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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62 회


제 2 편


24


두사람은 지칠대로 지쳐버리였다. 오련희는 당장 눈판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숨이라도 돌리고싶었다. 귀전에선 초인간의 성대라고나 해야 할 사나이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보라구, 도중에 힘들면 어느 농가에 들려 쉬고가라고 내 말했지? 그 말을 듣지 않다가 어느 지경이 됐소? 고집쟁이같은것!》

눈오는 뽀얀 공간으로 날아오는듯 한 남편의 목소리였다.

오련희는 그 다심한 남편의 투박한 얼굴을 그려보며 생긋이 웃었다. 련인의 얼굴은 인차 사라졌다.

눈앞에는 자기들을 바래주던 고향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오늘 얼마나 기뻐하겠니. 시험치고 올 때엔 전화로 알려라. 온 작업소마을이 마중을 나갈게다.》

그것은 언제 봐야 목소리가 류별나게 높은 작업소소장의 말이다.

《옛날엔 대처에 나가 큰사람이 되여가지고 오면 〈금의환향〉을 한다고 했다. 허, 우리네 고장에서 나라의 대들보감이 나오게 됐구나. 큰사람이 되거라. 〈금의환향〉을 해야지, 좋은 세월에.》

작업소마을의 좌상로인까지도 끼여들어 한마디 식자연한 소리를 했다.

젊어서 한때는 취미가 별나서 이 산골에서도 보풀이 인 두툼한 철학책만 끼고다니며 유식한 소리를 곧잘 했다는 말도 있고 년로보장받고 집에 들어가서부터는 술냄새 맡는데 비상한 감각이 트이여 술마시는 집에 어김없이 나타나군 하지만 별로 괄시는 당하지 않고 오히려 《공대》를 받는 재미있는 로인이였다.

《금동학생, 머리좋다고 순간도 자만해선 안돼요. 쉬운 문제라고 해도 생각을 하고 또 해봐야 해요. 우리 학교의 명예를 안고 간다는것을 잊지 말아요. 꼭 붙어야 해요. 금동학생은 꼭 붙을거예요.》 다심하면서도 걱정 또한 많은 분교의 나이지숙한 녀교장이였다.

《금동오빠, 시험 잘 치라요.》

《금동아, 꼭 붙어가지고 오너라.》

온 작업소마을이 따라나서며 한마디씩 당부를 하고났을 때 금동학생의 어머니가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다 들었지?》 녀인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얼마나 고마운이들이냐. 잊지 말아!》하고 말했다.

그러고나서 오련희를 돌아보았다.

《고마워요, 선생님!》

한마디 말로 많은 말을 하는 녀인이였다

오련희는 금동학생이 시험에 늦어질가봐 지금 시내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릴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 기다릴거야. 그건 고마운 우리 조국의 모습이야. 우리 조국이 금동학생을 기다리고있는거야. 우리 나라에 또 한명의 재능있는 수학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거야.

《선생님, 이자 뭐라고 했습니까?》

금동학생이 돌아보며 이상해서 물었다. 선생님이 숫눈길에 힘들어할가봐 굳이 앞에서 길을 내며 걸어가는 금동이였다.

《기다린다고 했지, 우리 금동학생을.》

다시 돌아보는 금동이의 얼굴에는 의혹이 실리였다.

《누가 기다립니까?》

《온 나라가 기다리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기다리시지.》

총명한 제자의 얼굴에서 의혹은 인차 사라졌다. 눈발속에서 반짝이는 한쌍의 눈, 그 눈이 웃고있다.

《압니다, 선생님. 김정은원수님께서 내가 대학시험에 늦지 않기를 바라신다는거지요?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를 기다리신다는거지요?》

《장해! 정말이지 이젠 어른이 다되였는걸!》

아니, 오련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금동학생이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어른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담았다.

《선생님이 늘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만이 그렇게 말씀한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두 그리고 아버지두…》 금동학생의 목소리는 여기서 끊어졌다.

오련희는 가슴이 쩌릿해왔다.

《그래, 그러니 금동학생은 이 길에서 주저앉으면 안돼. 우린 어둡기 전에 시내에 꼭 들어서야 해요.》

그들이 나지막한 고개 하나를 넘어섰을 때였다.

멀지 않은 맞은켠 산비탈길로 두사람이 마주 걸어오는것이 보이였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에 폭설이 쏟아져내리는 이 외진 산골길에 나서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란 오련희네 외에도 또 있는것인지? 하긴 인간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으랴.

그런데 마주오는 사람들중에서 한사람이 련희네쪽에 대고 뭐라고 소리쳤다.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였다.

《오- 오- 오-》 하는 산울림소리같은 마지막여운만이 날아왔다.

인간이란 때로 비상한 예감을 체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오련희는 눈발속을 날아오는 그 어렴풋한 목소리의 여운에서 눈물겨운 반가움의 색조를 느끼였다.

련희는 조금전에 온 나라가 자기들을 기다린다는 말을 하였는데 정말로 자기들은 외로운 길을 걸어온것이 아니였다.

《우리를… 마중오는… 사람들이예요! 금동이… 마중을…》

목이 꽉 메여 더는 말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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