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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3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10 장


2


날이 훤히 밝았다. 더는 잠을 청할수 없었던 전주경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포개여 장안에 집어넣었다. 엷은 하늘색창가림천을 한쪽으로 밀어제치자 방안은 한결 더 밝아졌다. 아침노을빛이 울바자를 따라 촘촘히 들어선 키낮은 찔광이나무가지와 황이 오른 잎사귀들을 물들이며 발볌발볌 뜨락안으로 기여들었다.

주경은 방안출입문을 열고 뜨락에 나섰다. 시서늘한 대기가 페부에 스며들어 머리를 거뜬하게 하였다. 그는 마당비를 찾아들고 간밤에 뜨락에 널린 락엽들을 쓸어냈다.

《왜 벌써 일어났니? 좀더 눈을 붙일것이지.》

세면장창문을 약간 열어놓고 찬물로 몸을 씻던 전준혁이 밖을 내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생활을 절제있게 해가는 그는 어느 하루도 아침운동과 랭수욕을 번지지 않았다. 력기선수와 같이 울근불근한 근육, 어깨가 버그러진 장대한 몸에서는 허연 김이 서려돌았다. 피부빛도 철색이여서 쇠덩어리같은 거방진 몸에서는 왕성한 정력과 완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부리부리한 눈길과 시꺼먼 눈섭으로 하여 위엄기를 풍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주경은 세상에서 가장 자애롭고 선량한 모습을 찾으라면 아마 작은아버지의 위풍스런 생김새를 짚었을것이다. 그리고 작은아버진 자기가 바라는 소원이라면 말없이 고분고분 다 들어주어 대하기가 한결 편했다.

《작은아버지, 왜 그럴가요. 사람들은 국부도입안을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군요.》

주경은 지난밤 생각을 끄집어냈다. 부엌에서는 지짐판에 닭알튀기는 소리가 들리고 양념에 묻힌 고기굽는 냄새가 뜨락에 퍼졌다.

전준혁은 시뻘건 뒤잔등을 수건으로 부비며 심상히 물었다.

《누가?》

《리진동무도 그래, 강아저씨도 반신반의해요.》

《강비서는 기술을 모르니 그렇다치고 리진이야 그럴수 있나. 페불의 전량을 쓸수 없다는거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말이다. 아마 이번에 기술혁신조에서 빼놓은것때문에 심사가 꿰여져 그러겠지. 참 사람들이 돼먹기란 원, 공장에서 한다하는 두뇌를 밀어내치다니. 내 한번 리진이를 만나 풀어주련다.》

주경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작은아버지의 헌헌한 말들이 얼마나 고맙게 들렸던지 공장의 일부 편협한 참모일군들로 하여 마음쓰던 불쾌한 감정들이 봄눈 녹듯 다 녹아내렸다.

전준혁은 툭 불거진 앞가슴과 굵은 목대를 젖은 수건으로 문다지며 계속하였다.

《하긴 나도 처음엔 페불을 전부 리용할 궁리부터 했었다. 어떻게 하면 저놈의 페불을 중유로에 다 처넣을수 있을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짬짬이 과학기술문헌작업도 하고 몇달째 밤도 새우며 고심했었지. 일정한 가능성을 찾게 되니 흥분을 걷잡을수 없더구나. 그래 몇사람의 기술자들과 의논해봤는데… 다들 기연가미연가하는 태도야. 전량도입을 그렇게 단순히 리해해서는 안된다는것을 알면서도 어떤 가능성에 대한 유혹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세차게 흥분시켰지. 바로 그무렵이였다. 뜻밖에도 리진이 〈중유로에 페가스전량도입안〉의안서를 기술과에 제출하지 않았겠니.》

《그러니 그 동문 다른 지점에서 뛰여든 동업자였군요.》

《그럼, 그가 작성한 기술의안은 많은 면에서 내 생각과 비슷했댔다. 그것은 페가스전량도입안을 놓고 기웃거리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된 타격이였고 걷잡을수 없는 욕망에 빠져있던 나한테는 커다란 힘이였다. 난 리진의 안에 나의 연구자료를 더 보충하여 기술협의회를 열고 적극적으로 내리먹였다. 그제야 하나둘 지지해나서더구나.》

《호호… 머리를 익히면 코랑 눈이랑 귀랑 다 익기마련인걸요.》

주경은 작은아버지의 완력에 사람들이 어쩔수 없었을거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전준혁은 부질없는 관료를 부렸던 그날의 협의회광경을 더듬으며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를 그었다.

《헌데 시험이 난사였다. 시험로가 따로 없으니 생산을 죽이더라도 현장중유로 하나를 뚝 떼여 시험로로 쓸수밖에. 물론 난 첫 시험에서 성공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다만 용적이 크지 않은 중유로안에서 다량의 폭발가스압력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그리고 가스의 파동상태를 고찰하고싶었을뿐이다.》

《실패하리라는것을 알면서도 시험했다는거겠군요. 리진동무도 같은 생각이였어요?》

《그 친구는 아마 거의나 확신한것 같애. 내가 모르게 두번째시험을 한걸 보면.》

《미리 알려줄걸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시험에서 주인을 잃게 돼. 실패를 전제로 했을 땐 모든 준비가 치밀하지 못하거던. 나한테는 완전무결한 준비속에서 진행된 시험결과가 필요했던거야. 그런데 시험결과는 나의 예상을 여지없이 뒤집어놓았지. 실오리같은 희망조차 가질수 없게 탕쳐놓았단 말이다.》

(그 동문 시험의 주인공으로 희생물이 됐겠군요.)

주경의 혀끝에서는 이런 말이 맴돌아쳤다.

《사고심의회가 심각했는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기로 했다. 다행히도 회의를 주관하던 지배인동무가 처음 해보는 일에 왜 손실이 없겠는가고 결론하는 바람에 나도 그도 무사히 넘겼지만… 어쨌든 난 그 시험을 통하여 페불전량을 중유로에 먹일수 없다는 과학적답을 찾게 됐다. 그런데도 리진인 내가 해외출장간 사이 또 달라붙었다가 그 꼴이 됐거던.》

주경의 생각은 착잡해졌다. 작은아버지가 찾은 결론은 의심할바없이 옳았다. 전량도입의 불가능성을 체험을 통하여 직접 알게 된만큼 국부도입이야말로 가치있는 발명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시험결과에 대한 환상적인 꿈만을 갖고 달라붙은 리진을 작은아버지가 리용한것 같은 께름한 생각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전량도입이냐 국부도입이냐 하는 실무적인 문제를 초월하는 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내포되여있는듯 속이 개운치 않았다.

세 식구(전준혁의 딸애는 대학재학중이여서 집을 떠나있었다.)는 아침밥상에 마주앉았다. 삼촌엄마는 주경의 밭은 식성을 고려하여 여러가지 찬들을 상에 차려놓았다. 주경은 잠을 설친탓인지 입맛이 돌지 않아 수저를 들었다놓는 시늉만 해댔다.

전준혁은 식사를 마치자 제창 아침출근차비를 서둘렀다. 그는 옷장에서 진곤색의 잠바를 벗겨 걸치면서 주경을 찾았다.

《너도 잘 알지만 지금 열에네르기문제는 전인류적인 관심으로 되고있잖느냐. 누가 더 많은 열원을 갖고있는가에 따라 그 나라 경제력은 물론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할수 있지. 때문에 지금 인류는 두가지 운동, 이를테면 고갈되여가는 화석연료(석탄이나 원유)를 떠나 새로운 열원을 개발하기 위한 운동과 함께 현재 쓰고있는 열을 최대한 효률적으로 리용하는 과학기술운동을 심화시키고있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시도하는 페불국부도입의 가치를 짐작할수 있잖겠니. 지난번 난 원유공업에서는 제노라하는 나라에도 가보았지만 거기서도 페가스는 굴뚝을 세워놓고 몽땅 태워버리더구나. 아직 그 불에는 인류의 지혜가 미치지 못했어. 세상을 놀래울 박사학위가 그 불에 숨어있거던. 누구나 아까와 탐내면서도 태워버려야 하는 저 불가사의한 그림의 떡을 우리가 단 한점이라도 떼여먹는다면… 그래 이건 세계에 대고 대포를 쏘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또 이야말로 당에서 준 과업을 실천적으로 담보하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말이다.… 난 네가 이번 기회에 아직 난문제들이 많은 국부도입안을 네 힘으로 완성하여 현지말씀도 관철하고 원유가공학계를 뒤흔들 공학박사학위도 준비했으면싶구나. 꿩먹고 알먹고. 허허… 난 이것이 너의 리념으로 되기를 바란다. 자기 리념에 충실한 사람은 사회앞에 지닌 사명도 보다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거던. 얘야, 우린 한시도 조국을 위해 장렬한 최후를 마친 너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라의 연유창을 지키고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 오늘은 집에서 푹 쉬거라. 요즘 지내 무리한것 같애. 밥도 잘 먹지 않는걸 보니.》

전준혁은 이런 말을 남기고는 가방을 들고 문밖으로 멀어져갔다. 작은아버지의 뒤모습을 창너머로 바라보고있던 주경은 《나라의 연유창》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가슴을 쿵 쳤다.

작은아버지가 이 말을 또 언제 했더라?… 부지중 눈앞에 펑펑 쏟아져내리는 눈송이, 거리와 가로수들, 학교지붕에도 눈이 내린다. 주경은 동무들과 눈싸움을 하면서 학교에서 돌아오고있었다. 그는 오늘 무등 기쁘기만 했다.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상급학교지망란에 《교원대학》(당시)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 이런 눈싸움도 하면서 명랑하게 살고싶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작은아버지가 무거운 안색으로 기다리고있었다. 작은아버지는 그를 불러앉히고 자못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얘야, 전쟁시기 너의 아버지는 자그마한 연유창을 지켰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전시수송차들에 기름을 공급해주다 희생되였다. 너의 아버지를 죽인것은 미국놈들이고 물리적으로 보면 열폭발이다. 미국놈들은 열로 인간살륙의 무기를 만들지만 우린 그 열로 나라의 경제를 부강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국놈들을 이기는 길이고 아버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차 이 땅에 서게 될 나라의 대연유창을 지켜야 한다.…》

그날의 그 준절한 깨우침이 자기 희망의 리정표를 돌려놓았고 녀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열공학계통에 뛰여들게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페불국부도입안을 통하여 가슴속에 깊이 묻어둔 푸른 꿈마저 헤아려주는 작은아버지!… 열공학계통의 박사학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이고 아름벅찬 환희였다. 주경은 이 순간 지식인의 일생은 명예의 탑을 쌓는 과정처럼 인식되였다. 돈으로도 재부로도 살수 없는 그 값높은 경지에 오를 날은 과연 언제일가?…

작은아버지는 바로 나의 그 명예를 위해 자기의 피땀과 고심이 깃든 연구자료들을 서슴없이 내주고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주는 사랑하는 작은아버지! 나는 왜 잠시나마 작은아버지의 국부도입안을 의심하려 했을가? 난 몹쓸 계집애, 혈육의 정도 은혜도 모르고 사는 맹추, 공기가 없으면 한순간도 살지 못하면서도 그 덕을 모르고 지내는 무골충… 하지만 마음은 왜 이다지도 개운치 못할가. 정말 리진동무가 반대하는 까닭은 꿰여진 심사때문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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