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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3 장


3


작업반생활실에는 반원들이 여느때없이 일찍 나와있었다. 리진이 나타나자 작업반에서 제일 어린 효남이 기다렸다는듯 마주 달려와 빨간꽃 한송이를 그한테 내밀었다.

《리진형,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입대를 축하해요.》

다들 박수를 쳤다. 리진은 책상앞에 앉아 사업일지에 뭔가 말없이 적어가고있는 승학반장이 조직한것 같아 그한테 싱긋 웃어보이고는 그딴에도 작업반을 떠나게 되면서 준비한 간소한 물건들을 가방에서 꺼내놓았다. 피나무로 정교하게 만든 정성함이며 알른알른한 벽거울, 방비, 하얀 걸레, 쓰레받기 등 생활실에 필요한 물건들이였다.

《허, 이거 다 멋쟁이들이군. 자네 장가가면 쓸 살림기물들이 아닌가?》

《제가 장가갈 때면 작업반에서 부조하겠지요 뭐, 하하… 시내에 새로 꾸린 건재상점에 다 있더군요. 자 효남이, 이건 네가 봐야 할 참고서들이야.》

리진은 일하면서 배우는 대학에 갓 입학한 효남이한테 여러권의 책을 내놓았다. 효남은 책을 꿍져안고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였다.

《그리고 이건 생당쑥배띠입니다. 어저께 고려약국에 들렸더니 랭증치료에 이 배띠가 효능이 좋다고 하더군요. 자,또딸아버지 받으십시오.》

《아, 날 주는건가? 원, 고맙기란…》

작업반에서는 딸만 줄줄이 셋인 나이지숙한 로공을 또딸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랭한증으로 이따금 배앓이를 하였다.

《이 사람,자네 이젠 또딸아버지신세를 면하게 됐네그려. 이 배띠덕에 랭한증이 뚝 떨어져 생남을 할테니 말일세.》

《생남을 보면 리진동무한테 절을 해야겠군요.》

《절할게 있나. 아예 맏딸을 리진의 색시감으로 주게나.》

《사흘전에 9살 생일을 쇴네.》

《아홉살?!… 푸르청청 소나무야 너만 절개높다 뽐내지 말아, 내 그대 기다려 백발이 되리. 하하…》

리진이 잽싸게 즉흥시로 응수하는 바람에 와그르르 폭소가 터졌다.

전화종이 울렸다. 리진은 그 전화가 기술참모부에서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 발족과 관련하여 자기를 찾는것으로 짐작되였다. 그는 탈의실에 들어가 작업복을 갈아입으려다말고 귀를 기울이였다. 승학은 웬일인지 전화종이 여러번 울린 후에야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접니다.… 좀전에 말씀드렸지만 그 문젠 잘못 반영되였다고 생각합니다. 비준됐다구요?… 좋습니다. 본인을 보낼테니 상세한 말은 그한테서 들어보십시오.》

승학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언짢은 일이 생겼는지 거무스레한 얼굴이 고동색으로 짙어졌고 책상우에 놓인 손을 한참이나 주물럭거리기만 하였다.

《리진이, 작업복을 갈아입지 말고 좀 오게.》

반원들은 웬일인가싶어 승학이와 리진을 번갈아살폈다. 리진은 뭔가 어수선한 예감이 엄습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동무한테 로동안전과 호출장이 떨어졌네.》

《?!…》

리진은 아닌밤중의 홍두깨같은 소리에 어리뻥해졌다. 반원들도 의아해했다. 승학의 꾹 다물렸던 입이 얼마간 지나서야 열렸다.

《동무가 요전날 직장로동안전원 최승표와 다툰적이 있었지? 그 문제가 우에까지 상정된것 같네. 로동안전책벌이 승인됐다는걸 보면… 흥분하지 말고 가서 조리있게 잘 납득시키라구.》

그런 일이 있었다.

며칠전 퇴근길에 나섰던 리진은 시약처리공정사이에 난 지름길에서 한 처녀의 단속에 걸린적이 있었다. 일인즉 시약발브 기밀사고로 가성소다액이 분출되여 그 아근의 출입을 일체 단속할 조치때문이라고 하였다. 원유속의 산성물질을 제거하는 알카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시약이여서 엄격히 취급되였다.

그날 처녀는 직장로동안전원이 준 단속임무를 받고 지름길어귀에서 보초를 서고있는중이였다. 리진은 처녀와 같은 직장이였지만 작업반이 달라 아직 말을 나누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장생활을 통하여 김방울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처녀가 직장에서 한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며 자랑이라는것은 다소 알고있었다. 흠할데없이 귀엽고 이름처럼 명랑한 처녀는 일솜씨 또한 알뜰하여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리진은 처녀에 대한 인상을 좋게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처녀의 말투는 거의 무례할 정도로 거슬렸다.

《미안하지만 저쪽으로 돌아가세요. 어서요!》

리진은 의연히 명령조로 들리는 방울의 요구를 귀등으로 넘기며 시약공정을 세심히 살폈다. 발브에서는 시약이 분수처럼 뿜었다. 배관들이 얼기설기 뻗은 공정은 뽀얀 시약안개포말로 덮였다. 리진은 주기적으로 멈추었다가는 내뿜는 그 공간만 잘 리용하면 얼마든지 사고발브에 접근하여 막아놓을것 같았다.

그는 시약분수가 멈추려는 시각에 맞춰 한걸음 공정쪽으로 내짚으려다 제지당하였다. 그의 결기를 포착한 처녀는 한발자국도 드티려 하지 않았다. 처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성을 높였다.

《무슨 일을 치자고 그래요? 안된다는데!》

《좀 비켜주오. 내 자신있어 그러오.》

《걱정놓으라요, 동지. 우리 로동안전원이 대책을 취하러 갔으니… 어서 에돌아가라요.》

《분초를 다투지 않소, 아까운 시약이!》

일순 처녀의 시원스런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리진은 그를 쓰러뜨릴듯 우직스레 한옆으로 밀어제끼며 비호같이 몸을 날렸다. 그찰나 자기 옷섶을 잡아채는 처녀의 손길에 이어 옷자락에서 단추가 떨어지면서 한팔소매가 훌렁 벗겨졌다. 차라리 웃저고리를 벗어내친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공정에 뛰여들어 예견했던대로 재빨리 발브를 틀어막았다.

바로 그때 고무작업복에 고무모자와 장화를 착용한 직장로동안전원 최승표가 나타났다.

승표는 위험천만했던 사태가 무난히 처리된것을 알자 닭쫓던 강아지 지붕쳐다보는 격으로 싱거운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그의 눈을 찌른것은 방울이가 들고있는 옷과 런닝바람인 리진의 주제였다. 방울은 제불찰로 단추를 떨어뜨린 리진의 옷을 들고 어쨌으면 좋을지 얼굴을 활딱 붉힌채 안절부절 못했다.

승표는 쓰거운 비웃음을 입에 올렸다. 그 비웃음은 어떤 온당치 못한 남녀관계를 목격했을 때처럼 아리숭했다. 그는 고무작업복을 와락와락 벗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게두덜댔다.

《참 멋진데. 우리한테 영웅남아가 있는줄 몰랐거던.》

리진은 그가 노는 꼴이 어이없었다. 처녀앞에서 다툴수 없어 승표를 끌고 직장과일나무숲에 들어갔다.

《승표동무, 뭐가 잘못돼서 그러나?》

《잘못되기야 뭘, 일은 제대로 된셈이지. 동무야 날 보기 좋게 멨다꽂지 않았나. 괜찮아, 처녀를 낚을줄 알거던.》

승표는 비웃음과 횡포가 어린 눈알을 굴리며 빈정거렸다.

리진이 3호중유로 로공으로 배치되던 날 직장에서는 1호중유로 로공인 승표한테서 로조작에 따르는 안전교양전습을 받으라고 하여 그를 처음 알게 되였다. 그때 승표는 로공외에 사회적분담으로 직장로동안전원직무를 맡은 불만을 늘어놓고는 짜장 날개가 있으면서도 멀리 날지 못하는 까투리라고 했다.

검실검실한 얼굴에는 작고 꼬리가 치째진 눈과 뭉툭한 주먹코,쩍 버그러진 가슴,든든하고 실한 뼈와 혈기왕성한 체력은 부러울 정도로 위압적이였다.

리진은 피끗 직장에 나도는 소문이 떠올랐다. 승표는 직장의 한 처녀를 미친듯이 쫓아다니지만 헛물만 켠다는 비난을 받고있었다. 만약 그가 노리는 처녀가 방금 자기를 단속한 방울이라면 그앞에서 제값이 납작해졌다고 생각해서일가?…

리진은 그의 어리석은 생트집이 우스워 솔직한 마음을 비쳤다.

《오해하지 말게, 난 류실되는 시약이 아까와서 그랬네.》

《그럼 내 눈에는 그 시약이 맹물로 보였다는건데 허, 우리 직장에 대단한 애국자가 나타났는걸.… 그래, 그런 알량한짓으로 나라앞에 큰 손실을 준 나란 사람은 실지는 이렇소 하고 뻐기고싶었나?》

승표는 여전히 이죽거렸다. 리진은 이 로골적인 타격에 피가 끓어올랐다.

《에익, 시시하구만.》

리진은 그 자리에서 휙 돌아섰다. 그러자 억센 손아귀가 그의 등뒤로 어깨를 꽉 잡았다. 승표가 째진 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쏘아붙였다.

《맞아. 난 시시해, 처녀앞에서 으시대는 자네보다야.… 하지만 이 까투리가 오늘만은 참겠어. 날 바보로 만들고 자넬 애국남아로 되게 한건 그 얄망스러운 로동안전규정때문이였으니까. 제길할, 나도 그런 안전규정을 몰랐더라면 자네보다 먼저 뛰여들었을거야.》…

분명 이 문제가 우에 제기되여 복잡해진것 같았다. 오늘 아침 이런 봉변이 기다리는줄 모르고 그 무슨 기술혁신돌격대입대를 바라다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꿈이였다.

로동안전과는 가스구급차와 소방차들이 줄지어 늘어선 공장울타리밖 건물안에 자리잡고있었다. 로동안전과 사무실에서는 안경쟁이로동안전원이 표표한 기색으로 맞이했다. 그런데 그의 사무탁앞에는 또 한사람, 그날 자기를 단속했던 뽐프운전공 김방울이가 머리를 짓숙이고있지 않는가!

리진은 아연한 눈길로 싸늘한 자세를 고집하고있는 로동안전원을 바라보았다. 안경알속에 확대된 희멀건 그의 눈동자가 승표처럼 역겨웠다.

《로동안전원동무, 이 동무는 왜 불렀습니까. 이 동무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제가 시약공정에 뛰여들 때 이 동문 날 막아나섰지만 난 완력을 행사했습니다.》

《알고있습니다, 앉으시오. 앉으라는데…》

리진은 거칠어지는 숨결을 톺아올리며 처녀의 곁자리에 앉았다. 로동안전원은 자기앞에 놓인 두툼한 로동안전규정책을 벌컥거렸다. 어느 한 페지에서 멈춘 그는 안경을 멀찍이 대고 꽤나 메마른 목청으로 읽어내려갔다.

《…생명을 위협하는 시약취급시 지켜야 할 안전규정 제23조… 발브와 후란지, 배관련결부의 기밀상태가 철저치 못하여 시약이 샐 때에는 반드시 해당한 작업복과 모자와 신발, 장갑과 보호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만이 퇴치작업을 할수 있다. 만일 이를 위반하는 작업, 지시, 무책임, 묵인했을 때에는 아래와 같은 로동안전규정위반책벌을 적용한다.… 보시오, 이 김방울동무의 경우에는 로동안전원으로부터 단속임무를 맡았으면서도 불구하고 〈무책임〉조항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건 오해입니다. 누가 제기했는지 완전한 날조입니다!》

리진은 너절한 까투리의 올가미에 걸린 울화가 뻗치여 부르짖었다. 그러자 여태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있던 방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예요, 저도 같이 취급하세요. 사실 전… 이 동지가 나타나기 전부터 저 혼자 발브를 막을 생각을 익히고있었습니다.》

돌연 방울의 자책어린 반성에 로동안전원의 안경이 얼핏 리진을 스쳤다. 그 무언의 표정에는 리진이 부정했댔자 모든것은 죄다 사실이며 또한 자기는 여기서 결코 밥축이나 내는 바지저고리가 아니라는것을 암시했다.

리진은 나라의 귀중한 재산이 류실되는것은 아랑곳없이 메마른 규정에 매달려 피도 온기도 없이 보내는 그가 가긍하게 여겨졌다.

《로동안전원동무, 이건 다른 문제인데… 난 시약발브를 막은걸 정당화하려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나라의 귀한 재산이 마구 날아가는데 그 딱딱한 규정끈에 발목을 묶여 강건너 불보듯 해야 옳겠습니까.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책벌규정은 없습니까?》

《허허… 동문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구만.》

갑자기 로동안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목석같던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여 무척 선량하고 인정있게 보였다.

《옳습니다. 강건너 불구경을 해서는 안되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에 닥치면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는것이 우리 사회의 미풍입니다. 그러나 사람중심의 우리 제도의 요구가 뭐겠습니까? 나라의 억만금보다도 더 귀중한것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몸을 던진 동무들자신이 아니겠습니까. 우린 오늘 이 점을 더 깊이 알려주고싶어 동무들을 불러… 이른바 책벌공부를 시키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로동안전규정이 메마르고 딱딱한가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엮어진 전서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요?》

리진은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그 모든것이 고맙게 느껴질수록 얄궂게 보이던 로동안전원의 뿌연 안경도, 그너머 희멀겋게 희뜩이던 눈길도 친근하게 안겨왔다.

문제가 의외로 좋게 번져졌지만 승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결코 자기를 도와주고싶어 이런 즐겁지 못한 장소에 밀어넣은것은 아닐것이다. 어디까지나 속된 감정과 마찰이 일으킨 앙갚음이였다. 다들 벅찬 생활의 복판에서 이 하루를 맞이할 때 이 외진 구석에 붙박혀있는것이 마치도 줄기찬 생활의 파도에 밀리는 한쪼각의 나무토막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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