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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 1 편
은백양나무에 새겨진 자취


제 2 장


1


덩지가 크고 번듯한 행정청사 3층에 자리잡고있는 기술과 사무실에서는 책상을 마주하고 두사람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있었다.

《김리진동무만은 동의할수 없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 동무때문에 기업소가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습니까. 그 여파가 오죽 컸으면 화학공업부에서 기사장동지를 불렀겠습니까? 70일전투준비사업으로 잠시도 자리를 뜰 형편이 못된 기사장동지를 불러들일쯤해선 되게 추궁하려고 그러겠지요. 참, 기가 막혀서… 며칠전에는 법기관사람들이 무슨 보증서요, 수표요 하며 기사장동질 닥달질하더니…》

기술과지도원(당시) 서종섭은 쓰겁게 입을 다물었다. 웃몸이 바라지고 비좁은 이마로 하여 퇴매져보이는 종섭은 말투마저도 비양조였다.

그앞에 삐뚤서 마주앉아있던 정류직장 분초급당비서(당시) 강대철은 속이 불끈거려 겨우 참고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솔빗처럼 뻣뻣한 짧은 상고머리와 명민한 눈, 민첩한 몸가짐은 50대에 이른 사람같지 않게 패기있고 칼칼해보였다. 그의 관자노리에는 불깃불깃한 반점이 돋았다.

성나거나 분을 참을 때마다 생기는 생리적현상이였다.

《여보, 물론 그 동무가 일으킨 사고는 엄중하오. 그렇지만 현장에서 그만큼 단련시켰으면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에 받아주는게 옳잖겠소. 털어놓고 말해서 페불을 잡는 일이야 리진의 발기안을 참모부서가 지지해 받아들인게 아니요.》

《그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동무의 안을 좀 미타해하였지만 기사장동지가 착상이 대담하다며 적극 지지해나섰지요. 그러나 도입시험이 실패했을 때 우린 그의 안으로써는 절대로 페불을 잡을수 없다는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기사장동지와 제가 외국에 출장간사이에 또 반복시험을 했으니… 기사장동지가 한몸 내대고 법적책임을 막아주었으니망정이지 어쩔번 했습니까? 기업소손실도 손실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사람때문에 불리워다니며 동네북처럼 얻어맞고있는 기사장의 곤욕에 비하면 그 동무의 현장단련이야 새발의 피지요.… 그리고 이번 70일전투목표에 페불리용문제를 제기하겠는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거니와 설사 하더라도 그 동무의 페불도입안은 이미 막을 내렸으니 실지 그 동무가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에서 맡을 몫도 없어졌습니다. 기사장동지가 과학원에 의뢰하여 열공학전문가의 방조를 받기로 했으니까요.》

《전주경연구사 말이요?》

《잘 아시누만요.》

로골적인 비웃음을 입귀에 긋던 종섭은 70일전투기술혁신돌격대명단이 적힌 문건철을 탁 소리나게 덮어버렸다. 다른 때 같으면 강대철은 가만있지 않았을것이였다. 성미가 급하여 《휘발유》라는 별명이 붙은 그였지만 이 퇴매진 종섭의 앞에서는 흠잡힌 사람처럼 성격을 살리지 못했다. 서종섭은 자기와 마주서면 언제나 한본새로 싸늘한 랭소를 품고 대하는것이였다. 강대철은 이와 같은 그의 감정을 썩 오래전부터 느끼고있었는데 웬 영문인지 공장에 다니는 서종섭의 일가형제들도 길가나 구내에서 만날 때면 하나같이 알은체를 안했다. 다만 서종섭의 사촌누이인 공장정양소 소장 서윤정은 그러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 일해온 그 녀성은 강대철을 매우 존대스럽게 대해주군 하였다.

(빌어먹을, 내가 오지 말고 직장장을 보냈더라면 이 요지부동같은 녀석이 이발이 들어갔을지도 몰라.)

요즘 공장참모부서에서는 다가오는 70일전투를 앞두고 능력있는 기술두뇌진들과 보조성원들로 기술혁신돌격대를 뭇고있었다. 강대철은 그에 보충하여 망라시킬 직장성원들을 쨈하러 왔다가 김리진이만은 성사시키지 못하고 되돌아섰다.

이제 얼마후이면 력사에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70일전투의 장엄한 포성이 온 나라를 진감할것이였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년말이 다가오는 올해 1974년의 인민경제계획수행정형을 부문별로 깊이 료해하신데 기초하여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일대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을 70일간의 전투를 작전하시였다.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빛나게 수행하여야 우리 당 제5차대회가 내놓은 6개년계획의 웅대한 과업을 앞당겨 실현할수 있었다.

더우기 올해는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모신 민족의 대경사스러운 해이므로 우리 인민은 그이의 령도에 충정다할 불타는 신념을 안고 70일전투를 빛내여갈 결의로 충만되여있었다.

승림화학공장 초급당위원회는 전투의 중심목표를 놓고 광범한 군중토의에 붙이고있었다. 휘발유와 디젤유, 여러가지 기름제품들을 생산하는 승림화학공장의 역할은 실로 크고 중요하였다.

속도전의 불바람으로 폭풍칠 매 전선마다 연유와 기름제품들은 생명수나 다름없지만 특히 이번 전투의 중심과녁인 채굴, 수송, 수출품생산을 도약시키는데서 가장 절실한 요인중의 하나였다.

때문에 국가적으로는 종전보다 기름제품생산을 약 1. 8배 장성시킬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공장당위원회는 일약 2배의 증산목표를 내걸고 전체 종업원들에게 그 수행방도를 찾을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이 기간에 새로운 과학기술을 점령할 문제도 상정시키고있었다.

페불을 리용하기 위한 새로운 과학기술개발! 이 문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미 공장기술자들과 로동계급에게 직접 주신 성스러운 과업이기도 하였다.

지난 5월 중순, 조국의 최북단에 자리잡고있는 왕재산혁명사적지 대기념비건설을 현지에서 지도하신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날 밤 승림화학공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비파봉 령길을 지나게 되시였다.

그때 승림화학공장 페가스굴뚝에서는 삼단같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밤하늘에 장쾌한 화폭을 펼치였다. 그 충천하는 불길은 공장구내는 물론 비파봉기슭과 바다멀리까지 진붉게 물들이였다. 공장구내는 마치도 불도가니마냥 이글이글 타번지는것 같았고 산도 불산처럼 타오르고 바다도 불물이 되여 일렁이는듯싶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차를 멈추게 하시고 온통 불천지로 화한 신비경을 점도록 바라보시다가 수원들에게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저 불은 원유가공행정에서 생기는 유해로운 가스를 태우는 불입니다. 발전된 원유가공공업을 가진 나라들에서도 저렇게 굴뚝에서 태워버립니다. 거대한 열원을 쓸모없이 태워버리는것은 현대산업이 남긴 오유일뿐만아니라 현대과학기술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그러시고는 공장책임일군들을 부르시여 페불을 쓸수 없겠는지 잘 연구해보라고, 수령님께서 처음으로 세워주신 원유가공기지인것만큼 생산도 기술도 우리 식대로 높은 수준에 올려세워야 한다고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원유가공공업이 창설된이래 지금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오며 페불은 사람들을 그처럼 유혹하였지만 그것은 한갖 먹을수 없는 그림의 떡으로 남아있었다. 때문에 그 어느 나라에서나 원유가공공장은 페가스를 응당 태워버리는것으로 설계되군 하였다. 얼마나 절대불변이였으면 세계원유가공발전문제를 론하는 모임이나 토론회를 상징하는 마크에까지 페불굴뚝을 새겼겠는가.

공장에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말씀을 원유가공법을 세계적수준에서 개척할 새로운 봉화를 우리 로동계급에게 지펴주신 최상의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 사업에 기술자들이 앞장서도록 하였다.

인츰 공장기술집단은 세계과학기술문헌자료연구에 달라붙었다. 일부 나라들에서 페가스를 큰 저장탕크에 포집재가공하여 극히 적은 량을 리용하고있었다. 또 페열로 바다물을 농축시켜 공업용소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방법들은 건설비용과 생산원가가 엄청나 실리에 맞지 않았다.

바로 그무렵에 공장공업연구소 연구사 김리진이 제출한 《중유로에 페가스도입》안이 물망에 올라 기사장 전준혁의 주목을 끌게 되였다. 그의 기술안의 혁신적근거는 공장의 수십개나 되는 중유로에 연료대신 페가스의 전량을 쓰게 되면 많은 중유를 절약할뿐만아니라 유해가스의 연소가 강철로속에서 진행되여 냄새와 연기가 높은 굴뚝을 통하여 확산되기때문에 생태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이 발기는 전준혁의 추천에 의해 기술참모회의 지지를 받고 시험에 착수하게 되였다.

시험은 중유로를 폭파시켰다. 그러자 일부 기술일군들속에서 험담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렴 세계적인 수수께끼가 그렇게 단순하겠는가, 그 황금덩이를 놓고 무슨 탐구인들 없었겠는가, 철없을 때 별을 딸 꿈을 꾼다더니…

김리진은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되여버렸다. 그즈음에 기술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해외출장이 예견되였던 전준혁은 떠나기 앞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도록 기술집단에 과업을 주었다. 리진은 그 조치를 접수할수 없었다. 첫번째 시험실패의 원인을 단순히 페가스량조절을 잘못한데서 찾은 그는 두번째 시험에서는 기필코 성공하리라는 불같은 확신을 갖고있었다. 기술발전과의 몇몇 일군들도 같은 생각이였다. 그에 힘을 얻은 리진은 부재중인 기사장이 단념한줄 알면서도 로를 정지보수하는 기간에 기술발전부기사장과의 합의하에 다시 시험을 벌렸다가 같은 결과를 빚어냈던것이다.…

이리하여 페불연구는 일시 좌절되였다. 공장당위원회에서는 이번 전투기간에 페불을 잡아 원유가공을 높은 수준에서 진행할데 대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말씀을 관철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적지 않은 행정기술일군들은 망설이고있었다. 두차례나 실패한 엄청난 과학기술적문제를 과연 70일이라는 짧은 시일에 해낼수 있겠는가, 게다가 방대한 생산과제수행과 함께 내밀다가 이것도 저것도 놓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강하게 지배해서였다. 그러나 전준혁기사장은 과학원과 교섭하여 이 사업을 그냥 추진시키고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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