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1 회


제 1 편


11


평양을 떠난 급행렬차는 북방의 도소재지를 향해 기운차게 달리였다.

밤이였다. 웅성거리던 차안은 조용해졌다.

잠을 재촉하는 렬차의 단조로운 바퀴소리…

《차를 놓치지 마세요.》 출장가방을 쥐여주며 하던 안해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을 울린다.

아득히 흘러간 민경초소시절의 그 일을, 눈보라치는 령마루의 그 처절한 밤을, 그밤에 스러져가는 광우의 연약한 생명의 실오리를 이악하게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간호원처녀를 눈앞에 떠올리게 하는 안해의 말이였다.

처녀는 용모가 별로 아름다운것도 아니였다. 목이 할끔하고 체소하여 연약해보이는 처녀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부대안의 군인들은 그 처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빌면 그 간호원은 이 세상 녀자들이 갖출수 있는 장점들을 모두 가지고있으며 인물 또한 그지없이 아름다왔다.

21살 홍안의 사관 김광우는 그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광우는 건강하여 군의소신세를 한번도 진적이 없지만 예방주사를 놓아주러 초소에 내려오는 그 간호원을 드문히 볼수는 있었는데 원, 세상에! 남달리 연약하게 생겨 동정심만 자아내는 처녀를 두고 세상에 다시없을 미인이나 되는듯이 말하다니!

바로 그 처녀로 하여 인생의 먼길을 가는 광우에게 용기와 진함없는 열정과 사색이 태여날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한생을 급행렬차처럼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좌우명이였으며 어머니의 당부이기도 한 그 말을 한생 잊지 않게 해준것도 그 처녀였다.

어느 겨울날, 초소에는 때아닌 진눈까비가 내리였다. 광우는 그밤에 잠복초소에 나가있었다.

그곳은 건너편 고지에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우리쪽을 감시하며 기회를 노리는 적들의 시야에 들어있는 곳이였다. 광우는 온통 진눈투성이가 되여버렸다. 물기가 스며들면서 속옷까지 말짱 젖어버리였다. 새벽이 가까와오면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온몸이 얼어들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아 철수할무렵에 그는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전우들은 군복에 온통 진눈까비가 달라붙고 얼어서 소가죽처럼 꽛꽛해진 그를 업어 병실로 날라갔다. 련락을 받은 지휘관들과 긴급치료대가 내려왔다.

며칠후에 그는 평양병원으로 후송되였다. 철도역으로 나가는 위생차안에는 도중에 일이 생기면 구급치료를 해야 하는 젊은 군의와 체소한 간호원처녀가 함께 타고있었다.

눈보라치는 맵짠 날이였다. 스러져가는 한 생명의 연약한 마지막여운인가 락조의 싸늘한 잔광이 걸린 산중턱, 거기 가파로운 령길우에 차는 멎어섰다.

경사진 령길이 얼음강판으로 변한것이였다. 그옆은 수백길도 될 아찔한 벼랑이였다. 차가 미끄러져 떨어지면 인간은 종말의 미궁으로 락하하게 될것이였다.

젊은 군의와 운전사가 도끼며 정대같은것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길우에 한벌 덮인 얼음을 까내기 시작했다. 길이 열리자면 몇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였다.

멀리 아득한 산마루의 뿌연 공간에 떠있던 해는 인차 어설핀 잔광을 걷어가지고 산너머로 사라져버리였다. 차안에는 고통속에 신음하는 광우와 그를 지키기 위해 간호원처녀만이 남아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차안이 얼어들기 시작하였다.

광우의 입에서는 이따금씩 헛소리가 흘러나오군 했다.

그때마다 처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동지… 사관동지.…》

그것은 망각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광우를 불러세우는 소리였다.

이 광우는 이렇게 생을 마치는구나! 세상에 나서 생의 아득한 구간을 끝내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아파하실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아버지가 못다걸은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고 하시던 어머니가 아닌가.

광우는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득한 망망천지에서 울려오는듯 한 처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동지… 사관동지!…》

언제부터인가 흐리마리해진 의식속으로 끈질기게 파고들어오던 례의 그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광우는 눈을 떴다.

그는 눈물에 젖은 처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왜서인지 처녀는 솜옷을 벗고있었다. 그래서 처녀가 지금 몹시 추우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추운 날에 저 처녀는 어째서 솜옷을 입지 않고있을가? 처녀가 솜옷을 벗어 자기에게 덮어주었다는것을 광우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동문… 왜… 솜옷을… 안 입소?》

토막토막 끊어지며 흘러나오는 그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처녀는 소스라쳐 놀랐다. 처녀는 어둠속에서 허리를 굽혀 광우를 찬찬히 내려다보다가 기쁨에 찬 소리를 질렀다.

《정신이 들었군요!》 그다음엔 더 말이 없었다. 처녀는 울고있었다.

마치 자기가 죽음속에서 살아난듯이 기쁨에 겨워 울고있었다.

광우는 또 어리석게 솜옷소리를 했다.

처녀는 대답대신 생긋이 웃었다. 어둠속이지만 처녀의 드러난 하얀 이발이 알리였다.

《내가 노래를 불러줄게요.》 마치 투정질하는 아이를 달래듯이 처녀가 말했다. 《〈할머니의 노래〉를요. 동진 들어보지 못한 노래예요.》

처녀는 어렸을 때 한번 세게 앓은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왜서인지 깊은 잠을 들기 힘들어했다. 잠들었다가도 깜짝깜짝 놀라 깨여나군 했다.

심장이 약하기때문이라고 담당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그래서 담당의사선생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왕진을 와서는 약도 주고 진찰도 해보면서 잠을 잘 자야 건강한 몸으로 빨리 자라 군대에도 나갈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그것 봐라.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었지? 잠을 잘 자야 빨리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지 않니.〉 하고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처녀는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말 안 듣고 잠 안 자는 애꾸러기는

뒤산의 승냥이나 물어가거라

우리 집 착한 아이는 잠 잘 잔단다

어서 자거라 귀여운 우리 아이

창밖에선 우뢰 울고 바람 세차도

고운 네 꿈 지켜주는 해님이 있단다

아빠별 엄마별 반짝이는 별나라에 가면

네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그것은 농촌마을의 할머니가 칭얼대는 어린 손녀를 다독여 잠재우면서 불러준 소박한 자작 자장가였다. 아니, 그것은 노래가 아니였다. 할머니의 사랑이였다. 산촌의 박우물처럼, 푸른 숲의 청신함마냥 한점 티없이 깨끗한 사랑이였다. 세상에 할머니의 사랑처럼 아름답고 깨끗한 사랑이 또 있으랴. 바라는것은 없고 주기만 하는 사랑!

《동무의 할머니를 한번 보고싶은데!》

《좋은 할머니예요. 한생 농사를 짓고 자식들 뒤바라지를 하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신 할머니예요. 무던하고 자식들한테 얼마나 극진한지 몰라요. 동진 아버지가 전쟁로병이였다지요?》

《동무가 그걸 어떻게 아오?》

《왜 모르겠어요, 온 부대가 다 아는데.》

광우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온 부대가 다 안다는 처녀의 그 말은 사실이였다.

처녀는 그렇지요? 내 말이 맞지요? 하는듯 생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동지의 어머니가 군대에 나가는 동지에게 사람은 한생을 급행렬차처럼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는것도 다 알아요.》

그것은 어마지두 놀라운 일이다. 이 처녀가 어떻게 우리 가정의 일을 다 알고있을가? 군의소란 그런 곳인가?

《동무의 말이 맞소.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소. 〈사람은 한생을행렬차처럼 바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의 한생은 짧은데 누구나 어깨에는 사회를 위해 해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있기때문이다.〉라고 말이요.

그런데 사실 그건 우리 아버지의 좌우명이였소.》

광우가 아버지에 대하여 말할 때 처녀는 감동되였다.

자정이 지나서야 길이 열리였다.

광우는 달리는 차안에서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를 흔들며 애처롭게 부르짖는 처녀의 목소리가 가냘픈 의식의 망사로 희미한 새벽빛처럼 비쳐들었다.

《동지… 동지… 정신을 차리세요.… 용기를 내세요.…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야 해요.… 차를 놓치면 안돼요.… 아이참!… 이를 어쩌나!… 동진 어머니의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해요.… 동진 아버지의…》

지금도 때없이 귀전에 울려오군 하는 처녀의 여린 목소리… 어머니의 당부를 되새겨주던 그 목소리, 아버지의 넋을 잊지 말라고 하던 그 목소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부대를 이끌고 불타는 락동강을 건너갔다 왔으며 전장에서 물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지휘관이였던 그 아버지가 한창 혈기 넘쳐나는 젊은 나이에 뜻밖의 일로 세상을 떠난것은 너무나도 원통한 일이였다. 아들 광우가 태여난 이듬해 일이였다.

그는 숨지는 순간에 안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이 중혁이 한생 군복을 입고 혁명을 보위하는 군인으로 살리라 결심했는데 이렇게 가는구려. 이제 아들이 크면 꼭 군복을 입고 이 아버지가 못다 걸은 길을 가게 해주오.》

그러니 광우는 달리 살수 없는 몸이였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로 나갔다.

최전연초소에서 전사생활을 거쳐 애젊은 나이에 군관이 되였다. 어깨에 별을 달았을 때 그는 결심했다. 내 숨지는 순간까지 군복을 입고 혁명을 보위하는 1선초소에 서있으리라.

인간의 운명이란 불가사의한것인가? 생활이란 그런것인가?

광우는 푸른 꿈이 하늘에 닿았을 때 뜻하지 않게 운명의 좌절을 당했다. 생의 좌표가 명백했던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좌절이였다.

사관시절에 입었던 동상의 후과로 다시 입원, 거기서 군사복무불가능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받고 제대, 인생의 기관차는 아득한 지평선을 향해 출발의 기적을 울리기 바쁘게 멎어섰다. 앞에 절벽이 막아나선것이였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되였다.

지금도 광우는 제대명령서를 받고 어머니앞에 섰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듯 한 아픔을 느낀다.

그때 어머니는 로환으로 운명의 마지막시각을 보내고있었다. 사람은 세상에 태여났다가 한번은 가야 할 길이지만 광우에게는 너무나도 가슴찢기는 아픔이였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아버지가 못다걸은 길을 마지막까지 꿋꿋이 걸어가라던 어머니가 아닌가. 하여 언제나 아들의 마음속 기둥이 되여주던 어머니가 아닌가. 광우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고 광우 또한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가 림종의 시각에 눈을 감지 못하면서 장한 아들을 기다리고있는데 한생을 군복을 입고 아버지의 길을 이어 혁명을 보위하리라던 자기는 그 길을 끝까지 가내지 못한채 인생의 패자가 되여 나타난것이였다. 광우는 자기야말로 불효한 자식처럼 생각되였다.

《어머니!…》

광우는 무슨 말을 더 할수 없었다. 아, 애오라지 이 아들의 일이 잘 되여 세상떠난 아버지의 생이 줄기차게 이어지기만을 바라온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진실을 말씀드린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아플것인가! 그렇다고 속에 없는 말로 세상 떠나는 어머니를 위안한단 말인가?

《주저하지 말고 걸어가거라!》

어머니는 그 한마디를 유언으로 남기였다. 한마디한마디 힘들게 흘러나오던 그 말! 운명의 고통속에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그 눈길! 사려깊은 어머니의 그 눈길이 그때 이 아들의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고있었던것이나 아닌가?

광우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강자가 되여 기어코 일어났으며 대학으로 갔다. 애당초 자기가 교육부문 일군이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 그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인민위원회에 배치받았으며 몇해후에는 교육위원회에 올라와 책임부원이 되였으며 2년후에는 부국장이 되였다.

새 직무에 임명되던 날 당비서가 말했다.

《동무도 알고있겠지만 우리 나라를 전민과학기술인재화가 실현된 인재강국으로 만들자는것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교육제도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이고 우리 당의 구상이요.》

당비서는 인재가 많아야 우리 나라를 하루빨리 발전된 문명하고 부강한 강국으로 일떠세울수 있고 나라를 지켜낼수도 있다, 놈들이 우리를 먹자고 발광하는 때가 아닌가고 하면서 김광우의 언독이 빠지지 않은 꺼먼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무는 조국을 지켜 언땅에 배를 대고 잠복근무도 서본 군인출신이지요? 우리가 인재강국을 건설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동무가 얼음우에서 잠복근무를 서며 지키던 이 훌륭한 제도를 끝까지 지켜낼수 없게 되오.》

그 순간 광우는 쿵― 하고 가슴을 세차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득히 흘러간 세월의 지평선너머에서 시대의 엄숙한 명령처럼 그리고 인생의 철리를 새겨주며 울려오는 음성! 《혁명을 보위해야 한다!》 그것은 군복을 입은 아버지가 인생의 로정도우에 세워놓았던 한생의 좌우명이 아니였던가.

광우는 비로소 자기의 급행렬차가 결코 정지된것이 아님을 의식했다. 자기는 여전히 최전연초병이였다. 지금까지는 군복을 입고 최전연초소에서 조국을 지켰다면 남은 생애는 조국의 미래를 지키는데 바쳐야 하는것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차바퀴소리… 급행렬차는 여전히 달리고있다. 차창너머로는 어둠에 싸인 전야가 흘러가고있다. 그너머 멀리에서 용접불꽃이 흘러내린다. 거기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창조물이 일떠서고있다. 조국은 이밤도 전진하고있다.

(그 김광우가… 그래, 이 김광우가.) 하고 광우는 생각했다. (내가 인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릴수 있는 일을 했단 말인가?)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