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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51 회


제 3 편
70일전투의 열풍속에서


제 25 장


1


(빌어먹을, 이놈의 밸뚝시는 어떻게 돼먹었기에 매양 큰소리가 나갈가? 이젠 머리털도 센 나살에 걸핏하면 뿌다귀를 세우니 이 무슨 꼴이람. 이놈의 버릇 개나 콱 물어갈것이지. 당비서한테 욕을 들어 싸지, 싸!…)

《동문 나이를 봐도 그래, 당사업년한을 봐도 그래 모든데서 수범이 돼야 할 사람이 아니요.》

강대철이 초급당위원회를 찾아 오늘 있은 사업정형을 보고했을 때 한정묵비서는 이렇게 허두를 뗐다.

《…우리 당을 어머니라 부르는것은 친어머니와 같은 따뜻함과 백번 잘못하여도 변함없이 손잡아 이끌어주는 다심함, 곱고미운 자식 차별을 모르고 하나같이 품어안아주는 너그러운 도량,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끝까지 돌봐주는 책임감을 지녔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것은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하고 고매한 풍모에서 시작된 우리 당의 참모습입니다. 얼마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우리 당일군들이 수령님식 사업작풍을 따라배울데 대한 간곡한 말씀을 또 주시였습니다. 그런데 동문 오늘 어머니당일군답지 않은 품성을 발로시켰습니다.

김리진동무는 높은 급의 국가수훈을 받을수 있는 일을 스스로 포기하고 오히려 자기의 마음속 허물을 당조직에 낱낱이 고백하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소행은 공정을 구원한것보다 훨씬 더 미덥게 생각됩니다. 그런 동무한테 옳은 질책이라고 그렇게 고함을 쳐서야 되겠습니까. 어머니는 잘못을 저지른 자식한테 매를 들기 앞서 걱정부터 앞세우지요.》

《비서동지, 제 사업수완과 능력이 모자라 소리치는 재간밖에 없수다. 내 그 돼먹지 못한 작풍때문에 오죽 말을 듣습니까. 정말 자격없는 일군이웨다. 제 따로 검토를 받을테니 그 어떤 책벌도 달게 받을 각오가 돼있습니다. 그러나 김리진의 수훈문제는 제 결심에 드팀이 없는줄로 믿어주십시오. 반드시 보류해야 합니다.》

강대철의 강경한 주장에 한정묵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동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비서동무의 결심이니… 내 부비서동무들과 의논해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무가… 이밤을 어떻게 지내겠는지…》

《제 이길로 병원에 찾아가리다.》

(그래, 정말 변함없는건 우리 당이야. 사람을 아껴주는 근본은 예나지금이나 말이야. 그런 어머니당이 보살피는 이 좋은 세상에서 상기도 저만 생각하다니. 덜돼먹었어. 괘씸한 녀석이야. 정신이 우쩍 들게 다불릴 채찍은 없을가?…)

이밤, 병원을 찾아가는 강대철은 초급당비서의 책망과 걱정은 다 잊고 리진에 대한 매질이 모자라는지 성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병원을 가까이하니 그한테 뭐라고 했으면 좋을지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그한테 소리친 일로 안해의 핀잔을 듣고 밤길을 걸은적이 있었다. 오늘 또 같은 걸음을 걷는것인가. 빌어먹을, 난 한뉘 이런 걸음이나 걸어야 하는가. 잘못한 행위를 비판하면 그 비판이 과하거나 잘못되여 용서를 빌러 다니고… 아니, 오늘은 빌러 가는 걸음이 아니다. 내 과격한 작풍은 따로 비판받더라도 리진이한테는 정신이 들게 할말은 마저 해야겠다.

자기라는 뿌리를 없애기 전에는 사람구실을 못해. 암, 못하구말구.…

강대철은 이런 착잡한 생각에 골몰한 사이에 병원현관에 들어섰다. 대낮처럼 밝은 입원실복도에는 취침전 투약시간이여서인지 간호원들이 조용히 담당입원실들을 찾아다녔다. 강대철은 마침 초저녁에 리진을 데리러 사무실에 왔던 간호원을 복도에서 만났다.

《간호원동무, 리진이 뭘하나?》

애어린 간호원은 공장사무실에서 된욕을 퍼붓던 사람같지 않게 무척 사근사근해진 강대철을 올롱한 눈길로 쳐다보며 되물었다.

《환자한테 또 욕하러 오셨어요?》

《엉?》

강대철은 어이없어 허구프게 웃었다.

《그래 욕하러 왔으면 어쩔테냐?》

《안돼요, 돌아가세요. 환자동진 저녁도 들지 않고 잠들었어요. 그렇게 빨리 잠들어보긴 처음인것 같아요.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리진이 잠들었다?… 속에것을 다 토설했으니 마음이 편해졌는가. 혹시 비판을 가볍게 받아들인건 아닌가?…

《리진의 어머닌 뭘하냐?》

《어머닌 아무것도 몰라요. 좀전에 오셨어요. 환자가 저녁을 들지 않았다니 그저 상심해서 뜨개질만 해요.》

《상심해서?… 그 어머닐 밖에 불러주지 않으련?》

《환자를 다시 자극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내 약속하마.》

잠시후에 유선림은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입원실에서 나왔다. 복도가운데 장의자에 앉아있는 강대철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녀인은 반색을 짓고 종종 다가왔다.

《비서아주버님이 어떻게? 들어오실것이지.》

《리진이 잠들었다니 방해하고싶지 않소.》

강대철은 녀인이 옆에 와 자리를 잡자 다시 이었다.

《애가 저녁을 들지 않았다면서?》

《아침에는 오복의 내외가 가져온 잉어탕을 맛있게 먹더니… 어쩐지 저녁은 잊고 곯아떨어졌다는군요.》

《그건 나한테 욕을 배불리 먹어 그러오. 아까 초저녁에 그녀석이 사무실에 찾아와 나와 기사장한테 죄다 고백하는걸 듣고 되게 욕해서 쫓았소. 내 마음이 후련하지 않은걸 보니 아직도 할 욕이 더 있는것 같아 왔소.》

유선림은 강대철의 노여움이 섞인 말투에 어지간히 놀랐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쩌겠어요. 들을 욕이야 들어야지요.》

《아주머니, 내 부탁할게 있소, 리진이한테 말이요. 이야기를 해줘야겠소.》

《이야기라니요?!》

유선림은 왕청같은 부탁바람에 의혹만 부쩍 커졌다. 좀처럼 허튼 말이나 롱을 모르는 강대철이고 보면 그가 얼마나 속쓰는 일이였으면 이러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거 있잖소, 전쟁때 군수렬차에서 몸풀던 일 말이요. 리진이 알고있더라도 또 좀 해주오.》

《그건 애한테 왜 필요한가요?》

《왜 필요한가?》

강대철이 무심결에 되받았다. 짙은 피로와 허탈이 온 사람처럼 한동안 덤덤해있던 그는 강렬한 아픔을 의지로 참는듯 미간을 이지러뜨리며 뒤를 이었다.

《툭 터놓고말하면… 애가 어떤 땅에서 사는지 모르고있소. 저를 얼마나 귀히 여기고 아껴주는 세상인줄을 말이요. 그러니 저밖에 모르고 살지.》

《아니, 그럼?》

겁에 질린듯 커진 녀인의 두눈은 꾸밈없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강대철은 배반당한 격렬한 분노가 다시 살아올라 목에서는 퍼런 피줄이 푸들거렸다.

《그렇소, 애가 이번에 몸을 내댄건 공장애로부터가 아니였소.》

《무슨 말씀인지? 난 그래도 애가 제 아버지가 걷지 못한 길을 걸었다고 믿고있는데요.》

《물론 걸었지. 아버지가 내디디지 못한 용감한 길을 말이요. 하지만 길은 달라도 동기와 목적은 같고같았소. 나라의 연유창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구원하려 했소. 리진의 아버지 그 사람도 바로 그랬던거요. 그 넋과 혼이 그대로 애한테 물려졌소. 그 애가 그렇게 된데는 모름지기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고 보오. 아주머닌 애가 가정적허물을 가시는 길을 어떤 개인적인 속죄나 하고 착순이처럼 밑거름이 되기를 바랐던거요. 그 집이나 다른 집이나 불행의 근원은 저부터 생각하기때문이요.…》

강대철은 다음말을 잊어버렸다. 유선림의 얼굴에 극심한 애수가 한가득 서려드는것이 가슴아프게 안겨와서였다.

《난 가겠소.》

강대철은 움쭉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끝으로 멀어져가는 그의 잔등은 여느때없이 조그맣고 꾸부정했다. 녀인은 그처럼 깊은 심뇌에 잠긴 강대철의 모습을 보기 처음이여서 시종 당황하고 눈물이 내뱄다.

유선림은 그를 눈으로 바래우고는 이윽토록 복도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내다봤다. 은모래를 뿌려놓은듯 하늘복판으로 흘러간 은하수의 별무리들이 아물거렸다. 강대철은 이밤 그 어느땐가 선림이자신이 들려준 전쟁때 이야기를 새삼스레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간 부탁은 아들뿐아니라 선림이한테도 하는 조언이였다. 그건 사실이였다. 선림은 아들을 사회적인간으로가 아니라 아버지와 다른 길, 가정의 허물을 가시려는 거기로만 이끌어가려 하였다.

뒤돌아보면 이 땅과 생활은 결코 자기들을 버리지 않았다. 엄혹했던 전화의 그날에는 다 죽어가던 자기와 아들애를 건져주지 않았던가.… 눈물어린 녀인의 눈앞, 은하수의 별무리들이 아슴푸레한 하늘끝으로는 지난 세월의 포연서린 구름이 서물서물 피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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