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6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7 장


2


그날 오후 짬을 낸 리진은 주경이를 찾아 공업연구소로 가기로 맘먹었다. 반원들과 휩쓸리면서 한결 마음이 가라앉은 그는 주경이한테 자기의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하나의 문제를 꺼내놓고싶은 의욕을 참을수 없었다. 그것은 페불문제였다. 자기는 페불연구에서 제외되였지만 주경이자신은 온 심혈을 다 바치고있는 사업이므로 그를 진심으로 돕고싶었다. 더구나 그가 페불국부도입을 더 무르익히기 전에 한시각이라도 빨리 알려줘야 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주경이와의 생활계선을 똑똑히 긋기로 하였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그를 련정을 품고 대했다면 이제부터는 순수 기술과 실무적으로만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주경은 사랑을 받아야 할 녀성이지만 결코 자기와 같은 하찮은 인간들이 넘보는 평범한 녀자는 아니였다. 뛰여난 자질과 인격은 마땅히 그에 걸맞는 대상자여야 할것이다. 여태 그를 맘에 두고 달콤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것은 어찌보면 허황하기 그지없는 꿈이기도 하였다.

리진은 그렇게 자기를 돌려세우자 주경을 굳이 피하고싶던 생각도 없어지고 오히려 그가 헌신하고있는 일에 미력한 힘이나마 기울이고싶은 의욕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막상 주경이 있는 공업연구소 2층건물이 눈앞에 다가들자 어딘가 미타한 시험지를 들고 교원앞에 나서는 학생의 심리비슷한 감정이 앞서 걸음이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그는 지금 주경이가 선정한 페불국부도입에 의혹을 품고 나선 걸음이였다. 그것은 일종의 도전이기도 하였다. 딱히 찍어 말할수는 없어도 그 국부도입안으로 하여 주경은 마치도 훨씬 높은 창공에로 날을수 있는 새가 중도에서 날개를 접은듯 한 인상을 주었다.

물론 그 창공에는 무시무시하고 숨막히는 진공이 있을수 있었다. 그러나 주경의 능력은 바로 그 범접키 어려운 진공속에 뛰여들어 종착점에 닿을수 있으리라 믿고싶었다. 그것은 자기가 실패한 전량도입이라는 목표와는 최종적으로 일치되지만 가는 길은 다를수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주경의 몫이 있고 시대와 걸음을 맞추는 과학자의 보폭이 있다고 보아졌다.

리진은 주경을 만날 때마다 매양 느끼던 심장의 야릇한 울렁임도, 뛰노는 맥박도, 설레임도 없는 메마른 손기척소리를 내고는 그의 방에 들어섰다. 창가의 화분을 해빛쪽으로 옮겨놓고있던 주경은 뒤를 돌아보며 함씬 웃었다. 리진은 안면근육이 마비된듯 한 억지스러운 미소를 약간 지었다.

주경은 흰 바탕에 간살좁은 푸른 줄무늬쎄타를 걸치여 한결 고상하고 예뻤다.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구석쪽에서 걸상을 가져다 리진의 앞에 놓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 행차했는가요?》

주경은 반신반의하는 기색이나 상쾌한 기분이였다. 리진은 그를 보는 순간 하고싶은 말보다도 이 녀자는 아버지들의 과거를 알게 되면 이 자리에서 기절할것 같은 가엾은 생각이 앞서 몸이 얼어들었다. 이제부터는 이 녀자를 만날 때마다 그와 같은 감정부터 느낄터이니 그것도 하나의 징벌로 생각되였다.

걸상모서리에 엉뎅이를 걸친 리진의 심장은 불안스레 쿵쿵 뛰였다. 그는 말라드는 입술을 혀끝으로 추기고 입을 뗐다.

《주경이, 한가지 내 생각을 비쳐도 일없겠소?》

《으응, 또 우물쭈물…》

주경은 응석스레 나무리면서도 샐쭉 웃었다. 리진은 시무룩할뿐.

《뭔데요. 어서 말해요.》

《페불국부도입 말이요, 페불의 절대량을 이루는 가스들은 다 제껴버리고 일부만을 먹는다는건… 주경이, 좀더 심사숙고해야…》

리진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주경의 커지는 눈자위엔 미소로 가리워진 의혹의 그림자가 서리였다.

《그래서 페불리용의 단계를 설정한거예요.… 자꾸 재구를 치고싶다더니 또 객기가 살아난게 아니예요?》

주경의 눈빛은 경거망동한 일을 저지르고싶어하는 동생을 바라보는 누이의 눈빛으로 변했다. 주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돌아섰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리진은 자리를 일고싶어났다. 그때 주경의 말소리가 들렸다.

《미련이란 참, 두번씩이나 함정에 빠지고도 버리기가 힘든가봐요.… 요즘 폭발가스를 분석했더니 기본성분이 수소혼합물이였어요. 수소와 산소가 결합되면 폭발한다는거야 자명한 리치가 아닌가요. 국부도입시에도 수소의 약간량이 섞이면 무서운 재난이예요. 그걸 제거하는 탐구만도 대단한 론문감인데 전량도입이라니…》

《난 내 방법을 고집하는건 아니요. 목표로 가는 길은 한길뿐이 아니잖소. 난 어쩐지 천리를 가야 할 동무가 백리길잡도리를 한것 같아 그러오. 이건 좀 다른 말이지만… 지금 우리 직장 현장속보판에 용수중학교의 한 학생이 그린 그림이 나붙어있소. 저 굴뚝에서 타는 페불을 아버지들의 꺼질줄 모르는 기상으로 보고 그린 그림이요. 그림은 그림이고 과학은 과학이겠지만 우리가 페불을 그냥 남겨두어 아이들은 그걸 아름다움으로 구사하고있소.…》

리진은 격한것이 치밀어 말을 더하지 못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비로소 그런 감상적인 말로써는 주경을 납득시킬수 없을뿐아니라 오지도 만나지도 말았어야 할 걸음임을 때늦게야 의식했다.

기실 그가 이 걸음을 단행한것은 기술적문제라는 외피로 가리워진 그리움의 폭발이기도 했다. 그의 리성은 이미 주경이와의 결렬을 선언했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은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자기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순결한 사랑이 불타고있어 밟으면 밟을수록 더 튕겨오르는 용수철처럼 막상 주경이와 최후의 결렬에 이르자 그리움의 용수철이 튕겼던것이다.

주경은 창가에 그냥 서있었다. 가슴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파문이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켰다. 리진의 가슴속에 차있는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다시금 엿본것이 기쁘기도 하고 미덥기도 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말씀을 가슴에 안고사는 그였기에 아이들의 한폭의 그림을 두고도 우리 시대 과학자, 기술자들의 사명감을 생각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주경은 그 량심앞에서 머리가 숙어지기도 하였다. 생활에는 예상치 못했던 충격이 때로는 과학적신념을 흔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충격이 아무리 커도 과학은 인정이나 감성으로 해결되는것은 아니였다.

주경은 머리를 짓숙이고 연구소정문을 빠져 현장으로 가는 리진을 눈으로 바래우고 책상앞에 가 책을 펼치였다. 오후의 한나절은 계영빈이한테서 빌려온 《마야국의 패망사》를 읽으려 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먹고 찾아왔을 리진이와 따뜻한 말한마디 나누지 못한 자책감이 일기도 하고 여느때없이 해쓱한 그의 얼굴이 뒤숭숭하기도 하고 또 그가 던진 말도 귀에서 사라질줄 몰랐다.

(천리를 가야 할 동무가 백리길잡도리를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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