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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제 6 장


7


리용과 성효정이 소속된 생물연구소조원들이 정성들여 가꾼 교재원의 푸르싱싱한 단풍나무와 층층나무잎들은 어느새 빨간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은행나무와 이깔나무잎들이 대조적으로 노랗게 변색을 하여 교정의 가을정서는 특히 유난스러웠다. 교사앞의 일매진 꽃밭에도 봉선화열매들이 통통 여물고 불길처럼 열정적으로 타던 맨드라미꽃들도 마지막열기를 뿜는듯싶었다.

꽃밭구획마다 하얀 에나멜칠을 곱게 하고 또박또박 새겨 써넣은 식물설명판들마다에는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네댓마리씩 올라앉았는데 마치도 생물소조원들이 품들여 마련해놓은 학습터에 모여들어 식물학수업이라도 받는듯싶었다.

교장선생은 활짝 열어놓은 창문앞에 서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는 교재원과 꽃밭을 내다보고있었다.

눈길은 식물설명판우에 떼지어 올라앉은 잠자리들을 살피는것 같았지만 속은 여간만 번거롭지 않았다.

홱 돌아서서 두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무엇이라 고함이라도 한번 내지르고싶었다.

방금전 교무부장 권길수가 들어와 성에서 홍부상이 걸어준 전화라고 하면서 알려준 말때문이였다.

《방식상학을 당창건기념일을 맞으며 진행해야겠답니다. 시내는 물론 주변구역 학교들에도 포치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당창건기념일이라면 이제 보름정도밖에 없는데 이거 무슨 일을 이렇게 벼락치듯 조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평을 부리는것 같았지만 슬쩍 피하는것 같은 그의 눈길에는 어딘가 깨고소해하는 빛이 력연했다.

교장선생의 얼굴에서 당황해하는감을 확인하자 그는 가차없이 정통을 찌르려들었다.

《제일 난문제는 그사이 소조요 뭐요 하면서 욱욱 떠들다나니 학생전반실력이 퍽 떨어진것입니다. 그렇다고 숱한 교원들앞에 거짓말을 할수도 없고.》

권길수가 기회있을 때마다 들고나오는 시비였다.

교장선생은 피끗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며칠전 교육성에서 불시에 몇명의 시학들이 내려와 학년별로 한두개 학급씩을 선택하여 수학과 외국어, 물리, 화학, 세계사학과목에 대한 시험을 쳤는데 이전의 학년별평균점수에 비해 0.7이나 떨어졌다는것이였다.

교육성은 물론 시와 구역교육과에서도 비상사고처럼 떠들었고 교장은 이미 수차 이곳저곳 불리워다니며 비판을 받았다.

교장선생은 이렇다저렇다 변명을 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전반실력이 떨어진것은 사실이기때문이였다.

몇달동안 소조운영에 치우치면서 이전처럼 기본학과목학습에 힘을 넣도록 학생들을 이끌지 못했던것은 사실이 아닌가. 하면서도 속에서는 불이 일었는데 그 모든 일들은 분명 자기를 겨누고 의식적으로 벌리는 홍부상의 《올가미작전》이라는 확신이였다.

시험성적만도 그렇지 않는가. 이전 실력료해때에는 며칠전에 시험이 예견된다는것을 통보도 해주면서 일정하게 사전준비기간을 마련해주고 진행하군 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신호조차 없이 불시에 와닥닥 내리덮쳐 각 소조실들에 헤쳐져갔던 학생들을 비상소집하다싶이 하고 갑작시험을 쳤으니 결과는 불보듯 뻔했던것이다.

그는 정말이지 학교소조조직과 운영을 놓고 홍부상과의 관계가 이렇듯 첨예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하여 자기의 견해와 주장을 철회하고 권길수처럼 아부굴종하고싶지는 않았다.

당적원칙, 당의 교육정책집행에서 내가 뭘 잘못했느냐 하는 배짱에서였다. 결함은 비판하고 고치면 될게 아닌가.

권길수는 여전히 야지랑스러운 눈길로 안 보는척 하면서 교장선생의 일거일동을 눈여겨살폈다. 그도그럴것이 그는 교장으로서의 그의 운명은 시간문제라고 확고히 믿고있는것이였다.

홍부상의 과녁이 된 이상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홍부상이 결심해서 성사 못한 일이 없다는것은 그의 확고한 견해였다. 능란한 그의 수완은 번마다 놀랍고 탄복이 되였던것이다.

이번 일만 봐도 그렇지 않는가.

교장선생의 주장대로 전체 학생들이 소조에 다 망라되도록 뒤로 슬쩍 물러섰다가 기본학과목성적이 떨어지는 문제를 엄중시해나설줄을 꿈엔들 생각이나 했었는가.

학생의 기본임무가 학습이라고 할 때 학업성적이 떨어지는 문제는 과오중의 과오가 아닌가. 이야말로 덧미끼를 활활 뿌려놓고 낚시줄까지 한껏 늦춰놓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멋있게 잡아채는 낚시군의 능란한 솜씨와도 같다고 생각한 권길수는 자기 운명의 길에 날개라도 돋친 기분이였다.

더우기 그의 마음을 더 둥 들띄우는것은 그 모든 일들이 가을철에 들어서면서 급격적으로 벌어진다는 생각이였다.

돌이켜보면 이상스럽게도 그의 인생길에 좋은 일들은 거의다가 가을철에 성사되군 했었다.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식을 한것도 가을철이였고 이듬해 첫 자식을 품에 안은것도 가을날이였다. 비록 단층이긴 했지만 대동강반의 경치좋은 곳에 새 집을 받아 이사를 한것도 가을날이였고 많은 교원들이 부러워하는 남산학교의 교무부장으로 임명받아온것도 새학년도가 시작되는 가을철이였다.

후두둑 뛰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교장선생의 책상우를 한번 살펴본 권길수는 제법 결론적인 어조로 말했다.

《방도는 명백합니다. 이제라도 빨리 각 소조인원들을 재선발하고 나머지학생들은 기본학과목실력제고전투를 벌려야 합니다.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일들은 방식상학이 끝난 다음에 다시 볼판이구요. 성의 립장도 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장선생이 홱 돌아섰다.

《발등의 불이란건 뭐구 성의 립장이란 뭡니까?》

콱 찌르는 목소리였다.

권길수는 눈만 황 치떴다.

교장선생은 더욱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선생은 방식상학의 기본목적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누구의 낯이나 내자는데 있습니까? 나 역시 선생앞에서 명백히 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아직은 이 학교의 교장이 나라는것입니다.

교장은 교장으로서의 직무과 권능이 있습니다. 홍부상동지가 전화로 지시했다니 정확히 보고해주시오. 부상동지가 전화를 하는 시간에 이 교장은 분명히 자기 방에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방식상학은 철저히 당정책적요구에 맞게 계획된 날자에 진행하겠단다고 말이요.》

권길수도 쨍 해서 자리를 차며 마주 일어섰다.

이제 더는 교장앞에서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다는 확신에서였다.

하지만 아직은 이 학교의 교장이 엄연하게 자기라고 당당하게 후려치는 말에는 그만 주눅이 들어 저으기 떨리는 소리로 내던졌다.

《좋습니다. 개별적으로 할것없이 이 방에서 같이 보고합시다.》

권길수는 제잡담 교장책상우에 있는 전화기를 끄당겨다놓고 직방 홍준모의 방을 찾았다. 기다리고라도 있었던듯 홍준모의 무게있고 틀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 부상 홍준모 전화받습니다.》

권길수는 언제 팩 했던가싶게 허리를 갑삭 수그리며 삽삽하게 인사말부터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남산고중 교무부장 권길수 말씀올립니다.》

《아, 권선생이요? 어째 목소리가 이전같지 않다?》

실지 그렇게 느꼈는지 아니면 이미 무엇인가 짐작을 하고있었던것인지 몰랐다. 권길수는 보란듯이 교장을 얼핏 일별하고나서 기가 난 목소리로 이었다.

《예, 이거 문제가 간단칠 않습니다. 도대체 이발이 들지 않습니다. 예, 예… 그렇습니다. 지금 교장선생방에서 직접 전화합니다. 예, 옆에 있습니다.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권길수는 송수화기를 교장선생앞으로 쑥 내밀었다.

《부상동지가 전화를 바꾸랍니다.》

교장선생은 주춤했다. 불덩어리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홍부상의 얼굴이 눈앞에 꽉 찼던것이다. 이제 무슨 벼락같은 소리가 터질런지 모른다.

그는 송수화기를 받아들고도 선뜻 귀가에 가져다대지 못했다. 분명 귀청이 째지든지 무슨 일이 나리라는 예감에서였다.

허나 예상은 활 뒤집혀졌다.

《교장선생이요?》 하는 목소리는 너무도 례사로왔던것이다.

교장선생은 물론 권길수도 어리둥절했다. 송수화기를 잘못 들었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귀전에서 내리기까지 했다.

이어 홍부상의 친절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방식상학준비때문에 수고가 많겠소. 국가적인 큰 행사나 같으니까. 그래 뭐 걸린건 없소?》

교장선생은 얼결에 대답했다.

《예, 뭐 별로… 없습니다.》

《잘해야겠소. 나라의 교육전반이 혼란될수도 있으니까.》

교장선생은 얼굴이 해쓱해졌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무서운 랭기와 위협이 느껴졌던것이다.

홍준모는 시험성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 문제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교장의 숨통은 조일수 있다는 자신심이였다.

그는 점점 더 느럭느럭 거드름스럽게 말을 이었다.

《거 교무부장이 좀 말째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방금 권길수가 교장방에서 직접 전화를 한다고 알려준 말은 감감 잊어버리기라도 했는가?

어쩐지 교장선생은 대답을 하고싶지 않았다.

홍준모의 타이르는듯 한 말이 계속되였다.

《사람이 경망스러울 때가 있거던. 어찌겠소. 크고 단 참외가 없듯이 결함없는 사람이 있소? 그래도 그 량반 열성은 높지 않소. 경우도 바르구. 그만한 교육일군 찾자고 해도 조련찮아. 성으로 소환하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학교의 앞일을 생각해서 내가 극력 반댈 해.》

교장선생은 입술을 꽉 짓물었다. 그것을 훔쳐보는 권길수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확 피였다.

홍준모의 어조는 로골적인 비양으로 바뀌였다.

《여보, 나도 얘길 좀 듣는데 거 뭘 큰 사람들이 아이들 쌈싸우듯 오드득오드득들 하우? 선생이야 교장이 아니요, 큰 일군. 대범하구 아량도 베풀 땐 베풀줄 알아야지. 아래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줄줄도 알구. 아래사람한테 한번 양보하면 열번 인사받고 치하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소.》

끝내 마지막말은 쨍하고 양푼깨지는 소리처럼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홍준모는 제풀에 멋해졌던지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안됐소. 큰소리가 나가서. 나도 골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거던. 그래 무슨 의견은 없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홍준모는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어서 랭정히 뱉아던지듯 말했다.

《하여튼 잘하오. 내 교무부장한테도 말했는데 이번 일은 책임일군들의 실력검토로도 될수 있다는걸 명심하는게 좋을거요. 조만간 내 인차 직접 나가서 방식상학준비상태를 알아보겠소.》

그는 이쪽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송수화기를 덜컥 놓아버렸다.

교장선생의 얼굴이 시커먼 흙빛으로 굳어졌다. 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해지는가 보았다. 홍준모와 권길수의 매질이 결코 방식상학에 머무르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옷 있다던가.

얼핏 권길수한테로 눈길이 갔다.

조소와 비양이 재물거리던 권길수의 눈길이 당황하여 허공중에서 허둥거렸다.

교장선생은 열물이 울컥하여 입을 가리며 돌아섰다.

권길수도 더는 마주 서있기가 베차져 황황히 자리를 떴다. 제 습관대로라면 응당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허리를 갑삭했으련만 꼿꼿해서 량쪽팔을 횅횅 내저으며 걸어나갔다.

교장선생은 두손으로 책상모서리를 꽉 집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조만간에 인차 학교에 내려와보겠다고 하던 홍부상의 마지막말이 점점 더 섬찍하게 느껴졌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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