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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 회


제9장 피절은 락조


3


장수산의 보적봉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는 김정환의 얼굴에는 말할수 없는 긴장감이 어려있었다.

완전한 포위였다. 평산의병대가 든 장수산을 왜놈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무력을 계속 증강하고있었던것이다.

며칠전 바른치고개에서 다섯바리의 량곡을 마련한 다음 김정환은 즉시 의병대를 이끌고 구월산 월명골에 있는 순사파출소와 해주 천결면에 있는 헌병대를 들이치고 더 많은 량곡을 확보하였었다.

그것으로써 돌망골사람들의 식량이 충분하게 마련되자 김정환은 의병대원들을 두세사람씩 조를 무어 돌망골사람들이 사는 곳곳으로 식량짐을 지워 떠나보냈다.

필석이가 있는 약우물골에는 무삼이와 전령감을 보냈다.

공서방의 네 자식과 자기의 다섯 자식을 데리고 딴메산골짜기에 살고있는 설씨에게는 공서방네 부자를 함께 보내려고 하였으나 다음 로정으로 될 금천으로 가자면 그쪽 길을 잘 아는 공서방이 있어야 하므로 덕쇠에게 두사람을 붙여 아이들이 많은것을 고려하여 더 많은 식량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

김정환은 려은이네가 살고있는 곳으로도 의병들을 떠나보내였다.

거기에는 식량과 함께 지남이와 강수길이 남기고 간 어린 자식들을 위해 포단감이며 옷감들을 함께 보내주었다. 그와 함께 그곳으로 떠나는 의병들에게 려은이와 진희를 돌망골사람들이 그중 많이 모여사는 곳으로 떠나보내도록 당부하였다.

김정환은 마지막으로 솔매를 돌망골로 떠나보냈다.

의병대를 이끌고 금천쪽에 나가 왜놈들을 몇번 답새기고는 다시 서흥땅의 돌망골로 돌아가려는것이 김정환의 의도였다.

돌망골이 이미 왜놈들의 《토벌》을 겪은 곳이고 한동안 인적이 없이 텅 비여있던 곳이여서 당분간 은페하기에는 제일 적중했던것이다.

왜놈들도 의병들이 다시 그 돌망골로 들어가리라고는 생각 못할것이다.

그래서 김정환은 솔매를 먼저 그곳으로 떠나보내여 의병들이 들어가 당분간 살수 있게 화식준비를 해놓게 했던것이다.

그들이 모두 떠나간 다음 대오를 금천방향으로 이끌던 그의 앞에 별안간 왜놈들의 수비대가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뒤에도 왜놈들이 나타났다.

이 순간 김정환은 자기가 우려하던 일이 끝내 터지고야말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김정환은 왜놈들이 빠른 시일안에 병력을 대폭 증강하여 평산의병대가 활동할수 있는 모든 길목들에 면밀한 매복진을 펼것이라는것을 예감하고있었다. 한것은 다른 곳에 있던 의병들이 모두 진압된 조건에서 그곳에 전개되였던 무력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했던것이다.

이제는 왜놈들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평산의병대를 제거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 있는 병력까지 모두 끌어들인것이 틀림없었다.

이때 김정환의 생각은 착잡하였다.

앞에 있는 적을 칠것인가, 아니면 뒤에 있는 적들을 쳐야 할것인가?

백여명밖에 안되는 의병대의 력량을 분산하여 앞뒤의 적을 동시에 칠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쪽이든 뒤쪽이든 어느 한곳을 때리는것도 절충안이 아니였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지대적으로 보나 력량상으로 보나 의병대에 매우 불리했던것이다. 밝은 대낮인 이상 그 어느쪽을 때려 포위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일단 붙잡힌 왜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날수는 없는것이다.

그래서 급히 대오를 왼쪽으로 빼돌려 장수산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뒤쪽의 왜놈들이 그들의 꼬리를 물고 바싹 따라왔고 앞쪽에 나타났던 왜놈들은 장수산을 우회하기 시작하였다.

김정환은 모든 의병대원들에게 싸움준비를 갖추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될수록 싸움을 피할데 대한 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왜놈들의 포위환을 살피기 위하여 제일 높은 봉우리인 보적봉으로 올라왔던것이다.

그런데 왜놈들의 포위진은 예상밖으로 너무도 빨리 완결되여가고있었다. 아마도 주변에 많은 병력이 미리 주둔해있었던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김정환의 가슴은 서늘해났다.

만약 그들이 여기 장수산으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쪽으로 빠져나가려 했더라면 저 숱한 무력의 포위에 들어 의병대는 벌써 전멸했을것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섬찍하게 했던것이다.

김정환은 계속 증강되는 왜놈들의 무력을 세세히 관망하면서 날이 어둡자마자 어느쪽이든 약한 구멍을 찾아 돌파하려던 초기의 계획과는 달리 지세가 험한 여기서 왜놈들의 포위진이 완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하였다.

왜냐하면 포위가 완결되면 그 바깥쪽으로는 왜놈들의 무력이 더는 없게 된다. 의병대가 포위를 돌파하여 안전한 곳까지 가자면 앞에서 불의에 막아서는 적이 없어야 했다. 그러자면 왜놈들의 모든 무력이 깡그리 여기에 집결되여야 한다.

김정환은 결심했다.

이른새벽에 의병대전원이 포위를 돌파하는것이 가장 합당한 방책이다. 왜놈들이 절대로 밤중에는 이 험한 장수산에 대한 공격을 할수가 없기때문에 밤새껏 포위환을 형성하느라 잠들을 설칠것이다. 피곤이 극도에 몰린 때를 타서 의병들이 불의에 돌파해나간다면 얼마든지 손실을 줄이면서도 돌파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김정환은 자기의 구상을 익히면서 보적봉을 내려 의병들이 진을 친 골짜기로 내려왔다.

의병들이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거기에서 떠들썩한 웃음이 터져나오는것을 보니 아마도 또 무슨 이야기판이 벌어진듯싶었다.

김정환이 그리로 다가가니 아니나다를가 리달삼이가 공서방과 말씨름을 하고있었는데 언제나 걸죽한 육담을 즐기는 달삼이의 입이 터진지라 의병들의 웃음소리가 높았던것이다.

그들은 김정환이 곁으로 다가서는줄도 모르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있었다.

《참 형님, 거 안사람이 스스로 마대에 들었다지요? 그거 참, 연분두 기가 막히웨다. 하기야 홀로 사는 과부마음이 이를데없이 애달프다우.》

달삼이가 공서방을 상대로 입방아질을 하자 그는 마뜩지 않은 눈길을 보내며 핀잔을 했다.

《자네 무던히두 과부집출입을 한 모양이로군. 아직 꼭뒤에 피도 안 말랐겠는데 그걸 그리 잘 아니 말일세.》

달삼이는 픽 코웃음을 쳤다.

《체, 그런 일을 꼭 겪어봐야만 아우? 말로 들었지요. 한번 들어보시겠소?》

달삼이는 다른 의병들이 들으라는듯 큰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어느날 한사람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더라니 어느 한 집을 두드렸대요. 〈주인님, 길가던 나그네 날이 저물어 그러니 하루밤 신셀 좀 집시다요.〉 했더니 문이 열리며 한 녀인이 나서더라지 않아요. 그를 한동안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들어오라고 승낙을 하더래요. 그래서 들어갔더니 그게 과부였다질 않소. 그 나그네가 짐을 풀어 쌀 두되를 꺼내주었지요. 〈이건 잠재워주는 값입니다.〉 했더니 녀인이 성을 내며 〈여기가 뭐 주막인줄 알아요? 그건 도로 걷어넣어요.〉 하더라지 않아요. 참, 인정많은 과부로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웃칸에다 새로 꾸민듯 한 깨끗한 이부자리를 펴주고나서 새침해서 한다는 말이 〈이 문턱을 넘으면 짐승 한가지예요.〉 하고 다짐을 두더라나요. 그 사람은 아니할 걱정을 하는 녀인을 바라보며 공손히 대답했대요.

〈걱정을 놓으십시오.〉 그리고는 먼길에 지친지라 눕자마자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지고말았지요. 다음날 아침 일어난 그가 〈정말 신세를 많이 지구 갑니다.〉라구 정중히 인살 하고 문밖으로 나서는데 왜서인지 잔뜩 골이 나서 외로 꼬구있던 과부가 마당가에 나서는 그를 따라나와 〈아니, 잠잔 값을 안 물고 가겠어요?〉 하면서 트집을 걸더라는것이 아니겠소. 전날 저녁과는 너무도 딴판이여서 눈을 머룩하니 뜨고 얼빤해있다가 쌀 두되를 꺼내주었지요. 그 쌀을 나꾸어채듯 받아든 과부가 뭐랬는지 아시우? 〈짐승보다 못한 놈!〉 하더니 바람을 씽 일구며 방안으로 들어가버리구말더래요.》

사람들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 그 얼뜬한 놈. 문턱을 넘었으면 차라리 짐승이라도 됐을것을 짐승보다도 못한 놈으로 될건 뭔고…》

《그러게 말이예요. 쌀 두되를 안 줘도 되질 않았겠나요.》

《쌀이 문젠가? 과부사정을 알아주면 저도 좀 좋았겠나. 참…》

의병들이 걸죽스런 롱지거리들을 하며 한동안이나 웃어댔다.

김정환은 그들의 즐거운 모습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저들중에 이 포위환을 돌파하면서 살아남을 사람은 얼마이고 왜놈들의 총탄에 쓰러져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할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것인가.

어쩌면 어느 누구에겐 마지막즐거움이 될지도 모를 그들의 웃음을 깨뜨리고싶지 않았다.

김정환의 왼심은 공연한것이였다.

왜놈들의 포위환에 들어서 즐거운 웃음을 짓지만 그들이 지금 처한 정황이 아직까지 있어보지 못한 최악의 정황임을 모를수 없었던것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위안하느라 웃음판을 펼쳤지만 모든 정신은 산을 포위한 왜놈들과 의병장에게 쏠려있었다.

의병들이 어느새 의병장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방금전까지 그들먹하게 차넘치던 웃음기가 씻은듯이 사라져있었다.

의병장의 긴장한 얼굴빛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듯싶었다.

김정환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왜놈들이 이 산을 포위하기 시작했소. 적들은 우리의 정면에 대포까지 끌어다놓았소. 저녁때까지는 포위진을 완전히 형성할거요. 그러니 우린 여기서 왜놈들의 이목을 끌어당겨 밤새 붙잡아두었다가 새벽에 먼저 공격을 들이대여 포위환을 돌파해나가야 하오.》

김정환은 이제 싸움이 시작되면 함께 행동할 대오들을 무어주고 매개의 대오들이 빠져나갈 방향을 일일이 지적해주었다.

그러고나서 의병들을 둘러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왜놈들에 비하여 무기와 탄약뿐아니라 수적으로도 비할바없이 적소. 이런 상황에서 희생을 적게 내면서 무사히 여길 빠져나가자면 한가지 방책밖에 없소. 그건 어느 한 대오가 왜놈들의 정면으로 돌입하여 적들의 주의를 끌어들일 때만이 가능한것이요. … 다른 대오의 탈출을 위하여 나와 함께 결사대로 나갈 의병들은 앞으로 나서시오.》

의병들이 너도나도 모두가 나섰다.

김정환은 그들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김정환은 직접 인원을 한사람한사람 선출하였다.

기봉대, 리달삼과 장서방, 억만이와 최순지… 20명이 지명되였다.


× ×


동이 틀무렵 김정환은 전체 의병대에 돌격령을 내렸다.

김정환의병장이 조를 무어준 작은 대오들이 사방으로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김정환은 매 조들에 골짜기입구에서 먼저 싸움이 벌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왜놈들의 주력이 전부 그곳으로 쏠린 다음 벼락같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김정환은 20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골짜기입구로 돌격해나갔다.

어둠짙은 골짜기에서 달려나오는 의병대원들이 눈앞에까지 다가와서야 발견한 왜놈들은 첫 순간부터 당황망조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총소리들이 몰방으로 터지기 시작하였다.

김정환의 칼이 어둠속을 찢어발기듯 윙윙 울었다.

골짜기입구를 막고 말뚝잠에 들었던 왜놈들은 미처 정신을 차릴새 없이 무리죽음을 당했다.

멀리 떨어진 농가쪽에서 금방 첫닭이 울기 시작한 이른새벽에 의병들이 이렇듯 갑자기 돌격해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놈들이였다.

날이 새면 총공격을 하여 독안에 든 평산의병대를 소멸해치우겠다며 윽윽거리던 왜놈들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듯 향방없이 뜀박질을 하다가 고스란히 죽어너부러졌다.

어둠속에서 의병들의 총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왜놈들이 하나둘 정신을 수습하고 대응사격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일단 왜놈들의 사격이 시작되니 그 화력이 점점 세졌다. 사방에서 그물코같은 선들을 그으며 날아드는 불덩어리들이 의병대원들에게 집중되였다.

형세는 결사대로 나선 의병들에게 불리해져갔다.

20명의 의병들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왜놈들의 화력을 헤치며 곧장 앞으로 달렸다.

김정환은 맨 앞장에서 내달리며 맞다드는 왜놈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벌써 김정환의 대검에 모가지가 잘린 놈들이 부지기수였다.

그의 뒤를 따라 의병들이 사격을 들이대며 달렸다.

왜놈들이 그들의 뒤를 물고 따라왔다.

왜놈들의 총탄에 여러명의 의병들이 쓰러져 대오가 몹시 성글어졌다. 하지만 김정환과 의병들은 어둠속에서 얼른거리는 왜놈들을 쓸어눕히며 오직 앞으로만 달렸다.

문득 그들의 앞에 시꺼먼 포아구리가 정면으로 나타났다.

한순간 김정환과 의병들은 주춤했다.

아홉문의 포주위에 왜놈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헤덤비고있었다.

금시라도 아홉문의 포아구리에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날아들것만 같은 위급한 정황이였다.

어제 왜놈들이 포를 끌어들이는것을 보았지만 이렇게 은밀히 골짜기를 통채로 막아놓았을줄은 생각지 못했던 김정환이였다. 참으로 교활하기 그지없는 왜놈들이였다.

이제 저 포아구리에서 포알이 날기 시작하면 모두가 순식간에 끝장이였다.

김정환은 눈앞이 아뜩해졌다. 뒤에서는 정신을 수습한 왜놈들이 꼬리를 바싹 물고 달려드는데 앞에는 아홉문의 대포가 가로막고있는것이 아닌가. 왜놈들이 끌어들인 포가 자기들을 공격하기 위해 정점을 향한 어디엔가 배비해놓았으리라고만 타산했던 자기의 생각이 이런 후과를 가져왔던것이다.

한순간 당황했던 김정환은 이상한 생각이 불쑥 뇌리를 때렸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까지 포알이 날지 않는가. 골짜기 안쪽에서부터 맞다드는 놈들과 전투를 벌리며 나왔으니 왜놈들이 아직까지 새벽잠에서 깨여나지 못했을수는 없지 않는가.

김정환은 길목을 막은 포들을 한바퀴 휘둘러보며 정황을 판단해보았다.

포들마다에서 왜놈들의 형체들이 뚜렷이 보였다. 그런데 왜놈들의 꼴이 심상치 않았다. 왜서인지 몹시 헤덤벼치고있었다.

필경 저기에서 무슨 일이 생긴것이 분명하였다.

그 일이란것이 바로 자기들의 앞에 면바로 놓여진 포들에 생긴 일이라는것을 순간적으로 느낀 김정환은 더 어쩔 사이가 없이 대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남은 의병들이 그의 뒤를 따르며 포주위에 몰켜 부산을 피우는 왜놈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왜놈들의 비명소리가 어지럽게 울려왔다.

맨 처음으로 포진지에 뛰여든 김정환이 한손에는 총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대검을 휘두르며 왜놈들을 닥치는대로 쏘고 베여버렸다.

김정환과 의병들은 그 기세로 포진지를 벗어나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왜놈들이 밤새 치고있던 포위환을 허물고 추격을 들이댔지만 그들의 자취를 찾을수가 없었다.

이날 장수산에서는 여러곳에서 산을 탈출하는 의병대원들과 왜놈들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 싸움터들에서 수많은 왜놈들이 녹아났다.

그중의 절반이상이 장수산의 골짜기입구에서 김정환의병장과 결사대원들에게 녹아난 놈들이였다.

이때에 왜놈들이 골짜기에 배비해놓은 아홉문의 포들에서 왜 포알들이 날지 않았는지는 의병장인 김정환은 물론이고 다른 의병들에게도 알수가 없는 수수께끼같은 일이였다.

이날 장수산에 끌어들인 대포의 아구리들에 밤새 영문모르게 진흙이 채워져있었다는 사실이며 바로 그로 하여 왜놈들이 단 한발의 포알도 날리지 못했다는것을 알수가 없는 김정환과 의병들은 하늘의 조화라고밖에 달리 생각할수가 없었다.

후날 사람들속에서 돌아가는 말에 의하면 그전날 저녁에 짐을 꾸려가지고 어디론가 가던 두명의 아낙네들이 그곳에서 멀지 않은 어느 농가에서 하루밤을 묵어가려고 들렸었다고 한다. 그 두 녀인은 몹시 젊고 곱게 생긴 녀인들이였는데 각기 갓난애기들을 업고있었다는것이다. 그런데 장수산을 포위한 왜놈들과 의병들의 소식을 집주인을 통해 듣고는 갓난아이들을 맡겨놓고 밤새도록 어디론가 없어졌다는것이다. 이른새벽에 돌아온 녀인들은 온통 진흙이 게발린 옷주제를 돌볼새도 없이 급히 애기들을 업고 짐을 안은채 다시 길을 떠나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바로 왜놈들의 포들에 진흙을 채워넣은 《의병》이라고 확언했다.

하지만 갓난애기들을 업은 그 두명의 녀인들이 누구들인지는 누구도 알수가 없었다.

아마도 김정환과 의병들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대뜸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을것이다.

혹시 려은이와 진희가 아니겠는가고…

하지만 그때 김정환과 의병들은 왜놈들의 포에 진흙을 채워넣은 두 용감한 녀인들의 이야기가 쉬쉬하며 돌아가는 마을들과는 멀리 떨어진 서흥방향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결사대를 이끌고 정면으로 돌입하였던 김정환은 그자신이 여러곳에 부상을 당했고 스무명중 여덟명의 의병들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모두가 부상을 당했다.

김정환은 그들을 데리고 돌망골로 돌아와 싸움에서 입은 상처들을 치료하였다.

부상자리들이 완쾌되자 김정환은 여덟명의 의병들을 서흥제비여울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서흥제비여울수비대를 짓뭉개버릴 때가 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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