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2 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5 장


1


대보수현장은 날이 갈수록 흥성이였다. 종업원가족들이 지원대를 무어 몰려드는통에 일자리가 푹푹 났다. 처음에는 일손이 많이 드는 허드레일들을 거들어주던 지원자들은 지구별승벽내기가 벌어져 며칠전부터는 장갑과 팔토시, 수건 지어는 랭면과 얼음보숭이까지 갖고 달려와 전투원들의 기세를 북돋아주었다. 그럴 때면 의례히 휴식과 함께 현장오락회가 열렸다.

오늘은 박오복이네 인민반아낙네들이 염소젖에 빵들을 한임씩 이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오복의 오똑한 코가 더 쳐들렸다. 그는 솔선 나서 꽹과리를 두드리며 춤판을 선포했다. 젊은이들은 너나없이 춤판에 나섰다. 나이먹은 축들은 대체로 맨바닥이나 철계단우에 꾸역꾸역 앉아 벙글써 입을 열고 구경들을 하였다.

기동예술선동대의 힘찬 나팔소리가 전주를 울리자 그에 맞추어 흥겨운 춤판이 펼쳐졌다. 원을 지어 춤판을 벌린 가운데는 오복이 달팽이처럼 몸을 잔뜩 오그라뜨리고 꽹과리를 먹이였고 그와 마주선 승표가 가슴우에 죄꼬만 북통을 걸고 제법 잦은걸음을 옮겨가며 가락맞게 두들겨댔다. 그 모양은 흡사 곱추와 곰의 형색같아 구경군들은 그것이 더 재미있어 배를 그러쥐였다.

깽무갱 깽깽… 오복이가 꽹과리로 춤판을 들었다놓자 덩기덩, 덩더꿍… 하며 느린 굿거리장단을 치던 승표의 북채가 갑자기 이쪽저쪽 멋부리며 안땅장단으로 넘어갔다. 뒤이어 나팔소리가 명쾌한 곡조로 번져져 청춘남녀들의 어깨와 팔다리에 신바람이 일었다. 구경군들도 참을수 없어 지원나온 녀인들을 잡아끌고 춤판에 뛰여들었다. 춤판은 삽시에 흥취와 희열로 고조되였다.

장난궂은 젊은 녀석이 구경군들속에 숨어있던 오복의 안해를 끄집어내와 그와 짝을 무어 춤판에 나섰다. 수집음에 얼굴이 빨갛게 된 오복의 안해는 어쩔수 없이 분위기에 말려들었다. 원래 춤솜씨가 있는 오복의 안해는 용기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유연하고 세련된 춤동작은 볼수록 우아하고 황홀하여 뒤에 섰던 구경군들도 하나둘 앞으로 비집고 나왔다.

오복의 안해가 춤가락을 재치있게 넘길적마다 군중속에서는 《좋―다!》, 《어, 좋―지!》하는 먹이고 찧는 소리까지 곁들어 관중과 하나의 호흡으로 끓었다.

저쯤에서 반지빠른 눈길로 안해의 춤솜씨를 훔쳐보던 오복은 꽹과리를 팽개치고 씽 달려왔다. 그리고는 재빨리 자기 안해와 마주선 사내의 가슴앞으로 끼여들어 그를 엉뎅이로 살짝 밀어제끼며 아주 태연히 안해의 허리를 감아잡고 춤가락을 이어갔다. 바빠맞은 안해는 당황하여 한순간 쩔쩔매다 군중속으로 달아뺐다. 그러자 오복은 짝패를 잃고 뻥해진 청년을 상대로 하여 안해가 하던 녀성적인 동작으로 발라맞추었다. 장내에는 와그르한 웃음파도가 일어번졌다.

구경군들속에 섞여 철계단에 앉아있던 리진은 오복의 그 익살을 보지 못하고 제 생각에만 골몰해있었다. 이 며칠째 그는 앉으나서나 하나의 지꿎은 생각에 주위를 살피고있지 못했다.

로대보수에서 로내부곡관만 교체하는것이 자꾸만 미타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원유흐름관속에서 압력과 열을 제일 크게 받아 부식작용이 심한 곳은 로체안의 곡관부위이다. 그렇다고 바깥입출구곡관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가열된 원유흐름속에는 얼마나 많은 철부식성가스와 물질들이 차있는가. 지금이라도 다시 문제를 상정시키고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솟구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종섭의 집요한 추궁과 야멸찬 조소, 그에 보조를 맞추는것 같던 전주경의 묘연한 태도 그리고 공장기술진을 거느리고있는 기사장의 결단성들이 번갈아 떠올랐다. 이 한다하는 기술진이 아무렴 그걸 몰라 한사코 10일안을 주장하겠는가.

리진은 또 주저하였다. 자기가 지나친 신경과민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함께 일하는 로공들의 지지(그는 그 문제를 로공들과 의논해보았었다.)에 붕 뜬 나머지 괜히 맞물려 돌아가는 로보수일정에 혼란을 주는 말썽군으로 될수도 있었다. 더구나 기술혁신돌격대성원이라면 하루빨리 페불을 잡기 위해서라도 로보수기일을 앞당기는데 분발해야 할것이였다.

그는 며칠전 당조직과 기사장을 통하여 공업연구소 연구사로 재임된 소식과 함께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에 인입되였음을 알게 되였다.

…리진이, 그새 속을 무척 태웠겠지? 우선 내가 책벌을 받은걸 가지고 수태 속을 썩였을줄로 아네. 난 그 책벌을 받고 조금치도 동물 원망해본적이 없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말씀관철에서 우린 한배를 탄 사람들인데 타륜을 잡은 내가 침로를 똑바로 정해주지 않아 파선된거나 같거던. 책임이야 응당 내가 져야지. 바꿔놓고 봐도 이런 경우 동무가 기사장이라면 책임지지 않았겠나. 그리고 기술혁신돌격대배제문제는 내가 등한하여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해 그렇게 된거요. 정 속이 내려가지 않으면 내 동무한테 무릎을 꿇고 빌겠네. 당조직에서도 동무가 그 사이 현장단련을 잘했다고 보증해주던데 우리 다시 손잡고 일해보자구. 내 페불문제는 동무한테 따로 과업을 주겠소.…

리진은 그만 참고참던 눈물동을 터치고야말았다. 그것은 예리한 아픔과도 같은 기쁨이 한데 섞인 눈물이였다. 그한테 이렇듯 해빛과도 같은 당조직의 믿음과 기사장의 후더운 손길이 미칠줄이야.

그날 저녁 유선림은 목메여 흐느끼며 리진을 다시 안아일으켜준 당의 고마운 손길을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말라고 그한테 신신당부하였다. 또한 이튿날에는 현장에서 오복의 뜨거운 포옹과 승학이와 반원들의 진심어린 축하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제 일처럼 기뻐해주어 정신이 다 떨떨할 지경이였다.

그러나 리진은 자기 위치가 어떻게 되든 전주경이와의 결렬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는 이즈음 주경이한테 좀 더 얼얼하게 얻어맞고싶은 어리궂은 충동에 몸이 달 때도 있었다. 사나이의 체면이나 자존심에는 최대의 수치겠지만 그런 식으로 복수당하는 고통의 희열을 맛보고 싶어서였다.

그날 밤 자기가 너무 흥분했던탓에 주경이가 모든 사실을 죄다 똑똑히 알도록 속시원히 고백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그렇다고 다시 꺼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구정물은 헤집을수록 악취만 풍기니까.

박수갈채가 터졌다. 춤판을 마친 오락회는 노래종목으로 넘어간듯싶었다. 승표가 군중앞에 나선걸 보면 그가 짚인 모양이였다. 그는 장내를 휘휘 둘러보더니 누군가 짚어냈다. 군중은 요란한 박수로 호응하였다. 앞쪽에서 귀뿌리까지 새빨갛게 익은 방울이 일어나 승표와 나란히 섰다.

리진은 눈알이 튀여나올 정도로 깜짝 놀랐다. 승표의 요구에 방울이 선선히 응해나선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승표가 군중앞에 한발 나서 소개말을 하였다.

《에― 날개가 있으면서도 멀리 날지 못하는 까투리! 이 어리석은 짐승은 매방울소리만 울리면 대가리를 땅에 틀어박군 하여 옛적부터 까투리사냥은 매가 했지요. 그러나 오늘 그 미물인 까투리가 매를 낚을테니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승표의 너스레에 구경군들은 벌써부터 입들이 헤벌쭉해졌다. 이윽고 첫 음조부터 어깨가 들썩이는 흥취로운 반주가 울렸다.


평안도라 묘향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향로봉 강선봉 룡연담을 넘어

칠성봉꼭대기 당도하자

까투리 한마리 푸르릉 푸르릉

매방울이 떨그렁


《까투리타령》을 흥겹게 뽑아치는 승표의 거쉰 목청은 야성기가 있어 듣기가 아주 멋들어진데다가 방울의 맑은 중음과 어우러져 화음이 기가 막히게 맞았다.

은빛폭포가 쾅쾅 울리는 명산으로 꿩사냥을 나가는 한쌍의 젊은이들, 어디선가 절간의 종소리가 떵그렁 떵떵 울려오고 선들바람도 와수수 숲을 흔든다. 노래장단에 맞춰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며 어깨까지 살짝살짝 들었다놓는 그 아기자기한 미소, 마음은 즐거움에 차넘치고 사랑과 화목이 찰찰 흐르는 그 발림에 군중은 눈과 귀가 녹아붙고 몸과 어깨는 함께 춤춘다.

승표는 《후여, 후여, 후여―》하는 대목에 가서는 《까투리야 도망치지 말고 어서 잡히기나 해라, 그래야 매방울이 아니, 처녀품에 안기게 될게 아니냐.…》하는 군소리까지 집어넣어 관중이 폭소를 터치게 했다.

리진은 여태 승표와 방울이를 서로 앙숙처럼 리해한것이 이상스러웠다. 저쯤 안삼블이 맞아 돌아가는걸 보면 서로 의사소통이 될대로 된것 같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승표가 짝사랑을 한다고 비웃었으니 그가 속으로 자기를 얼마나 조롱했으랴. 그래서 그가 기를 쓰고 엇서나가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이 친구, 뭘 그리 골똘해있나?》

누가 어깨를 툭 쳤다. 오복이였다. 어느새 오락회는 끝나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통에 흥성들성 물크러졌던 공기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참, 잘 부르던데. 승표와 방울의 2중창 말이야.》

《지난 공화국창건기념공연에 내놓은 곡목이였지. 우리 사로청(당시)조직에서 분공을 줬더니 아주 인기있게 준비했어.》

오복은 직장청년조직을 책임지고있었다.

《서로 마음안삼블도 맞아돌아가겠구만.》

리진은 그들의 노래여운에서 헤여나지 못했다. 오복이 머리를 저었다.

《생활이란 노래가 전부가 아니거던. 그건 그렇고 다음오락회때에는 자네와 연구사가 준비해야겠어.》

《연구사라니?》

《시침을 따지 말게. 동무얼굴에 다 씌여져있는데?》

《…》

리진은 이 눈치역은 친구가 어느새 낌새를 챘는지 놀랐다.

《흥, 잘도 알았군. 그래 그 동무와 내가 뭘 하라는건가?》

《2중창, 한종목 맡아야겠네.》

《차라리 그 동무 독창을 준비시키게. 뒤에서 손풍금반주는 내가 할테니.》

《왜 함께 부르면 더 좋잖나?》

《안돼, 난 음치야.》

《내 잔치날엔 썩 잘 뽑던데.》

《내가?… 오, 그날은 술을 마셨으니까 목이 틔웠나봐. 하하…》

리진은 웃었다. 그는 이 기회에 주경이를 내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진의 웃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있던 오복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의 곁에 앉았다.

《웃음이란 참 별난거야.…》

그는 의미깊은 말을 하려는듯 싱긋 웃었다.

《지칠 때는 힘을 주고 비애에는 용기를 주고 절망에는 희망을 주거던. 웃는다고 밑천들 일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퍼주어도 줄어들줄 모르고. 웃음은 줄수록 사람들의 사랑도 받고 차례지는 리윤도 커지거던.

이보게, 동무가 이자 웃으니 내 마음이 다 즐겁구만. 동문 요즘 어두운 밤 철다리를 건느는 사람처럼 웃음을 잃었어. 그런 사람은 발밑의 침목만 보고 걷다나니 웃을새 없지. 발밑은 아찔한 낭떠러지일게고 소름끼치는 검은 물결만 뵈일테니까. 멀리 앞을 보고 걸어야 여유도 배심도 웃음도 생기고 노래도 생기는거야. 새 생활이 동물 부르는데 노래도 부르고 사랑도 하며 웃으며 가야지.》

《하하… 동문 생활의 대단한 락천가이고 시인이야.》

리진은 롱조로 받으면서도 오복의 진정에 뜨거움을 삼키였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 마음을 기울여주는 친구가 곁에 있는것만 해도 가슴이 더워났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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