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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3 장


1


전주경은 열복사실천정과 아치부분일체식작업도면을 담당설계원과 진지하게 토론한 후 공업연구소로 돌아왔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연구소복도는 여전히 촉매반응기의 진동음으로 가벼이 떨고있었다.

계영빈은 거의나 바깥출입을 잊고 실험실에서만 살고있었다. 그한테 친구가 있다면 아마 탐구와 실험이라는 친우밖에 없을거라고 생각되였다. 전주경은 그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있을 백금자금소식부터 알려주고싶어 촉매실험실에 먼저 들렸다.

알싸한 시약냄새가 밴 실험실 한켠에는 촉매활성장치와 교반기들이 돌아가고있었다. 계영빈은 실험대곁에 놓인 색바랜 팔걸이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여 잠들어있었다. 불빛을 정면으로 받고있는 누런 얼굴은 구레나룻이 꺼칠게 돋아 험상스러웠고 의자아래로는 푸른 정맥이 두드러진 한팔이 맥없이 드리워졌다. 시약에 얼룩이 진 와이샤쯔자락은 배풍기바람에 펄럭이였다.

주경은 눈시울이 따가와났다. 그와 한지붕아래 사는 녀성으로서 덞어진 그의 옷가지들을 여태 모르고 지낸것이 미안스러웠다. 그리고 촉매연구가 얼마나 간고하고 고달팠으면 무쇠같은 인간도 이렇게 지쳐빠졌을가 하는 동정이 끓었다. 주경은 짧은 쪽잠이지만 그가 달게 잠들기를 바라며 출입문벽에 설치된 전등스위치를 찾아 껐다.

《불을 왜 끄오?》

계영빈의 웅근 목소리가 울렸다. 주경은 도적고양이처럼 와뜰 놀라 다시 불을 켰다.

《아이, 잠드신줄 알았군요.》

《꿈을 청하던중이였소.》

《좋은 꿈을 꾸고싶었던게지요.》

계영빈은 바로 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부비였다. 불그레하게 충혈된 그의 눈빛은 잠기가 씻은듯 가셔지고 례의 오연한 광채가 번뜩이였다.

《주경동문 꿈에 고심하던 문제가 풀린적 있었소?》

《꿈에요?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난 말이요, 제일 귀찮은것이 잠자는 시간이요. 그래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고심하는 문제를 우야 반복하여 뇌수에 꽉 다져넣소. 만장약된 그 폭약은 이따금 꿈속에서 터져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놓을 때가 있거던.》

계영빈은 방금전 쪽잠을 청하여 뒤치락이였다. 그는 대체로 피로를 몰켜두었다가 짧은 시간에 단잠에 들군 했다. 그의 능률적인 뇌수활동시간은 사람들이 안식을 찾아 깊이 잠든 밤이였으며 꿈에서조차 휴식을 몰랐다.

《난 이 며칠째 촉매알갱이의 표면적에 골몰하고있소. 밥알만 한 크기의 알갱이들마다 수백평방메터의 표면적을 이루자면 기공을 수없이 줘야 하는데 그래야 촉매활성이 커지거던… 그게 될듯될듯 하면서도 뭔가 하나가 모자라는것 같단 말이요.》

《그래서 꿈을 원하셨군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용서할수 있소. 〈작가의 안해는 결코 하나를 리해할수 없다, 그가 창문을 내다보는 순간에도 일하고있다는것을〉… 하물며 꿈속에서 일하는거야 누군들 알겠소. 허어.》

계영빈은 소리없는 웃음을 지었다. 금시 거만했다가도 인차 다시 솔직하고 다정한 빛을 띠는 이 괴벽한 사나이의 가슴에 익살스러운 정서가 흐르는것이 기뻤다. 전주경은 그와의 간극이 스스럼없어지는 바람에 흔연히 대답하였다.

《그건 작가들의 안해에 대한 일면적인 견해같애요. 훌륭한 안해들은 알거예요. 그걸 모르고서야 사색과 탐구로 일생을 보내는 남편의 뒤바라지를 어떻게 하겠어요. 저같은 녀자도 그걸 리해 못할가봐 벌써부터 은근히 걱정하는데요 뭐. 호호…》

전주경은 명쾌한 롱조로 자기의 진정을 표했다. 사실 지식인인 그로서도 미처 따를수 없는 계영빈의 피타는 삶이 못내 공감되였다.

그러나 전주경은 자기가 웃음으로 넘긴 말들이 계영빈의 가슴에 심한 부작용을 일으킨줄은 몰랐다. 활기롭던 계영빈의 낯빛이 별안간 해쓱해지고 멍한 눈길이 실험대우에 놓인 딸애의 사진액자에 가 굳어졌다. 딸애의 원망어린 눈물에 흠칫 몸을 떤 그는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어두운 창밖을 향해 돌아섰다. 이는 극히 짧은 순간에 생긴 그의 심리적변화였다. 그것을 알리없는 전주경은 이 저녁 그한테 갖고온 소식을 꺼냈다.

《계선생님, 제가 깜짝 놀랄 소식을 갖고왔어요. 애들처럼 알아맞춰보라고 숨박곡질하고싶어도 기쁨을 오래 감춰두면 도적맞힐가봐 그만두겠어요. 촉매용백금외화자금이 풀렸어요. 오늘 화학공업부에서 알려왔더군요.》

《…》

계영빈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넓은 잔등도 바위처럼 움쩍 안했다. 전주경은 웬일인가싶어 그의 거동을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거북한 침묵이 얼마간 흘렀다. 조금 지나 계영빈은 천천히 몸을 돌렸는데 그 커다란 눈자위엔 딴 세계에서 헤매인듯 공허하고 비웃는듯 한 조롱기가 배여있었다. 키가 늘씬한 그는 거무스레한 눈길로 전주경을 내려다보며 침묵을 깨쳤다.

《동문 〈마야국의 패망사〉를 읽었을테지?》

《?…》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어째서 딴전을 부릴가?)

전주경이 얼떠름해하자 그는 다시 물었다.

《그래, 동문 그 나라가 멸망하게 된 동기가 뭐라고 생각되오?》

《전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하긴 인류의 고고학도 여러가지 설이 있더군요.》

《그건 대답이 아니요. 동무자신의 주장이 있어야 하오!》

돌연 계영빈은 매몰차게 후려쳤다. 끝이 들린 눈에는 실망과 노여움이 끓어올랐다. 잠들었던 그의 야성이 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것 같은 소름끼치는 예감과 함께 그에 맞서고싶은 담기가 불쑥 치밀었다. 계영빈은 량팔을 가슴우로 엇갈아 잡고는 방안을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의외롭게도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색갈도 느낄수 없는 조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나라를 일떠세운 민족은 참으로 지혜로웠소. 당시 마야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먼저 수학에서 〈0〉을 리용했을뿐만아니라 일종의 상형문자도 만들어 사용하였소. 그들은 태양력법도 만들었는데 메히꼬의 유까단반도에 세운 치첸이쩌고대천문대에서는 시계나 경위기가 없이 1년을 365.2420날로 추산해냈소. 이는 오늘날 1년을 365.2422날로 측정하는것으로 보면 당시 그들의 천문학수준을 알수 있소.

그들이 8세기 이전부터 이룩한 건축은 또 얼마나 굉장했겠소. 거대한 돌들을 다듬어 세운 피라미드식신전들과 궁전들은 그 조형예술적인 돌조각상들과 눈부신 금은보석장식으로 하여 현란한 사치의 극치로 불리우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건립한 베르사이유궁전에 비길만 하다는 기록도 있소. 높이가 100여메터를 헤아리는 초고층건물들, 라선형의 돌층계와 원주기둥들, 무수한 석탑들, 여러 경기대회와 행사들이 열렸을 드넓은 광장… 이처럼 뛰여난 과학기술문화와 강력한 생산방식을 가진 민족은 자기의 슬기로운 전통과 함께 세기를 이어 마땅히 오늘날에 와서도 존재했어야 했소. 하지만 없어졌소. 이 지구상에 흔적만 남기고 영영 자취를 감춰버렸소. 마치 고생대에 사멸되였던 파충류들처럼 말이요. 어째서? 무엇때문에 망했겠는가?…》

계영빈은 별로 재치있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력사적사실에 대한 표현은 아주 정확했고 그 음성은 차츰 열기를 띠였다. 그렇지만 전주경은 그가 마야국의 패망을 두고 무엇을 말하자는것인지 짐작할수 없어 얼떨떨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있었다. 때없이 변하는 계영빈의 얼굴은 불깃하게 상기되였다.

그는 숨을 들이긋고는 저윽 흥분에 떠는 목청으로 계속했다.

《마야국의 파멸에는 아직 우리가 다는 알수 없는 무수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난 그가운데서도 근본원인의 하나는 총대가 약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오. 16세기 자본주의발전의 길로 맹렬히 돌진하던 에스빠냐침략자들은 이 미지의 마야국에 총대를 들고 나타나 무자비하게 탕쳐놓았소. 그렇소. 총대란 뭔가. 과학기술이 낳은 산물이고 국력이란 말이요. 그래, 촉매용자금이 풀렸다고 했지? 그건 응당 풀려야 하오.

난 그 자금때문에 조금치도 걱정하지 않았소. 그걸 모르면야 우리도 마야처럼 될테니까. 오죽했으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촉매를 자체로 개발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사람들한테 목에 맨 넥타이를 잡히게 되는것과 같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겠소. 이는 우리의 과학기술을 하루빨리 세계적수준에 올려세워 우리의 국력을 더욱 강력히 다져가시려는 높은 뜻이 아니겠소.》

불을 토하는듯 한 계영빈의 확신에 넘친 말마디들은 날카롭고 신랄했다.

전주경은 피가 확 끓어번지는 흥분에 휩싸였다. 세월의 두터운 이끼에 묻혀 력사의 수수께끼로 남겨두고있는 문제의 하나를 단숨에 찍어 해답을 주는 그 담대한 배짱도 쾌남스럽거니와 한 나라의 망국사를 통하여 과학기술중시를 피력하는 해박하고 박력있는 분석 또한 경탄스러웠다. 전주경은 숨을 죽이고 그를 신비롭게 쳐다보았다.

계영빈이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려는듯 실험탁우의 유리그릇에 담긴 증류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전주경은 그가 환기시켜준 흥분이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가버리자 자기자신도 지금까지 기연가미연가하던 마야국이 남긴 의문들이 불쑥 떠올랐다. 전주경은 한동안 생각을 고르고나서 물었다.

《만약 외세가 그들을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가요?》

《그렇다면야… 그들 력사가 전혀 다르게 될수도 있지. 클레오파트라 코가 조금만 낮아졌더라면 세계지도가 달라졌을거라는 파스칼의 명구가 있듯이 말이요.》

《그러니 그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할수 있다고 믿는가요?》

《물론.》

《전… 그에는 동의할수 없군요. 그들의 패망에는 수많은 원인들이 있겠지요. 계선생님은 그들의 파멸을 외세에서 찾았는데 전 어쩐지 그들자체의 진화과정이 초래한 결말같애요. 물론 그들이 대문화를 창조한것만은 사실이예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과학기술수준도 일정한 높이에 있었구요. 그러나 사회의 발전면모는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로 나타나지 않겠어요. 그들이 창조한 대문화는 보잘것없는 원시적인 로동도구에 의한 노예로동의 산물이였더군요. 때문에 그들은 간단한 목조기중기조차 생각 못했고 노예의 팔뚝힘으로 그 거대한 신전들과 궁전들을 세웠어요. 게다가 종교신분제도가 엄정했던 그들은 허황한 태양신만을 유일한 구세주로 믿었어요. 이 페쇄된 생활과 풍속은 자기 나라밖에서 어떤 거창한 운동이 벌어지는줄도 모르고 고인물처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썩기 시작하지 않았을가요?》

《그러니 자체의 원인에서 파멸의 독버섯이 자랐다는건데… 아주 훌륭하오!》

《아니예요. 이건 방금 선생님이 저한테 튕겨준거예요.》

《계속하오.》

《제가 말하자는건 그들이 너무 오랜 세월을 페쇄되여있었다는거예요. 때문에 유럽에서 발생한 자본흐름이라는 새로운 주류적운동에 의해 정복되였고 사멸이 촉진된것 같군요. 선생님주장처럼 말예요. 력사를 돌이켜봐도 그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주류적인 운동은 자기의 운동밖에서 헤매이는 이여의 저급한 운동과는 타협을 몰랐고 오히려 무참히 짓밟아버렸거던요. 또 그 주류적인 운동에 합류되지 못한 민족이나 국가는 자기의 존재를 상실하게 됐구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의 국력을 담보해주는 과학기술운동은 기필코 력사의 주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력사적운동이란 전인류의 지향과 요구를 실현해가는 활동의 총체가 아니겠어요. 우리 과학기술운동이야말로 몇몇 자본가들을 살찌우는것과는 달리 인민의 자주적삶을 무르익혀가는 진실로 인민적인 운동인걸요.》

《아주 멋있소!》

줄곧 전주경이한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계영빈은 탄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경의 정연한 론리에 대한 흥미보다도 이야기상대를 찾은것을 더 기뻐했다. 만약 전주경이 녀성이 아니였더라면 아마 그를 부둥켜안고 뒹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아무 내색없이 묵묵히 방안을 몇걸음 짚다가 전주경의 앞에 와 멈춰섰다.

《주류적운동? 우리가? 아니, 그건 진실치도 솔직치도 못하오. 우린 너무도 락후한 식민지경제를 넘겨받았소. 우리 선조들은 우리한테 〈짚신〉을 넘겨주었소. 그것마저 전쟁이 죄다 박살냈소. 우린 빈터우에서 다시 시작했지. 남들이 백년나마 달린 거리를 우리는 전후에야 출발했거던. 그렇소. 우리의 목표는 그 거리를 좁혀가는거요. 견인불발의 의지로, 넓은 보폭으로, 우리의 힘과 속도로, 시간을 쪼개고쪼개여 부단히 접근해야 하오. 우리의 최후의 리상은 물론 주류적인 운동이 돼야지.》

《…》

전주경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뇌리에는 많은 의문이 겹쳐 맴돌았다. 우리가 따라잡아야 한다? 그 거리를 좁힌다? 이자 금방 출발한 우리가 오래전부터 달린 그들을 따라잡으려는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제갈길도 바쁜 그들이 우리가 따라오기를 가만히 서서 기다려준다? 그건 천만부당한 일이다. 전혀 가망이 없는 억지다. 변명이다. 이야말로 진실치도 솔직치도 못한 주의주장이 아닌가!

뒤진 출발, 뒤진 걸음, 뒤진 시간… 그것은 분명 저급한 운동으로서 력사의 기슭으로 밀려 이 행성에서 삶을 영위할 권리마저 잃을지 모른다. 어제날 번성했던 마야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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