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3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6 장


1


승학반장은 하루작업총화뒤끝에 리진이와 박오복이를 좀 남으라고 하였다. 오복은 3호중유로에서 제일 높은 기능을 소유한 로공이였다. 작은 키에 량볼에는 나이보다 애티나는 홍조를 띠여 얼핏 보면 애숭이같았다. 하지만 손탁이 여물고 무슨 일에서나 재기있고 탐구적이였다. 리진은 페불도입시험을 벌렸을 때 오복의 방조를 많이 받았으므로 현장에 오자 그와 제일 절친해졌다.

《동무들과 의논할 일이 있소.》

승학은 무뚝뚝한 어조로 허두를 떼고는 책상우의 사업수첩을 몇장 넘긴 다음 다시 이었다.

《70일전투가 인츰 시작될텐데 지금 로상태가 말이 아니요. 분명 우리 3호로가 생산도 도맡을것이고 페불도 받아들이게 될거요. 그러니 주인인 우리가 미리 로대보수안을 세워야 할것 같소. 래일이라도 참모부에 제기할수 있게 대보수에 필요한 자재와 로력공수, 날자를 타산해보자는거요.》

승학의 말이 떨어지자 오복은 씩 웃었다. 그러지 않아도 오복이와 리진은 요즘 로가 자주 말썽을 일으키는통에 틈틈이 로보수문제를 가지고 의논해오던터였다.

오복은 리진을 흘끔 쳐다보며 웃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냈다. 거기에는 로보수에 필요한 자재명세와 수량, 날자까지 꼼꼼히 적혀있었다. 승학의 무표정한 눈길이 놀란 빛으로 수첩장을 더듬었다.

《고령토?! 이건 뭐요?》

《허허 참, 다른 자재들은 내부예비를 탐구하면 맞출것 같은데 그놈의 고령토가 애를 먹일것 같군요. 집안망신은 고불통이 시킨다더니 원.》

오복이 어이없어 혀를 찼다. 리진이 그의 말에 덧붙이였다.

《내화벽돌을 쌓는 샤모트몰탈에 고령토가 들어가야 점성을 보장할수 있습니다. 자재과에서는 별로 긴요한 자재가 아니여서 예견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자재보장부서가 책임지겠지.》

오복이 그루를 박아 주장했다. 수첩장을 한장한장 넘기던 승학은 또 어느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로대보수기일을 20일? 안되오. 최대로 15일간에 맞춰야 하오.》

《그렇다면 보수직장과 제관, 공무력량이 우리 3호에 총집중돼야 합니다.》

《그건 제기하겠소. 리진이, 페불도입은 어떻게 될것 같소?》

《이번에 함께 밀고나갈것 같습니다. 그런데 페불의 일부만을 먹는다고 합니다.》

《뭐, 다 먹지 않고 일부만을?!》

《1단계목표를 그렇게 세웠다고 합니다.》

《아하, 살짝 뜯어먹는다? 고거 참, 깜찍한데…》

오복은 작은 눈을 깜박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못마땅해하는 기색이였다. 아무 표정도 없던 승학은 사업수첩을 서랍안에 집어넣으며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한테는 또 할소리가 없겠군.》

승학의 혼자소리에 리진은 앉은 자리가 불편스럽고 속이 켕기였다. 낮에 받은 충격이 새삼스레 마음을 짓눌렀다.

오늘 점심참에 용수중학교 학생들이 현장에 찾아와 예술소조활동을 벌렸다. 공장종업원 자녀들이 태반인 학교에서는 공장분위기를 돋굴 목적으로 다채로운 기동예술소품들을 준비해가지고 왔었다. 특색있는것은 학교미술소조원들이 그린 그림까지 여러편 가져다 현장속보판에 붙인것이였다. 대개가 공장을 주제로 한 그림들인데 그중에서도 《불길》이라는 표제를 달고 그린 한폭의 수채화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딸기빛밤노을에 잠긴 공장의 야경, 화폭의 중심은 페불굴뚝에서 홰불마냥 타오르는 장엄한 불길이였다. 어린 미술가는 충천하는 페불에서 아버지들의 가슴속에서 타번지는 불, 꺼지지 않는 로동계급의 불타는 기상을 보았고 그 불로 하여 희망찬 새아침이, 번영하는 조국의 래일이 밝아오리라는 기쁨과 환희를 열렬히 구가하고있었다.

리진은 그 그림앞에서 가슴이 저려들어 견딜수 없었다. 아이들이 아름다움으로 구사한 이른바 아버지들의 불길은 실은 그 아버지들이 남기고있는 오물이였다. 물론 어린 미술가는 그 구체적인 내막까지는 모르고 그렸겠지만 어쩐지 리진은 자기를 두고 비웃고 야유하는것 같았고 언제까지 페불은 타야 하는가고 따지고드는것 같기도 하였다. 방금 승학이 뇌인 말도 그런 뜻에서였을것이다.

《반장동무, 우리 그 그림을 기술과 사무실벽에 붙여놓으면 어떨가요?》

오복의 비꼬는 투였다. 승학은 그 야박한 질문에는 내색하지 않고 리진이를 건너다봤다.

《페불은 공장참모부가 결심할 일이니 우리가 관여할건 못되오. 그러나 리진이, 동문 외면해서는 안되오. 동무야 페불도입의 선구자가 아니요. 그렇잖아도 비서아바인 페불은 한두사람의 힘으로 될일이 아니라면서 동무한테도 과업을 줘야겠다고 하더군.》

《비서아바이가요?!》

리진은 가슴이 저릿해났다. 지난밤 주경이도 자기한테 힘을 주지 않았던가.

퇴근길에 나선 리진의 생각은 번거롭기만 하였다. 사람들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페불앞에서 무장을 해제당한 자신의 꼴이 가련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주경이 결심한 페불국부도입은 마음싸지 않았다. 물론 1단계목표라니 어쩔수는 없지만 웬일인지 페불을 다 잡지 못한 궁여지책처럼 여겨졌다. 어째서 주경은 자기의 실력을 국부도입에 멈춰세웠을가?…

리진이 퇴근하여 집에 오니 어머니는 저녁밥을 지어놓고 책을 읽고있었다. 어머닌 공장도서실의 열성독자였다.

쉰고개를 눈앞에 바라보고있는 유선림은 공장에서 열관로망순회원일을 맡고있었다. 십리벌 구내에 가로세로 줄줄이 뻗은 열배관상태를 매일 감시하고 불량개소를 퇴치하는 쉽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미모의 자취가 어린 긴 속눈섭에는 온화하면서도 모진 생활의 세파에 부대낀 서글픈 부드러움이 비껴있어 리진은 좀 어렵게 대했다.

《또 무슨 책이예요?》

리진은 흔연히 웃으며 물었다.

《동화책이다. 너한테 보이고싶어 오늘 빌려왔다.》

유선림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였다. 리진은 의아했다. 과학기술서적에 취미를 두고있는 그한테 어머닌 문예서적을 그것도 아이들의 동심을 그렸을 책을 권고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권고가 별스레 호기심을 자아내여 저녁밥술을 놓기바쁘게 웃방에 올라가 동화책을 펼쳤다. 동화는 처음부터 흥미를 자아냈다. 《착순》이라는 제목을 달고 씌여진 동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이른 봄날 주인은 정원에 하나의 씨앗을 묻으며 말한다.

《씨앗아, 나에게 크고 단 열매를 안겨다오.》

얼마후 하나의 씨앗에서는 두그루의 싹이 움텄다. 주인은 쌍둥이싹에 이름을 지어놓았다. 하나는 억순이, 다른 하나는 착순이라고. 쌍둥이형제인 착순이와 억순이는 서로 의좋게 자란다. 땅속의 맛나는 즙도, 해님이 보내는 단꿀도 똑같이 나누어 먹으며… 어느새 그들의 이파리는 보름달처럼 환하게 펼쳐졌다. 이제는 꽃을 피우고 벌나비를 불러 열매를 맺힐 시기가 왔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들은 똑같이 허기와 갈증을 느낀다. 땅속에 뿌리를 더 깊이 박고 여기저기 훑으며 빨아들여도 배를 채울수 없었고 넓은 이파리를 한껏 펼쳐 해빛을 모아도 모자라기만 했다. 그들형제는 점차 시들어져 누른병에 걸린다. 그러자 어느날 착순은 제 몸을 밸밸 꼬아 억순의 곁에 몸져눕는다.

《착순아, 힘을 내.》

《난 안돼, 더는 못 견디겠어.》

그때부터 착순은 즙 한모금도 한줄기의 해빛도 먹지 않는다. 끝내 착순은 제 몸을 억순의 발밑에 묻어달라고 부탁하고는 눈을 감는다.

가을이 되여 억순은 마침내 크고 단 열매가 되여 주인을 기쁘게 해준다.…

이야기는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동심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동화에서 착순의 삶은 실로 애틋하고 갸륵하게 그려졌다. 주인에게 기쁨을 주려 제 한몸을 한줌의 거름으로 만든 착순이.…

《얘야…》

정지방에서 어머니가 불렀다. 유선림은 그렇게 불러놓고는 말문을 인츰 열지 않았다. 무엇인가 심중에 고패치는 말마디들을 들어올리기가 연추덩이처럼 힘겨운듯싶었다. 이윽고 유선림은 추연한 눈길을 치여들었다.

《얘야… 내 어제 저녁 퇴근길에 너와 주경이가 용수천가에서 만나는걸 봤다. 암만해도 네 눈치가 이상하니… 똑똑히 알아야 할것 같구나. 너도 알고있지만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때 주경이 아버지와 네 아버지가 연유뒤일을 맡아하지 않았니. 그때 있은 일을 너는 다 모른다.》

유선림은 꺼지는 한숨을 내쉬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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