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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2 장


2


행정청사를 나선 강대철은 한쪽발이 저려들어 약간씩 절면서 걸었다. 젊은 시절 동상을 입었던 발이 환절기때면 이따금 도지군 했다. 그는 뜨끔뜨끔 쑤시는 발의 아픔보다도 기사장일에 더 신경이 갔다. 기사장이 지금 화학공업부(당시)에 불리워갔다면 종섭의 말처럼 즐겁지 못한 일이 있을것만 같았다. 여태 기사장을 잊고 김리진이한테만 마음써온것이 죄스러웠다.

불같은 사람이 다불리우고있겠으니 그 마음인들 오죽 뒤번져질가. 무슨 일에서나 통머리 크고 호방한 그가 주접이 들지 말아야 할텐데. 그 사람이 기가 죽으면 공장이 기가 죽는다. 배짱도 있고 책임일군다운 기풍도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였다.

김리진이 일으킨 사고와 때를 같이하여 해외에서 돌아온 전준혁은 다른 사람같으면 그 험한 사태앞에서 주저앉고말았으련만 작업복도 갈아입지 않고 외출복채로 로보수현장에 뛰여들어 현장지휘를 하였다. 불과 닷새만에 로를 원상복구한 그는 뒤미처 열린 사고심의에서 또한 책임일군다운 립장을 지켜 만장을 격동시켰다.

그날 회의는 실로 심각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저마다 일어나 사고의 장본인을 법무에서 취급해야 한다고 윽윽거렸다. 회의분위기가 한창 고조될 때 집행부앞탁에 묵묵히 앉아있던 전준혁은 거방진 허우대를 무게있게 일으켜세웠다. 너부죽한 얼굴에 진한 먹으로 듬뿍 찍어놓은듯 한 눈섭, 그아래 위엄기어린 시선으로 장내를 희끗 둘러보던 그는 진중한 어조로 입을 뗐다.

《동무들… 나는 이번 해외출장길에 원유가공공업을 전문대상하고있는 그곳 과학연구기관을 찾아 페불리용형편을 알아보았습니다. 솔직한 말로 원유가공공업에서는 세계적으로 제노라 하는 그들도 그 〈황금덩이〉를 놓고 암중모색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얼마간 리용을 해보려다 역시 생태환경을 파괴시켜 포기했다는것입니다.

원유가공공업이 존재하는 한 페불은 필수절대적이다, 인간의 지혜는 아직 페불을 정복할수 없다, 조선속담처럼 그것은 먹을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한 말이였습니다.

이런 전인미답의 길, 아직 이 세상 그 어데서도 정복하지 못한 고지를 점령할 명령을 우리가 받아안았습니다. 천재적인 예지를 지니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우리들을 새로운 과학기술정복전투의 일선에 세워주시였습니다. 우리한테는 아무런 〈적후정찰〉자료도 없습니다. 우리가 한치한치 톺아야 할 앞길에 함정이 나질지 지뢰원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첫걸음을 떼야 길이 나집니다. 그리고 함정에도 빠져봐야 에돌아가는 길을 찾을수 있습니다. 김리진동무는 자기의 희생적인 시험실패를 통하여 우리가 다른 길을 모색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이 동무한테 법적책임이 지워진다면 나도 함께 받겠습니다.…》

회의참가자들은 갑자기 온몸에 전류가 흐른듯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넓다란 회의장공간에는 후더운 바람이 몰아치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인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회의를 결속하던 지배인도 심히 감동되여 페불을 잡는 일은 어떤 희생이나 상실도 각오해야 한다며 김리진이를 정류직장 로공으로, 현장단련이라는 관대한 처분을 주는것으로 끝냈다.

그날 밤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사람들은 또 다른 뜻하지 않는 광경에 부딪치였다. 한 녀인이 불쑥 전준혁의 앞을 막아서더니 그의 발치아래 무릎을 굽히고 절을 하였다.

《죽을 죄는 하늘도 돕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 은공을 무슨 말로…》

녀인은 엎드려 흐느낌을 터치였다. 전준혁은 녀인의 거동에 아연하여 한동안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강대철은 녀인을 잘 알고있었다. 언제나 인자하고 숙부드러운 미소를 짓군 하는 몸매 체소한 김리진의 어머니 유선림이였다. 아마 밤이 깊도록 내내 회의장밖에서 아들의 신상이 걱정되여 속을 까맣게 태우고있었던가싶었다. 전준혁이도 녀인의 심정을 짐작한듯 너그럽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였다.

《아주머니, 이러지 마시오. 그건 그 누구의 은공이 아니라 사람을 귀히 여기는 당의 뜻입니다.…》

그러나 김리진이 일으킨 사고의 여파는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피해를 준 당자보다 오히려 기사장이 불리워다니며 욕을 보고있었다. 그렇게 되자 일부 기술일군들속에서 리진에 대한 불만이 다시 머리를 치여들었다. 종섭의 태도도 그러한 감정이 일으킨 반발이였다.

강대철은 한쪽발을 저겨밟으며 숲이 무성한 구내공원에 닿았다. 청신한 대기속에는 산뜻한 과일향기가 페부를 찔렀다. 그는 심사가 상할 때마다 현장을 돌아보거나 여기에 와서 기분을 가라앉히군 하였다.

정류직장 조작실앞 넓은 지역은 백살구, 앵두, 배, 찔광이나무들로 무성한 숲을 이루어 구내공원으로 리용하고있었다. 여름 한철에는 백살구들이 아지가 부러질듯 달려 이채로운 풍치를 이루지만 지금은 새빨간 찔광이들이 다닥다닥 열려있었다.

두명의 처녀들이 키낮은 찔광이나무아래서 바구니에 열매를 따고있었다. 낯선 처녀들이였다.

《동무들은 누구인데 함부로 손을 대는거요?》

《우리 소장어머니가 정류직장장동지의 승인을 받았다면서…》

몸이 오동통한 처녀가 강대철의 칼칼한 눈빛에 눌리워 말끝을 맺지 못했다. 강대철은 요전날 공장병원 고려약국 약제사들이 찔광이는 심장보호에 특효라며 얻으러 왔을 때에도 딱 자르던 직장장이 승인했다니 이상했다.

《우리 소장어머니라니, 누군데?》

《정양소 소장어머닙니다.》

두 처녀는 약속이나 한듯 일시에 대답하였다. 순간 강대철은 다소 놀랐다. 서윤정, 그 녀자가 이제는 어머니로 불리우는가? 아직도 처녀시절의 싱싱한 미모가 활달하고 시원스런 몸가짐과 얼굴에 비껴있는것 같은데 어느새 벌써…

《어서 따오. 소장동무가 요구했다면 정양생들을 위해서겠지.》

어지간히 주눅이 들려던 처녀들은 얼굴이 함씬 밝아졌다.

《그래요, 우린 정양소취사원들인데 어머닌 우리한테 찔광이단졸임을 만들어 정양생들한테 공급하자고 했어요.》

《음, 그 참 좋은 생각이구만.》

역시 그 녀자다운 훌륭한 생각이였다. 그 녀자는 자기 생활의 전부를 정양생들을 위해 바치고있었다. 그들에게 좋은 생활조건과 식사조건을 마련해주려고 자체로 농축산물부업지와 여러가지 남새를 키울수 있는 온실, 수산물생산기지를 꾸리고 거기서 나는 생산물과 수입으로 년중 어느 하루도 쉬임없이 정양소를 운영하여 온 공장종업원들의 건강증진과 생활에 적지 않은 보탬을 주고있다.

아당지고 이악한 일본새, 사심없는 헌신과 뜨거운 인정미, 공장종업원들의 사랑과 총애를 받고있는 그 녀자가 돋보일수록 강대철은 자신의 품격이 어이없이 허약해보이였다. 한개 직장사람들의 아픔이나 소원도 풀어주지 못하는 당일군…

배나무아래 돌의자에 앉아 저린 발을 주무르던 강대철은 다시금 잠시 잊었던 김리진이한테 마음이 갔다. 어느 한 배나무가지끝에는 초가을 선풍이 맴돌아치며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이파리를 잡아뜯지 못해 몸살을 피웠다. 이파리는 가지품에서 떠나기 아쉬운듯 바르르 떨며 가는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그 애처로운 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대철의 눈앞에 문득 김리진의 얼굴과 함께 유선림녀인의 모습이 엇바뀌여 나타났다. 불행한 가정의 운명을 지닌 그들… 그래서 기사장의 신상을 외면하고 그들한테 더 마음을 기울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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