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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4 회


제 3 편
70일전투의 열풍속에서


제 26 장


2


전주경은 오늘 계영빈을 만나 페가스속의 함수소분리문제를 놓고 상론하고싶었다.

지금형편에서 리진을 돕는 일은 그의 함수소리용안을 하루속히 무르익히는것이라고 믿고있었다. 이미 페가스속에 한데 섞여있는 여러 가스들의 분리를 실현한 그였지만 폭발성을 내포하고있는 수소분리는 매우 신중히 다루어야 할 문제이므로 계영빈의 지식과 고견이 필요하였다.

이즈음 계영빈은 촉매중간시험생산공정에 붙어살다싶이 하였다. 촉매를 실험실적으로 성공한 그는 중간시험생산공정을 꾸리고 그자신이 직접 생산하고있었다. 주경은 그를 찾아가는 걸음에 짬짬이 빨아놓았던 계영빈의 옷가지들을 그가 숙소로 리용하고있는 촉매실험실에 둬두려고 그곳에 먼저 들렸다. 그런데 실험실에서는 계영빈이 손님과 이야기중이였다.

《아, 처녀연구사동무로구만. 여기 와서 날 좀 도와주시오.》

손님이 주경을 첫눈에 알아보고 그 무슨 구원자라도 만난듯 반색하며 자리까지 권했다. 앞배가 불룩한 틀진 몸집의 이 중년사나이는 화학공업부 계획부국장이였는데 어제 공업연구소 연구사들과 수인사를 나누고는 계영빈이 중간시험생산공정에서 만들어내고있는 백금촉매의 성능에 대해 상세히 료해하였다. 주경은 무슨 일때문에 부국장이 도움을 청하는지 알수 없어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으려는 그 순간에 갑자기 후려치는듯 한 계영빈의 탁한 음성에 와들짝 놀랐다.

《부국장동문 그래 나한테 뭘 요구하는거요. 촉매의 표면적이 이 상태라도 통과시킬수 있다는겁니까? 흥!》

계영빈은 손에 한웅큼 쥐고있던 갈색의 촉매알갱이를 펼쳐보이며 무례할 정도로 코웃음을 쳤다. 부국장의 부옇던 얼굴이 벌개졌다. 계영빈의 무엄한 언행에 심히 모욕감을 느꼈으나 점잖게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물론 연구사동무가 자신의 연구목표에 높은 요구를 제기한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사선생자신이 굳이 실패라고 고집하는 이 시험생산용백금촉매는 이곳 기술집단의 한결같은 보증에 의하면 좀 낮은 급이기는 하지만 규격지표들이 다 허용한계에 들어갈뿐아니라 실지 원유제품생산에서도 별반 지장이 없으리라고 담보하고있습니다. 처녀연구사동무, 내 말이 틀리지 않겠지요?》

《녜, 사실입니다.》

계영빈의 백금촉매는 전번주 공장기술협의회에서 지지를 받았다. 그날 작은아버지는 계영빈의 손을 뜨겁게 잡고 심심한 축하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계영빈자신이 지금에 와서 부정해나서는지?… 부국장은 주경의 동의에 고개로 깍듯한 례의를 표하고는 계속하였다.

《아쉽다면 촉매의 표면적이 지금 쓰고있는 수입제촉매에 비해 넓지 못하기때문에 촉매량이 1. 2배가량 더 들수 있다는것뿐인데 이 정도이면 수입원가보다는 비할바없이 덜 먹게 됩니다. 그런데 한사코 부정해나선다면 이게 어디 국가적립장이겠습니까. 우린 어떤 개인적인 학위나 명예에 앞서 이 문제는 나라의 경제전략과 관련되여있음을 더 중시해야 옳지 않을가요. 안 그렇습니까, 처녀연구사동무?》

《…》

주경은 또다시 지지를 바라는 부국장의 의향에 대답을 피했다. 만약 계영빈이 학위나 명예때문에 포기했다면 실로 너절한 행위였다. 계영빈은 부국장의 그 짐작이 심히 자극적이여서인지 두눈이 위엄스레 번쩍이였다. 성칼스런 그 표정은 상대를 제압하려는 위압감이 풍겼다.

《당신은 날 어떻게 보는거요? 난 이 문제가 오히려 내 개인적인 학위나 명예를 약속하는거라면 이따위 미숙한 촉매라도 허용할수 있겠소. 그렇단 말이요, 바로 이건 사적인 향유물이 아니기에 추호도 융화할수 없단 말입니다! 뭣때문에 퍽 뒤늦게야 실현하는 오늘에 와서까지 다른 나라것보다 부족한것을 내놓아야 하겠습니까? 우리한테는 그런 정도의 민족적자존심도 존엄도 없다는것을 보여주자는건가요?》

《우린 그에 대해 설명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불비한 시험설비와 원료조건, 불충분한 투자… 말하자면 만족시키지 못한 먹이는 언제나 불충실한 생명체를 낳기마련인걸요. 만약 연구사선생에게 그런 값높은 민족적자존심이 살아있다면 촉매를 최상급으로 완성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생산에 먼저 도입해놓고도 봐가면서 차츰차츰 그것을 완성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만에요! 난 그런 미발달형의 팔삭둥이는 세상에 내놓고싶지 않단 말이요. 우리의 즙과 공기, 열과 피를 받고 이 땅에 태여날 생명체는 마땅히 머리와 사지가 온전할뿐아니라 우리의 슬기와 긍지를 완전무결하게 체현한 완성품으로 세상에 우렁찬 고고성을 터뜨려야 한다는거요. 알겠소?》

차츰 론조가 격렬해지자 계영빈은 흥분할 때마다 하는 버릇대로 반말투가 꺼리낌없이 쏟아졌다. 그는 자신의 무상의 열정에 반하여 저도모르게 격앙되였다. 부국장은 량미간에 깊은 주름살을 세우고 그의 말을 귀등으로 넘기고있었다. 부국장의 주름진 기색에는 이미 분별을 잃은 상대에게 리성을 줄수 없다는 유감천만한 상심같기도 하고 승산없는 거래를 두고 더는 참을수 없는 지루감같은것이 비끼였다. 부국장은 부한 몸을 팔걸이의자에서 일으켜세웠다.

《아무튼 우리의 사업은 어디까지나 국가적인 성격을 띠는만큼 전망년도 국가계획작성에 혼란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린 래년도에도 백금촉매를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야겠는지 아니면 자체생산으로 충당할수 있겠는지 시급한 시일안으로 명백한 답을 받아야 합니다. 전망년도계획작성은 선행시키는 사업이므로 때와 시기가 있다는것을 재삼 상기시키는바입니다.》

《어쨌든 명백한것은 우리가 만들려는 촉매는 지금 쓰고있는 수입제에 준하여 한점의 요소도 달라서는 안될 규격지표들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꼭같은것이거나 그보다 발전적인것으로 돼야 한다는것을 재삼 강조하는바입니다.》

《훌륭합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성공을 믿어의심치 않겠습니다.》

부국장은 랭소가 낀 찬사를 연방 곱씹었다. 그들은 서로의 감정에 손상을 입혔는데 부국장은 점잖게, 계영빈은 날카롭게 해치웠다. 부국장은 계영빈에게 이미 상면이 끝났음을 알릴양으로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까딱한 다음 주경이한테는 눈인사를 하고는 가방을 끼고 팔자걸음으로 실에서 나갔다.

계영빈은 부국장이 나간 문밖을 맹랑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다 주경이한테 얼굴을 돌렸다.

《저 사람이 무슨 부국장이라고 했던가?… 아, 화학공업부 계획부국장이라고 했지. 젠장 과학자의 량심이나 지조에 대해 꼬물만큼도 리해못하는 저런 위인들이 어떻게 그런 직책에 있단 말인가. 아직 미완성품인 나의 촉매를 성공으로 리해한다구? 원 천만에, 부실한걸 갖고도 다된것처럼 만세를 부르고싶어하는 저런 허풍쟁이들때문에 우리 경제가 녹는단 말이요.》

계영빈의 입에서는 듣기 거북한 험구들이 쓸어나왔다. 또 괴벽이 살아난가싶었다. 미숙한 촉매나마 국가적견지에서 도입했으면 하는 부국장의 견해가 그의 분노를 야기시켰다면 계영빈은 너무도 조폭한 인간임에 틀림없었다.

《지나치지 않아요? 제가 듣기에는 계획일군으로서 그의 요구는 정 무리가 아닌것 같군요. 그리고 계선생님한테 촉매를 완성시킬수 있는 담보가 있는데야 그런 험구가 무엇에 필요하겠어요.》

무중 계영빈은 《담보?》하고 반사적으로 받아뇌이였다. 그는 갑자기 몸의 한 부분을 칼로 후비는 진통을 맛보듯 이마와 눈귀에 침통한 주름을 모으더니 책상우의 딸애의 사진을 괴롭게 바라보다 꺼지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 내가 지나쳤어.… 나에겐 지금 촉매를 완성할 아무런 담보도 없소, 아무런 담보도 말이요.》

《아니, 그럴리 있어요?》

《그렇게 됐소. 동무도 알겠지만 난 촉매중간시험생산공정을 꾸려놓은 다음부터 내내 초긴장속에서 촉매생산을 진행해왔소. 실험실에서 성공한 그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말이요. 무슨 감투끈인지 미숙된 촉매만 나온단 말이요. 중요한건 실패가 아니요. 실패를 초래시킨 요소를 알수 없다는 그거요.》

주경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부국장앞에서 큰소리치는걸 보면 그 무슨 등을 받쳐주는 기술적믿음이 있는줄로 알았는데 실패의 원인조차 찾지 못하고있다니…

《그런데 뭘 믿구 부국장의 요구를 거절했어요?》

《뭘 믿는가구?… 내 량심과 의지를 믿고싶소.》

《그건 좀 추상적이군요.》

《왜? 요망스러운 과학의 변덕은 때론 강의한 의지나 깨끗한 량심을 헤아려주기는커녕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때도 더러 있더란 말이겠지. 그렇기로 내가 그 사람의 의향을 따라 부실한 자식을 세상에 내놓아야 옳겠소? 우리 조선사람의 존엄도 긍지도 다 줴버리고 말이요. 더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관심하시고 교시가 계신 문제를 그런 불완전한 계선에서 해놓고 다된것처럼 요술을 부리라는건가. 난 그렇게 살수 없단말이요! 물론 난 촉매완성을 장담할 기술적담보를 찾지 못했소. 지금처럼 눈앞이 캄캄해본적이 여직 없었소. 이제 또 어떤 희생이 기다릴지 모르겠소. 그러나 성공할수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정면으로 받아들일테요. 그런데도 동문 날 부국장의 요구대로 부실하고 채 여물구지 못한 선상에 멈춰서라니, 난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위로가 그립지만 그런 식으로 동정하고 어루만져주고싶거들랑 가시오. 필요없어!》

계영빈은 다시금 다하지 못한 분풀이를 하듯 몰풍스레 나왔다. 주경은 노엽지 않았다. 그의 이지러진 변덕이 십분 리해되였으며 그처럼 기술적신념이 강하던 그가 자기 감정을 걷잡지 못하는 까닭이 전망이 암울한 촉매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더없이 측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주경의 눈에는 련민과 안타까운 빛이 한가득 고였는데 계영빈은 그 눈길과 마주치자 게면쩍은듯 고개를 떨구고 맥없이 팔걸이의자에 주저앉았다.

《용서하오. 난 지금 자신을 다잡지 못하겠소. 눈만 뜨면 기적뿐이요. 지난밤 2직장에서는 디젤유정제공정을 개조하여 제품수률을 2%나 높였다고 하오. 전날에는 지배인동무가 정류직장기사들을 데리고 열교환기능력을 높여 생산을 두배로 장성시켰다면 제일 전망이 암담하던 페불전량도입열쇠를 리진이 그 친구가 찾지 않았소. 실로 이 전투의 불길은 그 어데나 충천하고있소! 하지만 나만이… 침체되고 암울하고… 아, 딸애와의 약속을 또 지키지 못하면 난 살멋이 없소.…》

《?!…》

《동무는 누구를 사랑해본적 있소?》

계영빈은 불쑥 생뚱같은 말을 꺼냈다. 주경은 변태스러운 그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그한테는 지금 과학기술적문제보다도 따뜻한 안식이 필요하며 오직 그것만이 방황하는 그의 넋을 가라앉힐수 있는 진정제라는것을 의식했다.

《오늘은 푹 쉬여야겠어요. 아무 생각도 말구요. 래일 아침에는 좋은 생각이 떠오를거예요. 아침은 저녁보다 현명하다고들 하잖아요.》

계영빈은 주경의 위로를 듣는둥만둥 제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다.

《난 사랑할줄 몰랐소. 안해의 다심스러운 마음을 그저 의례히 그렇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군 했소.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것인지 이렇게 집을 떠나 오랜 나날을 외톨로 지내니 알게 된것 같소. 사랑은 언제나 힘이고 격려이고 용기를 준다고 할가. 그런데 난 그런 사랑의 힘을 안해뿐아니라 딸애한테서도 찾게 됐소. 난 딸애의 첫돌생일날 애를 울린 아버지였소.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앤 이 아버지의 축복 한번 받지 못하고 자라고있소. 난 마음속으로 딸애와 언약했소, 이 아버지가 너한테 안겨줄 가장 큰 축복은 이 전투기간에 촉매를 완성하여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한 그 기쁨일거라고. 딸애한테 그 기쁨을 듬뿍 안겨줄 그날을 바라고 난 쉬고싶어도 쉬지 않고 하루하루를 불같이 일해왔소. 실로 딸애와의 그 약속은 나를 지칠수 없게 하는 힘이고 열정이였소. 하지만 난 이젠 딸애를 만날 길이 더 멀어진것 같소.》

계영빈은 우울한 기색으로 말을 맺었다. 주경은 가슴이 쩌릿해났다. 계영빈의 실험실책상우에 놓여있는 딸애의 사진, 웃음속 눈물의 사연도 리해되였고 아버지의 축복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자라고있는 그 가엾은 모습이 가슴을 뭉클 울렸다. 그리고 딸애와 홀로 마음속으로 맹약한 아버지의 웅심, 그 언약을 힘으로 삼고 어버이수령님께서 바라시는 부강한 조국을 안겨주고싶어 심신을 깡그리 불태우는 계영빈의 열정이 새로운 의미로 탄복을 불러일으켰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더는 한걸음도 나아갈수 없는 절망의 순간 희망은 시작된다. 사람은 행복할 때보다 어려운 속에서 성장하듯 시련은 계선생을 더욱 강하게 할거예요.

70일전투는 이자 첫걸음을 뗀것이나 다름없어요. 희망의 등불을 다시 켜세요. 그리고 한번 더 치렬한 결사전을 벌려보세요. 난 오라지 않아 계선생님이 귀여운 딸과의 뜻깊은 상봉이 있으리라고 믿어요. 저의 눈에는 지금 아버지와 딸이 서로 찾고 부르며 달려오고 달려가는 광경이 선히 보이는것 같애요.》

《정말이요?… 고맙소, 날 위로해줘서. 동무의 말대로 현명한 아침을 기다리겠소. 아니, 꿈속에서도 치렬한 결사전을 벌려보겠소.》

계영빈의 침울하던 기분이 퍼그나 돌아섰다. 주경은 그의 실험실을 나섰다. 그때에야 자기가 계영빈을 찾아온 용건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든것은 때늦은 생각이였고 오늘은 그를 쉬게 하고싶었다. 그리고 이자 방금 계영빈을 위로하여 한 말은 어찌보면 자신의 속다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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