할수 없는지 여전히 권양기쇠바줄에 짐이 실렸다. 일순 권양기활차를 고정시킨 삼바리철근구조물이 움씰했다. 때를 같이하여 뿌지직뿌지직 쇠바줄이 팽팽히 켕기였다. 리진의 가슴도 쇠바줄에 비틀리는것 같았다. 불시에 온몸이 땀투성이되고 입술은 탈탈 말라들었다. 쇠바줄에서 새파란 연기가 실실 피여올랐다.

쇠바줄이 튈 조짐이였다. 입술에서 피가 터지는줄도 모르고 깨물고있던 리진은 재빨리 권양기운전공한테 쇠바줄을 약간씩 풀도록 신호를 하였다. 그런데 당황했던 운전공은 그 신호를 받자마자 권양기역회전단추를 꽉 눌렀다. 쇠바줄이 감겼던 원통이 순식간에 홱 풀리면서 어지간히 쳐들렸던 동체가 기중기쇠바줄을 끊어버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땅이 꺼져내리는 드세찬 울림에 주변의 구조물들이 뒤흔들리고 그 굉음에 이어 먼지폭풍이 물씬 치솟았다. 리진은 전신의 피가 일시에 발밑으로 쫙 새여버린듯 정신이 혼몽해져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5호탑기초구뎅이옆에 세운 ㄷ형강철기둥이 지심을 울린 그 진동에 부르르 떨며 기울어지고있었다. 높이가 서발되는 아름드리 그 강철기둥이 자빠져 구뎅이속에 곤두박히면… 구뎅이속에는 숱한 사람들이 굴착작업을 하고있었다.

《피하라!》

누군가 고함치며 뿌잇한 먼지장막속으로 달려갔다. 그는 넘어지는 강철기둥을 붙안고 버티였다. 한초, 한초, 또 한초… 뒤미처 강철기둥을 안은채 그는 구뎅이속으로 떨어져내렸다.…

사위는 갑자기 캄캄해졌다. 살같이 흘러가는 떼구름이 가냘프게 비쳐주던 해빛마저 가리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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