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0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9 장


1


강대철은 아침에 출근하자바람으로 전화로 직장장한테 리진의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인입문제가 해결되였음을 알리고 그를 첫 시간에 분초급당에 보내달라고 일렀다. 그런데 한식경이나 기다려도 리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용한 장소에서 그한테 이번 전투의 의의며 공장책임일군들의 기대와 믿음이며를 일깨워주어 한시각이라도 빨리 그가 심리적고충을 덜기 바라서였다. 직장장도 바라던 일이여서 쾌히 응했다. 그런데 짬을 내지 못한걸 보니 바쁜 일이 제기된듯싶었다.

하지만 강대철이 리진을 찾아 현장을 돌아본 후 3호로작업반생활실에 들어갔을 때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생활실장판바닥에 리진이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었다. 문소리에 눈을 뜬 그는 자리에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왜 몸이 말짼가?》

《아니, 괜찮습니다.》

《동문 찾는 소리를 들었소?》

《직장장동지가 찾아와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

《왜 기술혁신돌격대가 맞갖잖은가?》

《거긴 제가 할 몫이 없습니다.》

리진의 말투는 뻣뻣하고 말속에는 록록찮은 뼈가 있었다. 처음 강대철은 리진의 둥싯한 얼굴을 찬찬히 살피기만 했다. 그가 던진 말이 엇드레질같아 아직 강대철의 가슴에 스며들지 않았다.

《정말입니다. 난 현장에서 그냥 일하겠습니다.》

리진은 또 한번 자기의 결심을 강조했다. 순식간에 피가 확 몰켜드는 강대철의 관자노리에 대뜸 불깃한 반점이 살아오르고 눈에서 불꽃이 벙긋 튕기였다. 가슴밑창에서 욱 일어번지는 성칼이 어느결에 돌덩이같은 주먹이 되여 원탁을 쾅 내리쳤다.

《너 이놈! 거기에 뭐 내 몫, 네 몫 따로 있어? 그래 입에 달면 먹고 쓰면 뱉을테야? 네 이제껏 페불이요 뭐요 하며 납뜬게 제 먹을알을 노렸댔군. 그런줄도 모르고 나라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네 가슴이 상할가봐 다른 사람, 기사장이 비판무대에 서고 책벌까지 받았단 말이다. 에익, 이 배은망덕하고 저밖에 모르는 놈!》

《뭐, 내가 저밖에 모른다구요?》

《그렇다. 덜된 녀석!》

왝왝 고함을 지르는 강대철의 분격은 생활실을 뒤흔들었다. 지금까지 그의 일신상의 문제를 마음써오던 자신보다도 난생처음 비판무대에 나서 엄한 책벌까지 받으면서도 그를 끝까지 페불연구의 기둥으로 내세워준 기사장을 배신한것이 더 분했다.

리진은 무엇이라 말할듯 입술을 부르르 떨다가 머리를 떨구었다. 얼핏 쳐다보는 어두운 두눈에는 번쩍하는 물기가 어렸다.

강대철은 더 말할것 없이 홱 돌따서 그 걸음으로 현장길에 나섰다. 한바탕 신경이 곤두섰거나 번거로울 때면 현장을 한바퀴 돌아보는것이 습관이기도 하였다. 그러느라면 휘발유처럼 확 타올랐던 가슴속 불이 꺼지고 진정되여 마치 마구 휘저어놓았던 감탕물이 차츰 맑은층과 앙금으로 구별되듯이 생각이 명료해졌다.

야외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있는 정류직장은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탑들과 덩지가 우람찬 중유로들, 얼기설기 뻗은 배관들, 크고작은 수백수천개의 발브들과 뽐프들, 열교환기와 랭각기들로 이루어진 공장의 심장부였다. 여기서 휘발유, 디젤유, 윤활유의 초류분들과 아스팔트원료가 생산되였다. 공정안은 중유로바나에서 뿜어대는 화염과 뽐프들이 기름찧는 소리, 배관속으로 흐르는 원유와 고압증기소음으로 귀가 멍멍할 지경이였다.

(참, 기사장동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뭐라겠는가. 리진이 그녀석때문에 곤경이 오죽했는가. 그러면서도 주경이와 쌍벽을 이루기를 바랐고 서로의 결합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거던. 흥, 그따위 녀석한테 주경이 맞아? 천만에! 아직 현장단련이 부족해.…)

리진의 기술혁신돌격대포기가 진실로 페불속에 제가 할 몫이 없다는것으로부터 출발했다면 이야말로 아주 변질된 위험한 사상이였다. 혹시 더는 모나게 살지 말라고 이른바 착순이처럼 되기를 바라는 유선림의 권고에서 출발한것이라면… 그러나 방금 자기앞에서 부르르 떨던 그 입술, 유순한 눈속에서 번쩍거리던 물기, 머리를 떨구던 거동…

《아바이, 너무합니다. 내가 어떻게 저밖에 모르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수 있단 말입니까. 이 가슴속에 무엇이 타고있는지 한번 헤쳐보란 말입니다!》

리진의 표정들은 분명 이런 말을 하는것 같았다.

조작실앞을 가까이하니 안에서 로공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언제봐야 3호로작업반원들의 휴식참에는 웃음이 일군 하는데 그 웃음주머니는 박오복이 갖고있었다.

강대철은 방금 자기한테 욕을 들은 리진은 저들 웃음과는 다른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혀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그 웃음소리가 여느때없이 달갑지 않았다.

그가 조작실에 들어서자 뭔가 손세를 써가며 이야기에 열중하고있던 오복이가 입을 다물었다. 로공들도 밝지 못한 기색의 강대철을 살피더니 주섬주섬 일어나 제일에 달라붙었다.

승학이 알릴듯말듯 반색하며 마주왔다. 말이 적은 그는 그런 식으로 인사를 굼땠다.

《반장동무, 나 좀.》

강대철은 사람들의 눈길이 덜 미치는 조작실창문아래 장의자에 먼저 앉으며 승학을 옆자리에 권했다.

《리진이가 페불에서 손을 떼겠다는 사실을 알고있소?》

《?!…》

승학의 고동색얼굴이 긴장해졌다. 그는 한동안 침묵하다 도리질을 하였다.

《그럴수 없습니다. 요전날 페불과 관련하여 비서아바이가 따로 과업을 주겠단다고 했더니 몹시 흥분해하던데요. 그리고 저 밖의 속보판을 보십시오. 저기 페불을 아버지들의 심장의 불길로 본 학생의 그림앞에서 머리를 쳐들지 못한 사람이 그 동무였습니다. 기술자로서 아이들앞에 죄를 짓고있다고 말입니다.》

《아니요. 그 동문 페불에서 제 몫을 찾고있소. 페불을 어떤 개인의것으로 여기는 거기에 그 동무의 본심이 있는것 같소.》

승학은 더 입을 열지 않았지만 강대철의 립장을 긍정하는 기색은 아니였다. 그는 신중한 생각끝에 뒤를 이었다.

《그가 페불에서 자기가 맡아할 몫이 없다고 하지 않습디까?》

《거기에 무슨 내 몫, 네 몫 따로 있단 말인가?》

《그 동문 페불의 국부도입에 불만을 품었으니까요.》

《국부도입이라니?》

《기술참모부에서 페불리용방향을 결정했는데 페불의 전량이 아니라 그 일부만을 도입하기로 했다는것 같더군요.》

《그게 정말이요?!》

강대철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70일전투기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주신 현지말씀을 관철하겠다고 결의한것이 페불의 전부를 리용하는것이 아니라 그 일부만을 도입하겠다고 한것이란 말인가? 그이의 뜻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우리 로동계급의 태도와 립장은 마땅히 그 말씀을 최상의 수준에서 관철해야 할것이다. 바로 그이께서도 우리 로동계급의 그와 같은 자세와 립장을 믿으셨기에 세계가 그림의 떡으로 보고있는 절대불변의 페불을 리용해볼 용단을 내리신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페불의 일부라니?… 강대철은 여기에는 필경 그로서는 미처 헤아릴수 없는 심오한 과학기술적문제와 예측할수 없는 난관 그리고 오묘한 인간문제가 깔려있을것 같은 예감이 어슴푸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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