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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4 장


1


강대철은 젊은이들처럼 부리나케 자전거를 몰아댔다. 만속으로 달리는 그의 머리우에는 정오의 따가운 해빛까지 비쳐 얼굴과 등골로 줄땀이 흘러내렸다.

오늘이 전주경의 아버지 전준갑애국렬사의 추모날이였다. 도당에서 있은 당일군강습에 참가하고 좀전에 공장에 도착한 강대철은 기사장을 비롯한 참모산하 몇몇 일군들과 공업연구소연구사들이 렬사묘로 떠난지 퍼그나 되였다고 하여 뒤늦은 걸음을 다몰아댔다. 전준갑의 묘는 수년전에 전준혁이 공장에서 십여리 떨어진 서북쪽산등성이 양지바른 곳으로 옮겼다.

강대철은 공장 공업용수를 보장하는 저수지를 지나 전나무들이 듬성듬성한 산비탈에 접어들었다. 그뒤로는 자작나무, 가래나무, 이깔나무, 잣나무들이 들어찬 혼성림이 펼쳐졌는데 경사가 급하여 오솔길로 이어졌다.

강대철은 송진내가 물씬거리는 오솔길로 그냥 냅다 밟다가 힘이 진하여 내려서 끌었다. 저 아래 저수지 수문아근에는 앞선 사람들이 타고 온 화물자동차 한대가 서있었다. 강대철이 자전거를 끌고 물매급한 비탈길을 헐금씨금 오를쯤 해서 주경이 마중하여 달려내려왔다.

《우린 아저씨가 출장중이여서 못 오실줄로 알았어요.》

《마침 도착했다. 듣자니 석재공장에 주문하여 묘비랑 새로 만들었다면서?》

《네, 지금 한창 세우고있어요.》

강대철의 눈앞에는 해빛이 명랑한 안침한 곳에 황이 들지 않은 잔디가 푸른 주단처럼 한벌 덮인 봉분이 나졌다. 맑은 공기와 짙은 풀냄새가 떠도는 봉분앞에서는 여러 젊은이들이 웃동을 벗어내치고 하얀 대리석묘비를 새로 세우고있었다.

봉분주변에서 떡판같은 잔등을 오르내리며 벌초를 하고있던 전준혁이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허, 강습일정이 래일까진줄로 알았는데요?》

《전투기간이여서 다그쳤더군.》

《그래 무슨 문제가 토의되였습니까?》

《최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전당이 동원되여 70일전투를 힘있게 벌릴데 대한 말씀집행대책들이였소.》

《그래요. 아주 시기적절한 강습이였군요. 그런데 좀 쉬염쉬염 올것이지 또 다몰아쳤나보군요. 온통 땀투성이가 된걸 보면.》

《아직 팔팔한 기운을 뒀다 어데 쓰겠소. 그 낫이나 인주우. 내 늦은 봉창을 할테니.》

《비서아바이, 걱정놓으십시오. 지각생은 아바이뿐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이지요. 여길 좀 보십시오.》

새 비석을 세운 자리에 세멘트몰탈을 처넣고 다지던 중년연구사가 입귀에 물린 담배꽁다리를 뱉으며 눈짓으로 묘지앞면을 가리켰다.

《?!…》

거기에는 붉은 댕기로 엮은 유난히 하얀 들국화다발이 정히 놓여있었다. 물기를 함치르르 머금은 꽃송이들은 구슬같은 이슬을 반짝이였다. 꽃송이들이 빨리 시들가봐 물까지 뿌려놓은걸 보면 고인을 추모하는 지성이 이만저만 아닌것 같았다.

《이건 누구 소행인가?》

강대철이 저윽 감심하여 주경을 돌아봤다.

《몰라요. 우리가 오기 전에 누군지 벌써 왔다갔더군요.》

《그러니 가족측보다 고인과 더 깊은 인연을 맺고있다는건데…》하고 한 젊은이가 의혹을 던지자 다른 청년이 받았다.

《혹시 어릴적 함께 자란 소꿉시절의 막역지우는 아닐가요?》

《이 세상에 하많은 꽃들중에서 유난히 정갈한 하얀 들국화… 녀성미가 다분한 이 꽃에는 애모쁜 애도의 마음이 담겨져있는것 같구만.》

저마끔 이렇게 의미심장한 추리들을 하자 판석을 깔던 서종섭이 몽톡한 손을 홰홰 내흔들며 흰소리를 뽑았다.

《동무들은 참 복잡하게 생각하누만. 여기에 묻힌이가 누구요?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던 나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마지막까지 보장하려고 한몸 바친 애국자가 아니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겠소. 이제부터 나도 이 묘소앞을 그냥 지나지 않을거요.》

서종섭의 이 자신만만한 주장은 어딘가 애잔한 감상에 잠겨있던 젊은이들의 입을 더는 열지 못하게 했다. 전준혁은 머리를 끄덕여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들국화송이에 눈길을 멈춘채 말을 꺼냈다.

《이 꽃을 보니 퍽 오래전에 있은 일이 생각나는구만. 외국류학을 마치고 전후에 귀국한 내가 형님의 묘소를 처음 찾은것은 형님이 희생된지 3년이 되는 제날이였소. 그때도 묘지표말아래에는 꽃다발이 놓여있었는데 이처럼 들국화였소. 형님의 고결한 생애를 추모하는분의 소행으로 여겼을뿐 다르게는 생각지 않았더랬소. 헌데 말이요. 이상한것은 이 꽃이 추석이나 청명날에는 볼수 없고 단지 형님이 희생된 날에만 꼭꼭 나타나는 그 점이였소. 그래 두루 수소문해봤으나 주인을 종내 찾지 못했소. 그후에는 형님이 희생된 날이 아니라 추석때만 성묘했으니까 감감 잊었더랬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보니 놀랍소. 그리고 주경의 아버지를 상기도 잊지 않고 추모해주는 그 변함없는 마음에 뭐라고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머리가 숙어질뿐이요.》

《정말 듣고보니 그 지성이 보통이 아닙니다.》

《이건 흔치 않은 일이요.》

전준혁의 얼굴에는 추연한 빛이 어렸다. 그는 제 생각을 이어갔다.

《한가지 명백한것은 주경의 아버지가 희생된 날을 알 사람이 이 고장에는 더는 없다는 사실이요. 나도 그때 표말에 써놓은것을 보고서야 형님의 사망날을 알게 됐소. 당시로 말하면 다들 피난간 뒤여서 연유창에는 두사람이 있었는데 유일한 목격자인 그 사람마저도 제 살길을 찾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하더군.》

전준혁의 마지막말은 리진의 아버지를 두고 하는 소리였으나 누구도 새겨듣지 않았다. 다들 그 하얗고 청초한 들국화에 정신을 팔고있었다.

전주경의 감동은 무어라 형언할수 없이 격앙되였다.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고마운 손길이 베푼 인정으로만 여겼던 소행이 세월이 흐르고흘러도 변심없이 값있는 넋을 잇고싶어하는 더없이 숭고한 세계로 느껴져 그앞에 엎드려 절하고싶도록 격동되였다. 유복녀로 태여난 그로서는 아버지와 관계되는 모든것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뿐아니라 다 새롭고 소중하게 안겨왔다.

그가 유치원때였다. 어느날 주경이네 유치원꼬마들은 노래와 춤을 준비해가지고 새로 서는 아빠트건설장을 찾아갔다. 건설장정문앞에는 커다란 영예게시판이 세워져있었다. 그 게시판 첫칸에는 혁신자들의 사진이 주런이 나붙었다.

그때 갑자기 봄이라는 애가 맨우에 붙은 사진을 가리키며 환성을 질렀다.

《야, 우리 아버지. 저거 울아버지야!》

사진속에는 싸리안전모를 쓴 얼굴이 길죽한 사람이 벙실 웃고있었다. 봄이는 너무 기뻐 발을 동동 구르며 자랑하였다. 다른 애들도 부러운 눈길로 그 사진을 쳐다봤다.

《데거, 봄이 아버지 쎄다야.》

《너의 아버지 멋있게 생겼다야.》

《물매미승용차 타니?》

애들이 저저마다 떠들었다. 그 순간 새파래져있던 주경이 량볼에 밤알을 물고 툭 쏘아붙였다.

《흥, 울아버지가 더 쎄!》

이 돌연한 항변에 꼬마들은 저마끔 눈이 올롱해졌다.

《피, 거짓부리, 너의 아버지 어디 있니? 어디, 어디?》

《있어, 우리 아버진 공부를 많이 한 학자야!》

《그게 어디 너의 아버지야, 우리 엄만 너의 아버진 죽었다고 했어.》

《뭐야? 있어!》

《없어!》

이 끝없는 싱갱이질은 교양원선생님이 껴들어서야 즘즘해졌다.

건설장에서 돌아온 그날 선생님은 다들 모여놓고 이렇게 말했다.

《건설장의 조립공인 봄이 아버진 맨 선참으로 년간계획을 완수하여 신문과 방송에 널리 소개되였답니다. 우리모두 온 나라가 다 아는 혁신자아버지를 둔 봄이어린이를 축하해주자요.》

모두가 박수를 쳤다. 선생님은 계속하였다.

《우리 아버지들속에는 미국놈들이 우리 땅에 전쟁의 불을 질렀을 때 나라를 지키다 영용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런 훌륭한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셀뿐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오늘도 래일도 살아있답니다. 그분은 바로 전주경어린이의 아버지랍니다. 전주경어린이에게 열렬한 박수!》

아, 그날 주경의 작은 가슴은 얼마나 기쁨과 긍지로 부풀었으랴. 세상에 태여나 아버지의 애무 한번 받지 못했어도 그렇게 마음속에 새겨진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날에 있은 충격으로 하여 주경은 처음으로 자기한테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작은아버지가 모든것을 부러움없이 해주어 그가 아버지인줄로 알았었다. 차츰 철이 들면서 아버지없는 설음이 차올랐다. 애들이 아버지손을 잡고 원족이며 공원이며 바다가며 학부형회의를 갈 때면 아버지손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버지품이 얼마나 포근한지 알고싶었고 한번 《아버지.》라고 불러보고도싶었다.

그래서 소학교시절에는 《나의 아버지》라는 동요를 지어 학교벽보판에 붙인적도 있었다.


이 땅을 지키다

땅에 묻힌 울아빠

아빠는 땅입니다

땅은 아빠입니다 …


《얘야, 어서 아버지령전에 인사를 드려라.》

전준혁이 나직이 일깨워주어서야 주경은 회억을 지웠다.

그는 상돌우의 잔에 한무릎 꿇어앉아 술을 부었다. 그가 절을 올리자 곁따라 전준혁이 몇마디 하였다.

《네가 그새 공부에만 전심하다나니 아버지를 잊었을수도 있다. 이제부터는 명심해야 한다. 아버지의 넋을 말이다. 나라에 충정을 다한 아버지처럼 순직할 각오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녀자는 출가외인이라고 하지만 이번에 새로 세운 묘비에는 묘주에 네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리고 우리들도 마음속에 새겨둡시다. 어제날에는 한 인간이 자그마한 연유창을 지켜 목숨을 바쳤지만 오늘 우리는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맡겨주신 나라의 연유창을 지키고있습니다. 지난날 우리 선대들이 그러한것처럼 또 그런 값높은 생을 길이 경모해마지 않는 이 들국화의 주인처럼 우리들도 삶의 순간순간을 참되게 살아갑시다.》

전준혁의 음성은 웅글면서도 조화롭고 절절하였다. 사위는 간간이 우짖던 새소리도 멈추고 바람결도 숨을 죽인듯 숙연한 정적이 흘렀다.

고인의 령전에 묵례를 하고있던 사람들은 가슴을 흔드는 그 마디마디에 말없는 맹약을 다지는듯 경건한 기색들이였다.

강대철은 하나의 가정사를 놓고도 주경이뿐아니라 사람들의 심장에 충정과 애국의 불씨를 심어주는 전준혁의 깊은 웅심에 공감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만약 이 자리에 리진이 있었더라면 어쩔번 했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와 같은 동닿지 않는 생각은 아까 전준혁의 말끝에 리진의 아버지가 묻어나왔을 때부터였다. 일순 강대철은 가슴이 바싹 조여들었다. 전준혁이 리진의 아버지라고 까밝힐가봐서였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걸 보니 구태여 가슴아픈 사연을 꺼내고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남같지 않게 여기는 리진을 위해서인지…

아무튼 이 자리에 리진이 없는것이 다행이였다. 헌데 들국화의 주인은 누구일가? 해마다 희생된 날에 찾아오는것을 보면 이미 세상에 없는 리진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또 있단 말인가?… 리진의 아버지의 사망은 이미 해당기관을 통하여 확인되여있었다.

전쟁시기 금천지구를 놈들이 폭격할 당시 사망된 여러명의 피난민들속에 그의 시체도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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