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3 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5 장


2


퇴근길에 리진은 오복이와 함께 공업품상점에 들렸다. 생활비를 탄 날이여서 어머니한테 기념품 하나 선사하고싶었다. 그런데 신발매대앞을 지나는데 포장곽겉면에 뒤축높은 녀자용 하얀 가죽구두를 그린 상표가 눈을 끌었다. 뒤미처 뇌리에 피끗 오늘 대보수현장에 나타난 오복의 안해가 신은 신발이 떠올랐다.

오복의 안해는 여전히 뒤축낮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 물론 현장걸음이니 그럴수 있겠지만 그 녀자는 명절날차림조차 볼품없는 편리화였다. 그 녀자인들 어찌 자기의 끼끗한 체격에 그 신발이 어울리지 않는것쯤이야 모르랴.

리진은 오복의 안해심정이 리해될수록 돋보여 언제부터 친구를 대신하여 사례하고싶었다. 어머니도 그한테 신발을 선사했다면 자신의처럼 기뻐할것이였다.

《오복이, 이 신발이 자네 친구한테 어떨가?》

오복은 신발을 쳐들고 이리저리 살피다 휘딱 놀랬다.

《굉장한 멋쟁이인걸. 자네 우리 집사람은 잡아늘구고 난 더 짧게 깎고싶어 몸살이나?》

《동무 안해의 인품에 어울릴것 같구만. 그도 한창 나이의 녀성이 아닌가.》

《좋아, 그럼 내가 큰 맘 먹고 사다줘?》

《아니, 이건 내가… 자네의 친구로서 사례하고싶구만.》

《동물 부인협회회장자리에 추천해야겠군. 총각부인회장 말일세.》

오복은 빈정거렸다. 그러나 슴벅이는 눈시울은 열적어하면서도 벌겋게 짓물어들었다. 오복은 지금껏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바칠줄만 알았지 받을줄은 몰랐다. 때문에 이 자그마한 선사품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아늑하고 달콤한 부부생활에서 흠이라면 아직 안해와 어깨 나란히 거닐지 못한것뿐이였다. 자기의 체소한 몸집이 안해의 인품을 깎아놓을가봐서였다. 오복은 목안에 차오르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리진의 손을 꽉 잡았다.

《참, 사람두. 별걸 다 생각했구만. 난 생긴것처럼 생각도 모자란가 봐. 그 친구마음속을 들여다보려구 안했지. 신발장구석에 구겨박힌 구두짝들을 보면서도 편리화만 골라신기에 그저 그렇겠거니 했거던. 며칠있으면 그 친구 생일인데 자네이름으로 기증하면 신을지도 몰라.》

《아니, 제발 날 비치지는 말게. 이건 동무이름으로 줘야 뜻이 통하는거야.》

《그렇다면 이걸 빚으로 여기겠네. 때가 되면 나도 자네의 그 연구사한테 인사치레를 하려네.》

《사랑은 말일세, 꼭 맞는 신발처럼 서로 맞아야 한다고 어느 책에서 본것 같네. 우린 서로 맞지 않는 신발이야. 영원히 말일세. 알겠나?》

리진이 이날 저녁 오복이한테 우연히 던진 그 말이 며칠후에 실지 맞아 떨어질줄이야.…

이즈음 전주경은 아침나절에는 로벽일체식쌓기시공지도로 자주 대보수현장에 나왔다. 그리고는 제창 가동하고있는 1호중유로에서 페불국부도입과 관련한 시험준비작업을 하였다. 실로 드바쁜 일과를 보내고있었다. 그런데 그가 다니는 로대보수현장과 1호중유로사이에는 지하관로망공사를 벌려 사처에 구뎅이를 파놓았었다. 그래서 주경은 멀리 에돌아다니군 하였다. 페불연구와 시공지도로 시간에 쫓겨사는 주경의 다님길에 마음써오던 리진은 어느날 이른새벽 남먼저 출근하여 그 구뎅이의 곳곳에 발판을 건너놓았다.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해놓았건만 어쩐 일인지 주경은 지름길인 그 발판을 밟지 않고 그냥 에도는 길을 택했다. 아마 발판길을 모를수 있으니 차차 알게 될거라고 리진은 자신을 위안하였다.

얼마 지나 해뜨기 전 아침이였다. 축로공들이 작업준비를 해놓고 로벽을 쌓으려는데 작업중지구령이 내렸다. 작업발판을 원만히 갖추기 전에는 일을 시작할수 없다는 로동안전원 승표의 주장이였다. 벽체가 이제 겨우 한메터가량 쌓은 정도여서 발판 두장넓이면 별로 작업에 불편할리 없었건만 규정대로 석장의 발판을 깔아야 한다고 하였다. 어찌보면 괜한 트집이였다. 그러나 로동안전규정상요구여서 누구도 반박할수 없었다. 승표는 잃어진 발판을 당장 찾아다 설치해놓으라고 지시하였다. 그 시각에 리진은 다른 작업대상에 나가있어 축로작업장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했다.

이 복닥소동으로 하여 하루로벽체쌓기실적은 계획대로 나가지 못했다. 축로공들이 관로망구뎅이에 질러놓은 발판들을 찾아다 설치하느라 작업시간을 퍼그나 축냈다. 하루축로작업총화는 자연히 발판에 집중되였다.

《누가 발판을 이동했는가, 누가?》

지꿎게 따지고드는 승표의 기색은 자못 딩딩했다. 현장지휘부성원이여서 한옆에 앉아있던 리진은 제기된 문제앞에서 숨길수 없었다. 사실 그는 축로반장과 합의하고 몇장의 발판을 조절했다. 하루이틀사이에 관로망구뎅이에 림시건늠다리를 놓을 계획이니 그때까지만 설치하면 되였다. 그러나 문제가 의외로 심각해지는통에 그것을 방패로 내들수 없었다.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질 각오를 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했소.》

《흥, 그럴줄 알았소!》

(이건 또 뭔가. 알면서도 따지고드는건 내 량심을 저울질해보자는건가? 그러니 이 소동은 처음부터 날 겨냥한 의도적인 도발이 아닌가.…)

《그래, 동무 눈엔 로동안전쯤은 개발바닥으로 보인다는거요?》

《지하관로망구뎅이를 넘나드는데는 안전규정이 필요없다는거겠소?》

리진은 승표의 흉심에 밸이 꼬여 까박을 붙였다. 좌석에서는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승표의 낯색이 벌거우리해졌다. 그의 치째진 눈길은 례의 조소로 쪼프려지고 입귀는 비웃음으로 실그러졌다.

《잔꾀를 부리지 마오. 그래 그 구뎅이로 누가 넘나드는가. 우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것쯤이야 모르지 않을텐데…》

《?!…》

리진은 별안간 모닥불을 들쓴듯 화끈 몸이 과다들었다. 온몸을 불길처럼 휩쓰는 수치감에 바늘끝같은 땀이 빠작 살가죽을 태웠다. 승표는 내놓고 전주경의 이름을 꺼들지 않아도 모든것을 알고있었다. 그의 타격은 면바로 급소를 찔렀던것이다. 리진은 눈을 흡뜬채 까딱할수 없었다.

그때 현장에 새파란 반짐화물차가 부르릉거리며 들어섰다. 적재함우에는 정양소취사원들과 아낙네들이 타고있었다. 네모난 얼굴에 몸이 가로퍼진 똥똥한 아낙네가 소리쳤다.

《자, 저녁참이 왔소. 왜 오늘은 맥골을 못쓴다오? 계획도 못하고 다들 아래다리들은 회쳐먹었소?》

이 때아닌 걸죽한 소리에 팽팽하던 작업총화분위기가 죽사발이 되였다. 대보수지휘부에서는 미진된 하루작업량을 마무리짓도록 정양소에 운반식사를 조직한것 같았다.

《원, 저 아저씨 무슨 말이 이 농마국수오리보다 더 길담. 국수가 다 풀어져요.》

몸이 가로퍼진 녀인이 독촉하자 그옆에 있던 얼굴이 가무잡잡한 아낙네가 제풀에 손벽을 마주치며 고아댔다.

《아이, 기차라. 저 총각 요전날 〈까투리타령〉 기딱차게 부릅데.》

그러자 푸르딩딩하던 승표의 얼굴가죽이 흐물흐물해졌다.

《그래 농마국수꾸미는 뭐요?》

《꾸미요? 아따, 꾸미야 최고지. 총각이 전날 까투리사냥을 나가 잡은 꿩이 있잖소. 농마국수에야 꿩고기꾸미이상 없지.》

《그 아주머니 참 걸작이야! 하하…》

승표는 퍼진 몸을 젖히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양소녀인들까지 허리를 꺾고 깔깔거리는통에 작업장은 일시에 웃음판으로 번져졌다. 리진은 피가 거꾸로 흘렀다. 자기를 여지없이 짓이겨놓고도 넉살좋게 웃어대는 그 꼴을 차마 눈뜨고 볼수 없어 돌아섰다.

리진은 그 걸음으로 현장지휘부에 왔다. 비여있는 방안이 어둑하여 불을 켰다.

그는 대보수실적들을 기록하려고 종합일보철을 넣어두는 자기 서랍부터 열었다. 그런데 서랍안에는 난데없이 《페열과 그 리용》이라는 책이 나졌다. 전주경의 이름이 적힌 책이였다. 그사이 주경이 왔다간 모양이였다.

전전날 주경은 최근에 새로 나온 이 번역본도서에는 페열리용문제가 그 나라 경제발전지표의 중요항목을 가리킨다며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리진이한테 말한적이 있었다. 리진은 책을 볼 기분은 없었지만 기계적으로 첫 표지를 번지였다. 그러던 그는 흠칫 눈에 힘이 모아졌다. 속표지짬에 쪽지가 끼여있었다.

리진은 갈피없는 의혹에 휩싸여 쪽지를 펼치였다.

…동물 만나러 왔다가 차시간이 급하여 몇자 적어요. 도대체 웬일이예요? 아직도 술에서 깨지 못했는가요. 비오던 그날 밤에는 망발하더니 또 발판건은 뭐예요. 정말 내 발밑의 거름이 되여 날 공주로 섬기려는가요? 며칠간 과학원에 다녀오겠어요.…

(아, 이 무슨 창피람. 발판일을 주경이 알다니… 주경인 처음부터 알고있어 발판길을 외면했는가. 난 페불연구에 전념한 그를 돕고싶었는데… 그래그래, 우린 맞지 않는 짝짝이신발이야. 그러니 응당 이런 일이 생길수밖에. )

퇴근하여 집에 온 그는 오늘 하루일을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왜 이렇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는지?… 주경이자신도 나의 행실을 비난하고있지 않는가. 그를 위한 진심이 배척당하고 모욕당한 울분이 치솟아 가슴이 뒤번져졌다. 이는 분명 착순이라는 삶을 생활의 신조로 삼았기때문이였다. 정말이지 이렇게 살다가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버리는 인간페불이 되고말것이였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골을 싸쥐고 몸부림치던 그는 더는 홀로 속을 썩일수 없어 집을 나섰다. 정작 밖에 나선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둠이 깃드는 저녁 갈길을 잃은 길손처럼 한자리에서 서성거리다 걸음을 짚었다. 이밤 발목이 시도록 걸어서라도 마음을 의지할 기둥을 찾고싶었다.

밖은 검푸른 어둠이 덮여있었다. 유난히 투명한 하늘에는 아직은 희미한 애기별들이 소리없이 깜빡이였다. 그는 마을길을 벗어나 비파봉령길에 접어들었다. 인적드문 이 경사가 급한 고개길에는 어린시절의 자취들이 수없이 새겨져있었다. 여름이면 이 고개길을 넘어 고래섬 해수욕장으로 달려갔고 겨울이면 얼음이 한벌 깔린 이 길에서 동무들과 함께 해저무는줄도 모르고 썰매를 타며 쏜살같이 내려가다가는 눈구뎅이에 처박혀 웃고 떠들기도 하였다.

길 량옆에는 무성한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우거져 차겁고 상쾌한 솔냄새를 짙게 풍겼다. 얼마쯤 지나 고개마루에 오른 리진은 한자리에 멈춰섰다. 눈아래로는 페불굴뚝에서 삼단같이 활활 타는 불빛에 공장구내가 환히 안겨왔다. 그러던 그는 불시에 가슴을 치는 숭엄한 격정에 숨결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바로 여기 어느 자리였을것이다.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올해 봄날의 그밤 공장을 부감하신 그 자리가! 그이께서는 그밤 이런 험한 곳에 오르시여 공장구내의 페불을 보셨겠으니 가슴이 죄여들었다.

어릴적 그 불빛의 도움으로 밤가는줄 모르고 동무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이따금 신기하게 쳐다보던 페불, 오늘은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 화폭에 아름답게 그리는 그 불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나라의 재부, 인민의 재부가 타버리는 불로 보시며 심려어린 안색을 지으셨을것이라고 생각하니 뼈저린 자책이 갈마들었다.

그 순간 혼탕되고 갑갑하던 그의 가슴으로 무엇인가 크고 거대하고 뜨거운것이 마냥 흘러들었다. 그렇다! 다시는… 다시는 저 페불때문에 그이의 안색이 흐려져서는 안된다. 그 페불을 우리가 한점이라도 남겨둔다면 그이의 안색은 밝아지실수 없을것이다. 몽땅 잡아야 한다. 몽땅!

리진은 막혔던 숨결이 탁 트이고 시원한 호흡과 밝은 기분을 느꼈다. 여태 허둥거리던 온몸을 떡 버티여주는 지탱점이 생긴듯 뿌듯한 힘이 용솟음쳤다. 차거운 해풍이 불어왔으나 그의 얼굴은 홧홧 달아오르기만 했다.

그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이 심정을 그냥 삭일수 없었다. 기사장한테 죄다 털어놓고싶었다. 단숨에 공장에 뛰여내려온 그는 기사장을 찾았으나 그의 방은 비여있었다. 리진은 그 걸음으로 대보수현장으로 갔다.

웬일인지 이밤 온몸의 힘과 정력을 깡그리 뽑고싶어 견딜수 없었다. 로체안의 발판계단들에서는 눈부신 용접불꽃이 쏟아져내렸다. 리진은 바줄사다리를 타고 그곳에 올랐다. 발판우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 붕붕 지져대던 용접공이 용접면을 추어올리며 반색하였다.

《자네 또 나올줄 알았네.》

3호중유로로공이였던 또딸아버지였다. 리진은 용접솜씨가 있는 그가 대보수 첫날부터 현장을 뜨지 않고 투신하고있어 감동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랭한증이 도지지 않겠습니까?》

《괜찮네. 자네 그 생당쑥배띠가 용을 쓰네. 그걸 띤 후부턴 끄떡없다니, 밥도 꽝꽝 먹고. 참, 좀 이따 밤참을 하세나. 방금 우리 딸애가 한꾸레미 갖고왔네.》

《딸이라니요?》

리진은 우야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 맏딸… 오, 그렇지. 아홉살내기 자네 색시감 말일세.》

《그럴줄 알았으면 한발 먼저 와 선을 볼걸 그랬군요.》

《하하하…》

그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치였다. 리진은 번거로왔던 시름을 다 잊고 하늘에라도 날아갈것 같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크고 유쾌한 웃음을 한껏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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