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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싸워이겼다

 

우리 전쟁로병들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전투에 대한 추억이 있다. 전쟁의 마지막시기에 351고지에서 진행한 전투가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인민군대에 높은 기대를 걸고있으며 그 승리를 굳게 믿고있습니다.》

351고지에서 벌어진 전투이야기는 많이 알려져있다.

그러나 351고지와 잇닿은 200고지에 대한 전투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동해안에 위치한 351고지옆에는 240고지, 220고지, 200고지가 바다가쪽으로 련련히 이어져있다. 200고지는 그런 의미에서 351고지를 지키는 관문이라고 말할수 있다.

주체42(1953)년 4월 미제는 제놈들의 《신공세》기도가 우리의 정치군사적타격으로 하여 분쇄되게 되자 하는수없이 기만적인 《평화》의 가면을 쓰고 정전담판장에 기여나왔다. 놈들은 회담탁에 앉아서도 제놈들의 참패를 가리우고 어떻게 하나 저들의 불순한 목적을 실현하려 하였지만 우리측의 정정당당한 주장앞에 끝내는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적들은 돌아앉아서는 영예로운 정전을 이룩한다고 하면서 군사적공세에 매여달리였다. 미제는 주체42(1953)년 5월에 2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5월 12일부터 미제는 비행대폭격과 함포사격, 지상포사격으로 하루에도 몇만발씩 351고지와 200고지를 비롯한 련봉들에 퍼부었다. 맹폭격과 포사격으로 고지는 불길에 휩싸였다. 3일간의 폭격이 있은 후 적들은 200고지로 공격해왔다.

그때 200고지를 내가 속한 조선인민군 제7보병사단 51련대 직속자동총중대 3소대가 지키고있었다.

주체42(1953)년 5월 15일 아침 8시경에 수천여명의 괴뢰군놈들이 철갑모에 백골표식을 하고 《정전결사반대》라고 쓴 띠를 군복에 띠고 200고지를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놈들은 도로를 따라 무질서하게 달려오다가 산기슭에 이르러 산개대형을 짓고 헛총질을 하며 고지로 게바라오르기 시작하였다.

폭격시 갱도에 은페하였던 우리는 감시병의 신호를 받고 갱도에서 나와 포탄구뎅이와 나무뿌리 등을 비롯한 지형지물에 의거하여 매복하였다.

고지에 올라올수록 놈들의 대형은 그대로 꼭 콩나물시루같았다. 놈들과의 거리가 낯짝을 가려볼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우리의 가슴속에는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고싶은 충동이 북받쳐올랐다. 적들이 40m 가까이로 접근하였을 때였다.

《땅!―》하는 소대장의 야무진 사격신호총성이 울리였다.

놈들을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던 우리는 신호총소리와 함께 기관단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제놈들의 폭격에 우리가 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놈들은 너무도 뜻밖의 사격에 당황망조하여 본능적으로 내빼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만세를 부르며 적들을 추격하여 사격을 들이대였다. 놈들이 얼마나 밀집되였는지 총탄 한발에 서너놈씩 쓰러지는것 같았다.

이때 하늘에서는 놈들의 비행기가 도망치는 제편을 돌려세우려고 또 기총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놈들은 우리의 집중사격보다는 눈먼 기총사격이 덜 무서운지 그냥 아래로 줄행랑을 놓았다.

적들의 첫 공격을 물리친 우리는 갱도에서 총신도 닦고 탄알도 재우면서 통쾌한 전투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놈들은 이날 16시경에 또다시 고지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녀자들까지 끌고와 고지밑에서 가소롭게도 투항하라고 웨쳐대는것이였다.

우리는 무력상대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으나 한치의 땅도 적에게 내여주지 말라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새기고 놈들과 맞서싸웠다.

2차공격을 물리쳤을 때 고지에는 25명의 소대인원가운데서 8명의 전투원들만이 남았다.

이날 우리는 희생된 전우들에 대한 생각으로 비분에 떨었다.

그 비분을 천백배의 힘으로 가다듬으며 우리는 갱도가 쩌렁쩌렁 울리게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우리는 이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고지에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적들을 쳐없앨것을 맹세하는 편지를 삼가 썼다.

이날의 전투로 하여 우리는 두끼나 식사를 건네였다. 나는 전우 한명과 함께 식사도 날라오고 물도 떠올겸 식사를 공급하던 갱도를 찾아갔다. 그런데 식당은 온데간데 없고 희생된 전우들이 갱도입구에 쓰러져있었다.

물통에 물을 넣어가지고 소대에 돌아오니 련대에서 증원보낸 중대가 도착해있었다.

다음날에는 적들의 세차례의 공격이 진행되였다. 증원해온 중대에는 2문의 중기관총과 4문의 경기관총이 있었다.

우리는 적들을 100m 가까이에 접근시키고 불의에 사격을 가하였다. 1, 2차공격에서 호된맛을 본 적들은 200고지가 제놈들의 죽음터라는것을 알게 되자 황급히 도망치고말았다. 이렇게 되여 200고지는 조국의 고지로 솟아 빛나게 되였다.

전화의 그날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지만 그때 함께 싸우던 전우들의 모습과 부대지휘관들의 이름은 오늘도 잊혀지지 않고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용감히 싸운 병사들의 위훈을 영원히 기억하고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떠나간 전사들의 위훈을 값높이 내세워주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이 있어 수도 평양에 인민군렬사묘가 새로 훌륭히 건설되고 지방당조직들이 렬사들의 묘주가 되여 인민군렬사묘를 더 잘 꾸리고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우리 로병들은 영원히 마음속군복을 입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높이 받들어나갈 맹세를 굳게 다지고있다.

전쟁로병 허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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