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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3 장


2


아니다. 어머니는 무엇인가 그보다 훨씬 다른, 생활의 한계를 깨우쳐주고있다.

제 푼수에 맞게 처신하라.… 이 말은 사고심의때 촉매연구사 계영빈이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지식일면에서 저급한 나의 능력을 두고 조롱했을뿐 어머니의 《푼수》는 다른 의미, 이를테면 불미한 나의 가정의 값을 념두에 둔것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 정처없이 다니다 잘못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어쩌면 그렇게밖에 살수 없었는가요. 그렇게 산게 나와 어머니를 위해선가요?)

이미 이 땅 밖으로 자취를 감춘 아버지는 지금도 살아있듯이 그의 운명과 생활의 요소요소에서 군림하고있었다. 아니, 그는 살고있는것이 아니라 관념으로 존재하고있었다.

어딘가 과민한 사색형인 리진은 생활의 격렬한 순간이 닥치면 그 미지의 존재를 불러 마음속으로 언쟁을 벌리군 한다. 이 경우 그는 둘로 분렬되여 부정적측면에 다른 사람 즉 존재를 세워 진실을 밝히고저 했다.

《아버지, 잘못산 아버지의 한생이 나의 앞길에 얼마나 어두운 그늘을 던지는지 압니까?》

《얘야, 난 너에게 생명을 주지 않았니.…》

존재인 아버지의 말이다.

《…난 네 생명의 씨앗이고 뿌리라고 할수 있지. 그러니 좋든싫든 모든것이 너와 이어져있는게 아니겠니.》

리진은 아버지의 주장에 공감했다. 그는 결코 무턱대고 아버지의 견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인가 과거 아버지의 행위를 초래시킨 원인과 동기를 찾고싶었다.

《옳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두고 아버지를 신통히 닮았다고 했습니다. 생명유전의 그 단순한 리유때문에 아버지의 잘못을 내가 걸머져야 하는가요?》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떨어뜨렸다. 그 환영은 인츰 순박한 눈을 쳐들고 괴로운 한숨을 내쉰다.

《얘야, 나는 구태여 누구에게 죄를 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다만 살고싶었을뿐이다. 너와 너의 어머니를 위해서 말이다. 그 란리통에 내가 없어봐라. 태여날 너나 네 엄마가 어찌 되겠니. 한갖 미개한 동물도 갖고있는 모태적본능이 죄로 된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사랑이 죄로 되다니.…》

이 말은 죄다 사실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했었다.

썩 오래전 어느해 여름밤, 리진은 어머니한테 물은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일생에서 제일 기쁘고 행복한 때가 언제였는가고.

그때 어머니는 눈빛이 그윽해지더니 잊지 못할 추억에 잠겨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각시가 와요!》

갑자기 야무진 애된 웨침에 가마타고 시집오던 선림은 와들짝 놀랐다. 난생처음 타보는 가마안에서 교군들의 야료질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메슥하여 참기 힘들던 선림은 마침내 시집에 당도한 안도감과 싱숭생숭하던 가슴이 알지 못할 불안으로 활랑거리였다. 선림은 가마뙤창 가림천을 살며시 여미고 밖을 내다봤다.

가마채를 둘러멘 교군들앞에는 하늘소를 탄 서방의 듬직한 잔등이 보였다. 서방은 찬 기운이 밴 풋봄날임에도 무엇이 더운지 중절모를 벗어 활활 부치고있었다. 조선바지저고리에 검정목세루두루마기를 걸치고 머리에는 사모대신 중절모를 올려놓아 제법 신식풍을 갖추려 했지만 촌서방티야 어델 가겠는가. 차림새야 어떻든 사람이 바위돌처럼 진중하고 어리무던한것이 볼수록 미덥기만 하였다. 그렇잖아도 맞선보던 날 서방은 《난 더 물을게 없소다.》하는 그 한마디로 제 의사를 표현하는 바람에 구변없다는 생각보다도 그것이 오히려 잰 말을 모르는 사나이의 무게같아 더 호감스러웠다.

서방의 하늘소가 동구밖 비슬나무를 지나려는데 웬 애녀석이 나무줄기를 타고 미끄러져내렸다. 망을 보던 총각애였다. 총각애는 흘러내리는 바지괴춤을 한손으로 잡고는 동리쪽으로 총알같이 내달리며 새각시가 온다고 야단이였다.

동리 첫 어귀, 크지 않은 초가집마당에 오구작작 모여섰던 사람들이 목을 빼들고 이쪽을 넘보고있었다.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중년아낙네가 가마행차를 마중하여 황황히 삽짝문밖으로 나왔다. 서방의 유일한 혈붙이인 시누이였다.

선림은 내릴 차비를 하려고 머리에 얹은 족두리와 칠보단장한 옷매무시를 바로잡았다. 동백기름에 재워 윤기도는 머리카락은 검은 구슬처럼 뽀얀 살결을 두드러지게 하였고 수태를 머금은 얼굴은 소담한 배꽃처럼 환하고 이뻤다.

선림은 벗어놓은 백코신을 신으려고 발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시오리 넘는 길을 내내 두다리를 깔고있어 다리가 통통 부어오르고 발이 저려 움쩍 안했다. 그럴가봐 떠나올 때 친정어머니가 자주 발을 움직이라고 무던히 신칙했건만 가마군들한테 흠을 잡힐가봐 까딱 움직이지 않았더니 그만 다리에 쥐가 온것 같았다. 가마가 땅에 내려앉았다.

오매불망 그리던 해방덕에

천지만물이 한껏 밝아지고

강남갔던 청제비 흥부박씨 물어온 이 은혜많은 계절

봄바람에 실려왔나

구름타고 왔나

어여쁘고 얌전하고 하늘선녀같은 새각시 왕림이시오―


결혼식주례군의 너스레에 마당안에 울을 치고 서있던 사람들이 왁자그르한 웃음을 터쳤다. 그러나 가마안에서 내릴 기미가 뵈지 않자 《여보게 새서방, 어서 각시를 안아내리게.》라고 한다.

《애개개!》

선림은 가슴이 철렁 바빠맞았다. 둘러리녀인은 어델 가고 남정이 안아내린다는건가? 금시에 얼굴이 홍시가 된 선림은 정말 서방이 그럴가봐 과다든 다리를 또 잡아당겼다. 상기도 풀리지 않았다.

《이 사람 영도, 뭘 우물쭈물. 제꺽 안아내리지 못할가!》

선림은 그만 울음이 터질 지경이였다. 얼른 오른쪽 장지손가락에 침을 발라 코등에 찍었다. 발이 저리면 그렇게 하던짓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하, 이거 새각시가 뻗대누만.》

《도로 제 집에 가겠다는 속심이야.》

《옳소다!》

가마채가 다시 건뜻 쳐들렸다. 가마를 되돌려세운 교군들의 야료가 또 시작되였다. 가마채를 둘러멘 그들은 일부러 갈지자걸음을 멋스레 짚으며 주거니받거니하는 소리까지 뽑았다.

어기영 어기영

코물서방 새서방

물렁물렁 물서방


어기영 어기영

시집살이 매운맛

고추당추 당할소냐


어기영 어기영

시집살이 눈물살이

애고애고 내 팔자야

《아뿔싸, 뭣들 하구 섰어. 어서 술과 안주를 내오잖구!》

주례군의 다급한 소리에 시누이가 집안에 뛰여들어가 술방구리와 돼지발쪽을 질그릇에 받쳐내왔다.

《빨리 서방이 가서 빌게.》

한쪽에서 씨물씨물 웃기만 하던 서방이 그 불같은 독촉에 술방구리를 들고 장달음을 놓았다. 그뒤로는 돼지발쪽을 든 애녀석이 따라서고.

교군들은 술 한조롱씩 받아 마신 후에야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일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새서방과 새각시의 맞절이니, 교배주니, 가락지선물이니 하는 초례식이 끝난 다음 새각시가 큰상을 받으려 할 때였다.

땅을 분여받은 이웃마을농민들을 축하하여 이곳에 왔던 읍농악대가 어떻게 알고 잔치집에 들이닥쳤다. 잔치집뜨락은 삽시에 흥성들썩해졌다.

간드러진 장새납소리에 구성진 저대소리가 합세하더니 새장고와 반고를 든 처녀들이 둥기당당거리며 원을 지어 돌아갔다.

그가운데로 상모군들이 꼬리댕기를 나붓나붓 휘돌리자 그 모든것을 걷어안듯 열두발댕기가 휘휘 빙글거린다. 그찰나 꼬리댕기상모군들이 빠져나와 반고수처녀들과 짝을 뭇는다. 서로서로 눈을 빨고 살짝살짝 어깨를 들었다놓는 춤가락에 잔치손님들은 흥에 겨워 손벽이 부서지고 눈과 입이 치째지는줄도 모르고 웃어댔다.

그렇게 저물도록 놀아대던 농악대의 상모군들이 큰상 받은 새각시곁에 있던 서방을 불시에 끌어내서는 다짜고짜 오라를 지어 정지방대들보에 거꾸로 매달았다.

《여봐라!》

방가운데 올방자를 틀고앉은 중년배상모군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호기있게 령을 내렸다.

《인사범절 모르는 서방한테 버릇 좀 가르쳐야겠다. 선녀같은 색시를 맞았으면 응당 례를 차려야 할텐데 저만 좋아 벌쭉대니 이런 무도한 놈 어데 있을고. 그놈 열물 토할 때까지 매우 쳐라!》

《예―잇.》하는 대답소리와 함께 미리 내약이 있었던지 장작개비를 들고 서있던 까까머리청년이 선자리에서 한바퀴 돌면서 《하나요―》라고 긴소리를 뽑아치며 서방의 허리모퉁이를 들이답새겼다.

철썩!

《어이쿠!》

선림은 서방을 쥐여짜는 놀음인줄 알면서도 그 행패가 장난같지 않아 속이 떨렸다. 시누이가 얼른 떡함지를 중년배상모군앞에 내놓았다.

《자, 이 찰떡 함지채로 받읍소.》

《흥, 또 쳐라!》

《예―익, 둘이요!―》

잔치집주례군이 달려들어 까까머리가 쳐든 장작개비를 붙잡고 사정했다.

《이 사람아, 제발 허리는 치지 말게나. 첫날밤 허리심이 기본인데 어쩔려구.…》

《으하하… 그럼 종아리를 치리다. 둘이요.―》

매가 또 떨어졌다. 서방의 비명소리가 아츠럽게 울렸다.

선림은 사정없는 장작개비가 쇠몽치같아 살이 짓이겨지고 뼈를 바수는것 같았다. 하여 매가 떨어질 때마다 살점이 묻어나오는듯 온몸이 으지직해져 몸서리쳤다.

시누이가 이번에는 탁배기를 항아리채로 안아내왔다. 중년배상모군은 그것도 성차지 않아 눈을 뜨지 않고 도리머리질이다.

《아따, 그럼 또 뭐요?》

《큰상을 허물지 못할가!》

《그거야 어떻게, 새애기가 채 받지 않았는데.》

시누이가 울상이 되여 우물거리는 그 소리에 정신이 펄쩍 든 선림은 저도 몰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어서… 이 상을 받으세요.》

《안되오, 그 상을 허물지 마오. 그건 절대로 다치지 못해!》

거꾸로 달린 서방이 피가 몰켜 벌겋게 된 얼굴에 힘을 주며 고함쳤다. 선림은 속이 바질바질 타기만 했다. 그까짓 뜨는둥마는둥 먹을수 없는 상음식이 뭐라고 인사불성이 되는줄도 모르고 저럴가.…

《그놈 방자스럽다. 다섯이요―》

《가만!》

호령질하던 중년배상모군이 손을 들어 매를 제지하고는 서방한테 따지고들었다.

《서방 이놈, 너 정녕코 큰상을 허물지 않을테냐?》

《그렇소.》

《허, 꽤 의기가 있도다. 제 색시 지킬줄 알거던.》하며 중년배상모군이 좌중을 향해 껄껄 웃자 어느결에 결박했던 서방의 오라줄이 풀려졌다.

결혼식 흥바람이 질퍽히 무르녹으며 밤이 깊어갔다.

서방이 신방에 들었을 때 선림은 그의 바지가랭이를 가만히 걷어올렸다. 량쪽장딴지 군데군데에 퍼런 멍이 있는가 하면 피가 밴데도 있었다.

《아프잖아요?》

《아프긴.》 입가에 히무죽한 웃음을 긋던 서방은 선림을 넋없이 바라보다 황망히 시선을 떨구더니 말을 이었다.

《님자가 그렇게 헐값이겠소? 쉽게 들어간 못은 인츰 뽑혀진다는데… 장밤 맞은들 무슨 대수겠소. 그런데 가락지는 왜 뽑았소?》

서방이 보동보동한 선림의 손을 매만지였다. 선림은 낮에 서방이 끼워준 비취옥가락지가 손가락에 설어 일시 뽑아 간수하였던것이다.

《그 가락지를 뽑지 마오. 자리가 잡히면 일없을거요. 그건 우리 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주려고 돌아가시기 전에 마련한거라오. 가락지처럼 끝을 모르고 살라고.》

선림은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에… 이것이 행복이라는건가? 어쩌면 비천한 이 몸을 이리도 귀히 여겨주실가. 아, 한생 믿어의심치 않고 몸담을 사람!…

《그래요 아버지, 아버진 그렇게 어머니를 끔찍이 여겼어요. 가락지처럼 끝을 모르고 오래오래 함께 살기를 원하시구요. 그런데 어째서 어머니를 끝까지 보호하고 살펴주지 못했습니까?》

이 물음은 리진의 마음속에 언제나 제일 큰 의문으로,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그는 지꿎게 파고들고싶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아버지의 대답이였다.

《그래요. 나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처럼 엄말 사랑하면서도 왜 고향을 떠나려고 했는지, 또 어째서 그다지도 값없이 짧은 생을 마쳤는지?…》

이것은 곧 리진의 생각이였다. 아직은 뭐가뭔지 알수 없는 리진은 아버지의 삶을 저주하고 부정하던 나머지 자기한테 유리한 아버지가 되게끔 고안해냈다.

그는 이렇게 자기식의 존재를 만들어놓음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옳게 파악 못하는줄도 모르고있었다. 그와 같은 리해로 하여 리진은 괴로움을 한결 덜수 있었고 주경이와의 사이에서 일어번지던 푼수도 그다지나 비참하고 절망적인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이쯤해두자, 좀더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어.) 라고 맘속으로 뇌이며 그는 중유로작업반실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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