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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 회


제9장 피절은 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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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관목을 헤치면서 비칠거리며 걸어가는 맹영달의 목구멍으로 겨불내가 치밀어올랐다.

얼굴에 땀이 비오듯 흘렀고 다리가 매시시해났다. 당장 주저앉고싶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진대나무에 기대고 선 영달의 눈앞에 수비대장 오까노모의 상통과 함께 어제 저녁 일이 떠올랐다.

서흥제비여울병참이 평산의병대의 습격을 받아 수비대전원이 전멸당하고 시나지로중위가 의병들에게 포로되여갔다는 소식을 들은 오까노모는 너무도 악이 받쳐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영달이의 목을 칼탕쳐버릴 기상이였다.

《서흥의 제비여울병참이 녹아났단 말이다. 평산의병대의 습격에 시나지로중위가 의병들에게 끌려가고 나머지는 한놈도 살아남지 못한 책임을 네놈은 아는가?》

오까노모의 노성에 영달의 얼굴이 꺼멓게 질렸다.

오까노모는 영달을 잡아먹을듯 노려보았다.

《장수산에서 포위에 들어 거의 전멸했다던 평산의병대가 어떻게 다시 서흥으로 이동했는가, 앙? 네놈들은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구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영달은 상통에 내배인 진땀을 손으로 뻑뻑 문지르며 불쌍한 인상을 지었다.

《대장님, 정말 면목이 없소이다. 평산의병대가 빠질수 있는 길목들을 지키느라 했지만 어느 구멍으로 빠져나갔는지…》

《닥쳐.》

오까노모는 살기띤 눈알을 굴리며 씹어뱉듯 웨쳤다.

《당장 수비대무력을 총동원하여 서흥일대를 샅샅이 훑어라. 시나지로를 찾아내고 마지막의병대를 기어이 소멸해치워야 한다. 알겠는가?》

그리하여 맹영달은 개몰리듯 산판으로 쫓겨들어왔던것이다.

서흥제비여울병참일대를 수색한다고 하면서 밤새껏 산판을 헤매였는데 또다시 식전부터 내몰리워 정오가 다 되여오도록 밥은커녕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열개의 산봉우리를 넘었다.

먹은 소가 기운을 쓴다는걸 도대체 이 섬오랑캐들이 알고나 있는가…

개도 먹여주어야 꿩을 물어온다는것을 이 일본군족속들이 모를수는 없으련만 생사람을 굶겨죽일 잡도리인듯 두끼째나 꼬박 굶기고도 아닌보살을 하는것을 보니 자기를 개보다도 못하게 취급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그의 뒤에서는 방금 열번째로 교대된 수십명의 왜놈들이 따랐다.

산봉우리 하나를 수색하고나면 골짜기에 대기한 수비대에서 병력을 갈아대군 하면서도 영달이에게는 잠시 숨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이제 이 산을 훑고나면 또 다른 수십명의 일본군이 교대로 영달이를 몰고 다닐것이다.

영달은 눈앞이 아뜩했다. 허기진 배에서는 연방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의병이고 왜놈이고 모두가 미워났다.

자기를 개몰듯 몰고 다니는 왜놈들이나 이런 산판에 나서게 만든 의병들이나 모두가 원망스러웠고 한스러웠다.

이제 등성이 하나를 넘어서면 약우물골이다. 거기서 얼마쯤 나가면 명재를 통한 의병대의 유인에 걸려 죽은 계부길이와 옥칠이가 언제인가 어떤 산귀신에게 얻어맞고 쫓겨온 돌망골이다.

그 돌망골은 일본군 수십명이 《토벌》을 나왔다가 강수길이와 그의 동료에게 무리죽음을 당한 곳이다.

그때 수십명의 일본군이 단 두명의 의병들에게 얼마나 혼이 났는지 다시는 이곳으로 오기를 주저했다.

한성에서 경찰관으로 리용구를 따라왔던 강수길이라는자가 의병이 되여 나타났을 때 영달은 경악했다.

그는 일본군을 수십명이나 쏴죽이고 마지막에 탄알이 떨어지자 두주먹을 부르쥐고 맞섰다. 그 주먹과 발길질에 또다시 열댓명이나 되는 일본군이 맞아죽었다.

산채로는 도저히 잡을수 없어 일본군은 강수길에게 수십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강수길은 어느 한 소나무에 기대여 서서 죽었다.

그때 자기들쪽을 향하여 부릅뜨고 굳어진 그의 눈길을 잊을수가 없다.

일본군이 그와 동료의 시체를 불태워버렸지만 지금도 그 눈빛은 영달이에게 공포를 안겨주며 때없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만에 오까노모가 그곳에 숱한 《토벌》무력을 다시 들이밀었지만 이미 백성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아예 빈 골짜기가 되고말았던것이다.

영달은 그곳을 피하고싶었다.

그때 텅 빈 골짜기에 지금이라고 의병들이 다시 찾아들었겠는가. …

하지만 오까노모가 로정을 그곳까지 찍었으니 에돌아갈수도 없었다.

영달은 속이 조여들었다.

왜서인지 여기에서 불쑥 평산의병장 김정환이와 맞다들릴것 같은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김정환과 마주치기만 하면 자기의 목숨이 끝장나고야말리라는 무서움이 온몸을 엄습했다.

더 움직이고싶지 않았다. 가는 걸음을 한순간이라도 늦추고싶었다.

그의 가련한 심정을 알고 보살펴주듯 왜놈들이 때이른 점심밥을 펼쳐놓았다.

왜놈들은 통닭이며 삶은 닭알 같은것들을 무드기 쌓아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영달이의 눈이 뒤집힐것만 같았다.

군침이 연방 넘어가고 배안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그칠새없이 흘러나왔다.

그제서야 맹영달에게 눈길을 돌린 왜놈들이 잠시 저들끼리 눈을 껌벅거리다가 먹을것을 종이에 싸서 던져주었다.

왜놈들이 던져주는 종이꾸레미를 펼쳐드니 쉰내가 날사 한 밥덩어리와 튀긴 닭 한마리가 굴러나왔다. 그 닭은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열병을 앓은듯 형편없이 여윈것이였다.

하지만 굶은 개가 언똥을 가리랴.

맹영달은 밥덩이를 순간에 꿀꺽 삼켜버리고 닭의 뼈다귀까지 말끔히 씹어먹었다.

먹고나니 졸음이 눈섭끝에 매달렸다. 변변히 먹지도 자지도 못한채 온종일 산판을 싸돌아다닌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점심밥을 다 처먹은 왜놈들이 골짜기아래로 우르르 몰려내려갔다.

거기서 또다시 늘어지게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교체된 일본군병졸들이 기세충천하여 다가왔다.

맹영달은 울상을 지었다.

또다시 김정환과 마주치는 환영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제발 여기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되길 바랐다.

이곳만 훑고나면 날 죽여주소 하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결심이 실행되겠는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밸풀이를 하고나니 한결 힘이 났다.

맹영달은 이발을 사려물고 약우물골쪽으로 뻗은 골짜기를 향하여 다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 ×


자그마한 도끼를 손에 들고 마을뒤산 봉우리로 오르는 무삼의 입에서는 웃음기가 떠날줄 몰랐다.

약우물골의원네 집에서 달미와 살림을 편 필석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스러웠다.

김정환의병장이 이번에 해결한 식량들중에서 필석이의 몫을 가져다주라는 령을 받고 전령감과 함께 약우물골로 온 무삼이였다.

그가 들어서자 달미가 달려나와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는지 어려서부터 살풋한 정이란 별로 모르고 자라온 무삼이로서는 정말 무아경같은 대접이였다.

필석이가 닭을 잡겠다고 불편한 몸으로 마당가에서 뜀박질하는것을 본 무삼은 그를 붙어잡고 이렇게 욱박질렀다.

《그러다가 이 집의 씨암닭까지 싹 말리고나면 내 다신 여기 와서 시형님대접을 못 받을게 아니니.》

필석은 별걱정을 다 한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달미가 닭 하나만은 기막히게 잘 기른다우. 형님이 아무때나 오든 닭을 떨구지 않겠다는 다짐은 이미 받아놨으니 걱정일랑 마우.》

달미가 까르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시형님께 닭을 대접해드리지 못하면 전 스스로 보짐을 하나 만들어 머리에 이고 이 집을 떠나겠어요.》

《어- 제수님, 그런 소릴랑 마우다. 아무렴 쫓겨나면 우리 필석이가 나가야지 어디 제수님이 나간단 말이우.》

마당가에서 웃음판이 터졌다.

약초를 손질하던 한민의원까지도 떠들썩 웃음판에 말려들었다.

정말이지 왜놈들에게 다리를 하나 잃기는 하였지만 달미가 있어 더없이 행복한 필석이를 보니 무삼이는 온갖 시름을 잊은듯 했다.

그들의 지성이 얼마나 극진스러운지 필석이의 몸도 퍽 좋아진것이 눈에 띄게 알렸다. 불깃불깃한 얼굴에 노상 웃음기가 떠도는 필석은 그야말로 딴 사람처럼 되였다.

그렇게 흐뭇해지는 속에서도 가슴속 한구석에서는 찌르는듯 한 아픔이 사라지지 않았다.

필석이가 자기를 대접하겠다고 한다리로 뜀박질을 하며 닭을 따라 다닐 때 웃어보였지만 속으론 눈물을 흘린 무삼이다.

한쪽다리가 없이 살아가자니 얼마나 불편스러울텐가.

아무래도 필석이의 짝지발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주고 가야 속이 편해 발길이 떨어질듯 했다.

그래서 무삼은 의병대로 돌아가기 전에 짝지발감을 찾아서 산으로 올랐던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짝지발감으로 쓸만 한것들이 더러 눈에 띄웠지만 어떤것은 굵기가 맞춤하지 않았고 또 어떤것은 곧음이 신통치 않았다.

필석이에게 만들어주는 짝지발에 온갖 지성을 다 고이고싶었다.

그래서 무삼은 꼭 마음에 드는 짝지발감을 찾아 산을 두개나 넘었다.

그렇게 한동안 신고를 한 뒤 마침내 그의 눈에 맞춤한 짝지발감이 걸려들었다. 굵기도 맞춤하고 곧음도 좋았으며 가볍고 단단한 짝지발감이였다.

무삼은 즉석에서 짝지발감을 찍어냈다.

기분이 좋았다. 이것으로 짝지발을 만들면 필석이가 한결 헐하게 지낼수 있을것이였다.

그런 생각으로 벌씬벌씬 웃으며 걸음을 다그치던 무삼이는 문뜩 걸음을 멈추었다.

낯익은 곳이다.

아하- 여기가 바루 달미와 필석이가 인연을 맺은 그곳이로구나!

내가 또한 덕쇠에게 필석이의 가락지에 대해 들은 곳이구…

그때가 돌이켜져 무삼은 자기가 왜놈 셋을 료정내던 바로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참으로 무심히 지나칠수 없는 곳이다.

부친의 당부를 받고 가락지임자를 찾아 고향에도 몇번이나 가보았고 여기저기 헤매이며 가락지임자를 찾아보았으나 헛수고였다.

늦게나마 부친의 원쑤도 갚고 그 밉살스러운 역적놈들을 한놈한놈 없애버리리라 결심을 품고 나섰던 길에서 김정환의병장을 만나게 되였고 가락지를 품은 전필석을 찾게 되였다.

이제 싸움을 본때있게 하여 부모들의 원쑤, 나라의 원쑤를 갚고 필석이와 함께 양지바른 기슭에 두채의 오붓한 새 집을 지어 이웃하여 한생을 재미나게 살아볼 생각을 하니 절로 흐뭇스러운 웃음이 넘쳐나왔다.

빨리 가자. 필석이에게 제꺽 짝지발을 만들어주고 의병대로 가야지. 필석이의 몫까지 복수를 하자면 왜놈 한놈이라도 더 없애버려야 돼. …

무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약우물골로 향하는 지름길에 들어섰다.

얼마쯤 산속을 톺아오르던 무삼은 그만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앞에서 인적기가 들려왔던것이다.

넌지시 앞을 바라보던 무삼은 그만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왜놈들이다. …

나무숲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수많은 왜놈들의 무리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발길을 돌려 피하려던 무삼은 제일 가까이에서 얼른거리는 사람의 자태를 보고 두눈을 뚝 부릅떴다.

왜놈들과 쉰보쯤 사이를 두고 앞에서 잡관목을 헤치며 다가오는자의 지친 기색이 완연한 상판이 얼른거렸던것이다. 분명 왜놈족속이 아니였다.

저 작자는 대체 웬 놈팽이냐? 어떤 놈인데 왜놈들의 앞잡이노릇을 하는걸가. 혹시 저놈이 맹영달이란 놈이 아닐가?

부지불식간에 뇌리를 치는 생각에 무삼은 무섭게 치솟아오르는 격분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 그놈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다른 놈들이 모두 의병대와 백성들에게 맞아죽고 홀로 남았다는 그 역적놈이 아니면 어느 얼빠진 놈이 왜놈들과 이런 곳으로 어울려다니겠는가.

눈에서 불꽃이 번뜩했다.

발길을 돌릴수가 없었다. 역적이라면 왜놈보다도 더욱 피가 끓는 무삼인데야 어떻게 이 길을 에돌수 있으랴. 더우기 저놈이 이곳으로 왜놈들과 함께 나타났을적에야 무슨 끔찍스런 일을 저지르려는것이 분명했던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가슴이 후두둑 떨렸다.

이놈들이 가는 방향이 약우물골쪽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던것이다.

약우물골에는 필석이가 있다. 이 왜놈의 새끼들이 그곳에 들어가면 마을과 사람들을 그냥 놔둘리 만무한것이다.

무삼이는 손에 든 도끼를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안돼. 금방 살림을 시작한 필석이에게 자그마한 불행도 생겨서는 안돼. …

무삼이는 저도 모르게 왈칵 뛰여나가 맨앞에서 다가오는 그자의 앞을 떡 막았다.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도 모르고 무겁게 짓누르는 눈까풀과 힘겨운 싸움을 하며 걷고있던 맹영달이가 잡관목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사람을 보고 후닥닥 놀라 뒤로 벌렁 넘어졌다.

누운채로 그를 올려다보던 맹영달은 두눈이 까뒤집힐듯 했다.

한손에 나무가지 같은것을 들고 다른 손에 크지 않은 도끼 하나를 든것을 보면 아마도 자기가 산에 나무하러 온 어떤 농군을 만난것이라고 생각했던 맹영달의 눈에 뜨이는것이 또 있었던것이다.

아, 목부위의 저 기미… 리용구를 노리던 자객이 내앞에 나타났구나. …

영달은 눈앞이 아뜩했다.

무삼이가 그의 멱살을 틀어잡고 도끼를 쳐들었다.

《네놈이 맹영달이지?》

영달이는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었다.

벌써 자기의 목대를 조여드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절망감이 온몸을 휩쌌다.

맹영달은 자기가 어느때든 김정환의 손에 멱줄을 잡히울수 있다는 우려가 항상 가슴속을 떠나지 않고있었다.

김정환이 평산의병대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날 밤부터 맹영달은 거의 매일이다싶이 자기네 가문과 피맺힌 원한을 안고있는 그의 커다란 주먹에 숨통이 끊어지는 악몽속에서 헤매여왔다.

그래서 맹영달은 제발 평산의병대가 괴멸될 때까지 김정환과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라고바랐었다.

하지만 지금 김정환이가 아니라 언제인가 평산땅의 무서운 자객으로 한성땅에 소문을 낸적이 있는 이 의병대원의 손아귀에 든 순간 맹영달은 자기가 오산을 하였다는것을 페부로 깨달았다.

피맺힌 원한의 뿌리가 깊고 개인적인 원한이 깃들어야만이 복수를 당하는것은 아니였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역적에게는 자기가 배반한 민족의 어느 누구든 모두가 숨통을 노리는 지옥사자인것이다.

맹영달은 더이상 자기를 후회할새도 없었다.

무삼이의 손에 쥐여진 도끼날이 영달이의 골통을 단번에 박살내버렸던것이다.

무삼은 속으로 복수를 웨쳤다.

아버지들의 복수, 김정환의병장의 부모님들의 복수 그리고 민족의 복수.

민족반역자 맹영달이의 대갈통이 형체도 알아볼수 없게 되였다.

맹영달이가 도끼에 맞으면서 비명을 질렀는지도 알수가 없었다.

여하튼 왜놈들이 벼락같이 총질을 해대며 무삼이에게 달려들고있었다.

무삼이는 민족반역자의 더러운 주검우에 침을 뱉어주고는 발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였다.

왜놈들이 쏘아대는 무수한 총탄이 뒤따랐다.

무삼은 잡관목을 헤치며 나무들사이를 빠져 달리고달렸다. 비탈길에서 사정없이 굴러내리기도 하였고 가시덤불들도 마구 헤치느라 무삼이의 온몸은 찢기고 터져버렸다. 왜놈들의 총탄에 맞았는지 어깨박죽이 찢어지는듯 아파났다. 피가 콸콸 흘러나왔으나 돌아볼 경황도 없었다. 그는 그처럼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필석이의 짝지발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왜놈들이 기를 쓰고 뒤를 쫓아왔다.

무삼이는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알수 없으나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점점 기력을 잃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달리던 무삼이가 문득 멎어섰다.

앞에 아찔한 벼랑이 막아나섰던것이다.

언제인가 필석이를 업고 내려간적 있는 그 벼랑이였다. 무삼이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속에 아찔한 벼랑에서 떨어져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누군가 그를 흔들어대고있었다. 무삼이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온통 눈물범벅이인 필석이와 달미의 얼굴이 보였다.

한민의원이 그의 상처를 보고 락심해하는 얼굴도 보였다.

그의 이마에 무엇인가 떨어져내렸다. 무거운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머리맡에 앉은 전령감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이 턱수염에 맺혔다가 떨어져내리는것이였다.

이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가? 아마 총소리를 듣고 달려왔을테지. 필석이가 그 몸으로 예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가. …

무삼이는 꺽꺽 흐느끼고있는 네사람을 둘러보며 빙그레 웃었다.

점차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무삼이는 손에 꽉 쥐여져있는 짝지발감을 필석이에게 내밀었다.

《내 손으로 지팽이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이젠 맥이 없구나. 이것으로 네가 만들어 써라. …》

그리고는 필석이의 손을 꽉 잡았다.

《필석이, 자넬 한번이라도 더 보고 죽게 되니 다행이구나. …》

으흑-

필석의 오열삼키는 소리가 먼곳에서처럼 들려왔다.

무삼이는 점점 흐려드는 눈시울을 힘겹게 떠올리며 혼신의 힘을 모아 말했다.

《맹영달이를 죽여버렸다. 나를 형님으로 생각했다면 똑똑히 새겨둬라. 역적놈들은 기어이 죽여버려야 한다. 목숨을 내대고서라도 말이다. 알겠니?》

필석이가 끅끅 흐느끼며 머리를 끄덕였다.

무삼이는 무척 힘들게 마지막웃음을 지었다.

《부디 검은머리 파뿌리되도록… 행복… 해라-》

무삼이의 눈동자가 필석이를 바라보며 굳어졌다.

《형-님-》

《무삼이, 이-사람아-》

네사람의 울음소리가 고즈넉한 골안을 흔들며 비통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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