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38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8 장


1


유선림은 기사장방 출입문가까이에 놓인 긴걸상모서리에 간신히 붙어앉아있었다. 기사장의 거방진 몸집에 주눅이 들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온 진실에 위압되여서였다.

넓다란 방안에는 그와 기사장밖에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탑의 동음소리가 들려올뿐 방안엔 정적이 깃들었다. 전준혁은 쏘파에 앉아 녀인이 들고온 종이장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녀인은 오늘 전쟁시기 남편이 남긴 자취들을 그대로 글로 재현하였다. 가슴이 떨려 차마 입으로는 번질수 없어 그가 목격한 사실과 남편이 마지막으로 전한 편지들을 낱낱이 더듬어 종이장에 옮겨가지고 기사장을 찾아왔었다.

그 종이장들을 한장한장 넘기는 기사장의 한손은 경풍이 인듯 떨고 시꺼먼 눈섭아래 눈두덩이도 푸들거렸다. 유선림은 속이 오마조마해났다.

…여보, 아직은 날 찾지 마오. 더는 고향땅에서 살수 없는 이 몸. 어디론가 정처없이 다니다 발붙일 곳이 생기면 당신을 데리러 가겠소.…

선림은 피난지인 친정집에서 남편이 보낸 마지막편지를 받던 날 딛고 선 땅이 꺼져내리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녀인은 이 세상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문제를 당조직에 알린 후에는 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준갑아주버니의 값높은 희생이 손상되거나 잘못 평가되지는 않았다. 그의 영웅적최후는 묘비에 새겨져 대를 이어 전해지고있었다. 하지만 최근년간 리진의 사고를 전후로 기사장의 뜨거운 인정과 리진이와 주경의 범상치 않는 관계는 그가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주경은 결코 허물많은 집안에 들어와서는 안될 귀녀였다.

갑자기 신음같은 소리가 방안의 고요를 깨쳤다. 종이장에 시선을 박고있는 기사장의 눈에서는 격노한 불덩이가 쏟아져나올듯 위엄에 찬빛이 번뜩하였다. 평시에 호방스럽고 서글서글하던 그가 전혀 딴 사람 같았다.

아, 저 눈빛, 전에 없던 저 모습… 오래전에 리진이 저 시꺼먼 눈빛에 쫓겨 울면서 집에 왔던 일이 생각났다.

리진의 유치원시절 추석날이였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리진은 주경이가 자기 아버지묘에 가자고 꼬드기는 바람에 귀가 솔깃해졌다. 주경은 거기가면 요렇게 생긴 꽃떡 또 조렇게 생긴 꽃과줄… 하며 손시늉으로 그려보이고는 갖가지 모양의 사탕과자까지 자랑하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를 많이 하고 집에 온 작은아버지가 자기와 제일 친한 동무를 데려오라고 했다나…

리진은 신바람이 나서 따라나섰다. 그들은 곧바로 주경의 아버지묘가 있는 산등성이를 톺았다. 야산에는 이름모를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들이 여기저기 피여있어 서로 겨끔내기로 꺾었다. 묘지앞에 꽃묶음을 놓는 어른들처럼 하고싶어서였다. 꽃을 꺾을 때마다 꽃송이에 달라붙었던 나비들이 나풀거리기도 하고 꿀을 빨던 벌들이 난데없는 불청객을 위협하듯 붕붕거리고 풀숲에서는 살진 메뚜기들이 뜀박질하기도 하였다.

어린것들은 걸음마다 새록새록 나타나는 신비에 장난 절반, 웃음 절반 나누며 묘지로 향했다. 주경의 아버지묘앞에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쪽 등뒤로 살금살금 다가서던 주경은 불시에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어른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기다리던 묘주가 왔다고 반가와했다. 키가 크고 눈섭 꺼먼 청년이 옆낭에서 하얀 수건을 꺼내 땀에 얼룩진 주경의 얼굴과 코를 씻어주었다.

청년은 주경을 벌찬 계집애라고 꾸지람하더니 들꽃묶음을 든채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있는 리진이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넌 누구냐?》

《…》

리진은 주경이와 제일 친한 동무라고 말하고싶었다. 그런데 청년의 곁에 있던 웬 늙은이가 먼저 입을 뗐다.

《전시에 자네 형과 함께 일하다 가버린 김영도라고… 그 사람 애일세.》

청년의 온화하던 눈빛이 대뜸 어두워지고 시꺼먼 눈섭이 떨었다. 리진은 더럭 무서웠다. 청년의 얼굴은 순식간에 검붉어졌다. 그의 손에 쥐여있던 담배대가 꽉 틀어쥐는 주먹안에서 바스라졌다.

《얘, 넌 가라. 여긴 네가 올데가 아니야.》

《작은아버지, 그러지 마. 나와 제일 친한 리진이야.》

《넌 입다물어. 얘야, 어서!》

재차 시꺼먼 눈길로 쏴보며 다질러대는 청년의 음성은 날카롭고 엄했다. 리진은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손에 들고있던 꽃가지들이 발등에 흩어져내렸다. 어째서 자기를 쫓는지 억울했고 거짓말쟁이 주경이가 괘씸하였다. 리진은 주경이한테 쏘는 눈길을 던지고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돌아섰다.

울음범벅이 되여 집뜨락에 뛰여든 리진은 유치원가방을 퇴마루에 뿌려 팽개치고는 부엌문을 열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야, 울아버지묘는 어데 있니? 주경의 아버지묘만 있고 울아버지묘는 왜 없나? 우리도 가자, 아버지묘에 가자.…》

저녁을 짓던 선림은 울며불며 야단하는 아들애의 행악에 놀라 엉거주춤 일어났다. 선림은 아들애를 겨우 달래여 자초지종을 듣게 되였다. 그의 얼굴에는 갑자기 먹구름이 덮였다. 땅이 꺼지는 한숨을 몰아쉰 그는 아들애 모르게 뒤울안에 나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저고리고름을 적셨다. 그날 밤 선림은 아들애를 재워놓고 정성을 기울여 제물을 갖추었다. 밤이 깊어 선림은 리진을 깨웠다.

《얘야, 아버지산소에 가자. 얼른 일어나 얼굴을 씻어라.》

잠에 취해있던 리진은 엄마가 차려놓은 여러가지 꽃떡이랑 나물찬이랑 보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낮에 주경이네 산소에서 보았던 음식가지들이였다. 그러나 뭔가 미덥지 않았다.

《체, 아버지묘가 있나 뭐.》

《우리라고 왜 없겠니?》

《거짓부리, 왜 입때껏 한번도 가지 않았나?》

《이 엄마가 일이 바빠 그만 가지 못했단다.》

《정말이나?!》

《원 애두, 엄마가 거짓말 할가?》

《야, 그럼 난 주경이한테 뽐낼테야!》

리진은 잠기가 싹 사라졌다. 정신도 또랑또랑해졌다.

이 저녁 선림은 아들애한테 닥친 수난을 무심히 넘길수 없었다. 아버지때문에 버림받은줄 알리 없는 어린 자식은 제 피줄을 찾고있었다. 그것은 선림이 제일 두려워했던 일이였다. 장차 애가 제 아버질 찾게 되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줘야 할지? 그 시각은 너무도 빨리 불의에 닥치였다. 선림은 어린 자식앞에서 대답해야 한다는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피여나는 어린 넋에 불미한 아버지를 심어주고싶잖았다.

선림의 마음속에는 언제부터 한사람의 모습이 간직되여있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무기와 탄약을 실은 군수렬차칸에서 산통을 겪을 때 그와 태여날 생명을 위해 엄청난 일을 저질렀던 사람, 생김새는 울퉁불퉁해보였으나 꺼칠한 두손이 그리도 부드럽던 군수렬차호송군관이였다. 그는 선림이와 리진이 사경에 처했을 때 자기 한몸을 내대고 나섰던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은인이였다. 하지만 선림은 그의 이름도 주소도 생사여부조차 알지 못했다. 캄캄한 밤하늘에 한순간 피였다가 사라지는 별찌처럼 마음속에 한줄기의 아름다운 빛살을 그어놓고 자취를 감춘 사람, 그가 잘 지내기를 선림은 바라면서도 어쩐지 살아있다는 믿음보다 값높은 생을 마쳤을것 같은 생각이 더 앞섰다. 인간을 열렬히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값있게 죽을줄도 알기때문이였다. 그가 정말 희생되였다면 그를 추모하는것은 응당한 도의였다. 때문에 아들애가 별안간 봉변을 겪게 되자 선림은 그 이름모를 호송군관을 아들애의 양아버지로 정했고 어슬막에는 조국해방전쟁의 무명전사합장묘를 찾았다.

달빛이 교교히 쏟아져내렸다. 선림은 아들애의 손을 잡고 달빛을 조심조심 밟으며 인민군렬사묘앞으로 다가갔다. 찌륵찌륵 풀벌레소리만이 들릴뿐 사위는 고요속에 잠겼다.

밋밋한 등성의 묘앞에 이른 선림은 머리우에서 임을 내려놓고 옷매무시를 바로한 다음 리진이한테 조용히 말했다.

《얘야, 이 묘에는 주경의 아버지처럼 나라를 지켜 악귀같은 미국놈들과 싸우다 돌아가신 훌륭한 아버지들이 있다. 네 아버지도 여기에 있단다.》

《…》

리진은 무섬증보다 가슴이 더 울렁이였다. 자기한테도 아버지묘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더는 눈섭 꺼먼 주경의 작은아버지한테 쫓기울 무참한 일도 없을것이고 주경이한테도 뻐길수 있게 된것이 즐겁기만 하였다.

선림은 제물을 차릴 사이에 리진의 손에 낫가락을 쥐여주며 봉분우에 자란 풀들을 말끔히 베여버리고 검불들을 걷어내라고 일렀다. 리진은 선생님한테 칭찬받을 일을 할 때처럼 신이 나서 낫가락을 휘둘렀다.

깊어가는 밤은 잠든 대지에 이슬을 뿌리고있었다. 그 이슬은 풀잎과 땅을 소리없이 적시였다. 그것은 밤이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였다. 이밤 가정의 허물에 쫓기여 비탄에 떠는 가엾는 두 생명을 따뜻이 품어안아주는 이 땅이 고마워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아닌지…

《탁!》

전준혁이 앞탁을 내리쳤다. 앞탁에 놓여있던 재털이가 공중제비하고 그가 보던 종이장들이 땅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잠시 지난 일에 잠겼던 유선림은 와들짝 놀라 작은 가슴을 감싸안았다.

《비렬하오, 비렬해!》

전준혁은 노성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관자노리에 퍼런 피줄이 살아오르고 시꺼먼 눈에서는 서슬푸른 불이 뚝뚝 떨어졌다. 얼마나 격했던지 방안을 오락가락하는 그의 둔중한 몸에서는 서리찬 바람이 일었다.

《난 지금까지 형님의 희생에 이런 배신행위가 끼여있은줄은 몰랐소. 후퇴시기 그 집 주인이 놈들이 들어오게 되자 연유창일을 집어던지고 어디론가 도망치다 죽은줄로 알고있었소. 다들 그렇게 말하더란 말이요. 아, 형님도 연유창도 살리고 전시물자생산설비들도 제때에 소개할수 있었으련만… 통분하오. 통분해!》

기염을 토하던 전준혁은 숨이 막혀 기침질을 해댔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픔과 분노에 끓는 축축한 눈굽을 찍었다. 비명에 횡사한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치였다.

《그래, 아주머닌 왜 지금까지 이 사실을 숨겨왔소?》

《저…》

녀인은 말문을 힘들게 열었다.

《아들애의 장래가 걱정되여 입밖에는 번지지 못하고… 그저 해마다 준갑아주버님 제날이면 그의 묘소를 찾아… 용서를 빌군 했어요.》

이 뜻밖의 고백은 전준혁을 심히 놀래웠다. 해마다 형님이 돌아가신 날 묘지를 찾았다면 그 이름모를 들국화다발의 주인공이 바로 이 녀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소행이 형님의 값높은 희생을 추모한것이 아니라 이른바 제 남편의 배신을 속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건가? 전준혁은 어딘가 속히운것 같은 허망한감이 없지 않았으나 어쨌든 녀인의 그 진심앞에서는 떨리던 가슴이 다소 눙쳐졌다.

실지 녀인은 남편이 지은 죄를 당조직에 알리고 지금까지 입밖에 내지 않았을뿐이지 숨기지는 않았다. 장장 수십년세월 해마다 번지지 않고 준갑의 시신을 찾은것으로써, 무슨 일에서나 두몫, 세몫하는것으로써 모든것을 고백하고 사죄했었다.

《그래서 해마다 꽃을 들고 묘소를 찾았겠소. 그렇게 빈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겠소!》

전준혁은 서리서리 차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매정한 말로 녀인의 마음을 칼질하고는 숨을 돌렸다.

《까놓고 말해서 그 모든것을 듣지 않기보다 못하오. 정말 가슴아프오. 살아서 락을 누려야 할 사람이 비명에 돌아가신것이 분하단 말이요… 리진이 채심해서 일을 더 잘해야 합니다.》

《그야 더 이를 말씀인가요.》

《그리고 이 물건들을 도로 가져가시오.》

전준혁은 녀인이 들고온 뜨개옷포장곽을 턱짓했다. 그한테 깊숙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려던 녀인은 덴겁하여 황망히 손사래를 하였다.

《아니,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 저한테는 필요없는 물건입니다.》

《이건 우리 애가 아주머니한테 기념으로 준것 같은데…》

《집의 따님은 아버지들 관계를 모르잖습니까. 이제 알게 되면…》

《그렇잖아도 한가지 약속해야겠습니다. 리진의 아버지죄를 우리 애한테는 절대비밀에 붙여야겠소. 여태 아버지란 말조차 불러보지 못하고 자란 애가 진상을 알게 되면 견디지 못하오. 그렇게 되면 그 애가 맡아하는 공장의 중한 일도 망치게 되고… 그러니 이 옷을 입지 않으면 애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수 있소. 고집하지 말고 입어야 하오.》

유선림은 정신이 혼미해져 받지 않을수 없었다. 기사장방을 나선 그는 불시에 머리를 핑 잡아돌리는 현기증에 몸을 벽에 기대고섰다. 파르무레한 하늘에 떠있던 구름송이들이 핑그르르 돌았다. 여태 압박될대로 압박되였던 초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면서 몸은 금시 땅에 잦아들것만 같았다. 평생토록 남편의 허물을 싸안은것으로 하여 지칠대로 지쳤던 녀인은 이제는 그 속박감에서 해탈된 기쁨대신 진맥이 빠져 혼신이 나른해졌다. 그저 송구하고 고마운 감정만이 가슴에 꽉 차올랐다.

(아, 어쩜 그리도 대범하실가. 제 집안을 망치게 한 그 큰죄를 그저 한두마디 노여움으로, 우뢰처럼 성내고 번개처럼 끝맺었으니… 정말 도량도 크셔.…)

언제한번 사람들을 비난해본적 없는 선한 녀인은 기사장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필경 그 자리에서 졸도하든가 아니면 문제를 되게 세워 그의 가정이 졸경을 겪을줄로 알았다. 적어도 리진을 보호해준것을 후회할것이며 그한테 맡긴 중임도 취소하고 다른 어려운 곳으로 쫓으리라 생각했다. 녀인은 모든것을 각오하였으며 자기한테는 그걸 공손히 받아들일 의무밖에 없었다.

(…우리 리진이가 일을 더 잘하도록 일깨워주라고… 참, 너그럽기란… 또 뭐랬더라? 아 그래, 주경이한테는 이 내막을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아버지정을 그리며 자란 애가 알게 되면 견디지 못할거라구. 그래그래, 집안의 가장이 안 다음에야 그 애가 알아서 좋을리 없지. 하긴 자기도 그 모든 사실을 모르는것보다 못하다구… 참, 내가 내내 입을 다물고있어도 무방한걸… 아니, 그럴수야 없지. 그건 더 큰죄일테니… 어쩜 그리도 속이 깊고 뒤가 없을가.…)

녀인의 눈귀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녀인은 눈물을 씻을념을 않고 머리를 벽에 기댄채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가을서기가 어린 하늘가에는 한무리의 철새들이 갸―갸―청높은 소리를 지르며 훨훨 날아가고있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