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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4 회


제9장 피절은 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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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은이의 눈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금 어린 딸애를 잠재우면서 깜빡 잠에 들었던 려은이는 꿈속에서 지남이를 보았다.

꿈속의 지남은 여전히 웃는 모습이였다.

땀에 절은 얼굴에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고 웃는 지남이의 모습을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다가 려은이는 잠을 깨였다.

잠을 깨였지만 려은이는 그냥 꿈속에만 있고싶어 눈을 꼭 감고있었다. 지남의 모습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려은은 쌔근거리며 자고있는 딸애를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귀엽기 그지없는 딸이였다. 이애를 지남이가 단 한번만이라도 보았더라면 그가 얼마나 기뻐했으랴.

그의 눈에서 눈물이 소리없이 쏟아져내렸다.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렸다.

려은이는 눈굽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여운 딸애가 깨여날세라 조심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꿈속에서 본 지남이에 대한 애틋한 생각으로 눈굽을 적시였던 려은이여서 눈앞이 온통 뿌옇게 보였다.

마당가에 애기를 안은 웬 녀인이 서있었다.

려은이를 보자 녀인의 입에서 흐느낌소리가 먼저 터져나왔다.

려은이는 녀인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몸을 떨었다. 얼굴에 피기가 가셔지고 고열에 시달린듯 입술이 말라터져 생소한 느낌이 들었지만 려은은 자기가 어느 한시도 잊지 않고 그리워하던 모습을 비로소 알아보았던것이다.

려은은 실성한듯 소리쳤다.

《네가 옳지? 진희가…》

진희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 나다…》

려은이가 와락 달려가 진희를 안았다.

이 적막산천에 꿈결에도 잊을수 없는 진희가 피덩이같은 애기를 안은채 찾아온것이 꿈만 같았다.

려은이는 너무도 뜻밖이여서 말을 할수가 없었다.

얼마나 보고싶던 진희인가. 지남이를 잃은 후에는 어느 한시도 눈앞에서 떠나지 않던 진희인것이다.

그들은 마당가에서 얼싸안고 오래도록 울었다.

한껏 울고난 다음에야 방안으로 들어가 마주앉았다.

애기를 안은 진희의 수척해진 모습을 보며 려은이는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진희의 얼굴에도 눈물이 멎을줄 몰랐다.

《이앤 어떻게 된거니?》

려은의 물음에 진희는 그냥 울기만 했다.

잠시후에야 마음을 가다듬은 진희가 긴 사연을 이야기했다.

강수길에게서 결별을 선언받은 후 진희는 마음속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 생각했다.

더우기 려은이가 아버지를 잃고 밤중에 어느 괴한들에게 랍치되여 없어지자 진희는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렸다.

모든것이 귀찮았고 려은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다른 무엇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다.

그날도 진희는 하늘에 둥실 걸려있는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려은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그때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희는 대문을 열었다.

대문앞에 서있는 총각을 본 진희는 놀랐다.

한성에서 몇번 띄여본 이 젊은 사람이 언제인가 강수길이와 함께 있는것을 보았으며 그때 진희는 그들이 몹시 자별한 사이라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진희가 말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자 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누님, 리재명이라고 하오. 평양이 고향이예요.》

진희는 그가 어떻게 왔을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진희의 속생각을 알만 하다는듯 리재명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고향을 떠나 멀리 있으니 혈육의 정이 못견디게 그립수다. 누님, 나에게 밥을 한끼 해주우.》

진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 사람이 밥이나 한끼 얻어먹자고 이 집 대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며 어떤 딴 속심이 있어 자기를 찾아왔다는것을 처녀의 예감으로 어찌 모를수 있으랴. …

하지만 진희는 매우 리지적이며 총명해보이는 이 젊은이의 부탁을 거절할수가 없었다. 더구나 생면부지나 다름없고 나이도 어슷비슷한 자기를 누이라고 불러주는 그 다정다감한 말투에서 진희는 저도 모르는 애틋한 정을 느꼈던것이다.

진희는 급히 자기의 손으로 밥상을 성의껏 차려주었다.

그는 달게 들었다. 그는 밥을 들면서 자기의 과거사를 이야기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13살에 미국선교사의 꾀임에 속아 그리스도교신자가 된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 선교사놈에게 속아서 미국에 건너가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 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다가 겨우 살아돌아왔고 그 다음은 또 한동안 아라사에 들어가있다가 나오면서 여기 한성으로 곧장 오게 되였다는것이다. 일찌기 집을 떠나 다른 나라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제일 그리운것이 혈육의 정이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오늘 누님에게서 혈육의 정을 느껴보고싶어 이렇게 렴치없이 뛰여들었으니 너무 나무람마시우. 그리구 한가지 말하고싶은건 강수길형님을 나삐 생각지 말아달라는거예요. 사실… 형님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있어요. …》

그의 마지막말은 진희에게 금시초문이고 뜻밖의 소리였다.

너무도 엄청난 소리에 진희는 말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나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가진 형님이니 혹 누님이 홀몸이 될가봐 걱정해서 멀리할 결심을 했던것이지요. 수길형님이 누님에게 속에 없는 소릴 하고나서 얼마나 괴로와했는지 아마 모를거예요. 형님은 누님을 절대로 잊지 못해요.》

진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러는 진희에게 그는 절절하게 말했다.

《누님, 부탁이요. 난 누님이 형님을 찾아갔으면 하우.》

진희가 놀랍게 그를 바라보았다.

진희의 놀라운 눈길앞에서 재명은 잠시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이어 그의 조용하면서도 절절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것이 우리 녀성들의 례의로 보면 큰 용단임을 모르는바가 아니요. 하지만 형님은 누님을 잃고 마음속 고충을 당하고있어요. 누님을 위해서 갈라질것을 결심한 형님인데 누님이 아량을 가지고 찾아가주면 형님에게는 아마 그이상 큰 힘이 없을거요.》

진희는 조용히 재명의 눈길을 외면하였다.

잠시 말을 끊고 진희를 바라보던 재명이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래일 정오에 형님이 교회당주변에서 기다리니 꼭 만나주시우. …》

진희에게는 재명이의 그 말이 매우 절절한 당부처럼 들리였다. 재명은 할 말을 다 했다는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구 가요. 내 저승에 가서도 누님을 잊지 않겠어요.》

그는 꾸레미 하나를 진희에게 안겨주었다.

진희는 재명이가 문밖으로 나간 다음에도 한동안이나 망연하여 서있었다.

첫눈에 정이 가는 그가 한 말을 하나하나 의미하느라니 무엇인가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랬다. 분명 강수길은 그때 그렇게 말했다.

자기와 일생을 론해야 불행밖에 차례질것이 없노라고…

그 말의 참뜻을 다는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희는 가식도 없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그의 진정어린 말을 믿고싶었다.

진희는 꾸레미를 펼쳤다. 군밤이였다.

알알이 고르고골라서 구워낸 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이때 진희는 자기가 리재명이란 평양젊은이의 절절한 당부를 차마 외면해버릴수가 없다는것을 느꼈다.

다음날 진희는 정오가 되여 교회당주변으로 나갔다.

교회당앞은 분위기가 어마어마하였다. 벨지끄황제의 추도모임이 있어 대신들이 많이 참석한다는것을 진희는 여기저기 모여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였다.

하지만 진희는 그런것에는 개의치 않고 어제 저녁 재명이가 말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것이 강수길을 분노하게 만들줄이야.

《왜 여기에 나타났소? 누가 여기에 오라고 했는가 말이요?》

그의 노성에 진희는 아연해졌다.

어제 저녁 찾아왔던 그가 야속스러워졌다.

아- 내가 이런 배척을 받자고 처녀의 자존심도 없이 찾아왔단 말인가?

수치와 모멸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진희는 몸을 돌렸다.

이때 그의 눈앞에서 뜻밖의 광경이 벌어지였다.

눈앞에 빤히 바라보이는 교회당앞에서 어떤 애젊은 청년 하나가 매국역적 리완용을 향하여 비수를 뽑아들고 달려들고있었던것이다.

그가 바로 어제 저녁 자기를 찾아와 《누님》이라고 다정히 불러주던, 자기를 여기로 떠밀어보낸 리재명임을 알아본 진희는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벨지끄황제의 추도모임에 참가하고 밖으로 나와 마차에 오르려는 매국역적 리완용을 끌어내린 리재명이 서슴없이 그놈의 몸뚱아리에 칼을 박았다.

리완용이 본능적으로 온몸을 옹송그렸지만 총각의 서슬푸른 칼날은 사정이 없었다.

한번, 두번, 세번… 리완용은 교회당앞에 피를 토하며 너부러졌다.

주변에 있던 왜놈들이 달려들었다.

20대의 청년 리재명은 길바닥에 너부러진 리완용을 만족하게 바라보고나서 웃으며 왜놈들에게 끌려갔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진희는 아연실색하여 굳어진듯싶었다.

진희는 그때에야 어째서 어제 저녁 그가 자기를 찾아와 그렇듯 의미심장한 말들을 했는가를 어렴풋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또 강수길이가 자기를 외면하는 까닭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진희가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이들의 계획에 의하면 이날 리완용이에 대한 징벌은 강수길이가 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역적놈들을 처단하기 위해 이미전부터 동료들을 규합하고 기회를 노리고있었던 리재명이도 바로 이날 역적 리완용을 처단하기로 동료들과 면밀한 계획을 세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사실 리완용을 처단하려는 리재명의 뜻은 이미전부터 강수길이네들이 알고있었다.

리재명이는 강수길이네와 알기 썩 전에 벌써 김정익, 리동수, 조창호 등과 비밀리에 조직을 뭇고 역적 리완용은 리재명이가, 송병준은 김정익이가 그리고 리용구는 리동수가 맡아 처단한다는 맹약을 하고 활동을 벌려왔던것이다.

리재명의 그 뜻이 강수길의 의지와 합쳐져 이들은 밀접한 련계를 가지게 되였고 서로 사심없는 방조도 아끼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매국역적 리완용을 처단할수 있는 기회가 생긴 그 순간에 강수길과 리달삼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아직 인생초엽밖에 살지 못한, 그나마의 인생살이도 어린시절부터 이국에서 이국으로 떠돌아다니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어온 애젊은 청년인 리재명이를 아껴주고싶었다. 그래서 민족반역자를 처단하는 장거를 강수길이와 리달삼이가 맡아 해제끼는것으로 리재명을 설복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기의 결심을 굽히지 않으려고 어성을 높여가며 옥신각신을 했다.

끝내는 나이가 퍽 아래인 리재명이가 한걸음 양보한것으로 일단락 합의를 보고서야 그들은 헤여질수 있었다.

하지만 재명이는 나라의 원쑤를 자기 손으로 처단할 초지의 뜻을 버리지 않고 진희를 수길이에게 보내여 그를 지체시키고는 자기가 그 길에 뛰여들었던것이다.

그날 저녁 진희는 리달삼이라는 사람에게 이끌려 수길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강수길은 땅을 치며 통곡하고있었다.

리달삼이 꺽꺽 흐느끼면서 진희를 그의 앞에 세웠다.

《수길이, 재명이는 자네가 꼭 더 큰 왜놈들을 없애길 바라서 서슴없이 그 길에 뛰여들었네. 그가 가면서 진희씨에게 자네를 부탁했네.》

수길은 하염없이 울었다. 수길이뿐만이 아니라 리달삼과 박태영도 끝없이 몸부림쳤다.

그후 그들은 왜놈들에게 악형을 당하는 리재명을 만나기 위하여 무진 노력을 기울이였다. 하지만 왜놈들이 중범자로 취급하는 리재명을 헐하게 만날수가 없었다.

리재명이 처형당하기 며칠전에야 강수길은 경찰관이라는 명분이 있는것으로 하여 왜놈들의 눈을 피해 겨우 그를 만날수 있었다.

그때 리재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님, 민족의 원쑤는 아무 사람이 갚든 어떻소? 더구나 리완용은 우리 동료들과 역적처단을 분담할 때 내가 스스로 맡아나선 원쑤놈이니 내 몫이란 말이요. 그러니 내가 죽는다고 너무 상심마오. 죽기 전에 형님이 그 누님과 결혼했다는 소릴 듣게 해준다면 한이 없겠소. 그 누님이 참 좋은 누님이요.》

민족을 위해 장한 일을 하고 순국하는 이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씨를 가진 애국자의 눈물겨운 진정에 강수길은 가슴이 뜨거워

졌다.

그에게 자그마한 여한도 남아있게 하고싶지 않았다.

강수길은 리재명의 한을 풀어주리라 결심했다.

그들은 그날 밤에 결혼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그 소식을 전해주는 수길이에게 재명은 밝게 웃으며 《형수님이 해준 밥을 한번 더 먹었으면…》 하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밤 진희는 온갖 지성을 깡그리 기울여 음식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재명은 그의 성의를 받을수가 없었다. 왜놈들이 그날 그를 교수형에 처했던것이다.

그날 강수길과 그의 의형제들인 리달삼이며 박태영이들이 진희네가 살림을 편 자그마한 집에 모여 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진희는 강수길을 통하여 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움길에 나서게 된 일이며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잊지 못하는 송림이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다. 송림이 역시 수길이와 뜻을 함께 하는 의형제였다. 부친이 일본놈들에 의해 나라가 망해가는것은 외면하며 가사에만 전심전력하는데 대한 불만과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가장의 위엄으로 신칙하면서 일진회거물인 어느 한 역적놈의 집과 혼인할것을 강압하자 결연히 탈가를 결심한 일이며 그가 《난봉》으로 되게 된 기막힌 사연에 대하여서도 모두 알게 되였다.

려은이네 집에 불행이 닥쳤을 때 그는 강수길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론 한 처녀를 그런 식으로 취하는건 사나이가 할 일이 아니네. 하지만 그 처녀에게 불행이 닥쳐온 이 시각에 내가 언제 한가히 앉아서 팔짱을 끼고있을수가 없구만. 난 이 시각부터 지남이로 살것이요.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한 어머니만이 불러주었으며 이제부터 내가 목숨처럼 여기는 려은이만이 부르게 될 이름이지. 비록 내가 그를 속이는것으로 되겠지만 그를 위해 나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으로 그 죄를 씻으려네.》

그리하여 그날 밤 수길이가 려은이네 집을 둘러싼 일진회원들을 유인했다.

그리고는 말 한필을 얻어 깊은 산속에 송림과 려은이가 살게 될 집을 마련하라고 득진을 보내고나서 그들이 한성을 빠져나갈수 있게 마차를 마련해준 다음 왜놈들과 경찰들, 일진회원들의 눈길을 딴 곳으로 돌려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었던것이다.

진희의 말을 들으며 려은이는 흐느껴울었다.

《그랬었구나. 그처럼 의로운 사람들속에서 내가 살아온줄 여태 몰랐구나.》

자기를 위해 사심없는 진정을 바쳐온 강수길이며 득진이의 모습들이 꿈결에도 잊을수 없는 지남이의 모습과 함께 눈에 삼삼히 어려왔다. 그와 함께 자기가 딸애를 낳았을 때 그처럼 기뻐하며 그의 집 일을 하나라도 거들어주느라 왼심을 쓰던 김정환의병장과 평산의병들의 뜨거운 진정들이 떠올라 다시금 가슴을 적셔주었다.

한참후에야 려은이는 진희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걸 어떻게 알게 되였니?》

진희가 설음을 참느라 모지름을 쓰며 그 사연을 이야기했다.

데라우찌암살미수사건이 터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갈 때 강수길이도 하마트면 정체가 탄로나 왜놈들에게 잡힐번 하였었다. 간신히 위기는 모면했지만 그에 대한 혐의는 벗겨지지 않았다.

이로 하여 강수길은 자기가 동료들을 규합하여 나라의 원쑤들을 비밀리에 격살하려던 결심을 실행하기 어렵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다.

더우기 경찰관에 관한 각서가 발포되고 조선인경찰들에 대한 차별이 시작된 상태에서 더는 경찰관의 신분을 가지고 자유롭게 활동할수가 없었다.

그런 속에서도 강수길은 동료들과 함께 매국역적들과 왜놈들을 한놈이라도 더 처단하기 위해 맹활동을 벌려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그들의 행적을 눈치채고 주시하던 왜놈들이 갑자기 달려들었다.

수길은 진희와 눈물겨운 작별을 하고 밤중으로 사라졌다.

수길이 떠나간 다음 진희는 왜놈경찰들의 행패에 견딜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두세번 호출을 하고 집주변에서는 항상 경찰들이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날 종로경찰서의 왜놈경찰놈이 집에 뛰여들어 강수길의 행처를 대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마지막에는 막달이 잡힌 진희의 배를 노려보며 이렇게 지껄였다.

《강수길이가 친로파세력의 조종하에 우리 일본제국에 맞선것이 적실해진 이상 그 애새끼가 나오면 마땅한 벌을 안기고말것이다.》

그놈이 사라진 다음 진희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직 태여나지도 않은 애가 왜놈들에게 위협을 당하고있는것이 분했다.

진희는 더이상 견뎌낼수가 없었다.

해산때가 가까와왔지만 진희는 강수길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되였다. 평산땅에 이르러 거의 한달이 되여오도록 산판을 헤매였지만 의병들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날도 어느 마을에 들어 몸풀기를 기다리려던 진희는 산속에서 평산의병대를 보았다는 그 마을 나무군의 말을 듣게 되였다. 인차 몸을 풀것 같았지만 평산의병대의 자취를 놓치면 다시 찾을 길이 없을듯싶어 그달음으로 산으로 올라갔다가 몸을 풀게 되였다.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해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찬바람 부는 칼벼랑끝에 선 심정이여서 당장 죽어버리고싶었다.

절망에 잠긴 진희의 앞에 다행히도 의병들이 나타났다.

의병들의 도움으로 순산을 하게 되였고 그들을 따라 어느 마을에 이르게 되였다.

그 마을 입구에 뜻밖에도 리달삼이가 의병들을 마중나와있었다.

리달삼을 먼저 알아본 진희는 너무도 반가와 그에게 엎어질듯 달려갔다.

진희를 본 달삼은 한순간 창끝에 찔린듯 흠칫하더니 별안간 뚝 굳어졌다.

그의 얼굴은 순간에 창백해지고 눈가에는 대번에 물기가 어렸다.

진희는 그의 기색을 보고 왜서인지 가슴이 섬찍했다.

의병들이 모두 기이한 눈길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달삼이가 얼나간 모양으로 진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의병들에게 머리를 돌렸다. 그에게서 흐느낌같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이보게들, 수길이의 안사람일세.》

술렁대던 의병들이 순간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그 분위기에 불안을 느낀 진희가 그들을 둘러보았다.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뒤따랐다.

누구도 말이 없었지만 진희는 수길이가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느꼈다.

진희는 몸을 휘청 했다.

달삼이가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길로 얼른 아이를 받아들었다.

진희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얼마후 진희는 정신을 차렸지만 그에게는 이 세상 모든것이 공허해지고 삶에 대한 아무러한 미련도 없었다.

그러한 진희에게 려은이에 대한 소식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의 등불과도 같이 다행스러운 소식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하여 진희는 의병들의 도움으로 이리로 오게 된것이다.

려은과 진희는 서로 붙어안고 밤새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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