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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 회


제9장 피절은 락조


6


봉대와 솔매가 토굴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앞에 다가와 섰지만 김정환은 이윽토록 환기구멍으로 내다보이는 먼 하늘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해서야 김정환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김정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봉대와 솔매는 의병장의 기색을 살피며 서로 마주보았으나 왜놈들이 턱밑에 진을 치고있는 때에 자기들을 부른 그의 의도를 알수가 없었다.

드디여 김정환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이날껏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한을 남긴것이 별로 없다만 속에 맺히는게 있다면 그건 너희들의 잔치를 지금껏 차려주지 못한것이구나.》

봉대는 눈을 흡뜨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의병장님, 지금 같은 때 그건 무슨 당치않은 말씀이시오이까?》

김정환은 그를 찌를듯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한듯 단호히 말했다.

《두말할것 없다. 너희들은 이제 곧 여기에서 빠져나가야겠다.》

봉대가 대바람에 펄쩍 뛰였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들듯이 말했다.

《뭐라구요? 그것도 말이라구 하시우? 날 뭘루 알고 그따위 소릴 하시우.》

김정환이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말을 이었다.

《지금은 죽기보다 살기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네 꼭 살아서 죽은 우리들의 몫까지 합쳐 나랄 위해 좋은 일을 계속해다오.》

봉대는 오열을 터뜨리며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잘못한게 있으면 군령으로 다스리더래도 날 비겁한 놈으로만은 만들지 말아주시오이다.》

김정환은 그를 외면하였다.

《이제 곧 저 앞골짜기 굽인돌이에 있는 바위홈에 가 몸을 숨기거라. 싸움이 붙으면 왜놈들이 우리가 있는 이 토굴에 정신이 쏠렸을 때 기회를 봐서 빠져나가거라.》

《난 그렇겐 못합니다. 여기서 같이 죽겠어요.》

봉대가 세차게 어깨를 떨었다. 솔매의 흐느낌소리가 김정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애들이 이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고…

김정환은 눈물이 슴배인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자기의 권총을 뽑아 봉대의 품에 넣어주었다.

《내 말을 잘 들어라.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 땅의 마지막의병대답게… 만약 조선에 왜놈들을 물리칠 기운이 다시 서리게 되면 네 반드시 그 길에 선참 뛰여들거라.》

김정환은 오열을 터뜨리는 봉대와 솔매를 품에 꽉 그러안고 갈린 목소리로 당부했다.

《그리구… 왜놈들과 싸우다 먼저 간 수길이와 지남이의 안사람들을 꼭 찾거라. 모진 세상에서 굳세게 살아가도록 네가 도우며… 그네들의 자식들이 부친들의 넋을 이어가도록 마음을 쓰거라. 이건 마지막길을 가는 사람이 하는 부탁이 아니라 죽지 않는 넋… 배달민족의 얼이 너희들에게 하는 당부로 알거라.》

김정환의 눈에 눈물이 괴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서며 꺽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느냐?》

봉대가 오열을 터뜨리며 대답을 했다.

《알겠… 소이다. 형님-》

《그럼 이젠 떠나거라. 어서…》

봉대와 솔매는 떠나갔다.

어려운 길이였다. 그들이 꽤 이 험한 곳을 빠져나갈수 있겠는지 불안스러웠다.

도대체 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것인가?

이 싸움이 끝난 다음날 이 땅에 남아있던 마지막의병대를 없애치운것을 경축한다며 벌려놓은 피로연에 참가하고 돌아가던 지구수비대장 오까노모를 어둠속에서 나타난 젊은 남녀가 권총으로 쏴제낀것을 보면 그들이 무사히 살아나갔으며 그후에도 의병들의 넋을 이었으리라고 믿는다.

허나 그것은 그때까지 누구도 알수 없는 다음날의 일이였다.

하여 그들을 떠나보내는 김정환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김정환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가는 봉대와 솔매의 뒤모습을 흐려지는 눈길로 바라보며 바래웠다.

《의병장님, 우리도 이젠 마지막차비를 해야지요? 우리가 빨리 불질을 시작해야 저들이 무사히 빠져나갈게 아니겠소이까.》

뒤에서 울린 목소리에 돌아보니 남은 의병들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김정환은 최후를 각오한 그들을 대하고나니 목이 꽉 메여올랐다.

《자네들 나를 원망하겠구만.》

의병장을 바라보며 그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세월을 원망해야지요. 우리가 때를 잘못 만나 오늘 이렇게 되였으니 누굴 탓하겠소이까. …》

김정환은 목이 꽉 메여올랐다.

《나같은게 대장노릇을 했으니 나라는커녕 자네들의 목숨도 지키지 못했네.》

《우리가 통분한건 죽는게 아니라 민족이 저 쪽발이 섬오랑캐놈들에게 참혹하게 짓밟히는것이요. 이 길에 나설 때야 우리 어찌 살기를 바랐겠냐만 한을 풀지 못하고 죽자니 너무도 분통이 터지우다.》

그들이 와락 한덩어리로 뭉쳐졌다. 그속에서 눈물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래세에서두 왜놈을 만나면 우리 다시 일어나 싸우자구.》

이어 그들은 마지막싸움준비를 서둘렀다.

김정환은 토굴속에 보관했던 무기와 탄약을 모조리 꺼내도록 하였다.

그 무기와 탄약을 의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싸움준비가 끝나자 그들은 잠시 모여앉았다. 모두가 침울한 표정이였다.

억울한 생을 마무리하는 이 시각에 그들의 가슴마다에서는 왜놈들에 대한 적개심이 사무치게 끓어번졌다.

잠시동안 흐르는 고요를 깨치며 달삼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으면 평산의병대가 다시 일어날가?》

달삼이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장서방이 한동안이 흘러서야 몇마디 했을뿐이였다.

《글쎄… 장수산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지, 그리구 의병장이 없으면야…》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말이 없었지만 이 순간 그들은 자기들 운명의 종말뿐아니라 이 땅의 마지막의병대, 평산의병대의 존재가 마지막운명에 처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모두의 얼굴에 말할수 없는 절통함이 어렸다.

자기들의 죽음보다도 의병대의 사멸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던것이다.

그들의 눈에서는 누구라 할것없이 축축한 물기가 맺혔다.

그렇게 한동안이 흘러갔다.

그냥 두면 몇날이라도 그렇게 앉아 가슴을 깡그리 불태울것만 같았다. 뙤창으로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달삼이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의병장님, 왜놈들이 시작하려나 봅니다.》

김정환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한사람한사람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의병장의 눈빛에서 말없는 령을 느낀 의병들이 무기들을 손에 들며 싸움준비를 갖추었다.

탄띠에 탄알을 채워넣고 무기를 살펴보고난 달삼이가 수걱수걱 싸움준비를 갖추고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시무룩이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젠 죽는 순서를 정합시다. 죽는 차례는 태줄을 끊은 순서대로 하기요. 내가 갑신년 초겨울생이니까 제일 많이 살았으니 내가 먼저 맨앞으로 나가겠소. 혹시 살구멍이 생기면 모두 나만큼은 살라구.》

눈물이 그렁하여 롱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김정환은 입술을 짓씹었다.

눈물자욱이 된 장서방이 악의없이 퉁을 놓았다.

《이 판에두 허튼소린가? 언젠 뭐 을유년 여름생이여서 나보다두 네댓달아래라고 하더니 이젠 도리여 여덟달이나 불궈?》

《그건 내가 도끼장수의 체면을 봐준거지.》

모두가 소리없이 웃었다.

《임잔 그 헛소리하는 버릇을 언제 가면 고치겠나? 베잠뱅이신세나 면했다구 왕자님이라고 자처하질 않나… 전탕 헛소리뿐이거던.》

장서방의 퉁을 맞은 달삼이 또다시 시무룩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왕자님이라도 되였으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 소리요. 지금 우리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였소. 그게 다 황제가 무능하고 통치배들이 무능해서가 아니겠소. 내가 지금껏 그런 헛소리를 한것도 실상은 나라를 근심하는 뜻이 있어서이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통치배들에 대한 울분때문이요.》

달삼이의 말에 의병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볼뿐이였다.

김정환은 그들을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누구나가 다 가슴속에 뜻을 품은 사람들이요. 나라가 당하는 수치를 씻고 민족의 멸살을 막고저 이 길에 떨쳐나섰건만 백성을 이끌어줄 성인을 만나지 못한탓으로 이렇게 속절없이 죽게 되오. 하지만 우리 단군민족의 절개가 어떤것인지, 눈속에서도 푸르른 소나무의 기상을 지닌 조선사람들의 기개가 어떤것인지 왜놈들이 똑똑히 알게 하고 우리 사나이답게 떳떳이 죽기요.》

동료들이 그의 손을 잡았다.

《자, 이 땅과 작별하자구.》

김정환은 먼 하늘을 우러러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뒤를 따라 의병들이 같은 자세로 앉았다.

김정환은 토굴바닥의 두둑진 곳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자기의 대검을 올려놓았다. 후세에 마지막의병대의 증견물로 되여 죽지 않는 민족의 넋과 단군후손들의 깨끗한 절개, 숨이 지면서도 목마르게 바라고바라던 이 나라 백성들의 절절한 소망과 마지막의병대의 종말이 가져다주는 력사의 교훈이 과연 무엇이였는가를 전해주게 될 대검이였다.

김정환이 목메여 부르짖었다.

《단군성왕님께 후손들이 부디 아뢰나이다. 오늘 여기 서흥땅의 이름없는 적막한 산골에서 이 땅의 마지막의병들이 생을 맺으려 하나이다. 민족의 넋으로 살려고 몸부림친 후손들이 나라와 백성을 마지막까지 위하지 못하고 초야에 묻히게 되는 이 절통함을 헤아리시여 민족구원의 한을 풀어주사이다. 백골이 진토되여도 풀 길 없는 한을 민족의 시조이신 단군성왕님께 절절히 아뢰옵나이다.》

김정환의 두눈에서 비통한 눈물이 흘렀다.

그의 뒤에 무릎을 꿇고 앉은 사나이들의 입에서도 절통스런 흐느낌소리가 흘러나왔다.

왜놈들이 가까와지고있었다.

그들은 먼 하늘을 우러렀다. 절절한 웨침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아, 단군성왕이시여! 그대의 후손들이 원쑤와의 싸움에서 비통하게 죽나이다. 민족을 살리려거든 우리의 비통한 죽음우에 섬오랑캐왜적을 물리칠 성인을 내려주옵소서. 민족이 당하는 수치를 씻게 해주옵소서.

의병들은 총을 들고 왜놈들을 맞받아나갔다.

총소리, 아우성이 골짜기를 꽉 메웠다.

왜놈들이 기절초풍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왜놈들은 악랄하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처절하게 쓰러졌다. 마지막숨이 지는 순간에도 원쑤 왜놈의 멱줄을 물어끊으며 그들은 쓰러졌다.

떨어지는 저녁해가 서산에 걸터앉아 누리를 피빛으로 물들일무렵 이 골짜기는 기괴한 정적속에 잠겼다.

무엇인가 금시라도 하늘땅이 뒤집힐 거대한 민족의 정기를 예감하듯 무거운 정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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