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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8 장


3


그들 포병대대는 오후 5시까지 《번대수리》에 직사포를 배비할 전투명령을 받고 고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도중에 적비행대의 기습을 예견하여 힘겨워도 포와 탄약들을 위장할수 있는 길없는 산중을 질러가기로 하였다. 탄약을 등에 짊어진 포병들이 포들을 바줄에 매여 끌며 밀며 간난신고끝에 고지에 닿았으나 《번대수리》는 여전히 적들의 수중에 있었다. 전략적요충지인 《번대수리》에 도사리고앉은 적들은 곳곳에 화점들과 반공격차단물들을 쳐놓고 아군보병부대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있었다. 고지는 적아간의 공방전으로 불바다속에 잠겼고 죽음의 휘파람과 같은 무시무시한 철의 파렬음만이 꽉 차 끓었다.

포병대대는 일부 력량을 떼여 고지탈환전투에 진입한 보병들을 도와나서기로 결정하였다. 명령받은 5시까지 고지를 타고앉자면 시간이 박두했다.

지원전투대오의 지휘는 포병소대장이던 강대철이 맡고 림시당세포는 정치부중대장이 책임졌다. 대철은 보병지휘관으로부터 적의 뒤통수를 답새길 임무를 받은 후 제창 대오를 고지후면으로 은밀히 접근시켰다.

완만한 기복을 이룬 곬을 따라 산개되여 전진하던 대오가 고지중반쯤에 닿았을 때였다. 별안간 총탄이 우박치듯 쏟아져내렸다. 박격포탄도 연방 날아와 터졌다. 대오는 전진을 멈추고 땅과 한동아리가 되여버린듯 얼어붙고말았다. 까딱 움쩍거려도 적들의 몰사격이 벼락쳤다.

대철은 재빠른 눈길로 전투원들을 하나하나 일별했다.

보병전투경험이 없는 포병들은 저마끔 머리를 틀어박고 얼굴을 치여들념을 못했다. 옆에 엎드린 전사의 허벅다리가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불의에 닥친 드센 타격에 대오에는 공포비슷한 전률과 섬찍한 좌절감이 엄습한것 같았다. 싸움에서 공포는 패전의 첫걸음이였다. 때문에 전선에서 매 전사는 자신의 공포와 먼저 싸우게 된다. 공포를 이겨낼 때만이 비로소 무적의 용맹이 생기는것이다.

그러나 모든것이 얼어붙고 좌절된 이러한 경우에는 지휘관의 명령은 하나의 강박으로 들릴뿐이다. 대철은 어떻게 결심했으면 좋을지 눈길로 정치부중대장을 찾았다. 얼마쯤 떨어진 곳에 한옆으로 엎드려 부시럭거리는 그가 눈에 띄였다. 그는 안경을 벗어들고 유리알에 묻은 흙먼지를 훌훌 불어내는데만 옴해있을뿐 이 긴박한 정황에는 무관한 표정이였다. 웬일인지 그의 눈확이 어웅하게 곯아 딴사람같았다.

대철은 저윽 실망하여 다시 머리를 돌려 적정에 틈이 생길 기회만을 노리였다. 적들은 기세등등하여 박격포탄을 쉼없이 날렸고 기관총련발사격도 멈추지 않았다. 대철은 가슴이 바질바질 타들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는 5시는 고사하고 떼죽음을 당할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숨죽은 대오를 일떠세워야 하였다.

그는 숨막히게 꽈악 짓누르는 압박감에 반발하여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자기를 쏘아보는 피빛같은 눈길과 마주쳤다. 정치부중대장의 어룽어룽한 안경이 무섭게 번뜩이며 불을 내쏘고있었다. 질책과 노여움, 엄한 꾸중이 한데 엉킨 눈빛이였다. 그 눈빛은 대철의 가슴속에서 끓는 무분별을 후려치는듯싶더니 이내 부드럽게 끔벅하였다. 대철은 다시금 전방에 눈길을 돌렸다. 박격포탄이 새된 폭발음을 지르며 엎드린 포병들의 머리와 잔등에 화염을 들씌웠다.

그때 누구인가 포연이 자욱한 고지 오른쪽계선을 향해 재빨리 포복전진해가는 거동이 얼씬거렸다. 정치부중대장이였다. 아니, 저런! 거긴 놈들의 화력이 집중된 쏘구역인데… 대철이 제지시키려고 소리치려는 순간 그의 몸이 불쑥 솟구쳤다. 그다음 그냥 앞으로 냅다 달리였다. 놈들의 사격이 그한테로 쏠리였다. 이윽고 퍼그나 떨어진 곳에 우뚝 멈춰선 그는 반땅크수류탄을 쥔 손을 쳐들고 무어라고 웨치였다. 하지만 분명치 않는 소리가 목안에서만 끓었을뿐 들리지 않았다. 흉탄이 퍽퍽 꽂히는 몸을 겨우 옆으로 꺾은 그는 대철이쪽으로 안경을 치여들었다. 그 최후의 눈빛은 이 시각을 놓치지 말라는 곡진한 당부와 절박감을 담고있었다.

대철은 강렬한 힘이 자기 몸을 떠박지르는 충격과 함께 비장하고 격렬한 열기에 휩싸여 땅을 박차고 일어나 돌격구령을 웨쳤다. 숨죽은채 정치부중대장의 장렬한 최후를 목격한 대오는 일시에 복수로 끓는 피의 분화구를 터치며 와 일어났다. 포병들은 순식간에 성난 사자로 변했다. 피의 불덩이를 안은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사납게 육박해갔다.…

자기의 희생으로 좌절된 대오에 무비의 힘을 주어 승리의 돌파구를 열어놓은 정치부중대장! 그는 한몸이 그대로 돌격의 기수, 승리의 기발이였다.

(아, 그러니 나의 정치부중대장이 다시 환생하여 우리 기사장이 된게 아닌지.… 전투마당에서 날 구원하고 전대오를 일떠세운 그 사람… 오늘은 기가 죽은 리진이를 살펴주고 가쁜숨을 몰아쉬는 공장을 70일전투승리에로 이끌어가고있지 않는가.… 주경이와 리진이 쌍벽을 이루면 일을 칠거라고? 암, 치구말구. 그 애들이 누구들이라구. 기사장이 면바로 봤거던. 허허… 엉큼하기란. 애들의 융합을 이미 마음속에 바라고있을줄이야…)

강대철은 갑자기 눈앞이 확 부셔 걸음을 무춤했다. 전조등빛이 등뒤로부터 비쳐왔다. 그의 곁으로 미끄러져나가던 승용차가 몇발자국앞에서 멈춰서며 뒤문이 열렸다.

《비서동무, 타시오.》

전준혁이 상반신을 반쯤 내밀고 내다봤다.

《아니, 괜찮수다.》

《정류직장에 나가는 길입니다.》

《우리 직장에요? 원, 오늘이야 집에 일찍 들어가면 큰일나겠소? 렬차로독이 이만저만하지 않을텐데.》

《3호로가 안심찮아 그럽니다.》

강대철은 기사장옆자리에 들어앉았다. 강대철은 기사장의 쉬임없는 정력에 탄복하면서도 자기 직장이 일을 쓰게 못해 그의 걱정을 덧궂힌 자책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준혁은 차가 움직이자 딴말을 꺼냈다.

《비서동무 보기에는 우리 주경이가 어떻습니까?》

강대철은 무심한 그 물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 눈만 슴벅이였다. 전준혁의 가늘게 좁혀진 눈귀에는 미소가 넘실거렸다. 혹시 이 어른이 주경이와 리진의 관계를 알고싶어 그러는것은 아닌지.…

강대철이 잠자코 있자 전준혁은 다시 이었다.

《애가 장차 나라의 과학기술중역이 될것만은 틀림없지만 그새 학문에 전심하다나니 녀성다운 멋은 없을겁니다.》

《난 되려 처녀시절에 공부를 많이 한 녀성들이 더 고상하고 돋보이더구만.》

《그럴수도 있겠지만 학문형의 녀자들은 대체로 집안살림살이를 소홀히 한다는데 애가 시집가면 안해구실도 구실이지만 시부모를 잘 모셔내겠는지 걱정되는군요.》

《그건 주경일 다 모르고 하는 소리같구만. 난 그 앨 아이적부터 잘 알지만 그런 측면에서 의심한적은 한번도 없었소. 그리고 학문형의 녀성일수록 가정을 리상적으로 꾸릴거라고 믿소.》

(기사장이 어째서 주경의 인격을 일부러 허물어 내 진속을 알려고 할가. 주경이와 리진이사이에 다리를 놔주기를 바라서가 아닐가?… 이게 꿈아닌 현실이라면 리진이와 그의 가정은 얼마나 행복할것인가!)

《그래 주경이한테 맞춤한 자리가 생겼수? 내 주경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리다. 허허…》

《아니, 그런건 아닙니다. 비서동무가 우리 주경이를 높이 사주니 맘이 놓입니다.》

전준혁은 더 말하지 않고 눈으로만 웃었다. 그 미소는 시꺼먼 량눈가로 퍼지더니 넓은 이마와 얼굴전체로 물결쳐갔다.

승용차가 정류직장공정길에 들어서자 화염이 이글거리는 3호중유로의 우람찬 동체가 눈앞에 다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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