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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18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8 장


2


강대철은 불빛이 훤한 기사장방대기실에 들어섰다. 크지 않은 대기실에는 한사람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정양소장 서윤정이였다. 녀인도 문소리에 얼굴을 치여들다 다소 놀란 기색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같은 공장이여도 자주 만나지 않았다. 맡고있는 사업분야가 서로 달라서였다.

《아, 소장동무구만.》

《오래간만이예요.》

서윤정이 미소를 담고 반가운 어조로 받았다. 그러면서도 강대철이 앉기를 기다려 두손을 앞에 포개고 그냥 서있었다. 보기 좋은 부한 몸에 후렁한 미색작업복을 걸친 40대중반기에 이른 녀인의 몸가짐은 정돈되고 점잖았다.

《그런것 같소.》

강대철은 긴 쏘파 끝머리에 앉으며 좀 뚝한 소리로 뇌이였다. 얼핏 그의 뇌리에는 서종섭의 랭랭한 얼굴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을 이내 털어버린 그는 마음의 눈으로 서윤정을 살피였다.

(아직 쇠자면 멀었어. 나이를 먹어가도 비맞은 푸성귀처럼 싱싱하거던. 그런데두 뭐 어머니라구 불러?… 모두 눈이 곯았지, 곯았어.)

《그래, 기사장동문 방에 있소?》

《평양에서 오시자마자 기술참모회의를 소집했군요. 인츰 끝날것 같애요.》

서윤정이 쏘파 다른쪽끝에 자리를 잡았다. 강대철은 앞탁에 놓인 웬 종이말이에 눈길을 던지며 다시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강냉이변성국수기계설계를 도설계사업소에 가 떠왔는데 기사장동무의 비준을 받아 공무직장에서 가공할려구요.》

《강냉이변성국수?》하고 되받아 뇌이는 강대철은 이 녀자의 새라새로운 구상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요전날에는 찔광이단졸임을 생각하더니…

서윤정은 상대가 자기 말에 관심을 나타내자 거침새없이 내리엮었다.

《잘 변성된 강냉이국수는 발이 가늘고 질겨 농마국수보다 오히려 그 맛이 더 좋습니다. 우리 취사원들이 지난 여름 옥류관에 가서 육수물조리법을 배워왔으니… 우리 정양소 국수맛이 좀 달라질거예요.》

《음, 그러니 정양소에 옥류관을 꾸릴셈이군.》

《옥류관이요? 호호… 못할게 뭐 있어요. 국수발과 육수물이 해결되고 거기에 육고기꾸미를 듬뿍듬뿍 받쳐주면 안될가요? 호호… 비서동무도 맛보러 오세요.》

《내야 언제 그럴새…》

《아니, 점심시간이면 될텐데요 뭐.… 참, 부인의 건강은 좀 어때요?》

서윤정은 좀처럼 정양소에 나타나지 않는 그한테 부질없는 요구를 한것 같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한편 강대철은 이 녀자의 느닷없는 물음이 여느 사람들의 노상 묻는 안부처럼 여겨져 아무 생각없이 심상히 대답하였다.

《아주 좋아졌소. 최근에 나온 항생제로 강타했더니 예상외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오.》

《아, 그래요. 그 참 기적이군요!》

서윤정은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웨침 비슷한 탄성을 질렀다. 얼굴에는 놀람과 기쁨이 번쩍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기사장방문이 열리면서 회의참가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서윤정이 옷매무시를 여미며 권했다.

《비서동무, 먼저 들어가보세요.》

《아니, 난 좀 시간이 걸릴것 같소. 기사장동무와 진지하게 의논해야 할 일이요. 어서 먼저.》

강대철이 굳이 사양하였다. 실지 그는 사람문제를 의논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릴것으로 타산하고있었다. 딱한 기색을 짓던 서윤정은 실례한다며 앞탁에 놓았던 도면말이를 들고 기사장방으로 사라졌다.

(빌어먹을, 서종섭이와 그 일가들은 왜 그 모양일가? 서윤정의 기색을 봐선 아무렇지도 않은데… 헌데 윤정인 어째서 안해의 병에 차도가 있다니 그리도 놀라했을가, 기뻐한것 같기두 하고…)

대기실에 홀로 남은 강대철은 방금 서윤정의 밝고 반가와하는 표정들을 다시금 더듬으며 서종섭이네들의 태도가 리해되지 않았다.

강대철이 기사장을 만나 풀어야 할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있는데 전준혁이 서윤정을 앞세우고 대기실로 나왔다.

전준혁은 너부죽한 얼굴에 시꺼먼 눈섭을 움쩍이며 환한 미소로 강대철의 손을 잡았다.

《비서동무, 마침 오셨소. 앞으로 옥류관국수생각이 나거들랑 우리 정양소에 신청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자 우린 70일전투를 앞두고 비서동무네 정류직장 3호로대보수문제를 토의했는데 아마 주야전투를 들이대야 할것 같습니다. 그 대보수로력들의 현장식사를 이 소장동무가 맡겠다고 합니다. 전투원들이 사기나 할겁니다. 노래에도 있듯이 뭐니뭐니해도 먹어야 힘을 내니깐. 하하…》

《아이참, 너무 춰주지 마세요. 응당한 일인데. 비행기를 태울 나이도 이젠 지났답니다.》

서윤정은 점잖게 사례하였다.

서윤정을 바래준 전준혁은 강대철을 자기 방으로 안내하며 그냥 말을 이었다.

《참, 앞을 내다보면서 일할줄 아는 녀성이지요.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종업원들의 문화정서적인 생활과 식생활을 부단히 개선할데 대한 당의 뜻을 받들고 이미 취사원들을 옥류관에 견습보낸걸 봐도 그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려고 애면글면 애쓰는걸 봐도 그래… 배울만 한 일본새지요.》

기사장방은 광실처럼 넓었다. 여러대의 전화기가 주런이 놓인 흑갈색량수책상앞으로 같은 색갈의 긴 앞상을 두개 이어붙였다. 한쪽면을 차지한 책장들과 서류함들, 창곁에는 갈비뼈모양의 이파리를 풍만하게 펼친 몬쓰테라화분이 놓여있어 무게있게 장식된 방안을 푸르른 운치로 돋구었다.

창문의 벽에는 《모두다 70일전투에로!》라는 구호가 걸려있었고 그 아래에는 흘림체로 《속도전》, 《전격전》, 《섬멸전》이라고 쓴 족자가 드리워져있었다.

강대철은 어느새 벌써 전투분위기로 화한 기사장방의 공기를 호흡하며 생산현장의 전투적인 직관선동도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전준혁은 습관대로 앞탁이 있고 옆차대가 붙은 벽면 쏘파에 강대철이와 나란히 앉았다. 그는 회의나 공식적인 사업을 제외하고는 찾아온 손님들과 대체로 쏘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는 상대로 하여금 자기의 사업권위나 직위로 속박감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좋은 품성이였다.

강대철은 그와 자리를 나란히 하자 먼저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 이번 출장길에 욕을 많이 봤겠수다.》

《허어, 난생처음 비판무대라는델 나서봤습니다. 어지간히 진땀도 빼고 엄한 책벌도 받았구요.》

씁쓰레 웃어넘기는 전준혁의 너부죽한 얼굴이 벌거우리해졌다.

강대철은 어떻게 위로했으면 좋을지 버릇대로 제 상고머리만 쓸어만졌다.

《안됐구만, 기사장동무가 도맡아안게 됐으니.》

《책임이야 응당 내가 져야지요. 기사장이 공장의 전반기술문제를 책임지지 않으면 이 자리가 뭣때문에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무슨 일을 치겠습니까. 난 70일전투기간에 기업소가 잃은 손실도 메꾸고 때벗이도 하겠다고 결심을 다졌습니다.》

강대철은 헌헌하고 호방스러운 전준혁의 태도에 저윽 긴장이 풀어졌다. 준혁은 인정이 무르면서도 사업에서는 결단성이 있었다.

《이번 출장길은 그렇다치고… 오히려 믿었던 이 공장이 날 아프게 맞아줄줄은 몰랐군요.》

전준혁은 이마에 주름을 모으며 못마땅한 기색이더니 어처구니없는 선웃음을 쳤다.

《우리 사람들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압니까? 하, 글쎄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가 그 무슨 특수한 조직이라고 사람들을 골라골라 넣지 않았겠습니까. 제일 노란자위나 다름없는 리진이도 빼놓으려고 했단 말입니다. 뭐, 나한테 피해를 입힌 장본인이기때문에 그렇게 했다나요. 얼마나 속통머리 좁고 메마른 인간들입니까. 설사 내가 그 일때문에 철직된다 해도 내가 뭡니까, 내가! 한사람이라도 두뇌진을 긁어모아 이번 전투에 나서도록 해야 할 대신… 어떻게나 속이 뒤집히는지 도착하자마자 문제를 되게 세워 달구었더니 저마끔 잘못했노라 하더군요. 아래사람들 교양에 등한한 내탓도 있지요. 리진이 그 사람 또 얼마나 타격을 받았겠습니까. 나도 만나보겠지만 비서동무가 잘 말해주십시오. 하, 이거 내 말만 말이고 그래 뭣때문에 오셨습니까?》

《내 용무는 끝났수다. 다 풀렸습니다. 하하하…》

강대철은 전준혁의 손을 덥석 잡고 시원한 웃음을 터쳤다.

잠시 어정쩡해있던 전준혁이도 영문을 알아맞혔는지 따라웃었다.

《그래서 비서동무가 걸음을 걸었군요. 난 믿습니다. 페불은 우리 주경이와 리진이 쌍벽을 이루어 달라붙으면 문제없을겁니다.》

강대철은 기사장의 그 믿음에 찬 확신에 온몸이 금시 달아올라 뜨거운 시선을 그한테서 떼지 못했다. 이런 대범하고 웅심깊은 도량에는 리진의 아버지 내막이 아니라 설사 칼을 품은 원한일지라도 죄다 용서되고말것이였다. 강대철은 리진이와 주경의 결합을 두고 속을 썩인것이 늙은이의 로파심처럼 여겨졌다.

전준혁은 눈빛이 열정으로 타올라 계속하였다.

《참, 내가 제일 반가운 소식을 잊었군요. 우리가 70일전투목표에 두배로 장성할 연유생산과 함께 페불을 잡겠다는걸 쪼아박았더니 부에서는 이번 전투를 몸소 지휘하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요?》

《공장의 일부 사람들은 과연 이 짧은 기간에 페불을 리용할수 있겠는가고 의심하지만 70일전투자체가 우리 경제가 처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변시키시려는 친애하는 그이의 결단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페불을 그런 관점으로 대한다면 뭐가 두려울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장당비서동무와 지배인동무랑 전화로 합의하고 결심했습니다.》

《거 참, 친애하는 그이께서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소.》

《아마 다음주 공장일정에는 70일전투중심과업을 놓고 공장당확대회의가 있을겁니다.》

역시 대틀이고 배짱센 일군다운 결단이였다. 그는 절대로 난관에 위축될줄 몰랐으며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역행시킬줄 아는 과단성으로 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더우기 공장의 크고작은 기술관리사업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고 그를 끝까지 책임지는 립장이야말로 우리 경제지도일군들이 갖추어야 할 작풍이기도 하였다.

기사장방을 나서는 강대철의 걸음은 가벼웠다. 요전날 이 청사를 나설 때에는 무거운 기분에 동상입었던 발까지 저려났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꼭같거던, 신통해.》

자주색페불빛이 누비는 구내길을 걷는 강대철의 입에서 불쑥 튀여나온 말이였다. 전준혁의 인간됨에 저윽 감동된 강대철은 그를 통하여 환기된 다른 사람, 전우이면서도 생명의 은인인 한사람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서물거렸다. 생김새는 판판 달라도 어쩌면 됨됨은 그리도 신통한지…

잊지 못할 전우의 모습을 더듬던 그의 귀전으로는 돌연 자지러진 총성이 울리고 눈앞에는 작렬하는 포탄과 불그레한 화광, 재빛연기와 탄막에 가리워진 하늘, 사방으로 휘뿌리던 바위쪼각과 흙기둥, 풀 한포기 없이 반반하게 타버려 《번대수리》로 불리우던 고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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