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7 회


제 2 편
별뜨는 하늘


제 12 장


2


얼마후 검측을 끝낸 전주경은 현장지휘부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음은 또다시 착잡해졌다. 이제 만나게 될 리진이 그를 어떻게 대해주겠는지, 그가 그날 밤에 입은 자존심의 상처만 생각하고 자기의 마음속에 타번지는 은밀한 감정은 보지 못한다면 상면이 심히 따분할것 같았다. 또한 15일대보수안을 갖고있는 그한테 과연 10일안이 먹어들겠는지…

모든것이 앞이 내다보이지 않았어도 요즘 돌변한 그의 생활이 다시금 활기와 양기를 주었을것 같은 믿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한 생각에 잠겨 림시로보수지휘부로 쓰는 현장조작실 철계단을 오르던 주경은 아래로 구울듯이 내려오는 방울이와 마주쳤다. 방울은 벌겋게 짓무른 눈가장자리를 머리수건으로 가리우며 반색했다. 아름다운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 고여있었다.

전주경은 애써 웃음짓는 그를 의아스레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요.》

방울은 아래입술을 깨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늘 봄하늘처럼 맑고 명랑하던 그가 흐려있는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동정이 갔다.

《방울이, 내가 알면 안될가? 혹시 도움을 줄지 알겠어요.》

《아니, 별거 아니예요. 그 단추때문에 생긴 일이예요.》

《단추라니?》

《언젠가 제가 떨어뜨린 리진기사 단추 있잖아요.》

《오,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런데 그 단추가 왜 방울이를 울린단말이예요?》

《그 싱검둥이 승표동무때문이지요 뭐.》

《?!…》

전주경은 점점 더 아리숭한 호기심에 빠져들었다.

그 호기심은 어쩐지 온몸을 느닷없는 긴장에로 몰아갔다.

《언니, 좀 저쪽으로 가요.》

방울은 조용한 곳에 이르자 층계란간을 잡고 어딘가 억울하고 어설픈 미소를 입녘에 짓더니 입을 열었다.…

알카리시약발브사고로 하여 방울은 로동안전교양실에 불리워갔을적에 맨 아래단추 하나가 떨어진 옷을 입고 나타난 리진을 보고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가 떨어뜨린 리진의 단추는 그날 하수도구멍속에 떨어져 자취를 감췄었다. 다음날 방울은 집에서 단추 하나를 골라들고 나왔다. 조용한 기회에 남자탈의실에서 리진의 나들이옷을 찾은 그는 몰래 단추를 달아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갖고온 단추는 원래 단추와 원판색갈은 비슷하나 테장식이 없었다. 리진의것은 몇해전에 류행되던 까만판에 진밤색의 테를 두른 이미 도덕적마멸을 당한 구식형이라면 그가 고른 단추는 최근 청년들이 흔히 달고 다니는 아무 장식도 없는 어딘가 단정한 미를 주는것이였다. 방울은 어쨌으면 좋을지 망설이다 그냥 달아놓았다.

제 집에는 물론 상점들에도 지금은 그런 구식스러운 단추는 찾을수 없었다. 이제 리진이 알게 되면 다시 바꾸더라도 (나이먹은 어머니가 있는 그의 집에는 그런 단추가 얼마든지 있을것 같았다.)당장은 제가 저지른 흠을 지워놓고싶었다.

그런데 리진은 그 단추를 오늘까지도 여전히 달고다녔다. 옷치장에 민감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자질구레한것에는 무관심한 성미때문인지 리진은 그 꼴불견의 옷을 입고 출퇴근도 하고 학습장소와 강연회, 때로는 직장기술학습연단에 나서기도 하였다.

방울은 이즈막에 와선 먼빛에서도 유난히 눈을 찌르는 그 단추를 자주 찾게 되였다. 한번은 현장에서 리진이와 마주쳤는데 그 단추를 외면하려다 곁에 있는 뽐프발브손잡이에 걸려 넘어질번 하였다.

《어마나!》

《허, 방울동무가 왜 이리 덤빌가.》

리진은 자못 의아해하며 그를 붙잡아주었다.

방울은 그렇게 그 단추를 찾기도 하고 또 그 단추에 쫓기기도 하였다. 방울은 생각던 끝에 차라리 요새 류행되는 단추로 일색시켜놓으면 리진의 옷도 꼴불견을 면할것 같고 더는 단추성화로 못난이가 돼버리지 않을것이였다. 그래 오늘 대보수현장에 나와 일하던 틈에 가만히 남자탈의실에 들어왔었다. 빈방에서 마지막단추를 달아놓고 실끝을 호아매려던 그는 벌컥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어망결에 일어났다. 승표의 땀에 뜬 뻘건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이제껏 그를 찾아 돌아친듯 숨결이 자못 씨근덕거렸다. 그는 불에 덴 새끼사슴처럼 놀라 어쩔바를 모르는 처녀의 빨갛게 타오른 얼굴과 방바닥에 미끄러져내리는 옷을 살피더니 두툼한 입술에 쓰거운 웃음을 픽 그었다.

《흥,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뭘 알았다는거예요?》

방울은 제정신이 들어 맞받아나섰다. 승표의 비웃음은 눈꼬리로 헤염쳐갔다.

《여기선 리진의 옷을 대보수하는군. 이다지도 깊어진줄은 몰랐는걸.》

《알았으면 됐구만요.》

《흥, 이 까투리가 숨쉬고있는 한 멋대로는 안될걸.》

《그렇게 왼새끼만 꼬지 말아요. 그리고 똑똑히 알아둬요. 동무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상관이 없다? 흥!》

승표는 투박스레 뱉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방울은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여 한참이나 눈물깨나 쏟았다. 승표한테 좀더 맵짜고 되알지게 면박을 주어 더는 지분거리지 못하게 해놓지 못한것이 통분했다.…

전주경은 듣고보니 자기가 나서 도울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까 현장에서 승표가 황급히 사라진 연유도 알수 있었다. 방울에 대한 승표의 오해와 사랑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모를 일이였다. 방울은 가식도 모르는 있는 그대로의 동심같은 깨끗한 처녀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 조그마한 단추가, 방울의 샘같은 순정이 아침이슬처럼 맺혀있는 그 작은것이 가슴을 알찌근히 파고들었다.

《호호… 어쨌든 방울인 좋은 일을 했구만요. 한 인간을 위해서도 그렇고 자신의 마음속 짐을 덜지 않았나요.》

《그럴가요?》

방울은 한껏 밝아진 눈빛을 반짝이였다. 그 눈동자에는 방금전에 어려있던 눈물자욱은 흔적조차 없었다. 눈물보다도 웃음을 갖고싶어하는 처녀였다.

《언니, 고마와요, 좋은 말을 해줘서.》

방울은 밝은 웃음을 남기고 대보수현장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전주경은 그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과연 그가 마음의 짐을 덜수 있겠는지는 알수 없어도 생활의 향기와 단즙으로 가득찬 그 미쁜 마음은 부러웠다. 그러한 살뜰한 향기는 처녀라고 하여 다 갖고있는것은 아니였다.

대보수현장지휘부에는 기술과 종섭이 먼저 와있었다. 그사이 방울이한테 지체되여 리진은 자리를 뜬것 같았다.

《주인들은 없어요?》

《이제 올거요. 사람을 띄웠소. 연구사동무, 이걸 좀 보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한가.》

종섭은 볼이 부어 책상우에 펼쳐진 로보수작업도면을 가리켰다. 그의 짧고 몽톡한 손끝은 담배진에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주경은 도면에 시선을 주었다. 도면아래면에는 로해체와 벽체쌓기, 관교체와 바나설치, 기타 건조와 시험운전을 비롯한 대보수지표들이 날자별로 적혀있었다.

인기척소리와 함께 리진이 지휘부에 들어섰다. 다소 웃음띤 얼굴로 들어서던 그는 주경을 보자 낯빛이 굳어졌다가 펴졌다. 주경은 어째 그의 앞섶단추에 먼저 눈이 갔다. 그러나 그는 나들이옷이 아니라 잠바형의 진곤색작업복을 걸쳤다.

《동무가 이 15일안을 작성했소?》

종섭이 머루알눈동자를 깜박이며 도면에 턱질을 했다. 리진은 땀밴 얼굴을 팔소매로 쓱 문대였다. 현장에서 일하다 온 모양인지 코밑도 꺼멓고 벙어리장갑을 구겨쥔 손등도 시꺼맸다. 그는 주경의쪽은 외면하려고 애썼다.

《우리 로공들의 의견을 제가 옮겼습니다.》

《동무도 같은 생각이겠지?》

《그렇습니다. 우린 로벽쌓기만 해도 시일이 걸려야 한다고 봅니다. 관들을 교체하는 작업도 밤낮을 쉬임없이 들이대도 한주일품이 듭니다. 그리고 로건조시간도 충분히 줘야…》

《그게 바로 동무네 관점이란 말이요!》

종섭은 리진의 말을 꺾으며 침방울을 튕겼다. 그의 머루알눈동자가 튀여나올듯 올롱해졌고 입술은 파르르 떨었다.

《뭐, 충분한 시간? 여보, 그런 사고방식이 문제란거요. 동무도 오늘 아침방송을 들었겠지만 무산광산광부들이 쇠돌생산에서 종전 실적보다 매일 1.7배의 기록을 세우고있소. 룡성로동계급은 이해말까지 계획했던 20메터특대형선반을 벌써 세상에 내놓았단 말이요. 바로 이게 당에서 바라는 속도전이고 70일전투정신이라는거요.》

《우리도 모르지는 않습니다. 로를 질적으로 빈틈없이 보수해야 전투를 성과적으로 치를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 이거 말하는걸 보라우. 누가 뭐 질을 무시하는가! 여보, 가속도로 변천하는 시대에 발을 맞추지 못하면 뭐가 되는지 아오?》

《됐어요.》

주경은 어쩌면 기사장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듯 한 종섭의 힐난을 듣기 거북하여 껴들었다. 더구나 자기앞에서 다몰리우는 리진의 자존심이 헤아려져 더는 잠자코 있을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옆으로 돌아선 그의 다부진 몸의 근육들이 그 어떤 반감으로 꿈틀거리고있었다. 그러나 주경은 리진의 주장을 통하여 현장로공들이 로보수를 기존방법과 별반 다름없이 하려 함을 간파할수 있었다. 주경은 나직이 입을 뗐다.

《지금 대보수일정이 긴급한것만은 사실이예요. 그래서 시간단축예비를 여러모로 탐색하고있는데 로천정과 아치들은 선진방법인 단열일체식화를 받아들이자고 해요.…》

《그뿐이 아니요! 관교체도 전부 하는것이 아니라 로체안의 구부러든 곡관들만 하기로 했소. 여기서도 숱한 시간과 자재를 절약하게 된단 말이요.》

종섭이 참지 못하고 어성을 높였다. 그는 버릇대로 몽톡한 손가락 하나를 허공중에 곧추 쳐들고 흔들었다.

리진의 눈자위가 돌연 커졌다. 의문과 항변으로 놀란 눈길이였다. 주경이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침에 기사장이 관교체는 자기가 검토하겠다더니 이 땜때기식방법을 모색한것 같았다. 리진은 떨리는 시선을 곧바로 쳐들었다.

《열복사실천정과 아치부분일체식화는 새로운 방법이라니 받아들일수 있겠지만 관교체문제는 심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

《지금 관들의 상태가 썩 좋지 않습니다. 로체안 곡관들만 교체하면 바깥곡관들의 물질흐름압력을 무시하는것으로 되지 않습니까. 그 곡관들도 적지 않게 부식되여 얇아졌으리라고 보고있습니다. 보수주기가 지나지 않았습니까.》

《여보, 동문 기술깨나 알면서도 어째 까박이요. 대보수기일이 지난건 사실이지만 장치마다 보수주기한계를 푼푼히 두고있다는걸 그래 동문 모른단 말이요? 우리 참모부에서는 얇아진 곳은 열과 압력을 더 세게 받는 로체안의 곡관들이라고 결론했소. 이건 열흐름물질관에서의 류체력학의 원리가 아니요. 기사장동지가 이 원리를 이번 로보수에 적용하기로 결심했소. 보오, 시대정신에 박동을 맞추면 이런 간단한 원리로도 얼마든지 예비를 찾지 않는가. 도대체 동무넨 하자는 사람들인지 모르겠거던.》

종섭의 마지막말마디들은 심히 자극적이였다. 리진은 더 반발하지 않았다. 그의 눈정기는 싸늘히 꺼지고 숨결은 무겁게 높뛰였다.

전주경은 로안팎의 원유흐름관실태를 모르기때문에 어느쪽이 옳은지 알수 없어 침묵할수밖에 없었다.

종섭은 눈살을 펴며 뒤를 이었다.

《어떻소. 이래도 15일안을 고집할테요?》

《정 그렇다면야… 좋을대로 해야지요. 참모부립장을 우리 동무들한테 알리겠습니다.》

리진은 수그러들었다. 그 어투와 거동을 봐선 땜때기식관교체에 공감한것은 아니였다. 그 어떤 강권에 마지못해 꺾이는 대답같았다.

전주경은 저녁 기사장실에서 하루사업총화가 끝난 후 작은아버지와 단둘이 있게 되자 로공들의 의견을 비쳤다.

《로공들은 로체안의 구부러든 관만 교체하는걸 반대해요.》

《허, 그 사람들 립장에서야 그럴만도 하지. 이 기회에 로안팎을 새옷으로 단장하고싶겠지. 하긴 누군들 기운옷을 좋아하겠니. 나도 욕심같아선 말짱 새관으로 교체하고싶다만 어느 세월에? 우린 3호로보수기일을 하루라도 앞당길수록 그사이 다른 로들에 걸린 만부하를 덜어 생산을 최대한으로 높일수 있고 페불리용시험도 착수할수 있거던. 그러니 가능한껏 빠른 길을 택해야 해. 최대한 빠른 길을 말이야.》

말가운데 전화종이 울렸으나 전준혁은 《빠른 길》이라는 말에 력점을 찍고서야 책상우의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전주경은 맞갖지 않게 받아들인 리진의 태도가 리해되면서 그가 공장적인 범위에서 문제를 봤더라면 참모부의견을 그다지나 애매하게 대하지 않았으리라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작은아버지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주경의 생각을 끊어놓았다. 무심히 전화를 받고있던 작은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터뜨린 웃음이였다. 성량이 풍부한 성대에서 울려나오는 호탕한 웃음은 마음속을 거짓없이 송두리채 드러내는 웃음이여서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기도 하고 또 영문을 모르고 따라웃게도 하였다.

전준혁은 흡족한 기분으로 대화를 끊고는 주경이한테 눈섭짙은 시선을 돌렸다.

《정무원(당시)에서 백금촉매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풀어주었구나.》

《백금이라니요?》

《계동무가 연구하는 촉매용백금 말이다. 촉매에 필요한 백금을 구입하려면 많은 외화가 들어야 한다. 금보다도 더 귀한것이 백금이니깐. 그래 우에다 도와줄것을 제기했더니 정무원에서 하도 중요한 대상이다보니 나라의 긴장한 외화를 풀기로 했다는구나. 참, 네가 연구소에 가면 계동무한테 이 소식을 알려주렴. 방금 화학공업부에서 기별이 왔다고 말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기뻐하겠니.》

《네, 그러지요.》

《오늘은 참 좋은 날이거던. 아침같아서는 기분이 되게나 잡쳤댔는데 이일저일 하나하나 풀렸단 말이야. 이래서 일할 멋이 있다는건가. 하하…》

전주경은 금시 노래가락이라도 흘러나올것 같은 작은아버지의 기분좋은 안색을 즐겁게 바라보다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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