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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1 편



10


《여보, 오늘 꼭 출장을 가셔야겠어요?》

저녁차를 타기 위하여 집을 나서려는 남편의 가방안에 세면도구와 그밖의 필요한 사품을 넣어주며 안해가 물었다. 벌써 두번째로 묻는 말이다.

성품이 조용하고 사려깊은데가 있는 안해 한정실은 언제한번 남편의 의사를 거슬러본적이 없었으며 그 녀자에게 있어서 사사로운 일때문에 사회사업을 하는 그의 발목을 잡는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광우는 오늘 안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거울앞에서 넥타이를 바로잡다말고 돌아보았다.

안해의 체소하여 한줌만 해보이는 몸이며 살폭이 없는 창백한 얼굴을 볼 때면 별로 가슴이 알알해지면서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그에게 자기는 한생 빚만 지고 사는것 같은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는 광우였다. 하여 그는 이마적에 이르도록 안해에게 짜증을 내거나 큰소리 한번 쳐본적이 없었다.

《여보, 당신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요?》 하고 광우는 조용히 물었다.

《오늘 돌격대에 나가있는 영애가 와요.》

《그 애가? 왜 온다오?》

《평양에 일이 있어 저네 정치지도원과 함께 온다나봐요. 그런데 오늘이 영애생일이 아니예요. 당신은 잊고있었어요?》

광우는 갑자기 무딘 송곳으로 가슴을 쿡 찌르는듯 한 아픔을 느끼였다.

영애란 집안의 막내다. 광우는 그 애의 일때문에 더더욱 안해앞에 죄스러움을 느낀다. 안해가 여직껏 그 일을 두고 언짢은 소리 한마디 한적은 없지만 마음속에는 한생 사라질줄 모르는 한으로 남아있을는지 모른다.

그것은 광우가 위원회에 책임부원으로 배치받아온지 얼마 지나서 있은 일이였다.

그해에 영애는 중학교졸업반이였다. 딸애는 중앙대학을 지망했으나 예비시험을 잘못 치는 바람에 추천을 받지 못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제 어머니와는 달리 성격이 활달하고 무엇이나 속에 묻어둘줄 모르는 딸애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자기는 그만하면 시험을 잘 쳤는데 어떻게 되여 떨어졌는지 모르겠다고 옹알거리였다.

《너 그러니 자기는 시험을 잘 쳤는데 선생님들이 채점을 잘못했다는거냐?》

옆에서 듣다못해 한마디 하는 아버지의 얼굴표정을 슬금슬금 훔쳐보던 딸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잘못 채점했을수도 있지요 뭐, 아버지.》

《그렇단 말이지? 그럼 수학참고서와 쓸걸 가져오너라.》

《왜 그러시나요, 아버지?》

《시험을 쳐봐야겠다. 우리 따님이 시험을 잘못 쳤는지, 선생님들이 채점을 잘못했는지 봐야겠단 말이다.》

《아버지가요?》

《아버진 수학을 모르는줄 아니? 어서 가져와!》

아버지의 어조가 자못 엄해지는 바람에 딸애는 기연가미연가하면서도 할수없이 중학생용 수학참고서와 《시험지》한장을 들고 나타났다.

광우는 참고서에서 다섯문제를 뽑아내여 딸애더러 풀라고 했다.

《시간은 60분이다.》하고 광우는 못박았다.

광우는 딸애가 끙끙 갑자르며 수학문제들을 풀어놓은 《시험답안지》를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은채 가방안에 넣고 이튿날 출근했다. 그는 중학교 수학교원경력을 가지고있는 한 책임부원에게 어느 학생의것이라는것을 말하지 않고 랭정하게 채점해보라고 했다.

3이라는 보통점수가 나왔다.

《그래, 어떻습니까?》 하는 광우의 물음에 그 부원은 답안지가 누구의것이라는것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한다는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학생은 일반수학은 그래도 그만하면 괜찮다고 볼수 있지만 기하학에 대해서는 개념에 대한 리해가 좀 부족하다고 볼수 있소.》

《그래도 그만하면》이라든가 《좀 부족하다》는 표현은 눈앞에 있는 학생의 아버지를 딱하게 하지 않으려는데서 쓴 점잖은 완곡법이라고 할수 있었다. 《45분수업시간마다 배워주는것을 제때에 소화하고 넘어갔더라면 얼마든지 풀수 있는 문제들인데…》하고 옛 수학교원은 위안삼아 말했다.

김광우는 그날 저녁 점수가 매겨져있는 답안지를 꺼내놓고 딸애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이였다.

《사람은 맨몸으로 세상에 태여났으니 스스로 자기를 치장하라는 말도 있다. 그건 자기의 앞길은 자기 노력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남을 탓하는건 아주 나쁜 버릇이다! 이 좋은 제도에서 호강만 하는데 버릇되면 그렇게 되는것이다.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자면 뼈심을 들여 자기를 가꾸어야 한다. 한생을 노력하고노력해야 세상에 태여난 보람이 있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네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렴.》

광우는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장령복을 입은 광우의 아버지 김중혁이 근엄한 눈길로 자기의 손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아버지의 준절한 말에 딸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딸애의 그 일때문에 마음을 많이 쓴것은 딸애보다도 그 애의 어머니였다.

웃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틀째나 밥먹으러도 내려오지 않는 딸애를 보다못해 안해가 한마디 했다.

《여보 영애 아버지, 대학에 가고 못 가고 하는거야 저 애의 앞날과 관계되는 일이 아니나요.》

광우는 그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화를 냈다.

《여보, 당신 나더러 어찌라는거요?》

《…》

노여웠다.

그는 안해의 마음을 리해 못해서가 아니였다. 안해는 교육자이지만 그보다 먼저 저 애의 어머니가 아닌가! 하지만 광우는 그래서 더더욱 노여운것이였다. 딸애한테 벌써부터 부모에 대한 의존심을 심어준다면 저 애가 어떻게 멀고먼 인생길을 똑바로 걸어갈수 있겠는가.

《이 김광우, 학생모집사업을 보는 책임부원의 권한을 휘둘러서 제 딸애의 대학추천문제에…》

《됐어요, 아버지!》 웃방에서 딸애가 째지는듯 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광우는 말끝을 마무리지 못한채 입이 굳어졌다.

사이문이 열리며 딸애가 뜻밖에도 발랄한 인상을 지어가지고 내려왔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셨지요? 담쟁이넝쿨처럼 의존심만 가지고 살아선 안된다구요. 전 돌격대에 나가겠어요.》

딸애가 돌격대에 입대하여 고산과수농장(당시)으로 떠나가는 날 부부는 역에 나가 바래주었다. 태여나 여직껏 부모의 슬하에서 떨어져본적이 없는 딸애였다.…

그 딸애가 집으로 오는것이다. 생일날 집으로 오는 딸애를 축하해주지 않고 떠났다고 그 애가 이 아버지를 또 원망하지 않을가? 아니, 딸애보다도 안해가 더 서운해할것이다. 마음이 쓰려오는것은 그때문이였다.

《여보, 미안하오.》

《가야 할 길이라면 늦지 않게 떠나세요. 차를 놓치지 마세요.》

안해의 유순한 눈에는 따뜻한 리해의 미소가 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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