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3 편
70일전투의 열풍속에서
제 28 장
1
방안을 오락가락하는 전준혁의 한손에는 주경이 남기고 간 편지가 들려있었다. 수소분리공정에 필요한 특수강판 교섭차로 며칠간 출장지에 나갔던 전준혁은 공장에 돌아와서야 주경이가 과학원에 돌아갔음을 알게 되였다.
…작은아버지, 사랑하는 엄마와 작은아버지의 곁을 급히 떠나는 절 용서하세요. 내가 맡은 수소분리와 그 표준조작, 수소정제공정에 필요한 기초계산자료와 장치도는 죄다 마무리하여 건설지휘부에 넘겨주었어요.
그러니 저에게 부과된 70일전투과제를 전부 끝낸셈이예요.
새로운 연구과제가 기다리는 과학원의 나의 연구실… 어차피 가야 할 몸이지만 왜 이다지도 발걸음이 개운치 않는지, 작은아버지의 마음에 너무도 아픈 자욱을 남겼기때문은 아닌지? 작은아버지, 저의 행실이 작은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면 난 용서받지 못할 불초한 자식이겠지만 내가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던것은 나라의 연유창을 성스럽게 지킨 아버지의 넋을 작은아버지가 나의 가슴에 고스란히 심어주셨기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뭐, 이 삼촌을 사람들 면전에서 납작하게 해놓고도 내탓이다?…)
전준혁은 잦아들었던 노여움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정말 생각만 하여도 잠결에도 소리치며 까무라칠 일이였다.…
이달초에 있은 공장당확대회의는 공장이 생겨 그 규모가 전례없이 광범했을뿐아니라 의제토의도 심각하였다. 매 직장의 당, 행정초급지휘성원들과 작업반장들, 세포비서(당시)들, 기술혁신돌격대와 공업연구소 연구사전원이 참가한 속에 페불전량도입의 두가지안이 상정되였다. 하나는 리진이 발기한 함수소에 의한 암모니아생산이고 다른 하나는 전주경의 착상인 함수소분산연료리용안이였다.
전준혁을 비롯한 일부 기술일군들속에서는 함수소에 의한 암모니아생산은 엄청난 건설투자와 겨울철에 진행하여야 할 난공사조건으로 보아 전망년도 국가계획에 물려 하기로 하고 70일전투기간에는 전주경연구사의 의안대로 함수소를 로마다 분산시켜 연료로 리용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때 회의의 방청으로 참석했던 전주경이 언권을 빌어 연탁에 나섰다.
《저는 초기 페불리용문제는 하나의 순수한 과학기술적문제로만 취급해왔습니다. 때문에 국부도입 즉 페불의 한점이라도 떼여먹는것을 이른바 세계적인 긍지로까지 여겼어요. 그러던 전 언제인가 기술협의회마당에서 한 학생이 페불을 아름답게 구사한 그림을 보게 되였습니다. 그때 강대철비서동지가 그 학생의 그림을 만약
어째서
전주경의 열정에 넘친 발언은 페불전량도입을 놓고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앞에 도입방향을 확정적으로 틔워준 불꽃으로 되여 만장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터치게 하였다. 그러나 전준혁은 속이 왈칵 뒤집혔다. 기업소실정은 눈곱만큼도 모르는 햇병아리같은것이 중뿔나게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너무도 격한 그는 조카를 짓뭉개는짓인줄을 모르고 자기의 립장을 피력하였다.
…우린 함수소에 의한 암모니아생산이 우월하다는것을 모르지 않는다. 지금 형편에서 투자규모를 생각해야 한다. 이불깃을 보고 발을 펴랬다고 현실조건이 구비되지 않은것을 냅다 민다고 하여 성사되는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린 70일전투기간에 페불을 리용할것을
이 신랄하고 독선적인 표명은 어떤 확고한 사상이나 신념에 기초한것은 아니였다. 그 출발과 동기자체가 타산적이며 외피적인것이 빤드름하여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전준혁은 문득 그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자기가 연탁에 나설 때마다 매양 느끼고 자부하던 선망과 믿음에 찬 속삭임이 아니라 회의와 실망, 의분까지 내포한 불만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그것은 실로 예상밖의 비난이고 낭떠러지였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앞일을 모르고 지내지만 그는 앞을 내다볼줄아는 총명한 감각과 계산을 갖고있었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외국류학으로부터 큰 기업소의 책임일군으로, 인생행운의 제비를 뽑은 사람처럼 거침새없이 상승일로만 걸어온 그는 앞날이 늘 창창하리라는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혼잡스러운 당회의의 불협화음이 군중과 동떨어진 다른 음을 연주했기때문이라는것을 의식하는 순간 한껏 높이 떠있던
《기사장동무는 그런 알량한 말로 우리 로동계급의 맹세를 우롱하지 마시오! 기사장동문 초기에 뭐랬습니까. 70일전투자체가 우리 경제가 처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되게 하시려는
공장당확대회의에서는 강대철의 제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우선 함수소에 의한 암모니아생산공정의 제1단계 목표를 제시하고 공장안의 건설부문과 제관, 공무, 보수직장들, 기술혁신돌격대, 설계실력량을 총집중할것과 장차 공정을 운영할 주인들을 키울 목적으로 생산직장들에서 일부 기능공들과 필요한 로력을 조절하여 건설에 동원시키기로 하였다. 특수강재와 강판을 제외한 세멘트와 목재, 각종 배관들과 뽐프들, 압축설비들, 건설에 필요한 기중기와 혼합기, 말뚝기초타격기, 운수설비들은 내부예비를 최대로 탐구하여 자체로 해결할것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한정묵비서는 지배인, 기사장과 함께 현장에 내려와 짧은 시일에 방대한 공사를 제낄 결사대인 《피바다근위대》를 조직하였는데
이 모든 사업은 기업소 70일전투지휘부 페불리용분과가 맡게 되여 전준혁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였다.
전준혁은 새로운 당결정앞에서 결코 방심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워낙 쪼물짝한 성미가 아닌데다 그때문에 땅바닥에 떨어진 인격을 추세우기 위해서라도 공사전반을 한손에 틀어쥐고 와짝 내밀어나갔다.
공정부지를 은백양나무아근에 정하자 제창 그곳 지질조사에 달라붙게 하였다. 또한 기술집단이 기초계산자료들을 선행시켜 설계가 떨어지는 족족 제관공들과 용접공들이 현장에서 장치들을 만들수 있게끔 면밀히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령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속에서 대상별장치물들의 제관작업으로 용접불꽃을 날리는 현장은 불바다를 이루었다.
전준혁자신은 여느때 없는 정력으로 수소탕크용특수강판맞물림사업차로 대상지들을 분주히 나다니였다. 하지만 가슴속에서는 때없이 그날의 회의광경이 자꾸만 들쑤시여 열물같은 쓰거운것이 올리치밀고 혈압이 올랐다.
…작은아버지, 작은아버진 저더러 페불에서 열공학박사가 되라고 하였지요. 자기 리념에 충실한 사람은 사회앞에 지닌 사명도 훌륭히 수행할수 있다고 하시구요. 공학박사학위, 얼마나 가슴벅찬 꿈이겠어요. 지식인인 경우 누구나
언제인가 작은아버진 우리 집안의 피는 신성하다, 우린 나라의 연유창을 대를 이어가며 지키는 충신이 돼야 한다, 이건 너의 아버지가 희생으로써 우리한테 물려준 유산이다. 이 유산을 갖고있는 우리 집안에 잡스러운 피를 섞어서는 안된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작은아버진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피의 대가를 계산하고있으며 그우에 우리 일가의 삶을 건설하고 행복을 누리려고 해요. 그것은 고귀한 아버지의 삶을 모독하는 행위예요. 진실로 고결한
(뭣이?!)
전준혁은 별안간 얼음장같은 전률이 잔등을 달렸고 정수리로는 벼락이 떨어져내리는듯 얼떨떨해졌다.
…전 이제야 알았어요. 어찌하여 리진동무와의 사랑이 결렬이라는 막바지로 달렸는지? 우린 어린시절 흘러간 달콤한 자취들과 추억이라는 시적감정에 현혹되여 사랑이란 네 마음속에 내가 살고 내 마음속에 네가 살면 결합되는줄로 믿고있었어요. 마치도 그 옛날 아기자기하고 금슬이 좋았다던 리진동무의 부모님들처럼 말예요. 하지만 우리 아버진 처자한테 주지 못한 사랑을 이 땅에 먼저 주었어요.
작은아버지, 난 뒤늦게나마 리진동무처럼 나자신을 버리고 나를 극복하고싶어 고심끝에 찾은 함수소분산법이지만 부정한거예요. 그것이 진정
운명이란 이렇게 얄궂은것인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혈육한테 박정한 말을 들어야 하는 이 허무감은
전준혁은 내놓고 말할수 없는 수치와 자멸감에 빠져들었다. 문기척소리가 울리더니 강대철이 방에 들어섰다. 그의 한손에는 도면말이가 들려져있었다. 두툼한 솜옷어깨와 털모자우에는 싸락눈이 한벌 내려앉아 몸에서 찬기운을 풍겼다.
《기사장동무, 출장갔다오느라 욕을 봤겠수다.》
《뭐 별루.》
《그래 거기 형편은 어떻습디까?》
강대철의 갑작스런 물음에 전준혁은 흐린 기분을 지웠다. 뒤미처 그는 특수강판해결차로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 나가있으면서 직접 목격했던 벅찬 광경들이 눈앞에 서물거리였다.
《정말 기세들이 대단하더군요. 새로 선 열간압연분공장에서는 강판들이 쭉쭉 누벼나오는데 꼭 철비단이 물결치는것 같더란 말입니다. 그렇게 쉼없이 흘러나오는 강판생산량도 하루만 지나면 낡은 기준으로 돼버립니다. 김철은 말그대로 70일전투속도창조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전투장이였습니다.》
《하, 우리한테도 날개가 달렸지요. 보름나마 걸릴줄 알았던 여러 장치물제작을 불과 닷새동안에 제꼈습니다. 수소탕크제작은 특수강판만 들어오면 즉시 달라붙을수 있게 기술준비가 끝났구… 영 가망이 난감하던 말뚝기초작업이 풀렸수다. 일약 세배의 능률을 올리게 됐다니까.》
준혁은 미심스러운 눈길을 쳐들었다. 새 공정을 앉힐 지질의 어떤 구간은 감탕층이여서 콩크리트말뚝을 딴딴한 지층이 나올 때까지 박아 기초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감탕층도 쇠덩어리처럼 얼어붙어 말뚝기초타격기가 한대한대 박는데 적잖게 시간을 들이고있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타격기가 콩크리트말뚝을 하나씩 박던것을 단번에 세대치기를 합니다. 타격기추를 동시에 세개를 떨구게 착안했지요. 허허…》
《누가 그런 기발한 생각을 다?》
《박오복이라고 정류직장 기능공인데 이번에 새로운 공정운영로력으로 탄원한 동무입니다.》
《단단히 평가를 해줘야겠구만.》
전준혁은 겨울철난공사로 애를 먹일것 같던 감탕구간기초공사가 쉽사리 풀리게 되여 한결 시름이 놓이였다. 강대철이도 기분이 훈훈해지여 들고온 도면말이를 앞상우에 펼치였다.
《기사장동무, 이건 주경연구사가 마지막으로 그리고 간 수소분리공정장치도입니다. 여기엔 각종 뽐프들과 압축기능력도 다 계산되여있수다.》
강대철은 기사장이 퍽 달가와할줄 알았는데 준혁은 그걸 들여다볼념도 안했다.
《김리진동무가 검토하게 하시오.》
《기사장동무가 봐야 하지 않을가요?》
《됐습니다. 그 동무가 다른 의견이 없다면 설계에 넘깁시다.》
전준혁은 좀전에 주경의 편지로 하여 환기된 언짢은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강대철은 기사장의 심리를 감촉하며 제 심정을 비쳤다.
《기사장동무, 주경이가 꼭 갔어야 하오?》
《그 애가 맡은 과제야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가 가버리니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구만.》
전준혁은 아무 응대도 하지 않았다. 주경이한테 적잖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강대철이 그가 떠난것을 두고 무슨 미련이 있어 허전해하는지 서늘한 낯빛에 그늘이 덮이여 침울해졌다.
《난 그 애들이 갈라진것이 속이 좋지 않구만. 내가 그렇게 훼방놓은것 같은게.》
《그 애들이라니?!》
전준혁은 홱 머리를 그한테로 돌렸다. 얼굴은 순시에 달아올랐고 온몸의 힘살은 경련이라도 만난듯이 푸들거렸다. 강대철은 그를 외면한채 담배쌈지를 꺼내 부시럭대였다.
《…》
《그래, 아바인 언제부터 그 애들의 보호자가 됐는가요? 왜 남의 집일에 간참하는가 말입니다.》
《뭐, 남의 일?! 기사장동무, 섭섭하웨다. 나한테 그들은 남이 아니요!》
《그만두시오! 아바인… 아직도
담배를 말아 성냥을 그어대려던 강대철은 그 본새로 굳어졌다. 그 말이 그의 급소를 찌른것 같았다. 얼굴이 단박에 흙빛이 된 그는 더 말을 못하고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갖고가야 할 도면말이도 잊고.
요즘 강대철은 사업작풍과 젊은 시절 녀성관계문제로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고있었다.
강대철자신도 그 뒤소리를 모르지 않았다. 전준혁은 바로 그걸 암시했던것이다.
전준혁은 서종섭이 그에 대한 신소장을 들고왔을 때 시꺼먼 눈섭꼬리를 들어올리며 노발대발하였다.
《동문 뭣때문에 이따위것을 나한테 들고왔소? 그건 동무자신이 결심할 문제란 말이요. 신소는 공민의 자유요.…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잡는것이라면 그만두는게 좋겠소!》
아무 대꾸도 없이 윤기도는 머루눈만 깜박이던 종섭의 얄팍한 입술에는 사위스런 웃음이 얼핏 스치였다.
전준혁은 지금 생각해보면 서종섭이 그날 자기의 마음속, 강대철에 대한 반감을 엿보고 그런 엄청난짓을 시도하지 않았을가 하는 짐작이 들기도 하였다. 그때 단호히 일축해버렸기망정이지 어쩔번 했는가. 하지만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그 소문은 한입두입 건너 퍼져가고있었다.
전준혁은 창곁에 버티고 서 푸실푸실 흩날리는 눈발속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고 가는 작달막한 강대철이를 내다보았다. 인생주로도 곡선길이라더니 박달처럼 단단하고 결패있던 그 시절도 한물 지나 이젠 좀이 나고 새빠진 늙은이가 돼버리는것 같았다. 무슨 일이나 다 끌어안고 오지랖을 넓히는 사람, 끝내 제가 판 구뎅이에 빠지지 않을는지?
준혁의 마음 한구석에는 오랜 인연을 갖고있는 그가 걱정스럽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