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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3 회


제 2 편


25


김광우와 지석영은 지칠대로 지치여 거의 실신상태에 이른 두사람을 부축해가며 고개 하나를 넘었다. 기본도로우에 세워놓은 자동차에 그들을 태우고 시내를 향해 떠났다.

오련희와 금동은 차에 오르기 바쁘게 시름을 놓고 잠들어버렸다.

《100리도 넘을텐데…》 지석영이 녀선생과 어린 중학생이 걸어서 왔다는 눈덮인 아득한 길을 그려보는듯 혼자서 중얼거리였다. 그러다가 말이 없는 부국장을 바라보았다.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국장동지.》

광우는 생각에서 깨여나며 무슨 소린가 해서 지석영을 돌아보았다.

《최윤호동무한테서 전 오늘에야 들었습니다. 부국장동지가 여기로 내려오는 길에 어느 고개마루에서 의식을 잃었댔다더군요, 오래전에 심한 동상을 입었던 후과로… 저는 그런 일이 있은줄도 모르고…》

《무얼 그러오.》

《부끄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부국장동지에 대한 미안함때문에만 그러는게 아닙니다. 인간으로 말하면 저는 정말 량심도 없는 시시한 사나이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입니다. 부국장동지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괴로워 그러는것이 아닙니다. 저자신때문에 그러는것입니다.》

목소리는 심한 자책에 젖어있었다.

광우는 그제서야 그를 리해했다.

《괴롭습니다.》

심장을 비틀어짜는것 같은 그 한마디에는 걸어온 자기의 반생에 대한 지석영의 뼈아픈 후회와 고뇌가 다 들어있는것이였다.

그것을 깨닫자 광우는 가슴이 쓰리였다. 그는 얼굴에 밝은 웃음을 실으며 말했다.

《자기를 너무 학대하는게 아니요? 허허, 그러지 마오.》

《…》

《내가 말은 좀 아프게 했소. 하지만 부학장동무를 리해는 합니다. 부학장동무는 교무행정사업에 몸담그고 늘 바쁘게 사는 사람이 아니요. 부학장동무는 동무대로 대학사업이 잘되게 하자고 늘 머리를 쓰며 뛰여다니는 사람이고 나라의 교육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지 일이 안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야 아니지 않소.

내가 좀 생각하는게 있다면 젊었을 때 수재로 꼽혔다던 사람의 지식이 발전하는 세월을 따라서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있는거요. 정말 그런거라면 무엇보다 국가를 위해서 좋은것이 못되오. 그래서 박사론문소리도 한거요.》

《박사론문을 쓰겠습니다. 낡은것은 버리고 새로운것으로요. 내 인생을 그 박사론문과 함께 새로 써야지요.》

광우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듬뿍 담고 지석영을 돌아보았다.

《그건 아주 좋은거요. 박사란 뭐겠소? 그건 제 하나의 명예를 위해서만 필요한것이 아니지요. 나도 남들만큼 살았다 하고 자식들앞에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것도 아니구요. 지식인은 지식으로 나라를 받들어야 하기때문에 필요한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정말 거 너무 심각해서 그러진 마우, 부학장선생.》

지석영은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점점 더 심한 고민속에 빠져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허허, 뭘 자꾸 아니라는거요?》

《그렇게 좋은 말씀만 하지 마십시오.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전학선부상동지한테서 엄한 충고의 말을 듣고서야 부국장동지가 무엇때문에 사무실에 찾아와 가슴아픈 말을 해주었으며 나의 인생의 과오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나한테는 그 어떤 의무감에 앞서 깨끗한 진심을 바쳐 우리가 사는 이 제도를 받들겠다는 그게 부족했습니다. 나라의 고마움을 알기만 하고 나라를 받드는 길에 내 넋을 바칠줄은 몰랐단 말입니다, 저 녀선생처럼.…》

지석영은 의자에 기대여 편안히 잠에 든 오련희를 돌아보았다.

그를 보느라니 이상하게도 오래전 학우들의 찬탄의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연단에 나섰던 그날의 자기의 열띤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다시 울려오는듯 했다.

《동무들, 나는 얼마전에 실습지에 나가서 그곳 광산의 침전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수만톤은 될수 있는 미광이 잠겨있는 〈미광의 호수〉였습니다. 거기에는 십여가지나 되는 유가금속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광산이 반세기에 걸쳐 배설한 단순한 오물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귀중한 재부였습니다. 인간의 시야밖에 버려진 재부였습니다. 나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니, 거기 침전지관리원의 말을 들으면서 분개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자본주의나라의 한 자본가가 공짜나 다름없는 몇푼의 돈을 선심이나 쓰듯이 내흔들면서 침전지의 미광을 사가겠노라고 했기때문이였습니다.

너희들의 기술로는 유가금속을 선별해낼수 없으니 할수 없지 않는가 하는 소리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나는 그때 우리 새 세대 청년대학생들이 조국앞에 지닌 의무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조국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의 1분1초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아야 하며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인류과학의 정수에 나래쳐올라야 한다는것을 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수만톤의 미광을 그냥 둬두어도 먼 후날 우리의 후대들이 조국건설에 써먹을수 있다고 자신들을 스스로 위안하면서 우리 세대가 그것을 외면할수 있습니까? 우리의 청년대학생들이 조국의 재부를 〈미광의 호수〉에 그냥 묻어두고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지석영은 류창한 웅변으로 수많은 청년대학생들의 피를 끓게 했다. 그때 그들중의 한 학우는 한생을 바쳐서라도 자기 세대의 의무를 다할 결심을 안고 침전지를 찾아갔으나 웅변자는 가지 않았다고 해서 세대의 의무를 외면했다고 비난할수 있었을가?

아니,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그것은 웅변자자신이 심장으로 진실을 웨쳤기때문이였다. 만약 그때 불뿜는 적의 화구가 눈앞에 있었다면, 화점안에서 쏘아대는 적의 가증스런 기관총이 전우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조국이 위험에 처한다면 청년 지석영은 주저없이 몸을 내댔을것이였다. 그때는 그랬었다.

오, 세월이여, 어떤 사람에게는 영예와 긍지를, 어떤 사람에게는 수치와 후회를 새겨주며 무자비하게 흘러간 세월이여! 과연 인생은 긍지롭고 깨끗한 사랑과 열정으로 불타던 지나간 그 시절을 다시 소급해서 살수는 없는것인가? 세월이란 그런것인가?

그 시각. 광우는 눈오는 차창너머를 내다보며 사업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유선일도 봉사기실을 원만하게 꾸려놓았다. 공업대학을 나왔다는 청년이 말단봉사기실을 능히 책임질수 있게 기술전습까지 주었으니 그를 평양으로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는 성금책임부원과 김호성조장만 남아있으면 된다. 그 사람들은 시험치는것을 끝까지 봐주어야 한다.

오련희네를 태운 차가 수험생들을 들인 려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갈림목에 사람들이 나와서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서있었다. 정성금이와 김호성, 유선일이네들이였다.

그들속에는 려관책임자와 나이지숙한 관리원녀인도 있었다. 늦도록 밖에서 들어오지 않는 부국장을 찾아 나왔다가 수험생마중을 갔다는것을 알고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였다.

《원, 사람들두! 눈이 이렇게 내리는데 밖에 나와 기다리기는 무얼기다리오.》 광우는 차에서 내리면서 온통 눈을 뒤집어쓴 사람들을 향해 악의없는 책망을 했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는 금동학생을 보자 부국장의 책망쯤에는 아랑곳없이 달려가 그를 에워싸며 이 눈길에 먼길을 오느라 수고했다고 무슨 찬사라도 하듯 저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러는 가운데 두 녀인이 반가운 상봉을 했다.

《이게 누구야?! 련희동무 아니야?!》

금동의 뒤에서 내리는 오련희를 늦게야 발견한 정성금이 먼저 놀라며 소리질렀다. 그제서야 오련희의 눈이 둥그래지며 챙챙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어마나! 성금동지! 》

두사람은 자기들이 여기서 만나리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던것이였다.

《자자, 밖에서 이러고들 있겠소?》 광우는 누구에게라없이 유쾌한 힐난의 소리를 던졌다.

모두들 손님들의 짐을 받아들고 려관으로 향할 때 광우는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최윤호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조카가 온것을 알면 최윤호가 무척 기뻐할것이 아닌가. 금동조카가 늦지 않고 오기를 그 누구보다도 최윤호가 바랐을것이였다.


바로 그 시각, 최윤호는 시험장의 봉사기실에 있으면서 미진된것이 없는가 재삼 따져보다가 아무래도 광우부국장이 마지막수험생인 금동이가 도착하지 않아 걱정하던것이 마음에 걸리여 일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아보려고 려관쪽으로 가고있었다.

그는 려관으로 들어가는 갈림목을 50메터쯤 앞두고 더 갈수 없었다.

그는 눈내리는 앙상한 가로수아래에 멎어섰다. 그는 갈림목에서 여럿의 마중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본것이였다.

온몸이 녹초가 되여 조카애와 함께 차에서 내리는 녀인이 다름아닌 오련희가 아닌가! 정성금과 부둥켜안고 반갑다고 콩콩 뛰다가 사람들속에 싸여 웃고있는 녀자. 그렇다, 오련희였다.

눈발속에서 그를 알아보는 순간 최윤호는 자신이란 존재가 참으로 가련하게 생각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는 그앞에 나타날수 없었다. 더구나 밤새우며 평양길을 다녀온 광우부국장이 지석영부학장과 함께 그들을 마중가서 태워온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최윤호는 달려가 그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반가와할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두고 수치심과 번민에 시달리였다. 눈녹은 물인지 진짜 눈물인지 알수 없는 차거운 한방울이 흘러내리였다.

최윤호는 언젠가 안해가 원망에 찬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다른 행성에서 사는 사람같아요.》

그는 어찌하여 자기가 그런 고독한 인간이 되였는가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람이 자기가 몸담그고 사는 사회야 어떻게 되든 저 하나의 리익만을 위해 살면 머리속에 다른 세계가 들어앉게 되며 그런 인간은 종당에 가서 수령도 당도 조국도 모르게 된다고 하던 김광우부국장의 준절한 비판이 다시금 귀전을 울리였다.

아, 최윤호, 너는 지금껏 무엇을 추구하며 분주하게 살아왔던가? 저들처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일에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해왔다면 이렇게 되였을것인가. 자기 하나를 위해 사는 인간은 자기 하나로 남아있으며 조국을 받드는 애국위업에 심장을 내대고 사는 사람은 사회의 떳떳한 성원으로 된다는 생활의 리치를 그는 뼈저리게 느끼였다.

갈림목의 사람들은 사라지고 눈은 여전히 펑펑 내리는데 최윤호는 그냥 가로수아래에 눈을 맞으며 서있었다.

한편 광우는 숙소로 돌아오기 바쁘게 남아있게 될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사업조직을 해주고 유선일책임자와 함께 서둘러 평양으로 향했다. 모두들 눈이 그냥 내리는데 어떻게 또 가겠는가고 했지만 광우는 꼭 가야 했다.

래일은 전국적으로 대학입학시험에 들어가는 날이다.

그러니 래일 아침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평양에 가닿아야 한다.

그날 밤, 책상들마다에 수험생들을 위한 시험용콤퓨터들만 들여놓은 너렁청한 시험장안에서 김호성이 뒤늦게 도착한 마지막수험생인 최금동에게 시험을 위한 콤퓨터훈련을 주고있었다.

오련희는 정성금과 함께 맨뒤의 책상을 놓고 나란히 앉아 콤퓨터훈련을 받고있는 자기의 어린 제자를 지켜보고있었다. 그 녀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정성금이 살그머니 다가가 그의 차거운 손을 꼭 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먼길을 힘들게 걸어왔는데 먼저 들어가 쉬렴. 학생이야 저 호성선생이 있지 않아.》

오련희는 살레살레 고개를 저으며 생긋이 웃었다.

《힘든줄 모르겠어요. 그저 고마운 생각밖에 없어요. 부국장동지랑 성금동지랑… 그리고 저… 호성동무랑… 모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우리야 뭘 고맙겠어. 그저 학생 한명이 오지 않는다고 걱정만 했는걸. 부국장동지랑 동무네때문에 고생했지 뭐. 글쎄 우리야 밖에서 기다리며 속만 태우는줄 알았지 그 멀리까지 마중을 갔을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어. 그런데 그길로 또 평양으로 떠나가지 않았겠어.》

오련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평양으로요? 부국장동지가요?!》

《그래.》

《!》

두 녀인이 주고받는 말을 가까이에서 최윤호가 듣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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