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45회


제 3 편

70일전투의 열풍속에서


제 22 장


1


시퍼런 서북쪽하늘에 떠있던 얼럭덜럭한 구름이 찢어지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초저녁에는 지붕들과 나무가지에 쌓인 눈들을 슬슬 쓸어내던 바람은 점점 기운이 뻗쳐 눈가루를 꼬리에 달고 여기저기 싸다니며 미친듯이 날치였다. 공장구내 과일숲의 상가지들을 휘여잡아 태를 치는가 하면 우람찬 탑의 동체들을 자빠뜨릴듯 윙윙 울부짖으며 달려들기도 하였다.

리진은 눈보라속을 헤치며 계영빈을 찾아다니다 이밤에야 만나고 오는 길이였다. 그의 솜옷자락과 신발은 꽈닥꽈닥 얼었으나 몸에서는 기쁨의 더운 김이 뿜어나왔다. 그는 지난 밤중에 페불전량도입의 실마리가 될듯싶은 하나의 생각을 붙잡게 되였다. 그것은 착상이라기보다 문뜩 번개친 령감이였다. 그 시각부터 그는 옹근 하루낮을 그 령감이 불러일으키는 흥분과 희열에 잠겨버렸다. 때문에 아침에 현장당번을 서달라던 종섭의 부탁도 까맣게 잊었고 3호로에서 있은 소동도 알리 없었다.

…가스의 성질과 연소공학탐독, 수없이 떠오른 가스로개조와 도형들, 번개처럼 번쩍이다 사라져버린 헛된 착상들, 삼거웃처럼 헝클어진 탐구의 실마리, 성공한 국부도입의 재검토와 페가스분리법연구, 모호수학적계산과 새로운 화학방정식들… 실로 피타는 사색의 바다속에서 찾아낸 진주알같은 령감이였다.

그는 이 령감을 누구보다도 계영빈이한테 터놓고싶었다. 한것은 너무도 우연히 불쑥 나타난 이것이 계영빈의 표현대로 별을 딸 꿈이거나 계단을 뛰여넘는 무분별이 아닌지 알고싶었고 자꾸만 황홀한 심경에 도취되는 기분을 얻어맞고싶기도 하였기때문이다. 하지만 계영빈을 만나기 조련치 않았다. 얼마전까지도 촉매실험실이 그의 작업장이자 집이였다면 지금은 십여리나 되는 공장구내가 다 그의 생활과 사업구역이였다. 백금촉매를 실험실적으로 성공한 이 열정가는 공장에서 촉매중간생산공정을 꾸릴 필요한 대책을 다 취해주었건만 자신이 직접 대상설비와 장치들을 맡은 직장과 작업장을 찾아다니며 추진시키고있었다.

리진은 제관직장의 드넓은 작업장에서 그를 만날수 있었다. 열교환기장치도면을 놓고 제관공들한테 손세를 써가며 무엇인가 설명하던 계영빈은 리진이와 눈길이 마주쳤으나 알은체를 안했다. 그러나 리진이 작업장 한켠에서 집요하게 기다리자 퉁명스레 말을 던졌다.

《날 찾아왔소?》

《녜, 좀 진지하게 의논하고싶어 왔습니다.》

《나한테는 진지한 시간이 없소. 후에 봅시다.》

남의 기분이나 용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 불친절한 사람은 주위에 로동자들이 있건말건 매몰스레 나왔다. 리진은 오만하고 랭랭한 그 성벽을 아는지라 이쯤한 푸대접은 이미 각오했었다. 이럴 때 자존심을 세우거나 축잡혀 그한테서 물러서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짓눌린 용수철처럼 반발하면 그를 움직일수 있었다.

《시간은 계선생한테만 귀중한것이 아닙니다. 후에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리진의 이 도전적인 대답에 계영빈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칼로 깎아낸듯 한 눈두덩이아래 눈빛은 오연하였다.

《무슨 일이요?》

계영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리진의 앞으로 몇걸음 다가왔다. 리진은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아직은 아득한 저 멀리, 어둠속의 반디불처럼 희미한것, 형체도 색갈도 자신심도 없는 그 무엇이였다.

《함수소 말입니다.》

리진의 입에서는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외마디부터 튀여나갔다. 계영빈의 눈가에는 조소의 빛이 떠돌았다. 일순 리진은 왕청같은 자기의 첫말에 흠칫 놀라 인츰 뒤를 달았다.

《페가스의 절대량을 차지하는 수소 말입니다.》

그렇다. 로에 폭발위험을 조성하는 이 수소때문에 그 거대한 열원을 마음놓고 리용 못하고있었다. 리진은 그걸 리용할 령감을 갖고 찾아왔던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흥분의 방해로 조리있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빨리 말하시오.》

《그걸 해결할… 리용할… 안을 생각해봤습니다.》

《어떻게 말이요?》

계영빈의 얼굴에는 이내 호기심이 나타났다. 리진은 그 다급한 독촉에 말보다 몸짓이 먼저 나갔다. 호흡하기 힘든 어떤 벅찬것이, 환희로우면서도 절망같은것이 목안의 근육을 꽉 죄였다가 간신히 풀어놓았다.

《우리 공장산소분리기에서는 질소를 무진장 생산할수 있습니다.》

리진의 말은 또 뛰여넘었다. 그러나 뛰여넘긴 말속에 말이 있었다. 계영빈은 그것을 비상히 빠르게 알아맞혔다.

《그러니 수소와 질소를 합성하여 암모니아를 만들수 있다는거요?》

《바로 그겁니다! 암모니아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비료가 아닙니까. 비료공장들에서는 암모니아의 주성분인 수소를 얻자고 숱한 전력을 소비하면서 물을 분해하고있습니다. 우리가 태워버리지 못해 애쓰는 그 수소를 말입니다.》

《하지만… 암모니아의 수소는 고순도요. 페가스의 함수소는 저질이란 말이요, 저질!》

계영빈은 일종의 야생적인 조소를 머금고 매우 신랄하고 정확히 표현하였다. 그는 그 부정적인 말들이 리진의 마음에 얼마나 커다란 실망과 상처를 입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설사 알았다 해도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듯 기세등등했다. 그러던 계영빈의 눈빛이 어둠속 등불처럼 확 밝아졌다.

《가만! 함수소의 질은 흡착정제법으로 높일수 있을것 같소.… 그러니 페가스속의 여러 성분들을 갈라내여 각개격파한단 말이요?… 일부는 페불국부도입으로, 수소는 암모니아로 그리고 류화가스는?》

《류황을 생산할수 있습니다.》

《흥미있소, 흥미있어. 중요한건 페가스속의 수소를 따로 갈라내는거요!》

《그건 주경동무가 페불을 국부도입하면서 가스를 분리해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옳소! 그 분야는 주경연구사가 파악이 있을거요. 친구, 용쿠만, 용해!》

계영빈은 기쁠 때마다 매양 하는 버릇대로 상대의 어깨를 툭 쳤다. 과학에 성실한 그는 금시 부정하다가도 새로운것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거기에 심취되여 자기의 견해를 시정하고 보충하기도 하였다. 그런 순간이면 그의 얼굴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정복한 형언할수 없는 기쁨을 천진한 아이들처럼 숨기지 못했다. 리진은 마치도 온몸을 칭칭 결박했던 동아줄이 끊어지는 후련함과 동시에 막혔던 피흐름이 일시에 열리는 환희를 체험하였다.

《이 령감의 기저에는 계선생의 야유의 몽둥이찜질이 작용한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지난번 기술협의회때 제가 가스로개조안을 내놓자 계선생은 그럴바에는 애당초 페가스가 나오지 않게 공장을 통짜로 개조하라고 비꼬았습니다.》

《난 생각나지 않소.》

《저 역시 다 잊고있었는데 전날 강비서아바이가 사람은 큰 심장을 지녀야 난관을 헤칠수 있다고 하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명언을 상기시키더군요. 그러자면 적어도 공장을 통채로 개조하는 식의 배짱과 담이 있어야 한다는겁니다. 그 조언은 저의 사색을 완전히 다르게 변경시켜놓았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동무의 착상을 실현하려면 하나의 합성공정을 앉혀야 할것 같소. 아주 대담하오. 그러니 동물 계발시키자면 더 가혹한 방망이가 있어야겠군, 허허… 하지만 아직 기뻐하지 마시오. 동무의 착상은 리론적인 가능성이라는것을 명심하시오.》

계영빈은 다시 거만한 랭정성으로 돌아왔다. 리진은 이제 더 대화를 이으면 그를 방해할뿐더러 노여움을 살수 있다는것을 알고 제때에 물러났다. 그는 이밤 그냥 잠들수 없었다. 이제는 주경의 동의를 얻어 함수소분리가 가능하면 이 밤중이라도 기술의안서를 작성하여 래일 아침 전투지휘부에 제출할것 같았다.

(주경을 만나자, 함수소리용안을 어떻게 대하겠는지. 행여 그가 구상이 더 훌륭한 령감을 붙잡지는 않았는지?…)

어머니생일후에 한건물안에서 이웃하여 지내면서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리진자신도 그를 만나기가 주저되였지만 자존심이 강한 주경의 켠에서 더 피하는것 같았다. 리진은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경의 마음이 일시 괴롭겠지만 시간이 가면 그도 아버지들 관계를 알게 될것이고 헤여짐을 다행으로 생각할것이였다. 그러니 이밤 사랑이니 결렬이니 하는따위의 감정을 넘어 순수 기술문제를 나누는것은 호상 번거롭지도 않을뿐아니라 우리들관계의 새로운 출발로도 될수 있었다. 그러나 공업연구소의 주경의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리진은 불빛이 훤한 연구소현관홀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가까이하고있었다. 그렇다고 이 환희로운 밤을 무의미한 꿈속에 잠그고싶잖았다. 차라리 정류직장의 밤교대생들과 함께 현장에서 보냈으면… 잊지 못할 친구들인 승학반장이며 오복이며 효남이들이 밤교대에 나와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그가 정류직장을 가까이할무렵 바람소리가 요란한 공정에서는 재빛과 벌거우리한 빛갈의 눈가루같기도 하고 물김같기도 한것이 장치물사이에 확 퍼졌다가는 사라졌다. 얼핏 지난 아침나절에 3호로가 열파동이 생겨 복새를 피웠다고 서종섭이 툴툴거리던 소리가 뇌리를 쳤다. 그것으로 하여 사관들에 압력변화라도 있었다면 얇아진 관부터 파렬될수 있었다. 대보수때 교체하지 않은 로바깥곡관이 떠올랐다. 리진은 섬찍한 예감에 쫓겨 공정을 향해 부리나케 달음쳤다. 아닐세라 조작실과 이어진 공정앞 야등아래에는 밤교대생들의 황급한 움직임들이 눈에 띄였다. 심상찮은 조짐이였다. 바람은 더 기승을 부렸다. 폭풍치는 바람은 배관과 탑의 동체를 쾅쾅 들부시고 장치물사이를 빠져 달아나기도 하고 구조물담벽에 부딪쳐 공정안에서 사나운 짐승마냥 포효하며 허연 안개포말같은것을 밖으로 휘뿌렸다.

《뭐요?》

현장조작실에서 달려나오던 밤교대 부직장장이 어둠속에 대고 소리쳤다. 그에 화답하는 고함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관이 터졌소!》

《뭣이?!》

뒤미처 밤근무생들이 조작실나들문이 뻐개질듯 와르르 쓸어나왔다. 그들은 공정의 세찬 소음과 바람소리에 지척에서도 고래고래 소리들을 지르며 서로 찾고 불렀다. 다들 발브틀개와 공구들을 잡아쥐고 공정에 뛰여들려는 그 찰나에 누군가 안쪽에서 내뿜는 기름물총에 얻어맞은듯 뒤로 비칠거리다 자빠져 나딩굴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더 들어가지 못하고 저지당하였다. 몇사람이 달려가 땅바닥에 쓰러진 그를 일으켜세웠다. 작업복과 온몸이 기름에 푹 젖은 승표였다. 얼굴에 시꺼먼 중유까지 게발린 승표는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는 어푸― 어푸― 하며 입안에 쓸어들어간 기름을 내뱉았다.

《승표, 공정안이 어떻던가?》

부직장장이 그의 량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승표는 헉헉 가쁜숨을 몰아쉬며 겨우 대답하였다.

《나프사관인지 휘발유관인지는 알수 없지만 터진건 사실이요. 공정안은 휘발유안개와 가스가 꽉 차 한걸음도 나갈수 없소.》

공정안에 들어갔던 유일한 사람인 승표의 말은 그렇잖아도 사태의 엄중성을 짐작하고있는 사람들을 대경실색케 하였다.

《부직장장동무, 빨리 결심하시오. 공정을 비상정지해야 합니다!》

《무슨 소릴, 공정을 세우다니?!》

《이 사람 부직장장, 왜 이렇게 멍청해있나? 공정안의 저 휘발유안개가 중유불에 닿는 날이면… 공정이 어찌 되겠나 말이야. 빨리 공정을 세워 로불부터 꺼야 하네. 초를 다툰단 말일세, 초를!》

직장안의 년장자인 수리공이 목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주홍색의 화염이 이글거리는 3호중유로가 지축을 흔들며 가동하고있었다. 수리공의 말을 립증하기라도 하듯 조작실마당안의 눈을 안고 몸부림치던 바람이 다시 우로 회오리치며 누군가의 털모자를 벗겨서는 중유로쪽으로 날려버렸다. 휘발유안개도 그렇게 몰아간다면? 얼어들던 가슴들이 몸서리쳤다.

공정을 비상정지하고 로의 불을 끄는것이 열백번 옳았다. 그러나 불을 끄면 생산은 죽을것이고 70일전투의 진군은 좌절되고말것이다. 폭풍치며 내달리는 70일전투의 전구들마다 기름, 기름을 요구하는 이때 그런 엄청난 결심을 과연 누가 선뜻 할수 있겠는가. 수리공이 더는 참을수 없어 비상정지스위치가 있는 조작실로 겅정겅정 내달렸다.

《덤비지 마오, 아바이! 그래 터진 관의 위치가 어느쪽인것 같소?》

부직장장이 수리공을 엄하게 제지하고는 다시 누구라없이 물었다. 험하게 이지러진 그의 얼굴은 비장한 용단으로 꿈틀거렸다. 위치만 알면 금시라도 공정에 뛰여들 잡도리였다. 터진 곳을 한시바삐 차단하는것은 공정을 세우지 않고 구원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때 별안간 한 목소리가 팽팽한 공기를 쩌렁 뒤흔들었다.

《터진 곳은 내가 아오!》

지금껏 사태의 급박함을 뒤에서 죄다 보고 듣고있던 리진은 무작정 앞으로 나섰다.

그는 수리공이 초를 다툰다고 웨친 그 목갈린 소리가 뇌리를 때린 순간부터 각일각 일촉즉발에로 내닫는 초침소리를 듣고있었다. 처음에는 귀전을 울리고 점차 가슴을 움켜쥐고 온몸과 넋을 뒤흔들었다. 재깍, 재깍, 재깍…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니였다. 언제인가 썩 전에 들은 귀에 익은 소리였다. 저 멀리 흘러간 세월의 너머에서 들려오는듯 문득 전화의 날 적기가 날치던 그밤 연유창에 떨어진 시한탄의 초침소리로 엇바뀌여 더 크게 공명되였다. 재깍… 재깍… 재깍…

바로 그 소리다! 1950년 저물어가던 그해 가을, 아버지들이 지켜섰던 연유창에 떨어진 시한탄의 초침소리가 지금 여기서 울리고있었다.

그리고 리진은 아까부터 누군가의 부름소리를 듣고있었다.

…영도― 여엉도오― 아, 시한탄을 안고 몸부림치던 병약한 사람!… 리진의 넋은 값높은 령혼의 부름소리에 부르르 떨었다. 더는 지체할수 없는 강렬한 의기와 욕망이 그를 앞으로 또다시 떠밀었다.

《터진 관은 내가 아오!》

리진의 눈에서는 또다시 타는듯 한 빛이 번쩍했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시꺼먼 얼굴의 승표가 허연 이발을 드러내고 앞에 버티고섰다. 리진은 몰아대는듯 한 그 뻔뻔스러운 눈길에 분격이 치솟았다. 승표는 이발만 보이는 입귀에 로골적이고 심술궂은 조소를 띄우고 뇌까렸다.

《왜, 죽자고 그래?》

(그래, 죽으면 어쨌다는건가. 네가 물러섰다고 나도 물러설줄 알아? 난 겁쟁이가 아니다. 나는 기어코 들어갈테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증명할테다.)

《승표, 막지 말아!》

《정신있어, 지금 어느 지경인지 알고나 덤벼? 공정안은 휘발유와 질식가스로 꽉 차있어. 안돼!》

승표의 란폭하고 우악진 손이 리진의 덜미를 덥석 잡아 휙 돌렸다. 리진은 그 드센 조리돌림에 저쯤 나가 허궁잡이로 넘어졌다. 확 달아오르는 피의 불덩이, 울부짖는 사나운 바람, 분노의 폭풍이 전신을 누볐다. 리진은 반나마 리성을 잃었다. 그는 이발을 악물고 일어나 악의에 찬 시선으로 장승처럼 막아선 승표를 쏴보다 그의 덜퍽진 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비켜라!》

《못 들어가!》

《저기서는… 날 찾고있어!》

리진은 또다시 령혼의 부름소리에 피가 끓어올라 승표를 밀어제끼며 공정을 향해 비호같이 몸을 날렸다. 옆으로는 질겁한 승표의 눈자위가 희번뜩이고 허연 이발을 떡떡 마주치는 얼굴이 스쳤다. 리진은 어떤 장쾌감에 북받쳐 분노의 폭풍우를 내닫고있었다.

공정안은 첫 어구부터 화끈한 열파가 얼굴과 몸을 덮쳤다. 아리고 쓰리고 숨이 막혔다. 어디선가 뿜어치는 기름분수에 공정은 미세한 기름방울안개가 퍼져 한치도 분간할수 없었다. 평시에는 빤드름하던 공정이 밑창없는 심연처럼 사처에 죽음의 함정이 도사리고있는것 같았다. 리진은 숨을 끊고 더 깊이 뛰여들었다. 들어갈수록 피부를 따끔하게 찌르는 기름방울이 흩날리고 호흡할적마다 매캐한 질식가스가 코와 입으로 쓸어들어 가슴은 빠개지고 눈알은 뒤집혀질듯 숨가빴다. 산소의 결핍에 정신도 흐리마리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뒤걸음쳤다. 불현듯 뿌연 장막을 헤치고 비웃는듯 한 환영이 나타났다. 승표같기도 하고 아버지같기도 한… 때를 같이하여 거센 힘이 그의 몸을 앞으로 떠박질렀다. 또 한차례 공정안을 벼락치는 광풍이였다.

리진은 땅바닥에 자빠져 코를 박았다. 시원한 땅기운에 가슴이 좀 트이고 정신이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쏴― 터진 관으로 기름이 내뿜는 소음이 마쳐왔다. 예견했던대로 3호로 바깥곡관이였다.

그는 땅에 엎드린채 침착하게 계산하고 타산하였다. 이제부터는 숨도 끊고 눈도 감고 손과 발더듬, 어림짐작으로 모든 작업을 해야 할것이다. 그 시간은 극상 2분 아니, 그보다 더 짧아야 한다. 여기서 스무걸음안팎에 터진 곡관이 있다. 곡관에서 우측으로 한메터사이에 혼자힘으로 틀어내기 부친 대형발브가 있고 좌측에도 같은 발브, 그로부터 다섯걸음 더 나가면 소형발브, 그 세개의 발브들을 틀어막아야 로에서 가열되여나오는 휘발유흐름이 차단될수 있다.

리진은 다시금 땅기운을 힘껏 들이빨고는 숨을 딱 끊고 땅을 걷어차며 일어났다. 얼마 못미처 터진 곡관에서 수십기압으로 뿜어나오는 기름물살에 얻어맞고 배관에 머리를 짓쪼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그는 필사의 힘을 짜내여 계산했던대로 손더듬하며 첫 발브를 잡았다. 하지만 그쪽에서도 기름이 뿜어져 온몸을 적시여서 가까스로 발브를 틀었다. 그 다음발브를 찾았을 때는 이미 기운도 빠지고 정신도 혼미해졌다. 그는 발브를 끌어안은채 꺼져가는 의식속에서 자기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어지러운 발자국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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