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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15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7 장


1


이튿날 승학반장은 밤교대생들로부터 로를 인계받으면서 지하랭각기계통이 애를 먹여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랭각관속에 차있는 오물을 제거하려면 함마로 배관을 울리면서 쇠장대로 쑤셔야 하는데 그 모든 작업이 한사람의 몸이 겨우 나드는 비좁은 공간에서 하게 되였다.

승학은 여간 말째고 힘든 작업이 아니여서 제가 맡아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반원들이 저마끔 자기가 해보겠다며 나섰다. 승학은 할수없이 제비를 뽑았는데 작업반막냉이 효남이가 걸렸다.

리진은 조용히 효남이를 끌고 과일숲에 들어갔다.

《효남이, 너 그 일 나한테 양보하렴.》

《싫어요. 다들 날 아이취급하는데 한번 본때를 보이겠어요.》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너와 결별이다.》

리진의 이 불의의 선언은 효남을 깜짝 놀래웠다. 효남은 짬짬이 리진이한테서 학습방조를 많이 받고있었다.

《그럼 한시간씩 교대하자요.》

《그럴 필요는 없어. 나도 너한테 양보할 때가 있을테니까.》

리진은 효남의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는 오늘 혼자 있고싶었다.

아침 첫 시간부터 좁다란 지하랭각기통로안에서 메질하는 리진의 몸에서는 줄땀이 흘러내리고 숨쉴적마다 코와 입으로 악취가 쓸어들어 머리가 뗑했다. 팔다리와 온 육신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빠졌다.

그러나 반발심은 더더욱 무섭게 뻗치기만 하였다. 그는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기보다 자기 몸을 빈 허울로 만든 그 무슨 허깨비와 다투고있었다. 때문에 메자루를 휘두를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단김과 함께 말토막들이 튀여나왔다.

《들었을테지요. 아버지, 시한탄을 안고 몸부림치던 주경이 아버지의 부름소리를 말예요?…》

리진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자 어둠속에서 어질고 침울한 아버지의 환영이 떠올랐다.

《들었지. 하지만 앞에는 살점이 죽어가고 뒤에는 친구가 죽어가고… 그래 어느쪽을 택해야 옳겠냐?》

돌연 아버지의 얼굴에는 비양스러운 조소가 비낀다. 리진은 쓰디쓴 경멸이 끓어올라 그 환영을 두드리듯 세괃게 함마로 내리치며 부르짖었다.

《그래요. 우리 가정의 분렬은 아버지가 우리쪽을 먼저 밟은 그 첫발자국부터 시작되였어요. 아버진 그 순간부터 죽었단 말입니다.》

《그래, 죽었지. 그래서 난 이렇게 혼으로도 그 땅을 밟을수 없게 됐구나. 내 심혼이 깃들어있고 사랑하는 너희들의 삶이 흐르는 그곳, 아, 아침이면 우리 집 울바자에 앉아 즐겁게 지저귀던 새들이며 봄철이면 연분홍살구꽃속에 묻히기도 하던 내 고향땅에 말이다.》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요. 착순이처럼 살렵니다. 이 땅의 크고 단 열매를 무르익히는 한줌의 거름이 되겠습니다.》

리진은 쳐들었던 메자루를 맥없이 떨구었다. 그는 한자리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진맥이 다 빠져버려 더는 넉두리를 할 기력조차 없었다. 땀으로 매닥질한 몸은 물먹은 솜처럼 게나른해졌고 입안에서는 겨불내가 났다.

점심고동이 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땀에 끈적끈적해진 몸을 구내목욕탕에서 씻은 후에야 작업반실에 들어섰다.

공장영양제식당칸에는 반원들이 점심밥들을 펼쳐놓고 잡담하며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식사때면 반원들은 한집안식솔들처럼 오붓이 모여앉아 서로 나누었다.

승학이 어려운 일을 맡아한 리진의 수고를 헤아려 그앞에 훈제한 오리 한마리와 색다른 찬들을 밀어놓았다.

《많이 들게, 힘들었을텐데. 원, 무슨 일을 그렇게 사납게 하나. 쉼없는 함마질소리에 귀청이 째질번 했네.》

승학은 나무랐지만 시선은 리진의 내심을 꿰뚫고있었다. 리진은 뚝한것 같으면서도 예리하고 인정스런 그 눈길을 속일수 없다는것을 느끼면서도 성풀이한 속심이 비칠가봐 당황했다.

리진은 얼굴을 숙인채 내내 말없이 점심그릇에 저가락질을 하였다.

그가 밥그릇을 비우자 수건으로 입언저리를 닦고있던 승학은 물그릇을 상우에 놓으며 보기드문 미소를 지었다.

《리진이, 잔치날 새서방 둘러릴 서봤나?》

《?…》

《이제 얼마 있으면 박오복의 잔치날이 아닌가. 그 친구 둘러리문제를 놓고 점심전에 좀 의논해봤더니 다들 자네가 적임자라나. 자네 오복의 혼사때문에 그새 적잖게 수고했다며 둘러리 설 자격이 있다는거야.》

《제가 그런걸 알게 뭡니까.》

리진은 난생처음 당하는 일에 덴겁했다. 반원들은 저마끔 떠들어댔다.

《아니, 총각도 둘러릴 섭니까?》

《넌 또 고망년적 례법을 설교할려나? 우리 로동계급세상에서야 례법도 생활양식도 우리 식으로 창조할수 있단 말이야.》

《하긴 그래, 그럼 이 친구 장가들기 전부터 상을 받겠는걸. 색시집에서는 둘러리한테도 작은 상을 차려줄거란 말야.》

《여, 잊지 말고 큼직한 비닐주머니를 차고 가게. 상다리가 부러질것 같으면 거기다 슬금슬금 집어넣게나.》

《하하하…》

반원들이 입이 째지게 웃어댔다. 리진은 상했던 기분이 어지간히 풀어졌다. 그딴에도 오복의 둘러릴 마다할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는 현장에 와 사귄 친구들중에서 박오복이와 제일 가깝게 지냈다. 오복은 마음이 착하고 진실한 친구였다. 익살스러운 성미까지 겹쳐 작업반에 늘 즐겁고 유쾌한 선풍을 일으켰다.

언제부터였는지 박오복은 공장에서 제품검수공을 하는 처녀와 눈이 맞아 돌아갔다. 그러나 처녀부모들이 한사코 반대해나섰다. 리유는 오복의 키때문이였다. 그는 체구가 볼품없이 작았다.

처녀의 부모들은 첫눈에 어느곳 하나 눈에 차지 않는 그의 작은 체격을 보고는 도리질을 하였다. 처녀의 몸매는 늘씬하고 키가 더 컸다. 이는 오복의 고민이자 작업반의 난사거리였다.

승학은 강대철이와 진지하게 의논한 끝에 직장영예게시판을 공장종업원들의 출퇴근길목에 옮겨놓았다. 그다음 개인경쟁도표판을 그려붙이고는 박오복의 붉은 줄을 제일 높이 그어올리기 시작했다. 실지 기능공인 오복의 일솜씨를 누구도 따를수 없었던것이다.

공장에 다니는 처녀의 부모들이 그 경쟁도표를 외면할수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몇달 지난 어느날 처녀를 통하여(처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부모들이 오복을 자주 입에 올릴뿐만아니라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정보까지 입수하게 되였다.

승학은 지체없이 오복이를 끌고 처녀의 부모들한테로 가기로 했다.

친구의 혼사를 두고 어지간히 왼심을 써오던 리진이도 함께 나섰다. 또 무슨 트집이라도 걸게 되면 목숨걸고 보증해주고싶어서였다.

그들은 어두운 저녁녘에 처녀의 집문앞에 닿았다. 오복은 저윽 긴장하고 흥분했으나 타고난 익살만은 참지 못했다.

《그러니 경쟁도표가 내 키를 대신했단건데… 제길헐, 내 키가 어쨌단건가. 우리 부모들은 날 인민군대 정찰병으로 만들려고 했단 말이야. 놈들의 철조망 개구멍도 재빨리 드나들수 있게 말야. 어디 그뿐인가, 옷을 해입게 되면 천을 절약해 좋아…》

《그만 지껄이구 어서 발끝이나 바싹 살리구 들어가세.》

《하, 내가 갑자기 발레무용수로 둔갑하라는건가? 자, 그럼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오복은 처녀의 집뜨락인것도 상관하지 않고 발끝을 세워 빙 한바퀴 돌았다. 승학이와 리진은 간신히 억누르고있던 웃음을 일시에 터뜨리고야말았다. 그 바람에 바깥으로 향한 정지방 미닫이문이 드르릉 열렸다. 처녀의 아버지가 의아한 눈길로 내다봤다. 그런데 걸작은 오복이 발끝을 딱 세우고 한자리에 못박힐줄이야.…

그러던 오복이 며칠후에 그 처녀를 안해로 맞이하게 된다. 리진은 제일처럼 기뻐 그를 진심으로 축복하고싶었다. 반원들도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현장생활은 리진에게 여태 체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 성격도 취미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지향속에서 숨쉬고 걸음을 맞춰가는 순결한 미적세계를 나날이 페부로 느끼게 하였다. 하나의 작은 근심거리를 놓고도 함께 의논하고 풀어나가는 인정으로 물결치는 이 생활이야말로 그에게 없었던 공백이였다. 이런 집단생활의 지주가 없었더라면 요즘 타격에 쓰러지고말았을것이였다. 때문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들보다 지적면에서 우월하다고 자부했던 긍지가 지금에 와선 얼마나 치졸하고 부끄러운지… 생활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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