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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66 회


제 2 편


28


최윤호는 다음날의 시험을 보장하기 위한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늦어서야 퇴근길에 올랐다.

거리는 한적해졌다.

온 도시가 떨쳐나 눈을 쳐내여 도로는 말끔한데 길옆 가로수아래에는 아직도 모아놓은 눈무지들이 쌓여있었다.

거기서는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퇴근해온 사람들이 눈을 어디론가 날라가고있었다.

푸근하던 대기는 해가 지면서 싸늘해졌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이였다.

기분이 울적해가지고 무심히 눈더미들사이를 지나가던 최윤호는 누군가가 가까이에서 자기를 바라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서 두툼한 솜옷을 입어 더 거방해보이는 사나이가 눈을 듬뿍 담은 손달구지를 끌고가다가 하마트면 부딪칠번 한 최윤호를 바라보고있었다.

《좀 보면서 지나가구려.》 그 사람이 악의없는 충고를 하며 느슨한 웃음을 얼굴에 담았다.

시건설사업소지배인이였다. 아니, 지배인이 아니였다. 얼마전에 지배인의 자리에서 해임된 사람이였다.

《무얼합니까?》

최윤호는 얼결에 뻔한것을 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눈을 쳐내고있소. 이런걸 묵여두면 거리가 어지러울게 아니겠소. 집들은 저렇게 훤하게 지어놓고 말이요.》

과연 반생을 집을 짓는 일을 해온 사람다운 말이다.

《용서하십시오. 나때문에 지배인동지가…》

《용서는 무슨 용서요? 최동무를 탓할게 아니요. 내가 일을 잘못한 탓이지.》

《아들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군대에 나갔소. 그 애 할아버지의 뜻이요. 사람이 되여서 올거요.》

그 사람은 손달구지를 밀고 가버렸다.

최윤호는 쓸쓸한 기분을 풀지 못한채 눈가루가 날리는 보도우를 외롭게 걸어갔다. 그래, 문철형님은 세상을 떠났어도 우리 제도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참다운 사랑을 간직하고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속에 살고있지만 이 최윤호야말로 형님의 넋이 살아있는 그 땅에 가서 한생 나무를 심다가 속죄의 쓰라린 번민을 안고 그 땅에 묻혀야 할 인간이지.… 그래… 그래… 이 땅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살찌우는 거름이 되여…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뿌옇게 흐리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니 안해가 밝은 낯색을 하고 마중했다. 부엌쪽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최윤호는 전에 없던 따뜻한 공기를 느끼였다. 그것은 전실까지 채운 기름진 음식냄새때문은 아니였다.

《여보, 왔어요!》

안해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서둘러 말했다. 따뜻한 공기는 시름을 날려버린 안해의 밝은 얼굴에서 오는것이였다.

안해의 뒤를 따라 방에서 오련희가 나오고 그뒤를 이어 조카가 나왔다.

방안에는 음식상이 차려놓은채로 있었다. 안해가 성의를 다 기울여 준비한 음식들이였다.

《음식들을 먼저 들게지. 손님들을 앉혀놓고 이건 뭐요?》

《세대주가 들어온 다음에 하자구 련희선생이 어디 손을 대야 말이지요. 여보, 우린 그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 녀자의 얼굴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남편으로 하여 가슴속에 고여있던 섧은 감정이 다 녹아내리는 눈물이였다. 그 녀자는 울며 웃고있었다.

음식들을 들 때 그들은 마치 그전에는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었으며 다정했던 친구들이 오래간만에 모여앉은듯 례사로운 이야기를 했다. 오련희는 음식들이 모두 독특한 맛이 있다고 집의 안주인을 칭찬하는데 마음을 썼으며 금동학생이 시간이 많이 가도록 콤퓨터에 답을 입력할 생각을 하지 않아 정성금책임부원이 시험감독답지 않게 조마조마했다던 소리도 하여 집의 순박한 안주인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글쎄 우리 금동학생이 만점으로 시험을 치지 않았겠어요.》하고 오련희는 말했다.

최윤호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생각에 잠겨있었고 금동이는 싱글싱글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오늘의 주인공 비슷하게 된 안주인은 별치 않은 이야기가 나와도 흥미진진한 표정의 변화를 보이고…

누구도 괴로운 추억을 건드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 따뜻한 분위기가 소중한것이였다.

오련희와 최금동은 집에서 자고 가라는 안주인의 권고를 마다하고 그 집을 나섰다.

그때문에 안주인이 서운해했다. 금동은 다음시험을 위해 숙소에 가서 공부를 해야 했으며 오련희는 정성금이 기다리겠다고 한것이였다. 두 녀자는 언제나 만나면 할 소리가 많아 밤새워가며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하여 안주인은 그런 사정이면 시험이 끝난 다음 둘이 함께 다시 들려야 한다고 했는데 오련희는 또 그 녀자가 서운해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냥 가겠어요. 아주머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요. 이담에 또 들릴 때가 있겠지요 뭐. 이번엔 빨리 가야 해요.》

거기 림산마을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친근한 사람들이 있는것이였다. 오련희가 떨어져 살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최윤호가 바래주려고 따라나왔다.

하늘에는 어느새 뭇별들이 한벌 깔리였다.

《들어가보세요.》 아빠트현관에서 나오자 오련희가 말했다.

《용서하오.》 최윤호의 침울한 목소리.

《뭘 그러세요!》

《…》

두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다 알고있었다. 그런데 오련희는 자기가 너무 매정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생활에 그런 일은 있다고 봐요. 그래도 한마디 하고싶은 말이 있어요. 최동지는 자기때문에 이 오련희라는 녀자의 운명이 별나게 되였다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그런게 아니예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은 자기를 키워준 고마운 나라앞에 성실해야 할거예요. 그러면 인생의 먼 후날에 가서도 후회가 없을거예요.》

그것은 자기의 사랑을 긍지롭게 생각하는 그 녀자의 인생이 응축되여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 녀자의 사랑, 그것은 자기가 몸담그고 사는 이 고마운 사회였으며 생활의 전부였다.

오련희는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벙글벙글 웃는 커다란 얼굴, 자기의 목수건을 벗어서 목에 감아주며 걱정해주던 사람! 지금도 눈내리던 그 고개마루에 그냥 서있지는 않을가?

《우리 림산마을에서 나온 보배덩이를 모시고 가는데 걸어서 갈수야 없지. 그렇다고 번쩍거리는 승용차는 없는것이고. 그 대신 어느 〈임금님〉도 타보지 못했을 왕차를 타고가오. 대형림산차를 말이요.》 하던 작업소소장아바이의 투박한 얼굴이며 《고마워요!》 하고 가슴속에 넘쳐나는 정과 하많은 말을 그 한마디에 담아 하며 동구밖까지 따라나와 바래주던 금동이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지없이 소박하고 진실하며 근면한 로동으로 나라의 재부를 늘여가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이 오련희 한생의 무엇을 아끼랴.

《정성금동지가 최동지한테 아픈 말을 좀 해준것 같은데 리해하세요.》 하고 오련희는 말했다.

《알겠소. 그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난 응당 그런 말을 들어야 했소. 그런데 하나만은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소.》

《?…》

오련희의 얼굴에 한점의 의혹이 살아났다. 그것을 느끼자 최윤호는 서둘러 말했다.

《오해하지 마오. 난 광우부국장동지한테 사죄를 하려고 했는데… 부국장동지가 눈길을 힘들게 갔다온 그 몸으로 곧장 평양으로 떠나갈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소.》

오련희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였다.

《좋은분이예요. 그런데 실은 저야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똑똑히 못했거던요. 하지만 마음이면 된다고봐요. 마음이 깨끗하면 말 없이도 통한다고봐요.》

《련희동무의 그 말은 옳소. 그런데 난 이제야 깨달았단 말이요.》

《동지두 참! 그런 말은 그만하자요. 금동이,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삼촌, 잘있으라요.》 최금동이 인사를 했다.

《시험을 마지막까지 잘 쳐라. 너를 바래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너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뛰여다녔니? 너 하나를 위해.》

《알겠어요, 다 알아요. 삼촌, 집에 한번 꼭 내려오세요.》

《너의 어머니가 나를 용서하겠니?》

《어머닌 다 리해할거예요, 리해해요.》

조카는 용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른이 다된 소리를 했다.

《내려가겠다, 꼭…》 하고 최윤호는 손님들이 리해할수 없는 의미심장한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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