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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제 1 편


37


김호성에게 일이 생기였다. 그가 우려하던 일이였다. 가시어머니가 끝내 숙천 딸네 집으로 간것이였다.

집을 나가면서 로인은 인차 사위가 나타날테니 그때까지 외손녀와 집을 잘 봐달라고 옆집녀인에게 부탁했다.

《너의 아버지한테는 오륙을 쓰기도 힘들게 된 이 늙은이보다 젊은 녀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밖에 나가 마음놓고 일을 할수 있다. 그리고 넌 아직 철이 없다. 이담에 더 크면 어른들의 일을 다 리해하게 될게다.》

로인은 떠나가면서 손녀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이제 다시 와서 손녀를 데려가겠노라는 말도 했다.

김호성은 늙은이를 원망했다.

다가오는 대학입학시험철에는 1차로 지방대학을 대상으로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을 진행하기로 위원회에서 계획하고 사업을 내미는데 따라 시험연구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람 《미래》를 완성하여 내놓자면 지금이야말로 제일 긴장한 때인데 가시어머니는 이 사위를 그렇게도 리해를 못한단 말인가!

김호성은 이런 일이 있다는것을 동무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속을 썩이면서 부국장을 만나 한 이틀정도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제기했다.

《왜? 집에 무슨 일이 있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딸애가 소학교를 졸업할 때도 되였구 가시어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집안일을 하는데…》

김광우는 어정쩡하게 말하는 김호성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속은 좋지 않았다.

《바쁜 모퉁이나 지나서 내려가보지 않겠소? 조장이 지금같은 때에 이틀이나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하오?》

《량원일동무한테 그사이에 조에서 제기되는 일은 봐주라고 했으니 다른 일은 없을겁니다.》

《모르겠소. 좌우간 내려가보오. 너무 지체하지 말아야겠소.》

그는 숙천으로 내려가기 전에 평성에 있는 집에 들리였다.

뜻밖에도 딸애가 개봉되여있는 편지 한장을 내놓았다.

《무슨 편지냐?》

《아버지한테 온 편지야요.》

발신인주소를 보니 강수영이란 녀자가 보낸 편지였다. 김호성은 그제서야 강수영이 《동지의 주소가 정확한것인지 알수 없어 동지의 집에도 꼭같은 편지를 보냈어요.》라고 썼던것이 생각났다.

《얘, 할머니가 이 편지를 뜯어보셨니?》

딸애는 고개를 까딱하며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런것 같아요. 나도 이런 편지가 온걸 모르고있다가 어제야 아버지 책상우에 놓여있는걸 봤어요. 아버지, 이 녀자가 이제 내 새 엄마가 되나? 》

호성은 딸애의 의혹이 어린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너도 이 편지를 읽어봤니?》

《…》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니?》

《좋은 녀자같아요. 우리 엄마가 좋아한 녀자가 아니예요. 그런데 할머니는 왜 이런 편지가 왔다는걸 말하지 않고있었을가요?》

아직은 인간생활을 다 알수 없는 딸이였다.

이제는 로인이 왜 갑작스레 둘째딸네 집으로 떠나갔는지 리해가 되였다. 문득 눈앞에는 강수영이란 녀자의 까칠하면서도 리지적인 얼굴이 떠올랐다. 《저는 물러서지 않겠어요.》 하던 처녀의 담담한 목소리.

며칠전에 호성은 부국장한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동무는 옳지 않소! 한 녀성의 진심을 그렇게 욕되게 할수가 있소? 자기를 위해 찾아온 녀성을 울면서 돌아가게 한단 말이요? 심장이 그렇게 랭랭한 사람은 일을 치지 못해! 그 동무에게 오늘중으로 당장 전화를 하오. 내 말은 사죄나 하라는것이 아니요.》

타고난 천성처럼 너그러운줄로만 알았던 부국장에게서 그렇게 성난 모습을 처음 보는 김호성이였다.

그는 숙천으로 갔다.

《어머니, 이 사위의 속을 꼭 태워야 하겠습니까?》 김호성은 가시어머니를 만나자바람으로 속에 가득찬 언짢은 감정을 터쳐놓았다.

《어머니까지 이러시면 난 어떻게 하라는것입니까?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머니가 너무 이러시면 먼저 간 금선이 어머니나 금선이 외할아버지가 저를 두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김호성이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것입니까? 난 그렇게는 못해요. 난 금선이 이모에게도 의견이 있습니다. 금선이 외할머니가 생각을 잘못하시면 그러지 못하도록 깨우쳐드려야지요.》

금선이 이모라는 녀자는 다 듣고보니 자기도 생각이 짧았노라고 했다.

《난 그저 금선이 외할머니가 딸없는 사위네 집에 얹혀사는것이 딱해서 그러는줄로만 알구 오라고 했구만요.》 하고 그 녀자는 말했다.

《이 사람, 자꾸 그러겠나?》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눈굽을 찍어내던 가시어머니가 허허 탄식을 내뿜었다.

《다 그 금선이 에미때문이지. 그 애는 왜 일찍 가가지구… 그 애가 살아있었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나!》

《어머니,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금선이 어머니는 좋은 일에 생명을 바친 훌륭한 녀자예요. 그리고 금선이 어머니가 없는 집이라고 제가 어머니를 남처럼 대했다는 말씀이세요? 어머니는 혹시 강수영이란 녀자한테서 온 편지를 보고 그러시는게 아니예요?》

《이 사람, 내 몇번이나 말해야 하겠나? 자넨 나라일에 바쁜 사람이구 앞길이 구만리같은 사람이야. 저세상사람이 된 내 딸을 생각해서라도 이 늙은이가 임자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나? 나를 데려갈 생각은 말게! 이 로친두 젊어서 배운 로친이야. 늙었다고 푼수없는 로친이라는 소리는 듣고싶지 않네. 내 보기에도 강수영이란 녀자가 좋은 녀자같네. 임잔 늦기 전에 생활을 찾게. 그래야 임자는 나라일을 더 잘할수 있네. 이 로친도 그런 임자를 봐야 마음을 놓겠네.》

김호성은 기가 막혀 한동안 말없이 천정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다.

들꽃이 만발한 교외의 신선한 언덕, 멀리 희망의 신기루인양 연푸른 산발우로 뭉게뭉게 떠오르는 은빛구름 몇송이… 심신을 애무하듯 어루쓰는 신선하고 따스한 바람은 거기서부터 불어오는듯… 그들은 주단같이 부드러운 풀우에 나란히 앉아 미래의 생활을 공상속에 그려보고있었다.

《호성동지, 저를 사랑해요?》

《그건 무슨 소리요?》

《우리 아버진 영예군인로병이고 어머닌 소학교 교원이였어요. 난 대학에 갈수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돌격대에 탄원했어요. 난 대학에 갈걸 그랬어요.》

《그럼 동문 돌격대원이 된걸 후회한다는거요?》

처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아니, 후회하진 않아요. 후회는 왜 하겠어요. 그런데 하나는 겁이나요, 하나만은…》

《뭐요? 말하라구.》

《호성동진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요. 그것도 최우등으로요. 동진 발전할거예요. 교수나 박사도 될것이구… 세월은 류수같다고 하던데 우리의 청춘시절도 지나가고 그러면 우린 중년이 되구 또… 그때에 가서도 이 강수련인 평범한 녀자로 남아있을거예요. 호성동지가 큰사람이 되여 큰일에 몸을 담그고 소설책에 나오듯이 사회의 진보와 인류의 복리에 이바지할 훌륭한 일을 할 때 저라는 녀자는 여전히 생활의 사말사에나 몸담그고 사는 그저 보통아낙네로 남아있을거란 말이예요. 그때가 되면 호성동진 후회를 하지 않을가요?》

김호성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처녀는 그가 웃는 까닭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진다. 김호성이 《아낙네》라는 말에 웃었다는것을 처녀는 알수 없었다.

김호성은 처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본다. 사내의 눈이 지꿎게 바라보는데 놀라 처녀는 엉겁결에 얼굴이 숯불처럼 타며 《에구!》소리를 지른다.

김호성은 부드러운 미소로 처녀의 심장을 다독이며 말한다.

《사랑하겠소, 동무가 할머니로 될 때까지.》

《정말이예요? 평범한 아낙네를요?》

김호성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인다.

《동문 마음속에 보석이 들어있는 녀자요. 난 그걸 아오. 인간한테는 그것이면 다요.》

처녀의 눈에 의혹이 실린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나한테 무슨 보석이 있담.》 소녀같은 천진한 의혹이였다. 그렇다. 깨끗한 인간만이 그렇게 천진한 미소를 지을수 있는것이였다

《모르겠소? 동문 자진해서 돌격대원이 되지 않았소.》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처녀는 고집스럽게 뇌이였다.

《나한테 무슨 보석이 있담.》

그처럼 마음이 깨끗한 안해가, 그지없이 순박하며 의협심이 많던 안해가 자기가 공상하던 꿈의 푸른 언덕에 가닿지 못하고 너무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할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안해는 자기가 소원하던 황홀한 미래까지도 남을 위해 바친것이였다.

김호성은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아 그냥 천정에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어머니, 나는 혼자는 가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이 집에서 아무리 마음편히 사신다고 해도 이 사위는 두고두고 가슴이 쓰릴거예요.》

그 말이 로인을 울리고 그 집안사람들을 울리였다.

로인을 집으로 다시 데려온 김호성은 그 바람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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