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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 회


제9장 피절은 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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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산에서 빠져나와 자기자신을 비롯한 의병들의 부상자리를 치료하고 완쾌되는 길로 곧장 서흥제비여울을 기습하여 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한 김정환일행이 다시 돌망골에 도착하였을 때는 새벽녘이였다.

김정환은 자기와 함께 결사대로 장수산 포위진을 뚫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8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지금껏 그냥 두었던 서흥제비여울병참을 기습했던것이다.

한낮에 낮잠에 든 수비대를 순식간에 료정내고 거기에서 탄알과 무기들을 수많이 로획하였다.

수비대병영안을 수색하던 의병들이 침실 벽장속에 숨어서 부들부들 떨고있는 시나지로중위놈을 찾아냈을 때 김정환은 생각이 많았다.

의병들에게 포로는 필요가 없는것이다.

하지만 혹시 시나지로가 어느 한 모퉁이에서 필요할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김정환은 당장 그놈을 없애버리자는 의병들의 제의를 일축하고 끌고가게 하였다.

서흥제비여울수비대병영을 불태워버린 의병들은 그곳에서 인차 철수하였다.

돌망골에 이르러 무기와 탄약들을 장서방네 집 토굴속에 묻고나서 솔매가 차려준 아침밥을 대충 치른 김정환은 의병들에게 휴식을 하도록 하였다.

아직 부상자리들이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이틀밤을 꼬박 밝히며 서흥제비여울수비대를 기습했고 왜놈들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또 하루밤을 새우며 먼길을 에돌아 돌망골에 도착한 지금까지 눈 한번 붙이지 못했던 의병들은 눕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곯아떨어졌다.

달삼이가 시나지로중위놈을 지키면서 골짜기쪽을 살피겠다며 밖으로 나가고 봉대도 점심준비를 하는 솔매를 돕겠다면서 나갔으나 김정환은 자리에 눕지를 못하였다.

김정환의 머리속에서 여러가지 근심들이 꼬리를 물고 떠나질 않았던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걱정은 의병들로 여러명씩 조를 무어준 다른 대오들중에서 장수산을 무사히 빠져나간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이제 장수산을 빠져나간 의병들을 다시 모아서 서흥제비여울수비대에서 빼앗아낸 무기와 탄약을 나누어주고 새로운 거점을 향하여 떠나야 했다.

그 새로운 거점이 어디인지 김정환은 아직 작정하지 못했다.

여하튼 이 일대를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는 빨리 흩어진 의병들을 찾아 대오를 수습해야 했다.

장수산에서 탈출하면서 얼마만한 의병들이 잘못되였겠는지도 알수 없었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제발 모두가 무사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지난 기간 왜놈들과 싸움을 하면서 얼마나 아까운 사람들을 많이도 잃었던가.

김정환의 눈앞에는 못 잊을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두남이와 득진이, 백명산과 지남이며 한정만, 신모정, 강수길, 신군선이를 비롯한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잘못된 장한 모습들이 한사람한사람 떠올랐다.

동북으로 들어간 리진룡의 모습도 떠올랐다.

험준한 산발들을 넘나들며 수많은 왜놈들을 잡아족치던 지난날들이 방불히 안겨왔다.

조선에 의로운 사람들을 이끌어줄 장수가 나서길 바라서 이날을 기다렸건만 이제는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처지에 놓이게 된것이였다. 원쑤 왜놈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에 닿았건만 그 결기 하나만으로야 어떻게 민족이 흘리는 피를 멈출수 있으며 백성들의 피눈물을 모두 닦아줄수 있단 말인가.

까닭모를 설음이 북받쳤다.

하지만 왜놈들과의 싸움을 그만둘수는 없었다.

죽는 마지막순간까지 왜놈들과 싸우다가 죽으려는것이 김정환의 결심이며 평산의병대원모두의 기개가 아닌가. 그런데…

불쑥 아버지생각이 났다.

한뉘 땅을 뚜지느라 일찍 겉늙고 쇠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이런 순간에 생각히우는것은 무엇때문인가.

아마도 그것은 김정환의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맺혀있는 절절한 갈망으로 인한 그리움일것이다.

한가정도 가장의 엄한 훈계가 있어 유지되듯이 나라도 옳바른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

이 나라에는 집의 기둥을 옳게 박을줄 아는 아버지가 없고 자식들에게 존엄을 지키도록 힘을 줄 아버지도 없다.

바로 그런것으로 하여 나라는 울바자가 없는 려염집으로 되고 렬강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감놔라 배놔라 하다못해 이제는 주인을 밀어내고 주인행세까지 하는데 이르고만것이 아닌가.

거기에다가 전국도처에서 내노라 하며 백성들을 휘동했던 이름난 유생들은 제각기 놀아대다가 더러는 왜놈들에게 잡혀 참혹한 죽음을 당했고 더러는 남의 나라 땅으로 떠나가버리고말았다.

삼수땅에서 왜놈들을 본때있게 족치던 홍범도의병장도 종당에는 의병대를 이끌고 남의 나라 땅으로 가버리고 함께 싸워보리라 결심했던 곡산의병대도 종말을 고하고말았다.

전국도처에 타번지던 의병의 불길이 이렇게 사그라져버렸다.

정말이지 생각 같아서는 남은 의병들을 거느리고 만주나 아라사로 들어가버리고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하지만 김정환은 그럴수 없었다. 죽어도 제땅을 못 버리는 사람들, 이 나라의 평범한 백성들중의 한사람인 그 역시 이 땅에서 살판치는 나라의 원쑤들을 두고 이 땅을 떠날수 없었던것이다. 설사 이국의 땅을 밟는다 해도 진정으로 자기들을 이끌어줄 위인이 없는 한 집잃은 고아처럼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야 했다. 류린석이나 홍범도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투쟁방법을 모색한다고 했지만 그들을 따를수 없는 김정환이였다.

황제의 강제퇴위를 계기로 수많은 의병들이 들고일어났지만 자기의 제자들만을 위주로 싸움을 전개하는데 급급한 류린석이가 이제 와서 그 어떤 다른 방책을 가지고 나라를 구원할수 있는 인물은 아니였던것이다.

홍범도 역시 그랬다.

삼수, 갑산, 풍산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던 홍범도는 《왜놈들이 후치령이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는 구호를 들고 그곳을 지키는데만 전심하면서 고원지방에서 활동한 윤동섭의 의병대와 련계도 맺지 않았고 어려운 처지에 빠진 그를 도와 싸우지도 않았다.

류린석이 유생으로서 뜻이 있고 홍범도가 평민으로서 출중한 인물인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따라 남의 나라 땅으로 가고싶지는 않았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숨을 쉬고 살아있는 한 왜놈들과 싸울것이며 죽으면 바로 태를 묻은 이 땅에 그대로 묻히고싶었다.

지금에 와서 평산의병대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였다. 왜놈들의 《토벌》무력이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평산의병대를 없애기 위하여 집중되고있는 형편에서 마음놓고 활동할수 있는 지역이나 거점이 완전히 없어지다싶이 되여버렸다.

이번 장수산에서의 싸움이 실증해주는것처럼 의병대의 꼬리를 일단 물기만 하면 절대로 놓치지 않도록 《토벌》력량을 조밀하게 배비해놓은 왜놈들은 곳곳마다에 매복지점들을 만들어 병력을 증강하였으며 깊은 골짜기들까지 샅샅이 수색전을 벌리고있는것이다.

평산의병대의 길은 더는 없었다.

김정환은 대오를 다시 수습하여 평산일대를 벗어나 강원도의 깊은 산중에 의거하여 싸움을 벌려야겠다고 타산하였다.

이제 여기서 한나절만 쉬고는 빨리 대오를 수습하기 위해 떠나야 했다. 그러자면 잠시 눈을 붙여야 했다.

김정환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고요한 정적을 깨치며 총소리가 터진것은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울린 총소리에 김정환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밖에서 총소리가 몰방으로 울려왔다.

김정환은 권총을 뽑아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의병들이 몽땅 자리를 차고 일어나 의병장의 뒤를 따랐다.

밖에 나서니 망을 서던 달삼이의 총구가 겨누어진 곳에서 왜놈들의 무리가 보여왔다.

왜놈들이 새까맣게 떼를 지어 밀려들고있었던것이다.

왜놈들은 너무도 가까이에 있었다.

아마도 밖에서 망을 보던 달삼이를 발견한 왜놈들이 은밀히 접근한 모양이였다.

의병들이 어쩔새없이 왜놈들과의 싸움에 말려들었다.

좁은 골짜기로 밀려들어오는 왜놈들을 향하여 몰사격을 퍼부어댔다.

대여섯명만 몰켜도 길이 꽉 메이는 골짜기로 들어서던 왜놈들은 의병들의 몰사격에 무리로 녹아났다.

첫 접전에서 무리죽음을 당한 왜놈들이 황겁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며 달삼이가 사기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

《쪽발이새끼들, 그 주제에 뭐 사무라이정신이 어찌고어쨌어? 이 너절한 족속들아, 너따위 북데기들은 암만이고 밀려들어봐라. 하하하…》

통쾌하게 웃어대던 달삼이가 김정환의병장의 심각한 얼굴을 띄여보고 의아해졌다.

김정환은 지금 골짜기를 메운 왜놈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마지막싸움을 눈앞에 두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탄약과 무기들을 저장하고 그길로 이곳을 떠나지 못한 뼈저린 후회가 가슴을 쳤다.

왜놈들이 이렇게 빨리 이곳으로 몰려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그였다. 그들의 뒤에는 전혀 빠질 구멍이 없었다.

물자를 저장하거나 은페하기에 적합한 이 골짜기는 일단 발견만 되면 함정으로 되는것이다. 바로 그래서 이미전에도 의병대의 거점을 돌망골이 아니라 바리산으로 정한것이 아닌가.

왜놈들이 물러갈리는 만무하고 또 왜놈들이 꽉 메운 골짜기를 돌파한다는건 더욱 어렵게 되였다.

왜놈들이 무모한 공격에로 나오기 전에 빨리 여기서 빠질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자면 왜놈들이 지금 차지한 계선에서 뒤로 얼마쯤 물러서게 하는 길밖에 없었다.

왜놈들이 순순히 물러서기를 바랄수는 없는것이다.

김정환은 의병들에게 령을 내렸다.

《시나지로를 끌어오게.》

시나지로가 끌려왔다. 부들부들 떠는 꼴을 바라보던 김정환은 조용히 말했다.

《너희 족속들이 골안을 막았다. 길을 열어야겠다. 네가 오까노모와 교섭을 해보아라. 너의 목숨이 우리에게는 필요없다. 길만 열리면 네놈을 살려주겠다.》

《하잇!》

시나지로의 두눈에는 목숨만 살려주겠다면 저희네 왜왕이라도 잡아다바칠 결의라도 다질듯 한 비굴함이 가득 어려있었다.

달삼이가 덜미를 잡아 일으켜세웠다.

《저기에 뭐가 보이는가?》

달삼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시나지로가 얼떠름해서 말했다.

《애솔나무입지요.》

《그우에 뭐가 있는가?》

달삼이의 욱박지르는 목소리에 시나지로는 당황하여 대답했다.

《솔방울입니다.》

달삼이는 시나지로의 덜미를 잡은채 그곳에 대고 다짜고짜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스런 총소리와 함께 멀찍이 서있는 애솔나무우듬지에 달려있던 솔방울 하나가 총알에 맞고 부서지는것이 똑똑히 보였다.

《봤어? 내 시키는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간 당장에 저렇게 된다.》

시나지로는 얼혼이 빠져 대답했다.

《하잇!》

시나지로가 왜놈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어정어정 걸어갔다.

열댓보를 사이에 두고 멀어졌을 때 달삼이가 나직이 소리쳤다.

《섯.》

시나지로가 비칠거리며 그 자리에 멎어섰다.

왜놈들이 목을 빼들고 시나지로를 바라보았다.

시나지로가 소리쳤다.

《나다. 제비여울수비대 시나지로중위다. 오까노모중좌님을 만나야겠다.》

먼발치에서 오까노모가 나섰다.

놈의 독기어린 얼굴이 잘 알리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방불히 그려졌다.

시나지로는 용기를 내여 소리쳤다.

《수비대장님, 여기 의병장귀하께서 병력을 저 앞골짜기까지 철수하면 저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 목숨이 수비대장님 손에 달렸습니다. 제발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멀리서 오까노모의 악의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쳐. 네놈은 제국군인으로서 수치를 모르는가? 비렬한 자식! 제국군인의 명예를 훼손시킨 네놈은 당장 총살이다.》

오까노모가 무슨 괴상한 손짓으로 호령을 하자 일본군병졸 세놈이 자리에서 일어나 절도있는 제식동작으로 시나지로의 앞으로 행진해왔다.

얼마간 간격을 두고 행진해오던 병졸들이 쉰보쯤 사이를 두고 자리에 멎어섰다.

시나지로의 상판이 새하얗게 질렸다. 오까노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국군인으로서의 수치를 당한 중위 시나지로를 사형에 처한다. 사격준비!》

병졸들이 보총을 꼬나들고 사격태세를 취했다. 시나지로는 두팔을 휘저으며 악을 썼다.

《야, 이 개같은 놈들아, 쏘지 말아, 쏘지 말아-》

《사격!》

오까노모의 구령소리가 울리자 총소리가 울렸다.

시나지로는 네활개를 쭉 펴고 너부러졌다.

시나지로를 내세워 구멍을 열어보려던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악에 받친 달삼이가 어쩔새없이 몸을 솟구쳐 둬고패 뒹굴며 총을 휘둘렀다.

시나지로의 사형을 집행한 세 병졸이 푹푹 꼬꾸라졌다.

달삼이가 왜놈들의 집중사격에 들었다.

의병들이 맹사격을 퍼부어 달삼이를 엄호했다.

달삼이가 돌아왔을 때는 왜놈들이 또다시 숱한 주검을 남겼을 때였다.

왜놈들은 골짜기를 막고 또다시 달려들었다.

요란스런 총소리들이 골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의병들이 왜놈들을 향하여 맹사격을 들이댔다.

왜놈들은 도저히 의병들이 있는 토굴가까이로 접근할수가 없었다.

그곳에 은페막이라도 있었으면 왜놈들에게 유리하련만 홍로인이며 분이 할머니며 설씨네들이 살던 집을 제놈들 손으로 불태워버렸으니 어디 몸을 감출만 한데가 없었던것이다.

총탄이 날아드는족족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골짜기의 기묘한 바위들에 의거한 김정환과 여덟명의 의병들이 퍼붓는 맹사격에 당황한 왜놈들은 골안에 많은 의병들이 전개한것으로 오판하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지구수비대장 오까노모는 급히 평양수비대에 통지하여 렬차로 대부대를 끌어들이게 하는 한편 의병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맹공격을 들이대게 하였다.

서흥의 외진 산골짝의 작은 협곡에서는 오후까지도 요란한 총소리가 멎을줄 몰랐다.

평양수비대에서 총동원된 병력이 도착하자 왜놈들은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아마도 한숨을 돌리고 골짜기를 단숨에 밀어버릴 흉계를 꾸미는듯싶었다.

왜놈들의 병력이 엄청나게 불어나 산천을 뒤덮은것을 바라보던 리달삼이가 큰숨을 내불고나서 추연하게 말하였다.

《다음해 오늘이 내 제사날이 되겠구만.》

가슴을 찌르는 그의 목소리에 김정환이 다른 의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마다에서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현실을 보며 비껴흐르는 비장한 결심들을 엿볼수가 있었다.

김정환은 평산의병대에 마지막시기가 닥쳐왔음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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