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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11 장


1


계절은 산과 들에 풍요한 열매만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도 무르익히였다. 박오복의 잔치는 공장마을의 경사였다. 구름 한점없는 가을하늘에는 삶의 기쁨을 함뿍 머금은 해가 웃음가득 벙글어졌고 용수천물결은 무수한 은빛쪼각을 뿌려놓은듯 반짝이며 흘렀다.

용수천기슭에 들어앉은 집집들에서는 키작은 서방이 쭉 빠진 미인을 안해로 맞아들인다고 소문이 퍼져 남녀로소 떨쳐나서 새각시 오기만을 눈이 까매 기다리고있었다. 리진이 신랑신부를 승용차에 태워 시내를 얼마간 유람한 후 잔치집에 닿자 구경군들이 덮여 내릴수 없었다. 잔치집입구와 뜨락에 이르기까지 쭉 늘어섰는가 하면 경사진 둔덕집들에서는 아예 문들을 활 열어놓고 저마끔 목을 빼들고 바라보았다. 게다가 진붉은 백일홍이며 하얀 들국화며 코스모스꽃들을 꺾어든 장난꾸러기 애녀석들이 그 꽃송이를 새색시한테 뿌릴 맞춤한 자리를 고르느라 여기저기로 뛰여다니는통에 더 흥성이였다.

집안일을 거들던 승표가 뛰여나와 사람들을 헤집으며 노죽을 부렸다.

《자 자, 아주머님네들, 어서 길을 내이소, 곱디고운 새색시의 얼굴 보면볼수록 제 주제 밉상이라오.》

비위살 좋은 승표는 이런 일에선 능사였다. 아낙네들이 왁작 웃음바람을 일구며 길을 틔워주었다.

새각시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차에서 내렸다. 따뜻한 닭알색의 치마저고리로 단장한 그의 미모는 일시에 경탄을 자아냈다. 쭉 빠진 날씬한 몸매에 아련한 자태, 숫저운 몸가짐… 애들의 꽃이 날아들고 박수가 터졌다.

승표는 제창 새서방과 새색시를 마당 한켠에 서있는 한그루의 돌배나무쪽으로 데리고갔다. 새각시가 상받기 전에 결혼사진부터 찍을 잡도리였다. 마침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사진 채광도 좋았고 노란 배가 탐스럽게 주렁진 돌배나무배경도 아주 상징적이였다. 장차 많은 자식을 거느린 화목한 가정을 부부가 언약하는듯 한 인상을 두드러지게 할것 같았다.

그런데 돌배나무아래 땅바닥에는 한장의 벽돌을 고여놓은것이 눈에 띄였다. 키 작은 서방이 서게 될 자리인것 같았다.

리진은 보기가 민망스러워 승표한테 나직이 귀띔해주었다.

《저 벽돌장은 꼭 놔야 하겠나?》

《그럼 신랑을 바줄에 매여 허공에 들어올린다?》

승표는 대바람에 이죽거리며 아래가 퍼진 뭉툭한 코를 벌름거렸다. 입에서는 파냄새가 섞인 술냄새가 풍겼다. 리진은 꿰여진 소리를 즐기는 그에게 싸늘한 어조로 딱 잘라 말했다.

《오복동무한테는 그런 허식이 필요없네. 원래 제 모양대로 찍게 하세.》

《흥, 제법 훈시질인걸. 언젠가는 처녀앞에서 날 골탕먹이더니 오늘은 살뜰한 친구까지 망신줄려나. 숱한 사람들앞에서 말야.》

리진은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좋은 소릴 바랄수는 없었다. 보는 시점과 사고방식이 다른 이런 인간들과는 도무지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사진촬영이 시작되자 오복이 그 벽돌장우에 난딱 올라서는것이 아닌가. 리진은 제 눈을 믿을수 없어 슴벅이였다. 유쾌한 익살속에서도 진실만을 추구하던 오복이, 그때문에 그들사이는 흉허물없이 절친했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 진실도 어떤 보자기에 감싼 허울처럼 느껴지면서 승표한테 한방망이 얻어맞은듯 머리가 뗑해졌다.

어느결에 사진촬영이 끝났는지 승표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오복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애젊은 얼굴에 불깃한 홍조로 피여난 기쁨을 내내 숨기지 못하고있던 그의 기분이 다소 흐려있었다.

《용서하게, 리진이. 일이 좀 우습게 돼서 그랬네. 허허 참, 기가 막혀서. 우리 친구가 글쎄… 오늘 뒤축낮은 편리화를 우정 골라신지 않았겠나. 어때, 내 키가 한발은 더 늘어나뵈잖아?》

오복은 그답게 익살조로 넘기려 했으나 어딘가 어색스러웠다. 리진은 다시금 놀랐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잔치날 녀성이면 누구라없이 값지고 좋은것을 골라 치장하고싶으련만 오복의 안해는 서방보다 돋보일가봐 그 소박한 권리마저 일부러 단념했었다. 또한 안해의 그 애모쁜 심정에 마음을 맞추고싶어하는 오복의 마음도 후덥게 리해되였다. 리진은 잠시나마 친우를 오해했던 일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겼다.

《오복이, 자네가 부럽구만. 훌륭한 녀성과 일생을 걷게 됐으니… 열렬히 사랑해주게나.》

《고맙네. 승표도 리해하게. 그는 치마속에 감춰진 우리 친구의 신발은 보지 못했지만 모자라게 생긴 날 걱정해서 한짓이 아니겠나.》

《됐네, 자네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시한 일이니 맘놓게. 자, 어서 방에 들어가라구. 자네 친구가 홀로 적적해할텐데.》

다시 기분이 돌아선 리진은 선선히 오복의 잔등을 떠밀어 새각시방에 들여보냈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는 한 처녀가 떠올랐다. 언제나 행복한 래일을 그려볼 때면 자기곁에 세우군 하던 처녀! 아, 나도 이들처럼 행복의 열매가 맺기를 그리도 소원했건만… 리진은 깊은 숨결을 톺아올리며 비구름이 몰켜드는 저녁하늘을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애수의 구름이 가슴에 차오르며 마음이 썰렁해졌다. 그 허수한 마음은 오복의 부부가 그앞에 나타날 때까지 가셔지지 않았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오복은 안해한테 잔을 들려 그사이 리진의 수고를 떠올려 사례하였다. 리진은 사양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큰 잔에 부어주게.》

《하, 이건 독한 술이야. 자넨 이 한잔만 마셔도 숨질수 있어.》

《괜찮네.》

리진은 한껏 취하고싶었다. 그는 련거퍼 쓴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점차 눈앞이 흐리마리해지고 초점이 겹쳐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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