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0 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9 장


70일전투의 생산기술과제분공사업을 진행한 공장기술협의회는 두번째 안건으로 페불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미 페불국부도입은 기정사실로 되였으므로 혹시 새로운 뾰족한 안이 없겠는가 하여 집행부에서는 리진의 안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리진은 연단에 나섰다. 원래 대중앞에 나서면 몸둘바를 몰라 얼굴색이 벌겋지 않으면 부자연스런 몸가짐을 한 후에야 겨우 수습하는 그로서는 약간 떠듬거리면서 걸그림대에 걸린 페가스로도면을 설명해나갔다.

현존 중유로로써는 페가스를 전부 리용할수 없으므로 연료를 가스로 하는 새로운 식의 로개조안이였다. 이는 요즘 기사장한테서 전량도입을 계속 추진시킬 과업을 받은 다음부터 생각한 착상이였는데 그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속에 산업분야의 자동화를 처음으로 실현한 황철로동계급의 일본새에서 힘을 얻고 로대보수과정에 무르익혀왔던것이다.

리진은 이 안을 사전에 전주경이와 진지하게 의논하고싶었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제 겨우 착상이나 다름없는 미숙이라는 사정도 있었지만 기술협의회가 이렇게 빨리 열리게 될줄을 몰랐었다.

《로를 개조한다?…》

회의를 집행하던 종섭은 리진의 발언이 끝나자 좌중보다 먼저 집행석가운데 앉아있는 전준혁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런데 기사장의 얼굴은 그옆에 앉은 강대철의 머리에 가리워져 어쩐지 알수 없었다. 강대철이 상고머리를 쳐들고 리진이 서있는 연탁쪽으로 시선을 보내고있었는데 그 제안이 자못 흥미를 자아내는듯싶었다.

종섭은 연탁옆의 걸그림대에 걸려있는 도면을 지시봉을 들고 짚으며 리진이한테 하나하나 따졌다.

《이 웃면의 도형은 새로운 페가스로형태이고 그아래것은 로단면, 그런데 열복사실가운데 이 격판벽은 왜 설치하려 하오?》

리진은 인츰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장내의 시선이 집중되자 미리 준비했던 말조차 얼어붙어 좀자르다 입을 열었다.

《가벼운 가스불길에 로안의 이행부가 과열될수 있습니다. 그 가볍게 파동하는 불꼬리를 차단하려면 격판이 있어야 되지 않을가요?》

리진은 제가 찾은 격판벽의 타당성을 되물었다. 아주 기발한 묘안이였으나 말투는 조심스럽고 겸허하였다.

《좋소, 가스파동은 그런 식으로 극복한다치고 함수소와 류화가스의 안전한 연소는 어떻게 하려고 하오?》

《…》

리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페가스전량리용에서 겨우 한고리만 풀었을뿐 다른것은 미지수로 남겨두고있어 바로 그것을 대중토의에 붙이고싶었던것이다.

총기도는 머루알눈을 깜박이던 종섭은 얄팍한 입술에 묘한 미소를 띄웠다. 흔히 그런 웃음은 상대의 약점을 면바로 찔렀을 때 짓게 되는 승리자연하면서도 너그러운 미소이며 객관들에게는 그 분야의 상당한 지식을 소유한것으로 인식되는 웃음이기도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종섭은 화학공업대학 고분자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고 현장경험도 어지간히 쌓은 기사였다. 그러나 그는 실천보다 꿈이 더 컸다. 초기에 그는 적당한 기회가 조성되면 세상을 놀래울 새 기술을 개발하리라 벼르군 하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와 조건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꿈을 래일에 두고있었으므로 자기자신을 기만하는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그사이 학우들과 동료들은 거지반 이름있는 과학기술자로, 지어 몇몇은 박사학위를 소유하기도 하였다.

종섭은 시간과 때를 다 놓쳤음을 절감하고는 차라리 기술지도일군쪽으로 뻗는 편이 자기 발전에 더 유리하리라 생각되였다. 더구나 기사장을 따라 기술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외국에 몇번 드나들면서 자기한테는 문화적인 도시생활이 더 몸에 맞으며 또 기술일군을 할바에는 화학공업부나 어느 중앙기관에 자리를 정하는것이 옳다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그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웃기관에 자기의 사업과 생활의 좋은 측면들이 자주 반영되고 보증해줄수 있는 위력한 줄이 있어야 하였다. 전준혁기사장이야말로 부에서 하나같이 인정하는 실력자이고 많은 동료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고있는 일군이였다.

때문에 종섭은 그 어떤 경우에도 기사장의 사업은 물론 사사로운 감정에 이르기까지 살피고 요령있게 처신하군 하였다. 기사장의 기분을 봐가면서 수표를 받는다든가 그가 웃을 때에는 같이 따라 웃고 그가 성내면 침묵을 지키기도 하고… 그런 처세에 습관된 종섭은 집행석을 자꾸 넘겨다봤으나 강대철의 중뿔난 상고머리가 방해하여 속으로 부아통이 터질 지경이였다.

(젠장, 그 령감 뭘 안다구 그 잘난 상고머리만 잔뜩 빼들고있담.)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누군가 중간좌석에서 일어났다.

《새로 구상한 로는 연료가 가스인 조건에서 현존 중유로보다 그 규모와 내용적이 더 커야 할텐데 대체로 지금 로보다 얼마나 더 커지겠는지?》

《그건 장치전문설계가들과 의논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제가 왜 이걸 묻는가 하면 혹시 아이보다 배꼽이 더 커질가봐입니다.》

《옳소. 실리를 따져봐야 합니다.》

《페가스를 압축하여 액화시키면 로용적이 지금보다 얼마 크지 않을거요.》

《여보, 무슨 소릴. 가스압축기가격이 국제시장에서 얼마인지 알기나 하오?…》

장내 여기저기서는 새로운 페가스로안을 놓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그 소음을 짓누르며 리진이 입을 열었다.

《저… 전 이제 겨우 페불전량도입의 첫걸음을 뗐을뿐입니다. 아직 풀어야 할 문제는 허다합니다. 그러나 페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 잡아야 합니다. 저는 이 기회에 여기 있는 동지들이 저의 페가스로에 대한 건설적인 조언들을 다문 한가지씩이라도 방조해주기를 바랍니다.》

리진의 호소는 절절하였다. 모두들 선망어린 눈빛과 표정으로 공감하였다. 그때 종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영빈선생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해빛이 비스듬히 흘러드는 창곁에 앉아 무슨 책엔가 묻혀있던 계영빈은 곁사람이 팔굽을 건드려서야 협의회분위기에 돌아왔다. 그는 처음 리진의 새로운 안에 귀맛이 당겨 신경을 도사리였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을 풀지 못한 공상이였다. 과학자나 기술자는 씨알박인 주장이 없이는 서뿔리 대중앞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역시 리진은 엉뚱한 착상을 봐서는 별을 딸 꿈이나 실현불가능을 지닌 풋내기였다. 계영빈은 협의회에 흥심을 잃고 독서에 묻혀버렸다. 그는 더 들을 소리가 없을 때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공공장소일지라도 제 일에 인츰 빠졌다.

《계선생은 새로운 페가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섭이 머루알눈에 존경해마지않는 빛갈을 담고 다시 묻자 계영빈의 낯빛은 심드렁해졌다.

《아, 그것 말이요?… 왜 로만 개조하려는가. 아예 페가스라는 존재 자체가 나오지 않게 공장을 통채로 개조할것이지.》

계영빈은 이렇게 심통바르지 않는 허두를 떼놓고서야 제 속심을 꺼냈다.

《물론 새롭게 하려는 시도는 좋아. 엉뚱하거던. 하지만…》 계영빈은 잠시 멈추고 연탁에 서있는 리진을 얼핏 스쳐봤다. 리진은 그 후려치는듯 한 성칼스런 눈빛에 오싹 소름을 느꼈으나 의외롭게도 계영빈의 음성은 너그럽게 흘러나왔다.

《…욕망, 그자체로써는 무엇을 창조할수도 변혁할수도 없거던. 우린 먼저 페불을 이루고있는 가스조성과 그 특성에 대해 깊은 파악을 가져야 하오. 말하자면 페불속의 요놈의 가스는 흰쌀이고 저놈의 가스는 도무지 소화하기 힘든 독해물이고 또 다른 놈은 폭발시키려는 암해분자이고 하는것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알아야 리용할 안이 설게 아니겠소. 그건 페불의 적은 량을 조금씩조금씩 리용할 때만이 알수 있소. 그러느라면 점차 그 리용범위를 늘굴수 있는 방안도 생길게거던. 자꾸 허욕을 앞세우지 말란 말이요.》

《하, 페불을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리용범위를 넓힌다?… 그렇다면 계선생은 도약이나 비약을 부정하는가요?》

앞줄에 앉아있던 공업연구소의 나이먹은 연구사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순간 홱 몸을 그한테로 돌리는 계영빈의 눈에서는 칼날같이 번쩍하는 빛이 장내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천만에! 비약이나 도약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초가 없이 이루어지지 않소. 전후 우리 나라 농업은 공업화단계를 거치지 않고 협동화를 실현하였소. 이야말로 력사에 류례없는 대비약이요. 더는 개인농업으로는 발전하는 현실에 생산력을 따라세울수 없다는 농민들의 의식과 전쟁기간 그 생활력이 남김없이 발휘된 소겨리반이나 품앗이반, 이 모든것이 대비약의 물질정신적기초가 되였소. 그래 페불을 전부 잡으려는 우리한테 그런 기초와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여있는가 말이요? 어디 말해보시오.》

《…》

장내는 더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계영빈의 철의 론리에 기가 눌려서인지 다들 묵묵부답이였다. 간간이 잔기침질과 의자드티는 소리만이 들릴뿐이였다.

어지간히 기염을 쏟은 계영빈은 더는 반론하는 기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여 제자리에 앉으려다가 언뜻 집행석끝머리에 앉아 심히 공감된듯 머리를 주억거리는 종섭의 거동이 눈에 뜨이자 무슨 충동이 생겼는지 다시 뒤를 달았다.

《우리가 잘 아는 리승기박사의 일화인데… 어릴적부터 뛰여난 수재적기질을 지녔던 그는 소학시절에 한 학년을 뛰여넘었소. 후날 박사의 고백에 의하면 그 뛰여넘은 한 학년교재를 보충하는데 몇년이나 걸렸다고 했소. 〈어른속에서 어른을 보고 아이들속에서 아이를 보아야 한다. 자연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이기를 바란다. 만일 우리가 이 순서를 어지럽히려고 하면 성숙한 맛도 미도 없는 과일 즉 썩은 로숙한 과일을 맛볼뿐이다.〉, 루쏘의 이 주장에는 인식과 실천과정이란 자기 질서와 계단이 있다는 뜻도 포함되여있소. 때문에 발전된 나라의 기술은 언제나 후진국의 미래의 모델로 되군 하였소.》

역시 계영빈은 페불의 단계별도입을 역설하였다. 종섭은 그의 견해로써 페가스로개조안이 더는 가치없는것으로 결론을 대치했으면 좋을것 같아 리진을 제자리에 들여보내고 기사장을 향해 웃몸을 일으켜세웠다. 그와 동시에 객석에서 아까 그 나이먹은 연구사가 의자를 뒤로 제끼면서 다시 일어났다.

《이건 좀 다른 소린데…》하고 말머리를 뗀 연구사는 좀 멋적은 웃음을 짓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다 알고있겠지만 한때 난 공장적으로 두번째 자리라면 섭섭할 정도로 담배질군이였습니다. 지금은 딱 끊었지만 그 시절 난 담배를 입에 물지 않고서는 아무런 사색도 연구도 못하는줄로 여겼댔습니다. 그때 겨울 어느 휴식날 집에서 연구자료들을 종합하고있는데 그만 담배가 떨어졌습니다. 집사람이 잊지 않고 차곡차곡 넣어주는 담배통에 써레기조차 없어 난 말코지에 걸려있는 옷주머니들을 다 뒤졌지요. 마침 한 주머니에서 담배곽이 나졌습니다. 그런데 웬걸, 눈이 번쩍 뜨이는 고급담배가 아니겠습니까.… 원, 살틀도 하지. 늘그막 부부정이란 이런 멋인가? 속으로 이렇게 마누라정성을 후덥게 생각하댔는데 다시 여겨보니 담배가 나진 주머닌 시내 차사업소에서 운전사를 하는 아들녀석의 옷이더란 말입니다. 슬그머니 밸이 꼬이더군요. 그다음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들녀석의 그 허례허식에 속이 끓어 견딜수 없었습니다. 그래 저녁에 집에 온 녀석을 불러앉히고 한바탕 을러멨지요. 그런데 이 애비꾸지람을 마지막까지 다 듣고난 아들녀석이 한 소리를 여러분들이 들어보고 판단해보시오.

…아버지, 제가 아버지 모르게 좋은 담배만 골라피운건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진 왜 눅거리담배에만 만족합니까. 물론 생활형편에 맞게 기호품을 선택하겠지만 그 기준을 좀 높일수 있잖을가요? 사람은 자기에 대한 요구성을 높일 때 그걸 성취하려는 의욕이 더 강해질수 있지 않을가요? 백리길을 목표로 한 사람과 천리길을 목표로 한 사람들의 정신력이 서로 다르듯이 말입니다.… 제 말은 이상입니다.》

《저도 언권을 좀 빕시다.》

뒤좌석에서 다른 중년기사가 일어났다. 이마가 훤칠하여 퍼그나 지성미가 느껴지는 인상이였다.

《한 달구지군이 말입니다, 달구지를 타고가면서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쳐다보며 걱정합니다.… 원 저런, 고장나면 어쩔려구. 그저 이달구지가 제일 편안하고 안전해.… 땅에 발을 붙이고 제 안전에 만족해 사는 이 달구지군은 비행기가 날아간 거리만큼 세월의 뒤로 밀려나는 줄을 알리 없지요. 인간을 대신하는 로보트가 출현하고 우주정복의 꿈이 실현되여가는 오늘을 그런 자기 생활방식으로 재이고 만족하는 사고야말로 현대판 돈 끼호떼가 아니겠습니까?》

《여보, 동문 무슨 말을 하자는거요? 이 자리가 뭐 돈 끼호떼를 론하는 마당이요? 기준이요, 방식이요… 본문제에서 탈선하지 말란 말이요!》

종섭은 버럭 화를 냈다. 그의 비좁은 이마는 못마땅한 주름살이 패이고 동그랗게 부릅뜬 머루알눈에는 조폭한 감정이 드러났다. 강대철이 듣다못해 칼칼한 어조로 내리눌렀다.

《내버려두오. 들을 소리가 있잖소.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듣기가 좋구만. 강철은 불과 물속에서 태여난다고 했소.》

《전 이자 그 모든 이야기들이 본문제에서 탈선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맨 앞줄에서 일어난 전주경은 번개불같은 짧은 시선으로 종섭을 흘겼다. 그의 억양은 나직하나 조소와 경멸에 차있었다. 심히 오르내리는 앞가슴은 뭔가 억제 못할 흥분이 가득찬듯 숨가빠하였다. 그는 한손으로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잠시 진정하였다. 전주경의 흥분은 리진이 페가스로개조안을 내놓았을 때부터 일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것의 가능성여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착상만은 대담하고 혁신적이라고 봐졌다. 섭섭하다면 그 구상을 그가 자기한테 한마디도 비친적 없는 사실이였다. 채 익히지 못한 착상이라는 점과 시원스럽지 못한 그 소심성에서부터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자기의 국부도입과 승벽을 다투지 않는가 하는 미심쩍음도 없지 않았다. 주경은 그가 페불전량도입과제를 안고있는줄을 이미 알고있었다.

《…과학과 새로운 기술연구에서 서로 협력도 좋지만 상대역이 필요하지. 서로 제약하고 분발시키고 야심을 불러일으켜 승부를 겨루는 적수랄가? 력도산이 죽었을 때 제일 슬퍼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루테즈였어. 가장 센 강적을 잃었으니까. 리진이 그 사람 전량도입안을 안고 역사질하는 과정에 혹시 알겠니? 국부도입의 리용범위를 더 넓힐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게 될지.…》

이것이 리진이한테 전량도입과제를 준 작은아버지의 진속이였다. 하지만 리진은 자기식의 페불전량도입구상안을 계속 줄기차게 내밀고있었다. 주경은 문득 어느땐가 그가 《천리를 가야 할 사람이 백리길잡도리를 한것 같다.》고 안타까와하던 말이 새삼스레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박혔다. 그 비수는 페불의 국부도입을 허물수 없는 기준으로 여기던 그의 립장에 숭숭 구멍을 뚫어놓았다.

《페불전량도입은 확실히 국부도입에 비해 높은 기준이며 난도높은 기술을 요하는것임은 명백해요. 그렇다고 페가스를 먹는 새 로구상이 옳은 방법이겠는가 하는것은 더 연구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우리는 페불리용의 시점과 기준점을 어데다 둬야 할가요? 저는 이 문제에서 계선생님과 의견을 달리해요. 아까 계선생님은 기초가 없이는 도약이나 비약이 있을수 없다고 했는데 저도 동감이예요. 기초가 없는 창조물은 사상루각일테니까요.

시점, 기준! 이 문제는 페불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이 서야 할 위치이고 출발선이라고 봐요. 우린 지금 과학대결의 시대에 살고있어요. 우리가 미처 리해할 사이없이 새로운 과학분야가 개발되고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고있어요. 2차 세계대전후 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재더미우에서 동일한 시각에 출발했지만 오늘 도달한 극점에서는 서로 차이가 생겼어요. 그것은 과학기술운동이 낳은 결과가 아니겠어요. 백년을 하루에 압축하지 않으면 그 격차가 천문학적수자로 벌어질수 있어요. 그런 격차로 하여 뒤떨어진 나라와 민족은 이 행성에서 살 권리를 잃을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과학기술은 모든 분야에서 도약과 비약, 혁명을 일으켜야 해요. 생물의 진화과정에 돌연변이가 있듯이. 그러자면 무엇부터 해결되여야 하겠어요?

우리의 모든 시점과 기준은 첨단적사색, 최첨단적인 탐색과 실천에 둘 때만이 세계와 경쟁할수 있다고 봐요. 이것이 우리 당의 과학기술중시사상이고 속도전의 요구예요.

최근에 개발된 생명과학에 의하면 소우주이며 소자연인 인체의 두뇌는 인류가 쌓은 지식과 과학으로 무장될 때 폭발적인 첨단도약을 할수 있다고 밝히고있어요. 그래요. 만약 이를 무시하고 인식의 질서니 순서니 한다면 진실로 발전된 나라를 따라잡을수 있을것 같아요? 우리가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넓은 보폭과 가속으로 달린다 해도 말예요. 그들이 뭐 우리가 따라오라고 천천히 달릴것 같은가 말예요?》

《하, 어찌 알겠소. 냅다 달리던 그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수도 있잖소.》

누군가 해학으로 받아넘기는 소리였다. 뒤미처 석쉼하고 능글능글한 목청이 뒤쪽에서부터 울렸다.

《옳지, 그치들이 넘어졌을 때 우리가 날쌔게 앞선다? 그참, 황소아래중태 떨어지면 구워먹을 소리군.》

장내에는 폭소가 터졌다. 주경은 그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뒤를 이었다.

《우리는 발전된 나라들을 부지런히 따라 그들을 모방할것이 아니라 폭발적인 비약을 일으켜 우리 식의 얼굴, 우리 식의 모습을 갖춘 사회와 경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봐요. 모든 분야에서 속도전을 벌려 두계단, 세계단 그 이상으로 도약하지 않는다면 먼 후날 남들이 비행선을 타고 우주려행과 향락에 취할 때 우리의 자손들은 그들의 착륙을 위해 음식을 짓고 잠자리를 펴고 부러움과 찬탄의 노래를 부르게 될지 어찌 알겠어요. 그들은 시간과 재물을 탕진한, 이 땅을 기름지으지 못한 자기들의 조상이였던… 우리들을 두고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저는 그런 책임감을 안고 페불에 대한 기준점을 세워야 한다고 봐요.》

주경의 발언은 사람들을 공감시켰다. 계영빈이만은 만만한 자존심과 도전적인 조소가 비낀 눈길로 그를 쏘아보고있을뿐이였다. 그의 입귀가 무엇을 비웃듯 축 늘어져있었다.

집행석가운데 바위처럼 웅크리고 내내 침묵만 지키고있던 전준혁은 그때에야 허리를 펴며 육중한 몸을 의자등받이에 실었다. 그는 주경의 발언보다도 리진의 새로운 페가스로제안에 충격을 받고있었다. 자기가 극구 내밀던 국부도입은 현존로에 페불을 복종시켰다면 리진의 새로운 안은 페불에 로를 복종시키려는 즉 페불리용을 중심에 놓고 연구와 탐구방향을 선정한 옳은 방법임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도 아닌 리진의 구상이라는 점이 거슬렸다. 어느때엔가 그자신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튕겨준적도 있은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 안이 전혀 새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 순간 리진의 아버지 배신이 피끗 머리를 때렸다. 불시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온몸이 화끈 달고 눈시울밑에서는 아픔이 끓었다. 정말 생각할수록 소름끼치는 배신이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그 녀인은 무엇때문에 이제야 들고왔는가.…

전준혁은 그 모든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하여도 리진에 대한 감정이 그만하면 공정하고 량호하였다. 남들한테 죄를 짓지 않고 제 살구멍을 찾은 애비의 잘못을 리진이한테 엇섞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정한 충격과 관심을 끌게 하던 리진의 페가스로안은 더 거론하고싶잖았다. 그 가능성도 묘연하거니와 당장 발등에 떨어진 70일전투목표를 두고 언제 그것까지… 하루라도 빨리 페불의 한점이라도 떼여먹는 국부도입은 나라에 리익을 주는 애국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데도 뭐 기준이 어떻고 시점이 어떻고… 전준혁은 현실감각을 잃고 말씨름만 벌리는 이들모두에게 경종을 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득 강대철이 품에서 무슨 종이말이 같은것을 꺼내들고 전준혁이한테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기사장동무, 내 좀 말할가요?》

《어서 그러지요.》

강대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그림대를 객석앞으로 끄당겨놓고 거기다 종이말이를 걸어놓았다. 그의 거동을 말없이 지켜보고있던 장내의 눈길이 일시에 찬탄과 놀라움으로 굳어졌다. 걸그림대에는 수채화로 그린 한폭의 그림이 나붙었다. 모두들 회의성격에 맞지 않는 그림은 웬것일가 하는 의아함을 앞세우면서도 희한한 화폭이여서 눈길을 모았다.

《아마 정류직장기사동무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처음 보는 그림일거요. 이상하게 생각할건 없소. 이 그림에 대한 소감들을 나누어보자는거요.》

강대철이 쉽게 의혹을 풀어놓자 이마가 벗어진 연구사가 앞으로 나섰다. 회화에 조예가 있는듯 그는 두손을 깍지끼고 한참이나 그림을 감상하더니 자기의 소견을 피력하였다.

《저 멀리 굴뚝을 휘감고 타래치는 불길, 하늘공간으로 휘끌어올리는 장쾌한 불길에 어둠도 타끓고 숲을 이룬 탑들도 거세찬 숨결을 내뿜고… 그리고 태동하는 새날의 광휘를 품안고 춤추며 설레이는 밤바다… 그러니 이 한밤에도 꺼질줄 모르고 타번지는 우리 로동계급의 심장의 불길이 래일의 찬란한 아침을 불러온다? 참, 기가 막힌 주제인데요.》

《야, 우리 공장이 이렇게 아름다운가!》

《거 솜씨가 이만저만 않수다.》

《누가 그렸다구요?》

《용수중학교의 나어린 학생이 그린거요. 전날 우리 직장에 그 학교 학생들이 찾아와 예술소조활동을 벌렸는데 그때 이 그림을 직장속보판에 게시했댔소. 어제 그 학교 미술교원이 이 그림을 찾으러 직장에 왔더군. 뭐 이번에 평양에서 열리는 전국학생미술전람회에 내놓겠다고 말이요. 그래서 내가 하루동안 말미를 달라고 했소. 오늘 기술협의회에 참가한 공장기술자들한테 한번 보이고 의견들을 들어보자고 말이요. 그래 동무들의 생각은 어떻소, 우에 보내면 승산이 있을것 같소?》

《나어린 학생의 솜씨치고는 흠할데 없다고 봅니다. 그림의 주제도 그래, 화법의 원숙미도 그만하면…》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소.》

강대철은 이마벗어진 기사의 자신심에 제창 수긍했다. 그다음에는 한손을 쳐들어 짧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말이요, 우리들중의 한 동무가 이 그림앞에서 머리를 쳐들지 못했소. 난 그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림을 봤소. 털어놓고말해서 그림자체는 나무랄데 없지만 저 페불은 우리 로동계급의 불타는 기상이 아니라 우리가 남기고있는 찌꺼기요! 막말로 하면 우리 공장이 쏴갈기는 변이라고 할수 있소. 헌데 이 그림이 평양에 간다니 더 가슴이 죄여드누만. 학생들이 출품한 그 미술작품전시장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나오실가봐 말이요. 우리 공장 로동계급이 저 불을 다 잡지 못해 아이들의 눈을 멀게 했다구, 우리 아이들이 페불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다구 말이요.…》

강대철이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껏 그림을 놓고 왁작법석이던 공기는 별안간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숭엄함이 하나같이 실려있는 얼굴들에는 심장을 쿵 치는 충격과 가슴 짓누르는 가책, 죄여드는 량심… 이러한 무언의 감정들이 비꼈다.

커다란 충격이 리진의 가슴을 쳤다.

철없는 학생의 한장의 그림을 놓고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마음쓰실 일부터 생각하는 강대철아바이! 불현듯 리진의 눈앞에는 비파봉마루우에서 페불을 보시며 안색을 흐리시였던 그이의 영상이 다시금 떠오르며 가슴이 저려들었다.

전준혁이도 그 숙연한 침묵을 깨칠가봐 저어되여 한참이나 잠자코 있었다.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현실감각을 잃고 입방아만 찧던이들을 다몰아치려던 그 시퍼런 결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낯빛은 전에 없이 근엄하였다. 그는 저윽 낮고 조용하나 마디마디에 힘이 느껴지는 결단성있는 목소리로 회의를 결속하였다.

《동무들이 명심해야 할것은 열에네르기생산과 보유, 개발문제는 현시기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지표들중에서 가장 손꼽히는 지표라는것입니다. 때문에 한점의 페불이라도 열에네르기로 리용하는것은 당의 요구입니다. 기술참모부는 페불도입문제를 두 방향에서 결심하렵니다. 시급한 시일안으로 페불의 국부도입을 실현할것입니다. 그리고 페불을 전부 잡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더욱 심화시켜나갈것입니다. 모두들 로대보수기세를 늦추지 말고 70일전투에서 위훈을 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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