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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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 회


제 3 편

70일전투의 열풍속에서


제 21 장


2


아침 첫 시간부터 조카혼사문제로 기분이 상한 전준혁이 전투지휘부에 들렸더니 거기서도 불쾌한 일이 기다리고있었다.

지배인이 직접 생산지휘를 하고있는 기름제품생산실적은 매일 70일전투중앙지휘부에 보고되고있으나 페불국부도입실태자료는 그냥 꿍져박혀있었다. 종합부서를 책임지고있는 서종섭의 말에 의하면 정치분과에서 보류시켰다는것이였다. 전준혁은 그 걸음으로 정치분과 책임자방을 찾았다.

《아, 어서 오시오. 기사장동무, 당보에 또 희한한 소식이 실렸구만.》

신문을 들여다보고있던 강대철이 돋보기너머로 내다보며 반색하였다.

《영천기계공장이 70일전투 한달도 안된 사이에 항만용왁새기중기를 무려 20대나 만들어주어 여러 항들에서 미달했던 올해 짐배수송계획을 봉창하고있구만. 이전에는 년중 10대이면 고작이던 공장이 속도전의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구친단 말이요.》

《비서동문 남의 떡만 커보이는게군요.》

전준혁이 무게있는 소리로 점잖게 핀잔을 주었다. 강대철이 돋보기를 벗어 신문우에 놓더니 말귀를 알아채고 눈에 웃음을 실었다.

《아, 페불국부도입 말이요? 그렇잖아도 기사장동물 만나려던 참이였소. 기사장동무, 페불국부도입을 가지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말씀을 관철했다고 보고하는것은 고려해야 하지 않을가요?》

《왜 못한다는겁니까?》

《저렇게 활활 타오르는 페불을 놓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겠소. 이왕 전량도입목표를 세웠으니…》

《그건 아직 앞길이 묘연합니다, 70일전투기간에 되겠는지 말겠는지.… 난 당에 이 전투기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페불을 리용하겠다고 우리 공장로동계급의 이름으로 맹세를 다졌습니다. 일차적으로 그 맹세를 지킨것은 사실인데야 왜 떳떳이 말을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빚은 떡은 그렇게 작은줄 압니까? 과학원의 명망높은 후보원사선생도 페불국부도입이 나라에 주는 리익과 그 과학기술적성과에 대해 매우 가치있는것으로 평가하고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전량도입을 실현하게 되면 그때에 가서 완전리용이라고 다시 보고를 하더라도… 지금 친애하는 그이께서 우리들의 페불리용정형을 기다리고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더라도… 우린 현지말씀을 관철했다고 해서는 안되오. 정 우에 알려야 한다면 현지말씀을 집행하는 과정에 페불의 얼마량을 생산에 리용하여 국가에 얼마만큼 리익을 주고있다고 할수는 있겠소.》

《허참, 비서동문 꼭 물감장사같구만.》

전준혁은 강대철이 문구 하나를 놓고 콩이야팥이야 따지고드는것이 그답지 않거니와 또 섭섭하기 이를데 없었다. 강대철은 그런줄도 모르고 오히려 밝은 어조로 되받았다.

《내가 물감장사라구요? 거참, 듣기가 좋구만. 그이의 말씀관철에서 에누리가 있을가봐 걱정했는데 물감장사처럼 에누리가 없다니 말이요, 허허.…》

전준혁은 작아도 속통이 큰줄 알았던 강대철이 자기를 조롱하는 말도 저한테 유리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일뿐아니라 이러쿵저러쿵 판사처럼 행세하는 그 처사가 썩 좋지 않았다. 전준혁은 이 아침 이래저래 그에 대한 믿음에 실금이 갔다. 더구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바치는 량심을 저만 갖고있는듯 자신의 진심이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는것 같아 견딜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강대철이와의 언쟁을 더 할수 없었다. 돌연 정류직장 공정쪽에서 비상경보신호가 울려왔던것이다. 전준혁은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누비여 후닥닥 밖에 뛰쳐나갔다. 뒤미처 강대철이도 현장을 향해 반달음쳤다. 3호중유로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되여있었다. 멀리서도 정류직장장이며 부직장장들, 로공들이 부산스레 로계단을 뛰여오르고 내리는것이 눈에 띄였다.

일인즉 3호로가 갑자기 열파동을 일으켜 로에 설치된 자동경보장치가 비상신호를 울렸던것이다. 중유만 먹던 로가 페가스를 동시에 먹게 되면서 로조작을 자칫 잘못하면 이런 현상을 야기시켰다. 이 비정상적인 사태는 페가스를 리용하면서부터 생겨 로공들은 누구라없이 당황하여 헤덤벼쳤다. 그래서 전투지휘부에서는 로표준조작이 완성될 때까지 기술혁신돌격대 기사들로 당번제를 조직하여 현장에서 로공들을 도와주는 조치를 취하였다.

《오늘 낮당번 기사가 누구요?》

《서종섭지도원이 직접 서겠다고 했는데…》

기사장의 성급한 물음에 정류직장 낮교대 부직장장이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전준혁은 더 따지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였다. 이런 경우 가스담바(공기구멍)변은 어느만큼 열어야 하며 중유량과 압력은 또 어느 계선으로 떨궈야 한다는것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는 직접 중유발브와 가스바나를 조절해나갔다. 로는 서서히 정상운전에 들어갔다. 기사장의 귀신같은 솜씨에 로공들은 혀를 찼으나 실지 열파동원인을 재빨리 포착하고 그를 극복하는 조작을 손에 익히자면 많은 숙련과 시간이 들어야 하였다.

강대철은 돌개바람처럼 지나가버린 로열파동이 크지 않는 소동이지만 어쨌든 하나의 사고요소인것만큼 담당기사들이 각성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종섭을 찾아 전투지휘부로 갔다.

출입문손잡이를 잡으려는데 안에서 색다른 말소리가 들려왔다. 류창한 평양말씨인걸 보니 며칠전에 화학공업부에서 온 일군들이 현장에 내려와 사업을 토의하는것 같았다.

강대철은 그 자리에서 돌아섰다. 그때 안에서 부서져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특이한 웃음소리는 분명 서종섭이였다. 그런데 말씨는 다르지 않는가?…

《뭐, 이번에는 중근동쪽에 갔다왔다구?… 그래 석유수출국나라들의 원유시세는 어떻던가?… 또 올랐다? 그럴테지. 미국놈들과 동서방렬강들의 원유자원쟁탈전이 더 우심해졌으니까.… 아무튼 자넨 행운아야. 다른 나라의 지경쯤은 이웃마을 나들듯 하니 말일세.… 뭐, 내가 꿈꾸던 희망 말인가? 뭐라고 할가?… 참, 형상적으로 표현한다면 말일세, 마음속으로 열렬히 사모하던 녀인이 날 외면하고 지나쳐버렸다고 할가? 내가 일생 갈구했던 아름다운 미모의 녀인처럼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네. 날 그렇게 현혹시키던 빛은 꺼져버렸지. 자네가 부럽구만. 수도의 한복판에 단란한 보금자리를 틀고 생활의 단즙에 취해있을테지만 난 기름냄새 물씬거리는 이 벽지에 묻혀 썩고있어.…》

강대철은 듣다못해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러던 그는 제편에서 더 놀랐다. 방안에는 전화통을 잡고있는 종섭이 혼자 있었다.

《난, 평양손님들이 사업을 의논하는줄 알았군.》

《중앙지휘부에 일보를 하는중이였습니다.》

강대철은 성근 눈섭아래 재빠르게 움직이는 종섭의 눈동자를 역겹게 쏘아보며 면박을 주었다.

《중앙지휘부에… 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녀인을 찾아달라고 말이요?》

종섭의 빈구석없이 팽팽한 볼편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푸들거리고 작고 오동통한 손이 불시에 갈퀴처럼 일보종이를 꽉 꾸겨 줌안에 짓이겨넣더니 동그란 눈에는 생매의 눈같은 매서운 빛이 뿜어나왔다.

《모욕하지 마시오! 왜 숨어서 엿듣는가 말이요!》

《뭐, 숨어서?!》

일순 강대철의 눈에 펑긋 불찌가 튀고 관자노리에는 단박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그는 가슴밑창을 왈칵 뒤번지는 격한 감정을 다잡을새없이 투박한 손이 먼저 몸에서 빠져 상대의 멱다시를 틀어잡았다.

《그래, 쥐새끼처럼 엿들었다. 뭐, 기름냄새 물씬거리는 여기서 썩고있다구? 그래서 네 몸뚱이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댔군. 이녀석! 네 사사로운 용무를 보라고 이 자리에 앉힌줄 알았어? 현장당번인 네가 여기서 제짓거리를 할 때 3호로에 어떤 소동이 생긴줄 알기나 해!》

강대철의 입에서는 뱀도 구렝이도 마구 쏟아졌다. 종섭은 아귀센 손아귀에 이리저리 비틀리우며 항변하였다.

《난, 난… 당번이 아니요! 리진이 자진 서겠다고 하여… 아침에 그한테 인계했소.…》

《뭣이, 리진이?…》

《거짓말이 아니요.》

《좋아, 어디 알아보자.》

그는 금시 천둥같은 고함을 지르며 펄펄 뛰다가도 리성이 작용하면 인츰 수그러드는데 마치도 순간에 펑 불꽃이 튄 후 꺼져버리는 휘발유와 같았다. 또 재도 남기지 않고 타버리는 그것처럼 뒤도 없었다.

강대철은 송수화기로 공업연구소를 찾아 리진을 여기에 보내라고 일렀다. 서리맞은 파잎처럼 시르죽은 종섭은 헝클어진 옷매무시를 바로 잡으며 씨근덕거렸지만 속은 켕기였다. 3호로에 무슨 변이 생겼는지 여기가 질린 그는 순간을 모면하려고 입에서 나가는대로 줴쳤던것이다. 이제 리진이 나타나면 죄다 들장이 날판이였다.

사실 종합부서를 책임지고있는 그한테 현장당번이 차례질리 없었다. 그러나 최근 로공들의 오조작이 빈번하여 한번 현장에 나가 솔선 견습을 주려고 당번을 자진 맡아나선노릇이 공교롭게도 오늘 평양에 있는 친구가 전화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여서 아침에 리진을 붙잡고 중앙에 보고할 일이 생겨 대신 당번을 서달라고 부탁하였었다.… 그런데 그 자식은 무슨 일로 자리를 비웠는지, 이제는 별수 없다. 리진이 사실을 밝히더라도 강짜로 뻗댈수밖에. 네가 자진 맡겠다고 하잖았는가? 보증이 없는 다음에야 증명할 길이 있을라구.…

하지만 종섭이 켕기던 뒤는 오히려 유리하게 번져졌다. 한참 지나 리진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분을 가라앉힌 강대철이 그한테 따질념을 않고 묵묵히 지릅떠보기만 하였다. 리진의쪽에서는 자기를 왜 찾았는지 하는 의문조차 없었으며 류다른 흥분이 그를 사로잡고있어 정신은 다른 세계에서 헤매이는것 같았다. 이 어정쩡한 심리들을 재빨리 가늠한 종섭은 역습을 들이댈 기회를 찾게 되였다. 그는 여지없이 손상당한 인격적인 모멸감이 되살아나 리진을 다몰아쳤다.

《여 동무, 아침에 현장당번을 인계받았으면 책임적으로 설것이지 지금까지 뭘하다 이제야 나타나, 엉?》

《…》

종섭은 어리뗑해하는 리진을 향해 눈알을 딱 세우고 열을 올렸다.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차는 격이였다.

《오늘 3호로에 생긴 일은 동무가 책임질줄 알라!》

《3호로라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리진은 푸들쩍 놀라 되물었다.

종섭은 아무말없이 문을 열고 나가는 강대철의 뒤쪽에 대고 앙당그려문 이새로 내뱉았다.

《무슨 일이 생겼기에 야단을 떨겠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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