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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 회


제 2 편


22


대형화물자동차 한대가 그 시각 눈이 내려쌓인 산협길로 기우뚱거리며 천천히 가고있었다.

생눈길이였다. 하늘이 미여지게 눈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운전사는 겨우 길을 골라가며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갔다. 온통 하얀 눈이불을 뒤집어써서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밖인지 분간하기 힘든것이였다. 유리닦개를 가동시켜놓았지만 쏟아져내리는 눈이 시창에 련속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우군 했다.

《허,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체격이 장대한 젊은 운전사가 눈때문에 온통 뽀얀 하늘을 올려다보며 쾌활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북방의 날씨는 변덕도 심하다. 련사흘째 눈이 내리다말다하며 산촌에 두툼한 눈이불을 씌워놓고나서 하늘이 열리기에 이제부터는 해를 보려는가 했는데 또 눈이 내리는것이였다.

림산작업소마을을 떠나오기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였다. 그때는 눈발이 성글은것이여서 바래주는 사람들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자동차가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여 폭설이 쏟아졌다.

도소재지로 들어가는 기본도로에 나서자면 아직 100리는 더 가야 하는데 눈은 잠간사이에 거의 무릎을 칠 지경으로 내려쌓이였다. 거기에다 이미 사흘전에 내린 눈을 자동차들이 다져놓아 산골길은 미끄럽기 그지없었다.

운전실안에는 운전사외에 오련희와 최금동학생이 타고있었다.

《하지만》 운전사는 오련희옆에 붙어앉아 초조해하는 금동학생을 돌아다보며 한쪽눈을 우습강스럽게 찡긋해보였다.

《걱정하지 말아라. 금동인 일이 잘될게다. 이제 두고보렴, 이 아저씨의 말이 맞지 않나.》

폭설을 만나 대학입학시험에 늦을가봐 바재이는 금동학생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였다.

걱정이 가득해서 시창밖을 긴장하게 내다보고있던 오련희가 별로 태평스러워보이는 운전사에게 불만에 찬 눈길을 보냈다.

《조심하세요.》

오련희는 모든것을 랑만적으로만 생각하는 남편이 조금이라도 긴장성을 늦출가봐 그렇게 자주 주의를 주군 했다.

아닌게아니라 운전사가 순간이라도 딴생각을 하면서 길을 잘못 잡으면 차는 영낙없이 길옆의 도랑창이나 웅뎅이에 빠져들판이였다.

그런데 사실 운전사는 그렇게 태연스럽게 말하면서도 정신은 활줄처럼 긴장해서 차를 몰아가고있었다.

《너무 초조해서 그러지 마오, 련희.》

운전사는 안해를 안심시키려고 창황중에도 그를 돌아보며 히쭉 웃었다. 웃을 때마다 성글성글한 흰이가 활짝 드러나 보는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사나이였다. 그 웃음처럼 마음이 깨끗하고 의협심이 있으며 속이 활 트인 사람이였다.

련희는 그 성격에 반하여 그를 사랑하게 되였는지 모른다.

오련희가 초조감에 가슴을 조이며 시창너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을 때였다.

비좁은 산협길로 조심스럽게 대형차를 운전해가던 운전사의 눈이 갑자기 덩그래지고 입에서 돌연 절망적인 소리가 튀여나왔다.

《아! 저게 뭐야?!》

오련희는 깜짝 놀라며 운전사의 눈길이 가닿은 멀리 맞은켠쪽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련희는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고있는지 리해하지 못하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어리둥절했을뿐이였다.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문인가. 경사급한 두 산비탈사이로 눈내리는 재빛공간이 내다보이는 비좁은 협곡, 불과 200메터 남짓해보이는 거기서 오련희가 아직은 미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있었다.

키높이 자란 소나무들이 하얀 눈을 떠이고있어 눈부시고 황홀한 세계를 펼친 거기 산경사면에서 이상한 눈갈기가 날리였다. 오련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온 산촌이 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 조으는듯 한 잠풍한 날에 눈보라란 당치않은것이기때문이였다.

눈갈기는 급작스레 살아있는 생명체로 변한듯 했다. 신비롭고 장엄한 광경이였다.

그것은 흡사 공룡시대에나 살았음직한 거대한 흰 새가 흰눈을 날리며 날아내리는듯 한 광경이였다. 그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오련희의 머리속에 아득한 선사시대의 환상을 불러일으킨 황홀한 새형상은 꿈처럼 사라졌다. 그러자 고적이 깃든 골안을 메우며 하얀 눈보라가 일어났다. 공간을 뽀얗게 메우며 타래쳐올랐던 눈보라가 서서히 잦아드는무렵에야 련희는 그것이 눈사태라는것을 알았다.

자동차가 지나가야 할 길우에는 눈산이 생겨났다. 《하늘로 오르는 문》은 눈때문에 막혀버렸다. 그런데 그것은 한 애어린 청년의 꿈이 닿아있는 희망의 하늘이였다.

운전사는 거대한 눈산 앞에 차를 세우고 운전실에서 뛰여내렸다. 하지만 무슨 수가 생기랴.

그곳은 가까이에 마을이 없는 외진 곳이였다. 에돌아가는 길도 없었다. 애어린 청년의 그 하늘로 오르자면 외통길을 통과해야 하는것이였다. 하늘은 꿈을 안은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려고 눈사태를 일으킨것이나 아닌가?

눈산앞에 억이 막혀 망연히 서있던 운전사가 운전실로 올라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야단났구만! 어떻게 한다?》

생활을 락관적으로 대하는데 습관된 그답지 않게 절망에 빠진것은 자동차가 더는 갈수 없게 되였다는 그자체때문이 아니였다. 자동차는 한 학생의 인생의 꿈과 리상을 싣고가던 길이 아닌가. 그 학생의 일이 잘되기를 바라며 온 작업소마을이 떨쳐나와 바래주었던것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골똘히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오련희가 말했다.

운전사가 의아해서 태연한 웃음을 머금은 련희를 건너다보았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해? 자동차가 갈수 없는데 금동이의 대학입학시험은 어떻게 한다는거요? 되돌아가자는거요?》

《참, 당신두! 되돌아가긴 왜 되돌아가요? 금동이가 대학시험을 쳐야지요. 우린 걸어서 가겠어요.》

웃으며 하는 련희의 말에 운전사는 기가 막혀 한동안 멍해있다가 별안간 버럭 성을 냈다.

《정신나가지 않았소?!》

《그럼 어찌겠어요?》

《당신 곰아구리에 들어갔다나오더니 곰같은 녀자가 되였구만. 이보우. 거기가 몇리인지 알기나 하구 도깨비같은 소릴 하는거요? 시내에 들어가는 기본도로라면 지나가는 자동차라도 얻어탈수 있겠지만 여긴 무인지경이요. 기본도로까지 나가자 해도 아직 100리는 더 가야 할거요.》

오련희는 나직이 말했다.

《가야 해요.》

태연스러워보이는 그 말에 운전사는 의아해서 오련희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 녀자가 별다른 생각없이 마음편한 소리를 한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자 운전사는 《허!》 하고 기가 막혀 소리질렀다.

《못 가! 이런 길에 나섰다가 무슨 일을 당하자고 그래? 설사 기본도로까지 나간다고 해도 이런 날에 차가 다닐게 뭐요?》

《글쎄 가야 한다니까요.》

《글쎄 못 간다니까.》

두사람은 거의 한식경이나 가야 한다거니 못 간다거니 하면서 다투다싶이 했다.

결국은 남자쪽에서 손들고말았다.

《고집쟁이! 무슨 녀자가 그래?》

운전사가 금동학생을 돌아보며 걱정스러워 물었다.

금동은 히쭉 웃었다.

《일없어요, 아저씨. 걸어갈수 있어요.》

세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오련희가 그만 돌아가라고 했으나 남편은 바래주겠노라며 한참이나 따라나섰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나지막한 고개마루에서 그들은 헤여졌다.

《련희, 가다가 정 힘들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인가에 들려 도움을 받으라구.》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련희는 고개마루에 서서 마음을 놓을수 없어 당부하듯 하는 그를 돌아보며 따뜻한 미소를 날려보냈다.

《참, 거기 서오.》

남편이 무엇을 잊은듯이 소리쳤다.

련희에게로 다가온 남편은 자기의 목수건을 풀어 그의 목에 굳이 매주었다.

련희는 더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편의 다심한 념려이고 정이 아닌가! 그 녀자는 자기의 목에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목수건이 감길 때 그저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그렇게 웃으라구. 그렇게 웃으니 얼마나 좋소.》

《당신이 웃는 법을 배워주지 않았어요.》

《겁이 나는걸, 그 웃음에 다른 사내가 또 반할가봐 말이지.》

금동이 곁에서 지켜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눈발속에서 하얀 덧이 하나가 신기하게 반짝이였다.

《넌 왜 웃어?》

남편이 돌아보며 일부러 성난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금동은 그냥 웃었다.

《그저요.》

《야 금동이, 넌 시험에서 떨어지면 우리 림산마을에 들어설 생각 하지 말아! 알겠니?》

《알겠어요.》

《그리구 선생님을 잘 모시고 가야 해! 알겠어?》

《다 알아요.》

그들은 헤여졌다.

련희는 가다가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련인은 뽀얀 눈발속에 그냥 서있었다. 한참후에 다시 보았을 때 고개마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 어딘가에 그 사람은 그냥 서있을지 모른다.

눈은 한대중으로 퍼붓듯이 내리였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푸근한 날씨때문인가?

《금동이, 힘들지 않아?》

《힘들지 않습니다. 힘들기야 뭘.》

《호호, 이젠 어른이 다 됐다는거구나.》

학생은 더 말이 없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그가 오련희를 돌아보았다.

오련희는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선생님, 왜 웃습니까?》

《금동학생을 생각하면서 웃었어.》

《예? 그건?…》

《내가 금동이를 처음 알게 된게 언제야? 그땐 소학교 학생이였지. 그런데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지. 리수복영웅은 열여덟살에 적의 화구를 막았지.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것보다 더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 어디 있겠어. 이제 금동학생은 그 나이에 대학생이 되여 과학의 령마루를 향해 돌진하겠지? 총창을 비껴들고 고지로 돌진하는 병사처럼, 호호… 그땐 멀리 앞서나가서 나같은건 바라보기도 베찰거야.》

《…》

《왜 말이 없어?》

금동은 앞서가던 걸음을 멈추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오련희를 바라보았다. 오련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

《왜 그래?》

《선생님의 손을 잡고 가고싶습니다.》

따뜻한 정이 오련희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선생님, 제가 이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알고싶은데.》

《제가 소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도소재지에 있는 우리 집에 오시여 수학을 배워주시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저녁에는 제옆에 나란히 누워 세계적으로 이름난 수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그런데 이젠 이 선생님이 말도 어렵게 해야 되겠어. 정말 어엿한 청년이 되였으니까, 호호.…》

금동의 눈에는 물기가 돌고있었다.

《선생님두! 난 선생님이 앞으로도 〈금동아.〉 하고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처음 만나 수학의 세계로 이끌어주시던 그때처럼 말입니다.》

남편과 헤여져 걷기 시작한지도 여러 시간이 지났다. 그들은 고개들을 넘고넘으며 농촌마을들을 수없이 지나왔다.

련희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오후 3시가 지났다. 아침밥을 먹은지도 여덟시간이 지났다. 배가 출출해온다. 내가 허기증을 느끼는데 금동학생이야 오죽하랴. 돌덩이도 소화시킬 때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나이이다. 농가에 찾아들어가 늦은점심이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을가?

가까운 산기슭에 집 한채가 있었다.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지붕우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른다. 방을 덥히려고 군불을 때는 모양이다. 아니면 늦은점심밥을 짓는것인지? 들릴가? 오련희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길가집의 부엌문이 열리면서 늙은 녀인이 나왔다. 집모퉁이에 가려놓은 땔나무더미에서 나무단 하나를 안고 들어가려다가 오련희네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온통 눈을 뒤집어쓴 두사람, 먼길을 걸어오느라 지쳐버린것이 알리는 길손들에게 동정이 갔던 모양이였다.

《어디까지 가시는 길손인지 들려서 몸들이나 녹이고 가시우.》

주인녀인이 물었다. 따뜻한 관심과 산골농촌의 후더분한 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이다.

들어갈가? 그러자면 적어도 30분은 걸릴것이다. 따뜻한 구들에서 몸을 녹이느라면 녹작지근해서 긴장의 탕개가 풀릴수도 있을거야. 어떻게 하나 어둡기 전에 도소재지에 들어서야 해. 그러자면 30분도 아껴야 할 시간이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린 빨리 가야 한답니다.》

녀인의 사려깊은 인정에 따뜻한 말로 사례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고나서 금동학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배고프지 않아?》

금동은 뒤를 돌아다보며 히쭉 웃었다.

《일없습니다, 선생님.》금동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선생님, 이거 잡수십시오.》 하며 손에 쥔것을 내밀었다.

여기로 오면서 련희는 심심치 않게 자주 입에 넣으라고 사탕봉지를 터뜨려 절반도 더 되게 금동학생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금동학생의 손바닥우에 놓여있는것은 그가 먹다남은것이였다.

그것은 두사람이 나누어먹기에는 도저히 균등한 분배를 할수 없는 세알의 사탕이였다. 그런데 사실 오련희의 솜옷주머니안에는 제자를 위해 남겨놓은 사탕이 있었다. 제자에게 덜어주고 나머지를 자기의 솜옷주머니에 넣고오면서 몇알 축내지 않은것이였다. 그것은 정 급할 때 내놓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냥 둬두고 학생의 손에서 한알만을 쥐였다.

《두알은 금동이 먹어.》

《아닙니다. 선생님이 두알을 잡수십시오. 나야 남자가 아닙니까.》

《호호호, 사내재세를 하는거냐?》

학생은 또 히쭉 웃었다. 눈발속에 드러나는 하얀 이발, 티없는 웃음이 반짝이는 눈… 사람이 행복을 느낀다는건 다른게 아니로구나. 이런 티없는 마음속에 함께 산다는것이로구나.

《뭘 생각해?》

《난 선생님이 이자 왜 리수복영웅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지 압니다.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것보다 더 뜨겁고 진실한 사랑은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리고 오늘은 왜 이 길을 함께 가주시는지도… 선생님은 내가 고향사람들의 기대를 잊지 않고 조선을 빛내이는 과학자가 되여 원수님께 큰 기쁨을 드리기 바랄것입니다. 맞지요? 선생님.》

《그만해! 금동… 그만…》

오련희는 불시에 부르짖다가 목이 꽉 메여버렸다.

한참만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옳아. 금동학생의 말이 맞았어. 금동인 정말 그런 훌륭한 사람이 꼭 돼야 해. 그러자면 일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정열가가 돼야 하구 이렇게 힘든 길도 웃으며 헤쳐갈줄 알아야 하는거야.》

눈, 눈, 끝없이 쏟아지는 눈! 이제 얼마나 더 가면 기본도로가 나질가? 련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컴컴해오는 하늘을 메우며 하염없이 내리는 눈! 눈! 해는 어디바루에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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