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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 회


제 2 편


5


라영국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심상치 않은 변화를 제일먼저 눈치챈 사람은 시험연구조의 김승호였다.

어느날 저녁식사를 끝내고 시험연구조가 모두 올라와 유쾌한 한담회를 벌리고있을 때 라영국이 혼자 침대우에 드러누워 멍하니 천정만 올려다보고있었다.

애인과의 관계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이번의 일은 단순히 애인들사이에 드문히 있을수 있는 사랑싸움이 아니였다. 며칠전에 처녀는 심상치 않은 말을 남기고 바람같이 그의 곁을 떠나간것이였다.

(젠장, 일두 참 별나게는 됐어. 그동안 고생하면서 개발전투를 진행해온 원격시험프로그람 《미래》가 완성되고 당장 콤퓨터에 의한 첫 원격시험에 들어가게 되였다고 시험연구조가 모두 좋아하는 때에 라영국이는 이게 뭔가?)

라영국이 침대우에서 혼자 고민하고있을 때 김승호가 들어왔다. 그는 누군지 돌아다보지도 않고 한자세로 누워있는 라영국을 보자 싱글거리며 말을 붙이였다.

《아니, 모두들 텔레비죤을 보면서 웃고 떠드는데 라영국선생은 어떻게 된거야? 〈동의보감〉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너무 오래 누워있으면 기를 상한다고 했네. 일어나서 한담회에 끼우라구요. 〈동의보감〉에선 명랑한 기분은 몸의 보배라고 했다니까.》

그래도 라영국이 듣는둥마는둥 기척이 없었다. 김승호는 차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라영국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였다.

《이보라구 라영국선생, 사랑의 배가 요즘 또 암초를 만났나?》

《사랑의 배는 무슨 사랑의 배예요? 암초는 무슨 암초구.》

《그럼 뭔가? 라선생은 요즘 좀 달라진것 같애. 모두들 우리 일이 잘되여 좋아들 하는데 라영국이만이 돌아앉아 우울해있으니 말이요. 어찌된거요?》

라영국은 그제서야 침대에서 일어나앉았다. 그는 자기의 신상에서 일어난 변화며 그때문에 애인과의 관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은데 대하여 말할가 하다가 다른 소리를 했다.

《시험프로그람이 완성되여 도입에 들어가게 되였으니 이제 인차 시험정보과가 정식으로 나오게 되겠지요? 승호선생.》

《그렇게 되겠지.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체계로 넘어가면 해마다 시험프로그람을 갱신해야 할테니까. 더우기 이제 시범적으로 진행하는 1차원격시험에서만 다른 일이 없으면 그다음부터는 전국적인 대학입학시험을 우리가 개발한 새로운 원격시험체계에 의하여 진행할테니까. 우리 시험연구조가 나라의 교육발전을 위해 하나의 자욱을 남기는것이지.》

별다른 생각없이 말하던 김승호는 정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라영국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니, 갑자기 그 일에는 왜 관심이 많아졌소? 라선생이야 시험정보과에 그냥 떨어지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아니요?》

《결심이 달라질수도 있는거지요 뭐.》

무심결에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는 뭐 롱으로 해보는 말이예요 하는듯 씩 웃어보였다.

하여 김승호 역시 그저 해보는 소리로 별치 않게 들은 모양 웃으며 말했다.

《그건 무슨 변증법이요? 결심이 달라지다니?》그러다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금 라영국의 얼굴표정을 일별했다.《아니, 정말 결심이 달라진게 아니요?》

《됐습니다. 달라지기야 뭐.》

라영국은 당황하여 어정쩡하게 말꼬리를 사리였다.

이 일은 김승호의 입을 통해 시험연구조사람들한테 알려졌다.

김승호는 사실 무슨 고민에 빠진것이 분명한 라영국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한마디 한것인데 시험연구조사람들속에서 뜻밖의 반응이 일어났다. 함께 일해오는 동무들을 배반할수 없다던 라영국이 그건 다 속에 없는 소리였는가? 라영국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수 있는가? 그런 사람이라면야 정말 우리 집단에 필요없지, 우리 일은 자기를 바칠 결심이 되여있는 사람만이 할수 있으니까. 그건 너무 과격한 속단이요, 라영국이 뭘 그런 사람이겠소.

그 사람 애인한테 끝내 넘어간게 아니야? 처녀가 제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시험연구조에서 나오라고 했다는걸 보면 그런것 같다니까, 처녀말을 듣고 리상까지도 포기했다면야 라영국이 정말 쓸개빠진 사내지하는 등등…

대체로 라영국에 대한 애착과 동정심에 바탕을 두고 분해하는 말들인데 그중에는 라영국이 전도가 양양한 젊은 수재가 아닌가, 발전하겠다면 리해해주어야지 하는 소리도 있었다.

조장이 없는데서 한마디씩 한것이 결국 김호성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사람이 조용하면서도 인정이 있고 집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량원일이 저녁시간에 생각이 많아가지고 김호성을 만나 《라영국이를 한번 만나보오.》 하고 말해준것이였다.

《솔직히 말해보오. 결심이 달라졌다는게 사실이요?》

라영국이를 만난 김호성이 대뜸 물었다.

조장이 좋지 않은 인상을 해가지고 따져묻는 바람에 라영국은 바빠맞아 수수떡같은 얼굴빛이 되였다.

《생각을 해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심은…》

김호성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동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겠소. 하나만 말하겠소. 그런 어정쩡한 정신상태면 대학으로 돌아가오. 그런 정신을 가지고는 한생 이 일을 못하오. 왜 그런지는 동무자신도 잘 알거요. 나라의 진보에 밑거름이 될 각오가 서있지 못한 사람은 우리와 함께 이 일을 못한단 말이요!》

라영국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었다. 김호성이 먼저 방에서 나갔다.

라영국은 온 집단이 자기의 일을 두고 많은 말들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자 함께 일해온 집단에서 떨어져나와 외토리가 된 기분이였다.

귀전에선 《우리와 함께 이 일을 못한단 말이요!》 하던 조장의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

차츰차츰 속에서 조장에 대한 불만이 끓어올랐다. 이 라영국은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사는 락후분자란 말인가? 시험연구조에 올라와 밤잠도 미루어가면서 똑똑한 창조물을 내놓기 위해 애를 쓴것도 다 나자신을 위한것이였단 말인가! 조장선생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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