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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제 1 편


22


그날 밤, 오련희는 대학때 알게 된 정성금의 집으로 초청받아갔다.

두 녀자가 나이차이는 있지만 기숙사의 같은 호실에 있으면서 남달리 가깝게 지낼수 있은것은 서로가 상대방에게서 자기와 비슷한것을 보았기때문이였다. 두 녀자는 다같이 마음이 깨끗하고 불의앞에서는 참지 못했다.

그들은 기숙사시절처럼 한잠자리에 누워 대학때의 일들이며 동무들에 대한 추억도 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련희동무, 난 도무지 리해가 안되누나. 좀 설명을 해주렴.》

정성금이 갑자기 심각해서 하는 말에 련희는 의아해서 그 녀자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을 해요? 성금동지.》

《그때 넌 그 사람에 대해서 나한테 좋은 말을 얼마나 많이 했니? 성격이 좋고 인물 그쯘하고 인정이 많고 또 어쩌고 하면서 좋은 말을 다하지 않았니. 그러던 네가… 글쎄 너같이 마음 깨끗한 녀자를 그 인간이 배반을 했단 말이냐?》

오련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러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성금동지, 그 말을 꼭 들어야겠어요?》

《들어야겠어. 대학때 한호실에서 생활하던 혜숙이랑 그 얌전때기 영란동무랑 후에 만났는데 그 인간을 욕하더라. 사랑을 그렇게 쉽게 배반하는 나쁜 사내라구. 그래 정말 어떻게 된거냐?》

《그건 사실 소문이 잘못 난거예요. 제가 스스로 도소재지를 떠난걸요.》

정성금은 그 말에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서글서글하던 눈에 잔뜩 의혹이 비끼였다.

《뭐라구? 그럼 동무가 먼저 배반을 했다는거냐? 마음 곱고 불의앞에서 너그러울줄 모르던 동무가? 난 뭐가 뭔지 통 모르겠구나. 말해주렴.》

《…》

《어서.》

오련희는 한동안 지꿎게 말이 없다가 정성금이 재촉해서야 《성금동지두!》하고 원망의 소리를 했다.

그것은 돌아다보기조차 괴로운 과거였다.

눈앞에는 해볕이 재글재글 끓던 무더운 여름날이 떠오른다.

여름방학을 보내려고 고향인 멀고도 먼 산골의 림산마을에 내려갔던 오련희는 대학으로 돌아가고있었다. 그는 몹시 바빴다. 수백리나 되는 산골길로 자동차를 잡아타고 오다가 길우에서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기차가 떠날 시간이 림박해서야 겨우 도소재지 입구에 들어섰는데 거기서 또 발동이 멎은것이였다.

운전사는 몹시 미안해하며 철도역까지 태워다줄테니 잠간만 기다리라고 했지만 오련희는 그럴 경황이 못되였다. 자칫하면 렬차를 놓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는 운전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걸어서 철도역으로 가면서 오련희는 괜히 운전사의 호의를 마다했다고 후회했다. 집에서 배낭가방과 들가방이 터져나갈지경으로 간식이며 옷가지를 가득 채워넣어준 두개의 짐을 지고 들고 달아오른 세멘트포장길로 달리다싶이하며 걸어가자니 여간 베차지 않았다.

온몸은 어느새 땀에 화락하니 젖었는데 철도역쪽에서는 당장 렬차가 떠나려는지 기적소리가 련거퍼 두번이나 울렸다.

오련희는 그 소리에 바빠맞아 자기도 모르게 《어마나!》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뒤에서 《함께 갑시다.》 하는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돌아다보니 대학생복을 입은 남자였다. 오련희와 꼭같이 배가 불룩한 배낭가방에 들가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바삐 달려오고있었다.

《동무도 방학에 왔다가는게구만요. 평양가는 차를 타러 나가지요?》

초면의 남대학생이 물었다.

《예. 그런데 차를 놓치면 어쩌나!》

남대학생은 히쭉 웃었다.

《타게 되겠지요, 희망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가방 하나는 저한테 주십시오. 몹시 힘들어하는것 같은데…》

《일없습니다. 아니… 정말…》

처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방 하나는 그의 손에 가있었다. 숨막히게 무거운 짐을 덜게 되자 남학생이 은인처럼 생각될 지경이였다.

두사람이 역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차표판매가 끝나고 나들문으로 여라문명 남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빠져나가고있었다. 차표를 팔아주는 매표구는 닫겨있었다.

아무리 두드려야 응대가 없었다. 오련희는 맥살이 풀려 울상이 되여버렸다.

그가 희망을 잃고있을 때 남학생이 히쭉 웃으며 또 《희망을 가지십시오.》하고 말했다.

배포유한 성격같았다.

남학생은 오련희의 증명서까지 걷어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잠시후에 차표 두장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오련희의 배낭가방까지 빼앗다싶이하여 들고 나들문으로 이끌었다. 거기서는 이미 문을 닫고있는중이였다.

여기서도 남학생이 돌부처도 감동시킬만 한 간절한 표정을 동반한 끈질긴 기질을 발동하여 역원처녀를 기어코 설득시켰다. 두사람이 나들문을 빠져나가 렬차에 오르기 바쁘게 덜커덩 하며 기차가 떠났다.

《동진 기적을 창조하는구만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았을 때 오련희가 비로소 마음이 편해서 웃으며 말했다.

남학생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즐펀히 흐르는 땀을 씻으며 말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남이 할수 없다고 생각하는것을 하는것입니다. 나는 늦어가지고 역으로 나오면서도 내가 오늘 기차를 놓치게 되리라는 생각은 안했으니까요.》

《그러니 저는 동지의 생활에 대한 견해랄가 좌우명이랄가 아니, 그건 좀 지나친 표현같아요. 어쨌든 견해이든 좌우명이든 그 덕분에 저도 이 기차를 탈수 있었구요. 사실 난 오늘 기차를 못 타는줄 알았어요. 기차 못 타면 려관에서 하루밤 자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동문 여기 시내에서 살지 않습니까?》 남학생은 그제서야 오련희에 대하여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련희는 생긋이 웃으며 말했다.

《하늘아래 첫 동네에서 살아요. 자동차를 타고 세시간이나 왔으니까요.》오련희는 《령을 넘어 또 넘어》하고 노래부르듯이 말하다가 해해거리였다.

남학생은 정말로 그가 하늘나라에서라도 내려온것 같이 생각되는듯 처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래서 처녀에게 더 각별한 관심을 돌리는것 같았다. 처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리한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애썼다. 처녀가 물을 마시고싶어하자 자기의 배낭가방을 주저없이 헤치였다.

처녀의것보다 두배는 될 큰 가방이였다. 욕심쟁이배낭이구나 하고 자기도 어처구니없는 우습강스러운 생각을 하고있을 때 남학생은 그안에서 화려한 상표가 붙은 노란 과일단물병을 꺼냈다.

향기로운 과일단물로 갈증난 목을 기분좋게 추기며 오련희는 《욕심쟁이배낭》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너그럽게 정정했다. 좋은 배낭이구나 하고.

《동문 어느 대학이요?》 남학생이 물었다.

오련희가 사범대학에서 공부한다는것을 알고는 무슨 의미인지 알수 없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니 선생님이 되겠구만요. 동문 원래 교원이 될것을 지망한게지요?》

《그래요. 전 아이때부터 교원이 되고싶었어요. 동진 어느 대학이예요?》

알고보니 남학생은 공업대학에 다니였다.

점심때가 되였을 때 그들은 자기의 가방속에 넣어가지고온 도중식사구럭들을 꺼내놓았다.

남학생의 도중식사가 굉장하였다. 김밥과 깜찍하게 빚은 꼬리떡에 문어회, 낙지순대, 고기… 《어마나!》 하는 감탄이 처녀의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왔다.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이런 노래 있지 않습니까.〈먹어야 힘난다네〉 하하. 많이 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란 말입니다. 사실 동무를 위해 많이 꺼내놓은거요.》

그럴수도 있었다.

사실 거기에 비하면 오련희의 도중식사는 너무나도 소박했다. 흰쌀밥이 들어있는 비닐밥곽 하나에 반찬이란 도라지생채와 고사리볶음이 전부였다.

최윤호는(남학생의 이름이였다.) 기름진 자기의 음식은 처녀앞으로 밀어놓고 자기는 산나물이 좋다면서 도라지와 고사리만 집었다.

그 행동에는 처녀에 대한 총각의 호의가 작용한다는것이 알리였지만 최윤호의 꾸밈없는 밝은 미소와 관심으로 하여 오련희는 조금도 구속감을 느끼지 않았다.

《동문 어머니가 료리사인게지요?》

곱게 빚은데다가 파란물까지 들이여 여간 먹음직스럽지 않은 꼬리떡 하나를 집어들며 오련희는 물었다.

《어머니가 료리사인게 아니라 우리 형수가 료리사요. 나한테는 훌륭한 형님이 한분 계시오. 도림업관리국에 있는데 일을 많이 해서 국가적인 큰 대회에도 많이 참가했소. 표창도 많이 받고. 한마디로 말하면 전도가 양양한 일군이지. 우린 그 형님신세를 많이 지오. 이번에도 내가 방학이 끝나 대학으로 올라간다니까 형수가 이렇게 잔뜩 꾸려주지 않겠습니까. 많이 드십시오. 남겨놓으면 이제 기숙사에 가서 그걸 다먹고 왔을걸 하고 후회하게 될거요. 난 말이요, 생활에서 후회를 남기는 일은 제일 질색입니다. 동무도 그렇게 하십시오.》

최윤호는 그러면서 하하 웃었다.

그들은 평양역에 내려 헤여지면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일요일이면 두사람은 드문히 학습당이나 유원지같은데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방학이 되여 고향으로 내려갈 때면 의례히 약속을 하고 같은 기차를 탔다.

한번은 최윤호가 기차에서 내리자 처녀를 자기 집으로 끌었다. 늦었는데 자기 집에서 편히 하루밤을 자고 아침에 고향 림산마을쪽으로 가는 차잡이를 하라는것이였다.

하긴 기차가 저녁무렵에야 역에 이르다나니 어느 려관에라도 찾아가 하루밤 묵어야 할 형편이였다.

최윤호의 집에 가면 려관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의 호의를 따를수 없었다. 처녀가 총각네 집에 잠을 자러 간다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한 일이였다.

마침 철도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림업관리국에 있다는 최윤호의 형네 집이 있었다.

최윤호가 소개하여 오련희는 그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내외가 모두 마음들이 무던하고 손님을 친절히 대해주는 집이였다. 오련희는 아무런 불편도 없이 그 집에서 하루밤을 보내며 호텔료리사를 한다는 안주인과 친하였다.

그 집에는 인민학교(당시)에 다니는 오돌차게 생긴 아들이 있었다. 최금동이라는 그 소년은 붙임성이 좋아 처음 보는 오련희를 대뜸 누나라고 불렀는데 알고보니 국제수학올림픽경기에 나가 금메달 따는것을 목표로 하는 소년이였다.

오련희가 그 애의 수학실력을 슬그머니 알아보니 놀라울 정도의 수학두뇌였다.

《금동인 앞으로 유명한 수학가가 될거야. 그러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라. 국제수학올림픽경기에 나가 금메달을 따오는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장차 우리 나라의 과학을 세계에 우뚝 세우는데 기여하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돼야 해. 이 누나와 약속을 하자. 그런 과학자가 되겠다는걸 말이다. 누나도 금동이의 수학공부를 도와줄게. 약속하지?》

그들은 그날부터 친한 사이가 되였다.

오련희는 방학이 되여 집에 내려갈 때면 금동이네 집에 들려 그 애의 수학공부를 지도해주군 하였다.

매번 들릴 때마다 금동소년의 수학실력이 놀랍게 올라간것이 알리였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이 흘러갔다.

최윤호가 먼저 대학을 졸업하고 도소재지에 배치받아 내려갔다. 그는 평양을 떠나가면서 오련희를 만나 말했다.

《졸업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소재지로 내려오오. 거기엔 힘있는 우리 친척들도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 많소. 림업관리국에 있는 우리 형님도 인정이 많은데다가 한다하는 일군이니까 교제범위가 넓소. 련희동무 하나 도와 못 주겠소?》

이태가 지났을 때 오련희도 졸업했다. 그는 정말 도소재지에 배치되였다. 그는 향촌의 소녀시절부터 꿈꾸어오던 소원대로 선생님이 되였다.

최윤호는 그가 교원이 되는것을 그닥 달가와하는 기색이 아니였지만 련희는 기쁘기만 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였다.

한해가 지나갔을 때 최윤호네 집에 하나의 일이 있었다. 최윤호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그의 형이 큰 과오를 범했다. 도림업관리국의 한다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일처리를 잘못하여 산하단위인 한 림산사업소의 림지를 못쓰게 만든것이였다.

사업소는 생산전망이 암담하게 되였으며 그 후과로 큰물때 인명피해까지 났다.

그것이 관리국적인 문제로 제기되여 그는 비판을 받게 되였다.

다행히 일을 잘하려다가 범한 본의아닌 과오로 인정되여 엄한 처벌은 면하였으나 그는 심한 량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던 끝에 자기 잘못으로 황페화된 림산사업소로 자진하여 내려갔다.

그때로 말하면 최윤호가 인민위원회 학생모집처에서 일하면서 실적을 내여 우의 일군들로부터 평판이 좋던 때였다. 오래지 않아 부서책임자로도 될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있었다.

오련희는 길거리에서 금동소년의 어머니를 만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일이 그렇게 되였어요. 촌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달리 생각지는 않아요. 생활조건이 여기보다는 못할수 있겠지만 거기라고 뭐 사람못살 고장이겠어요. 하나 속에 걸리는것이 있다면 금동이문제예요. 유명한 수학가가 되겠다는 애인데 동무들과 떨어져 촌에 내려가서 위축되지 않겠는지…》 하고 그 녀자는 말했다.

《위축되기는 왜 위축되겠어요. 거기 가면 또 좋은 동무들을 사귀게 될거구 금동이의 재능을 아껴주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있을게 아니예요. 그리고 거긴 제가 나서자란 고향인데 물좋고 경치좋고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살기 좋은 고장이랍니다.》

그 녀자를 위안하는 좋은 말을 해주었으나 오련희는 속이 편안치 않았다.

어쩐지 자기가 꼭 위선적인 인간처럼 생각되였다. 자기가 나라의 과학을 떠메고나갈 유명한 수학자가 될거라고 하며 학습방조를 주던 금동이는 아버지를 따라 촌으로 내려가는데 자기는 도시에 남아 편안한 생활만 추구하는 녀자처럼. 네가 금동이를 따라 촌에 내려가면 안된다던 하는 생각이 피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편 최윤호가 형님의 일로 얼마나 걱정하랴싶었다.

금동이네가 촌으로 내려간지 며칠 지나서였다. 오련희는 최윤호를 만나 《형님의 일이 참 안됐더구만요.》 하고 진심의 말을 했다.

최윤호의 얼굴에는 사랑하는 처녀가 자기네 집안의 창피한 내막을 알고있다는데서 오는 수치의 감정이 진하게 나타났다.

《사실은 말이요, 그 사람은 내 형이 아니요.》 최윤호가 하는 말이였다.

오련희는 깜짝 놀랐다. 한순간 자기 귀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했다. 하지만 그런것이 아니였다.

《우리 집안엔 그런 역적같은 인간이 없소! 그 사람은 원래 고아였는데 오래전에 아버지가 데려온것을 우리 집에서 먹여주고 입혀주면서 대학공부까지 시켰던것이요. 그러니 촌수를 따지면 그 사람은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소.》

형님이 집에서 데려다 키운 자식이라는 말은 최윤호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였다.

《동지는 언젠가 자기한테 훌륭한 형님이 있다고 자랑하지 않았나요. 오래전의 일이여서 다 잊어버렸어요? 이젠 형님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됐나요? 덕을 볼 때엔 자랑스러운 형님이고 과오를 범하여 필요없이 되면 거치장스러운 〈그 사람〉이 되는가요?》

아니, 오련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갑자기 나른해왔다. 세상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어쩌면 사람이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최윤호가 이런 비렬한 인간이였단 말인가? 수단좋은 사람, 항상 소탈하게 웃는 낯으로 상대하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만을 주던 인간이 어쩌면! 어쩌면!

《위험해요!》 저도 모르게 그 말이 오련희의 입에서 나갔다.

최윤호가 린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처녀를 마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하지만 떳떳하게 울려나오는 소리는 아니였다. 조심스러운것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오련희는 주저할 필요가 없게 되였다. 일단 시작을 뗀 말이 아닌가.

《동지야말로 형세가 좋을 때에는 〈충신〉이 되고 어려울 때엔 당도 서슴없이 배반할 인간이예요!》

《동문 아무렇게나 막 말하누만.》

《아니,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예요.》

《나의 당성을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지 마오. 우리 아버지는 전쟁시기 인민군대 정치일군으로 락동강을 건너갔다왔고 전후에는 종파놈들과 싸웠소. 사람은 어디까지나 원칙이 있어야 하는거요!》

오련희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정성금의 입에서 《세상에!》하는 한숨같은 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래서 네가 도소재지를 떠나 림산분교로 내려갔단 말이구나. 그 수재소년을 위해서… 우린 그런줄도 모르고… 동문 누구한테도 그 말을 안했지?》

《…》

《동무두 독한 녀자로구나. 그래 촌으로 자진하여 내려간걸 이제와서 후회하지 않니?》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거기 사람들이 얼마나 좋다구요. 그런데 참…》

《왜? 무슨 일이 또 있었니?》

오련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자진하여 내려간 고향 림산마을에 바로 최윤호가 역적이나 되는듯이 말하던 그의 형이란 사람이 가족과 함께 이미 가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때문에 사업소가 식수계획을 못하여 벌거숭이가 된 산판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일요일이 따로 없었다. 남들이 모두 휴식하는 날이면 안해와 아이까지 데리고 산판으로 올라가 온종일 나무를 심었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 며칠째 그칠사이없이 폭우가 내리였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내여 토장에 쌓아놓은 나무들과 물동을 지켜내기 위한 전투를 지휘하다가 탕수에 말려들어 위험하게 된 한 로동자를 구원하고 중태에 빠졌다.

그는 의식을 잃은채 병원에 실려갔다. 의사들과 담당간호원이 이틀밤을 꼬박 새우면서 노력하여 간신히 깨여났으나 생명의 초불은 이미 심지의 마지막끝을 태우고있었다.

생의 마감에 이르렀음을 예감하는 순간에 그는 안해의 눈물고인 눈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 안… 하… 오.…》 마디마디 동안뜨게 울려나오는 연약한 목소리… 그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안해만이 리해할수 있는 말이였다. 그는 나라에 손해를 끼친 자기의 과오를 두고 괴로와하고있었으며 그때문에 처자앞에 죄를 지었다는 번민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는 또 무슨 말인가를 하고있었는데 옆에 있는 어린 아들애조차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였다.

그리하여 안해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입에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마지막말을 따라가며 《통역》했다.

《여보… 당신은… 이 못난놈을 대신하여… 이 땅에… 나무 한그루라도… 더 심어주오.… 그리고 금동아… 당에서는… 나라에… 손해를 주고 과오를 범한… 이 아버지를 용서해주었다.… 아버지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당원이고 나라를 사랑했다.… 너는… 나라를…참되게 받들줄…아는… 좋은… 사람이 되… 거… 라.…》

남편은 알릴듯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어요, 아버지! 죽지 말아요, 아버지! 눈을 떠요, 아버지!―》

아들애가 처절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남편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실리였다.

그는 과오를 범했으나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나라의 은덕은 잊지 않았으며 깨끗한 량심을 간직하고 세상을 떠나간것이였다.

지금 림산마을에는 그가 남겨놓고간, 최윤호에게는 이러나저러나간에 형수와 조카가 되는 그 사람의 안해와 아들이 살고있다.

오련희는 금동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자기의 남편을 두고 최윤호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비렬한 말을 내돌렸다는것을 알고있으며 그때문에 시동생을 지금도 용서하지 않고있다는 말도 했다.

《용서를 못하지. 어떻게 용서를 하겠어. 나같아도 용서를 못하겠다. 둘러보면 속에 쉬가 잔뜩 쓸어가지고서도 좋은 사람인체 하는 그인간들도 있는거지. 그런데 련희동문 어떻게 할셈이야? 일생 시집을 안 가고 혼자 살 결심이야 아니겠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고독의 함정속에 처박을수는 없어.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못산다. 빨리 생활을 찾아.》

《생활?》

오련희는 나직이 받아외우며 새물새물 웃었다.

정성금은 돌아누우며 그 녀자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여겨보았다.

《어쩐지 련희얼굴에서 수심기는 찾아볼수 없고 생활의 만족감이라고 할지 그런게 느껴진다고 했지. 너 사랑이 생겼구나. 그렇지?》

《사랑?》

오련희는 아리숭한 소리를 했다.

불현듯 눈앞에는 눈이 어글어글하고 얼굴이 투덤투덤한 남편의 볕에 탄 검스레한 얼굴이 떠오른다. 위험하게도 바투 다가오는 그 눈, 이글이글 타는것 같은 눈 그리고 《잘 갔다오오.》하던 투박한 목소리… 생긴건 참나무드덜기처럼 투박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찬찬하고 부드럽고… 진정에 차고… 열렬하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담!

련희는 갑자기 숯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문득 그를 처음 알게 되던 그때의 일이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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