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61 회


제 2 편


23


지석영은 전학선부상한테서 심각한 말을 들은 다음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이 한생을 살아오느라면 지나온 자기의 생애를 돌아다봐야 하는 때도 드문히 있는 법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지석영의 경우에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그만큼 순탄하게 살아온 그였다. 그는 중년기가 거의다 지나가는 이때까지 좌절이라는것을 몰랐으며 자기는 모든것이 잘되기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아버지가 련합기업소의 책임일군을 하다가 순직한 좋은 집안에서 태여나 똑똑하고 머리가 좋다는 말을 들으며 유치원으로부터 인민학교(당시)를 거쳐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곧장 대학으로 갔다.

대학에서도 머리가 좋은 덕에 동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였으며 대학교원이라는 경력을 거쳐 교무부학장이라는 직제에 올랐다.

그에게도 자기의 두뇌를 믿고 학계에서 마음껏 나래쳐보리라는 꿈이 있었고 밤을 밝혀가며 인류가 도달한 지식의 세계를 파고들어가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기만 했다.

그때에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피곤하거나 힘든줄을 몰랐기때문이였다. 젊음의 덕이였던가?

아니, 결코 그때문만은 아니였다. 그때에는 조국앞에 지닌 의무감이라는것이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그에게도 정의감이라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조국이 남들보다 떨어질 리유가 없으며 떨어지면 남들의 수모를 받게 된다는 그런 정의감이였다.

그는 그 감정을 대학청년동맹에서 조직한 웅변모임에 참가하여 토로했다. 실습지에 나가서 본 어느 광산의 침전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웅변이였다.

《미광의 호수》에 수십년세월 그 미광과 함께 버려진 유가금속을 두고 진정으로 가슴아파하며 이 나라 청년대학생들의 조국앞에 지닌 의무에 대하여 호소한 그의 웅변은 온 강당을 박수갈채로 들썩하게 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박수치며 호응하던 한 학우는 졸업하자 한생을 바쳐서라도 버려진 유가금속을 분리하여 조국의 재부를 늘이는데 기여할 결심을 품고 자진하여 웅변자가 말하던 《미광의 호수》를 찾아갔다.…

그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지석영은 교무행정사업에 몸을 잠그고 드바쁜 세월을 보내는 사이에 청춘시절의 꿈은 다 잊어버렸다. 그것은 가슴속에 한가닥 애수로만 남았다. 그것도 가까운 친구들이 교수 박사요, 후보원사요 하는 학계의 중진으로 명성을 떨치고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존심을 아프게 찌르는 후회와 함께 찾아드는 애달픈 애수였다.

그러한 지석영의 심중의 호수에 돌연 파문이 일어났다. 김광우가 그 호수에 주저없이 돌멩이 하나를 던진것이였다.

《박사론문을 빨리 완성하오.》

많은 의미를 담아 하는 말이였다.

그날 저녁 지석영은 고문서들을 넣어두는 장안에서 손대본지 스무해도 더 되는 박사론문원고를 꺼내보았다. 누렇게 퇴색되고 습기에 절은 원고였다.

그것은 이미 박사론문의 가치를 상실하고도 남은 로화된 지식의 잔여물이였다. 이미 버려진 낡은 지성의 파편이였다.

지석영은 비로소 고대시기의 유물같은 그 원고뭉치에서 자기라는 인간을 보았다. 지금이 어느때인가? 우리 조국이 휘황한 미래를 향해 돌진하고있는 거창한 변혁의 시기가 아닌가. 우리의 과학이 우주로 날고있는 시대가 아닌가. 자기는 눈이 먼 이 시대의 장님이였다. 눈을 뜨고서도 새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리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광우부국장조가 내려와 진행한 실무강습에 대한 사람들의 좋은 반영이 귀에 들어오고 더우기 대비시험결과를 보면서 콤퓨터에 의한 시험을 믿지 않은 자신이 로화된 지식 하나를 믿고 발전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은 청맹과니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낡아버린 인간이였기에 김광우부국장앞에서 지금은 지난 세기의 복구건설과 오늘이 다르다는 한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는가!

지석영은 한때 자기를 배워준 스승인 전학선부상을 만나고나서 더우기 집을 멀리 떠나 지방에 내려와 고생하는 광우부국장을 진심으로 도와주지 못한 량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끼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미 그가 적지 않은 대수의 콤퓨터를 내놓은것도 사실은 새로운 시험방법을 믿어서가 아니였다. 우의 일군들의 비난을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결심한것이였다.

또 시험이 끝나는 즉시에 교수사업에 빙자하여 반환받으면 될것이니 대학이 손해볼것은 없다는 타산도 작용하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광우부국장을 진심으로 도와야겠다는데 생각이 미치였다. 시험이 박두한 지금이야말로 광우부국장에게 도움이 필요할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그는 원격시험장이 있는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콤퓨터들을 빈자리없이 들여놓은 넓은 열람실에서는 평양에서 내려온 손님들이 수험생들을 앉혀놓고 예비시험을 쳐보고있었다. 기본시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수험생들에게 콤퓨터에 의한 새로운 시험방법을 숙달시키기 위한 사업일것이다.

광우부국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시험장옆에 있는 봉사기실을 찾아들어갔다.

부국장은 거기에도 없었다. 각종 설비들이 그쯘히 들어앉은 그안에서는 최윤호가 다른 두명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봉사기화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화면에는 예비시험이 한창인 시험장이 비쳐지고있었다.

《부국장동지는 어디 갔소?》

최윤호를 찾아 지석영이 물었다.

최윤호는 별로 얼굴색이 무거워보이는 그를 이상한 눈길로 여겨보며 이 사람이 오늘 웬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 의문을 풀지 못한채 지석영을 다짜고짜 밖으로 잡아끌었다.

그는 밖으로 나와서야 광우부국장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한 수험생을 기다리다가 밖에 나가보겠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올 학생이면 나타나겠는데 눈이 펑펑 오는 밖에 나가 기다린단 말이요? 부국장동지두!》

《그러게나 말입니다. 몸상태도 좋지 않다는데…》

《그건 무슨 소리요?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건.》

《여기로 내려오면서 어느 고개마루에서 의식을 잃었댔답니다. 군대때 잠복근무를 서다가 심한 동상을 입어 잘못될번 했다가 겨우 살아났다는데 그 후과로 날씨가 차지면 고생을 한다나봅니다. 본인은 그런 말을 일체 하지 않아 나도 모르고있었는데 함께 내려온 사람들이 말해주더구만요. 사흘전에는 그 몸으로…》

최윤호는 부국장이 수술립회를 하러 평양에 올라갔다가 그길로 돌아선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얼굴에는 까닭모를 자책의 빛이 진하게 어려있었다.

지석영은 그제서야 부국장이 밖에 나가 기다린다는 소리를 하며 최윤호가 왜 편안치 않은 낯색을 하는것인지 제나름으로 리해했다. 그러면서도 최윤호의 얼굴색이며 거동에서 감촉되는 우수가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동발전기문제를 계기로 광우부국장과 최윤호사이에 있었던 그 일을 알수 없는 지석영이였다.

지석영은 밖으로 나왔다. 최윤호가 따라나오는것을 《최동문 남아있소. 한창 예비시험을 치고있는데 봉사기실에 붙어있다가 일이 제기되면 봐줘야 하지 않겠소.》하며 그를 떨구어놓았다.

지석영은 무릎을 치는 눈을 밟으며 큰길로 나왔다. 눈덮인 길우에 몇사람이 걸어간 발자국들이 보이였다. 거기에 부국장의 발자국도 있는게 아닌지?

부국장은 보이지 않았다. 오가는 차들도 없었다.

전학선부상이 엄하게 질책하면서 《부국장동무가 여기로 내려오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소.》 하던 말이 귀전을 울리였다. 그러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런 일이… 가슴이 쓰리였다.

해는 아직도 먼 서산말기쯤에 있을것인데 보이지 않았다. 날은 어둑시근했다.

눈내리는 뽀얀 공간속으로 뻗어간 텅 빈 도로우를 바라보는 그의 가슴속에는 불안이 차츰차츰 자라올랐다. 귀전에는 광우부국장이 여기로 내려오면서 의식을 잃었댔다는 최윤호의 말이 그냥 울리였다.

그는 대학으로 급히 향했다. 거기서 마력수가 높은 소형자동차를 타고 김광우를 찾아 떠났다. 그가 기다리다가 림산사업소에서 떠났다는 학생을 찾아 마중간것이 분명했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면서부터는 길우에 한사람이 걸어간 발자국만이 보이였다. 눈에 묻혀 사라져가는 발자국이였다.

자동차는 용을 쓰며 눈속을 힘겹게 달리였다.

10리쯤 그렇게 왔을 때 멀리 앞에 한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