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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 회


제9장 피절은 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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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한해 겨울이 지나갔다.

김정환은 작은 규모로 활동하던 의병대를 도평의 깊은 산중으로 모아들이였다.

여기서 김정환은 이미 무어준 작은 대오들을 도평과 멀리 떨어진 여러 지방들에 파하여 낮에는 깊은 산중에 은신해있다가 밤이 되면 불시에 나타나 헌병초소나 순사파출소를 답새기게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왜놈들의 《토벌》책동을 파탄시키는데 효과적이였다.

김정환의 령을 받고 소규모로 무어진 평산의병들이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여 왜놈들을 기습소탕하는 전투들을 끊임없이 벌리였다.

겨울도 지나고 갑인년(1914년) 초봄에 이르면서 왜놈들의 횡포성은 극도에 달하였다.

조선주둔군 일본군사령관자리에 올라앉자마자 두달만에 평산의병대소멸계획을 세우고 40여일간이나 수많은 《토벌》무력을 내몰았던 우에다 아리자와대신에 이번에는 안또 사다미라는 사무라이가 주둔군사령관의 감투를 뒤집어쓰고 이 땅의 마지막의병대를 없애기 위해 방대한 무력을 황해도지방에 들이밀었다.

그리하여 평산과 금천, 서흥지방은 물론이고 해주에 이르기까지의 전 지역에서 일본군놈들은 썩은 바자구멍에 노랑개 주둥이 내밀듯 안 쑤시고 다니는 곳이 없었다.

왜놈들의 살벌한 수색망과 《토벌》군이 뒤덮인 속에서도 김정환의 평산의병대는 싸움을 멈추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새봄에 들어와 김정환의 마음은 황해도 곳곳으로 널려져 사는 돌망골사람들이 이제 다가오는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기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가득차있었다.

돌망골사람들이 떠나면서 자기들의 농량을 전부 의병들에게 남겨두고 종곡만을 가지고 떠난것이 항상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던것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사람들이였다.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후덥게 달아오르군 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 량곡이 있었기에 평산의병대는 한겨울을 싸움에 전심할수 있었던것이다.

김정환은 이번에 어떻게 하나 량곡을 마련하여 돌망골사람들에게 보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여러곳에 렴탐군을 파하여 왜놈들의 식량수송대가 움직이는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내게 하였다.

그런데 엊저녁에 약우물골마을에 사는 전필석이에게 병문안을 다녀오겠다면서 나갔던 무삼이가 왜놈들의 량곡수송대가 도투마리고개쪽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무삼이가 그 소식을 알게 된것은 참으로 우연한 계기였다.

일인즉 필석이를 만나고 돌아오던중 평산 돌고개에 새로 생긴 헌병초소에 잡혀들어가 한식경이나 문초를 받게 되였는데 그것은 무삼이가 어떤 의심을 사서 그렇게 된것이 아니라 왜놈들이 길가는 행인들을 끌어들여 심심풀이로 그런짓을 자주 벌려놓았던것이였기때문이다.

헌병들은 길가는 행인들을 잡아들여 꿇어앉히고는 무작정 이렇게 따졌다고 한다.

《네놈이나 의병대지?》

아니라고 하면 옳다고 할 때까지 귀쌈을 얻어맞았다.

왜놈들이 심심풀이로 사람을 못살게 군다는걸 알고있는 행인들이 마지못해 옳다고 하면 어김없이 거짓말을 한다고 격검채로 두들겨팼다.

그렇게 한동안 생사람을 놓고 쾌락을 맛본 뒤에야 헌병놈들은 너무도 얻어맞아 곤죽이 된 사람들을 놓아보내군 하였다.

그곳을 지나는 행인들중 젊은 남자들이면 누구라 할것없이 겪게되는 봉변이였다.

무삼이도 끌려들어가 귀쌈을 두어대나 얻어맞았다.

처음에는 어리무던한 농군처럼 행동하던 무삼이가 놈들의 행패질이 정도를 넘어서자 밸이 굴뚝같이 치솟아올랐다. 당장 격투를 벌리려고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는 찰나에 헌병 한놈이 뛰여들어와 지구사령부에서 장교 하나가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금시까지 무삼이를 가운데 두고 격검채를 휘두르려던 놈들이 무삼이를 옆방으로 밀어넣었다.

거기에서 무삼은 왜놈장교와 헌병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엿듣게 되였던것이다.

왜말을 뜯개말정도는 가려들을수가 있어 귀를 도사려 들은 소리가 바로 도투마리고개와 장고개어간에 왜놈들의 헌병초소가 있는데 거기에 《토벌대》 두개 중대가 들어오게 된 연고로 하여 미리 량식을 갖추기 위해 수송대가 이 초소를 지나가니 행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엄중단속하라는 내용이였다.

놈들은 왜놈장교가 돌아간 다음에도 한동안이나 무삼이를 잊고 돌아치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는지 의병대를 보면 제꺽 알리라고 엄포를 놓고는 발길로 궁둥이를 때려 닭몰듯 쫓아냈다.

그래서 무삼은 왜놈들의 식량수송대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였고 그달음으로 달려왔던것이다.

김정환은 그 량곡을 빼앗기로 작정하였다.

즉시 의병대전원을 모이게 하라는 령을 내렸다. 달삼이에게 얼마간의 인원을 떼주어 거점을 지키고있으라고 이르고나서 의병대를 이끌고 떠났다.

김정환은 도투마리고개에서도 얼마간 떨어진 길목인 겹산이골근방의 바른치고개에 의병들을 매복시켰다.

그리고는 무삼이와 몇몇 의병들을 파해 왜놈들의 식량수송대의 행방을 찾아내여 은밀히 뒤를 따라오도록 하였다.

무삼이네가 떠나간 다음 김정환은 의병들에게 적정이 있을 때까지 휴식하라는 령을 주었다.

따분한 시간이 흘렀다.

한데 몰켜 잠을 청하자고 해도 아직은 날씨가 쌀쌀했던지라 의병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이야기판을 펼쳤다.

언제나 떠들썩한 이야기판을 만들어내군 하던 리달삼이가 김정환의병장의 령으로 거점수비때문에 떨어지는 바람에 이야기판이 맨숭맨숭하기 이를데없었다.

이런저런 소리 뒤끝에 이야기판이 거덜나자 의병들은 다시 무료해났다.

그래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의병들의 눈에 한켠에 물러앉아 도끼를 벅벅 갈고있는 장서방에게로 쏠렸다.

그걸 본 한 젊은이가 말을 걸었다.

《저 아저씨는 항상 봐야 그 도끼를 무슨 보물 다루듯 한단 말이야.》

곁에 있는 의병이 그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도끼장수라지 않나? 저 도끼가 진짜 공이 있는 도끼라네. …저걸루 왜놈의 목대를 몇개는 잘 찍어버렸거던. 그렇지? 장서방! 아니, 도끼장수어른!》

장서방이 히쭉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지. 그리구 이 도끼의 공로가 그것뿐인줄 아나? 그것말구두 이 도끼가 다 굶어죽게 된 저 억만이를 구원한 아주 기특하기 그지없는 도끼라는걸세. …》

둬발쯤 떨어진 나무밑둥에 걸터앉아 화승대를 손질하던 억만이가 어이없는 눈길을 장서방에게 던졌지만 반박을 하지 않는걸 봐서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게 분명했다.

의병들이 호기심을 품고 모여들었다.

장서방이 도끼날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며 흡족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어 의병들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때가 리진룡의병장이 만주로 들어가기 전이니까 경술년(1910년) 이맘때쯤일게야. 우리가 해주 취야장수비대의 병력과 동태를 살피러 갔다가 오드랬는데 글쎄 이러저러해서 꼬박 하루하구두 두끼를 더 굶지 않았겠나. 록달면 장둔리를 좀 지나서부터는 더 참아내지를 못하겠더군.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난 글쎄 그런대로 견딜만 한데 저 억만이는 금방 숨넘어갈 망아지같더라니… 그런데 마침 어느 마을을 만나게 되였네. 난 무작정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두드렸지.》

의병들이 맹랑한 표정을 지었다.

《챠, 코막구 답답한 사람이로군. 아, 범벅덩이를 얻어먹어두 가난한 집이 인정이 있지 잘사는 놈네 집을 찾아가면 쉰 밥덩이라도 얻어먹지 못해.》

장서방은 히물히물 웃으며 말했다.

《저 억만이도 그렇게 말하더군. 초가집문을 두드려 범벅을 얻어먹는게 등탈없다구 말이야. 근데 범벅일망정 왜 가난뱅이들의 밥그릇을 축내겠나, 이왕이면 말일세. 엉? 안 그래?》

장서방이 눈이 올롱해서 좌중을 훑어보고난 다음 다시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요란한 대문을 두드리니 멀끔하게 생긴 녀석이 대가릴 내밀더군. 한참이나 우리의 행색을 목뼈 꺾이운 놈처럼 올리구내리구 하면서 훑어보다가 대뜸 이렇게 묻질 않겠나. 〈대체 웬 놈들이야?〉 그 젊은 놈의 말버릇에 밸이 울컥했지만 배고파 죽어가는 저 억만이를 생각해서 참고 공손히 아뢨지. 〈길가던 나그네인데 배가 고파 그러니 찬밥 한그릇 주시면 그 은혜 아홉대를 물려가며 갚겠소이다.〉 아, 그랬더니 젊은 놈이 대바람에 욕설인데 내 듣다듣다 그런 상스러운 욕은 난생처음이네그려. 그것도 총을 멘 왜놈들도 벌벌 떠는 의병의 체면을 생각하면 콱 모가지를 돌려앉히고싶더란 말이야. 그래 한주먹 줴박구 상판에다 침이라도 탁 뱉아놓고 가버릴가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배가 고파 당장 죽을상이 된 억만이를 생각하면 어디 그러겠더라구. 그래서 목구멍까지 치미는 밸을 용케 꾹 참고 이 말린 명태같은 녀석을 어떻게 골탕먹일가 하고 생각하댔는데 불쑥 언제인가 아라사에 갔던 한사람이 해준 말이 생각나질 않겠나? 그게 뭔고 하니 그 아라사옛이야기인데 옛날에 그 나라의 한 병정이 도끼 하나를 가지고 먼길을 가면서 부자놈들을 멋지게 속여넘기고 굶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지. 그래서 그걸 한번 써먹어야겠다구 작정하고 그녀석에게 다시한번 공순하게 말했네. 〈정 그러하오면 가마라도 빌려주시면 그 은혜 진수성찬 차려준 은혜로 알고 길이 잊지 않겠소이다.〉라구 했더니 그녀석의 쨉째부리한 눈알이 늦가을 왕밤알만큼 커다래지며 퀭해지더군. 괴나리보짐 하나 없는 이 알거렁뱅이들이 갑자기 가마는 왜 찾을건고? 이런 눈치였어. 난 그에게 이렇게 말했네. 〈내뒤에서 울상을 한 저 아이가 허기가 들어 그러니 몸보신에 좋은 이 도끼죽을 쑤어먹이자고 하오이다.〉 하며 뒤에 찌르고 다니던 이 도끼를 뽑아 그녀석의 눈깔앞에 들어보였네. 〈도끼죽?〉 듣다처음인 도끼죽소리에 그녀석이 눈을 떠부럭거리다가 호기심이 동했던지 우릴 마당가에 들여놓고 가마를 내주더군.》

장서방이 잠시 말을 끊자 의병들이 바글바글 끓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끓였지.》

《무엇을 끓였게요? 도끼를요?》

《그렇잖구. 바루 이 도끼를 끓였지 저 뼈밖에 없는 억만이를 끓이겠나?》

장서방이 제편에서 어이가 없는듯 의병들을 힐책하고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도끼를 깨끗이 씻어넣구 한참 벌렁벌렁 끓이다가 난 가마를 척 열구 그 물을 떠서 맛을 보는 시늉을 했지.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어. 〈어- 그 맛 참 별맛이다. 배가 고파 그런지 여느때 먹던것보다 더 맛이 좋군.〉 그랬더니 그녀석이 이렇게 묻질 않겠나? 〈그래, 그게 도대체 무슨 맛이요?〉 난 제꺽 이렇게 말했어. 〈모태고기를 잡수어보셨수?〉 〈모태고기라니?〉 그녀석이 호기심이 부쩍 동해서 한걸음 바투 나앉는 꼴이란 참 가관이였어. 하하하.》

장서방이 그때 일이 되살아났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댔다.

장서방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의병들이 성화를 먹이며 다그어댔다.

《모태고기가 뭐예요?》

《나도 몰라. 그저 그렇게 말이 나가더라니… 〈동해에서만 나는 진귀한 어족이 있소이다.〉라구 어물쩍해버렸더니 그녀석이야 그런 고기가 있겠거니 했거던. …》

여기까지 말한 장서방이 억만이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턴 억만이, 네가 좀 얘기해줘라.》

의병들의 눈길이 억만이에게 쏠렸다.

장서방에게서 이야기채를 넘겨받은 억만이가 잠시 쭈밋거리더니 그때 일이 되살아난듯 픽하고 제풀에 웃으며 판에 나앉았다.

《저 도끼장수형님이 또다시 가마뚜껑을 열고 그 맛을 보는데 어찌나 맛스럽게 쩝쩝거리는지 그놈은 물론 나도 하마트면 목젖이 넘어갈번 했지요. 그 다음에 어쩌나 보자 했더니 저 형님이 뻔뻔스럽게도 〈이거야말로 천하별미이니라. 여기에 쌀 한되만 있으면 더 좋겠는데…〉라구 하지 않겠수. 그랬더니 호기심이 부쩍 동한 그놈이 달려들어가 쌀 한되를 가지고 나옵디다. 그걸 두고 한참 끓이다가 이번엔 언 돼지비게를 찾고 다음번엔 참기름을 찾고 또 그 다음번엔 말린물고기를 찾고 깨끗한 시래기며 10년 묵은 토장이랑 불러대더니만 마지막에 얼벌벌한 고추꼬투리까지 불러대고나서야 그 일이 끝났는데 우린 그놈과 마주앉아 그 〈도끼죽〉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르우다. 아, 저희 물건덕에 맛있는줄도 모르고 그놈이 모태고기맛이 참 별맛이라면서 어떻게나 잘 먹어대는지… 하긴 그자들이 그런 범벅을 먹어봤을거나 뭐요? 거기다가 이틀을 굶은 두 게걸쟁이들과 같이 먹는데야 맛없을탁이 있어요? 가마밑바닥까지 박박 긁어먹고나서 〈도끼죽〉을 정말 잘 먹었노라며 열번은 더되게 중이 념불 외우듯 중얼거리며 저 형님이 가마에서 푹 삶아진 도끼를 꺼내 물에 깨끗이 닦을 때 그걸 걸탐스럽게 바라보던 그놈의 욕심스런 눈길을 생각하면 참… 그리군 우리가 떠날 땐 저 형님의 꽁무니에 매달린 저 도끼를 보물처럼 바라보며 얼마나 아수해하던지…》

의병들속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의 신통스런 기지에 사람들이 칭찬과 면박을 반반씩 섞어가며 한마디씩 보탰다.

《그거 정말 신통하다. 그러니까 그게 아라사옛말대루 한거겠구만.》

《그렇지 않구.》

《참, 사람두. 차라리 봉이 김선달이가 떠올랐으면 대동강을 팔아 더 푸짐스레 먹었을수도 있었겠는걸 하필이면 아라사병정이 생각날건 뭔가?》

《쳇, 내가 도끼밖에 가진게 없으니 그 생각이 났지 대동강을 봤으면 〈도끼죽〉만 먹구 왔겠소? 누굴 뭐 봉이 김선달이야기도 모르고 사는가 하시우?… 내 참, 별 싱거운 사람들이로군!》

장서방이 자기를 답답한듯 바라보는 의병들에게 뎅겅 코웃음을 쳐대며 맞대거리를 하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조용!》

뒤에서 울리는 버럭 소리에 의병들이 목을 움츠렸다.

《왜놈들이 나타났다는 신호일세. 자, 빨리!》

의병들이 날래게 자리를 잡았다.

겹산이골 굽인돌이에서 왜놈들이 나타났다.

50여명의 왜놈들이 다섯대의 마차를 호위하는 행렬이였다.

벌써부터 의병들의 입이 헤벌쭉해졌다.

이제부터 배고픔을 조금은 면하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흥이 났던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왜놈들의 량곡수송대에 대한 감시초의 보고를 받은 김정환의 심정은 그와 달랐다. 생각했던것보다는 식량마차가 너무도 작았던것이다. 여러곳으로 흩어져 사는 돌망골사람들을 찾아내여 보리고개를 넘길수 있는 식량들을 나누어주고도 얼마간은 의병들에게 배불리 먹일수 있으리라던 타산이 허사로 되여버리고말았다. 량곡 다섯바리를 가지고는 돌망골사람들의 보리고개는 고사하고 종자도 충당해내기 어려웠던것이다.

기대가 허물어지니 여러가지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돌망골사람들의 보리고개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백여명 의병대원들의 식량은 어떻게 하고…

저 다섯바리의 식량을 가지고는 어느 한쪽도 충족시킬수 없지 않는가. 쬐쬐한 쪽발이새끼들, 다문 열바리쯤만이라도 식량을 끌어들일노릇이지. …

김정환은 참으로 아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천수답이 소나기를 싫다 하랴. 식량 다섯바리가 적은 량은 아니니 이제 저것을 손에 넣고 해주쪽으로 나가 몇개의 경찰관주재소들을 답새기고나면 알 도리가 있을것이라는것으로 자신을 위안할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다섯바리의 식량수송대가 가까와지고있었다.

이제 몇순간이면 독안에 쥐가 뛰여들듯 왜놈들의 수송대가 완전히 그들의 매복권안에 들 판이였다.

김정환이 왜놈들을 견주면서 지휘기를 들려는 찰나였다.

누군가 뒤에서 벼락같이 나타나더니 그의 팔에 매달렸다.

돌아보니 봉대였다.

봉대가 웬 일인지 사색이 되여 어쩔줄을 모르다가 말했다.

《의병장님, 저기에 웬 녀인이 있소이다.》

김정환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외진 골짜기에 녀인이 있다는게 놀라와서가 아니라 그걸 들고와서 당장 싸움시작령을 내리려는 자기를 지체시키는 봉대의 행동이 이상스러워났던것이다. 녀인이 있는것과 싸움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김정환의 묻는듯 한 시선을 받은 봉대가 사색을 지었다.

《당장 몸을 풀게 된 녀인입니다.》

그제야 김정환은 봉대가 왜 이렇게 당황해하는지 사연을 짐작할수가 있었다.

김정환은 왜놈들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성난 목소리로 나직이 꾸짖듯 말했다.

《빨리 둬사람 데리고 가서 그를 옮겨라. 여기서 멀리로…》

《그건 안돼요. 당장이 급하우다. 막 나올려고 해요.》

그의 사색이 된 얼굴빛과 당황한 목소리에서 사태의 긴박성을 느낀 김정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여기서 벼락같이 식량을 빼앗고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어디서 왜놈들의 포위에 들겠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런데 일단 총소리가 나면 산모에게 위험하기도 하고 그때문에 제때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가져오게 되는것이다.

그렇다고 의병대와 돌망골사람들의 생명이나 같은 식량을 앞에 놓고 그냥 지나보낸다는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였다.

의병들의 눈이 김정환의병장에게 쏠렸다.

김정환은 몸을 일으켜 봉대를 앞세우고 달려갔다.

불과 스무걸음안팎에서 녀인 하나가 쓰러져 진통을 겪고있었다.

얼마나 모지름을 쓰는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무슨 사연이 있는 녀인인듯 했다.

더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다.

모여온 의병들에게 서둘러 령을 내렸다.

《당장은 절대로 총소리를 내지 말라. 왜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뒤를 따를것. 싸움은 다음 골짜기에서 하겠소. 전령감님은 여기 남아서 해산을 방조하오. 봉대도 떨어져 령감님을 도와라.》

아니, 난 왜 여길?…

기봉대는 아연실색하였다.

김정환이 그에게 욱박지르듯 말했다.

《그래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의술을 알지 않느냐.》

봉대는 입이 항 벌어지였다.

그것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의병장의 령을 거역할 자신이 있었다.

자기가 한때 약방심부름이나 했을뿐이지 의서를 한권 읽은것이 있는가. 골 아픈데 단너삼을 쓰고 배아픈데 대황을 우려먹는다는따위의 얼빤한 풍월밖에 들은것이 없는 자기가 어떻게 해산방조를 할수가 있으며 또 할수 있다쳐도 성례도 못한 처지에 외간녀인의 그것과 어떻게 마주할수 있단 말인가? 아니, 난 못해. 대원 십여명을 거느렸으면 의병대에서 적지 않은 벼슬자리인데 대원들앞에서 체면은 어떻게 되며 더구나 솔매가 그걸 알았다간…

머리를 덜덜 떨던 기봉대는 의병장의 찌르는듯 한 눈길을 받고 어쩔수없이 게걸음을 쳤다.

봉대가 제정신이 아닌듯 얼친 상으로 전령감을 도와 산모를 쉰보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동굴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의병들이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왜놈수송대의 뒤를 따라 다음 골짜기로 은밀히 향하고있을 때 동굴안에서는 실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전령감을 도와야 할 봉대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쩔쩔맸던것이다.

멀찍이 떨어져 빙글빙글 돌아가는 봉대를 전령감이 사나운 목소리로 불렀다.

봉대는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마지못해 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차마 녀인의 곁에는 다가붙을 엄두를 못 냈다.

진통을 겪는 녀인을 붙잡고 몸풀 차비를 서두르던 전령감이 그때까지도 멀찍이 떨어져 동굴천정만 쳐다보며 서있는 봉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멍청히 있기만 하냐? 빨리 와서 이 내인을 좀 잡아주지 않고…》

봉대는 얼결에 다가가 녀인의 머리쪽에 앉았다.

《망할 녀석, 거기에선 왜 어물거려. 이리 와서 다릴 잡아라.》

아이구, 내 팔자야, 이 무슨 변괴냐.

귀가 멍멍하여 녀인의 신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봉대의 입에서 무수한 한탄이 그칠새가 없는데 령감이 또 소릴 질렀다.

《뭘 퀭하니 들여다봐? 힘을 쓰게 도와야지.》

《난 안 봤어요. 사람을 걸고들지 마시우다.》

얼굴이 뻘개서 대드는 봉대를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령감이 다시 소리를 쳤다.

《그걸 따지는게 아니다. 어서 저걸 좀 다구. 어이구, 이놈아! 정신채리지 못할고. 누가 돌망구를 달랬느냐? 그곁에 있는걸 달란 말이다.》

전령감이 몹시 미워났다. 속에서 공연히 전령감에 대한 짜증이 났다.

돌망골을 떠나며 의병대를 따라다니기가 힘들게 되였으니 이제는 약우물골에 간 필석이에게 가있으라는 의병장의 권고를 생노여움을 쓰며 뿌리쳐버린것이 꼭 자기를 이런 난처한 처지에 빠뜨리려고 그런듯싶었던것이다.

전령감의 닥달질을 받으며 얼이 빠져 한동안 돌아치느라니 봉대의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여버렸다. 다음 골짜기에서 콩볶듯 울리는 총소리들이 울려왔지만 봉대의 귀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전령감의 닥달질소리만이 멍멍한 귀전에 채찍소리처럼 울렸다.

그 역사질은 전령감의 두손에 피덩이같은 어린 생명이 받들리워지고 거기에서 애된 울음소리가 들려서야 끝을 보았다.

식전에 닭잡듯 할수 있었던 왜놈들과의 싸움을 뜻밖에 나타난 산모를 위하여 추격전으로 힘겹게 치르고 끝끝내 다섯바리의 식량을 빼앗아가지고 돌아온 의병들이 굴앞에 서있다가 우르르 쓸어들었다.

의병들이 갓난아이를 돌려가며 웃고 떠들다가 봉대에게 시까슬렀다.

《이 사람 봉대, 정말 수고했구만.》

《얼굴에 웬 땀투성인가? 꼭 임자가 애기를 낳은것 같구만.》

의병들이 배를 두드리며 웃어대면서 한동안이나 봉대를 놀려주었다.

김정환도 의병들과 한동안 껄껄 웃고나서 곧 돌아갈 차비를 갖추라는 령을 내렸다.

방금 몸을 풀고 기진하여 쓰러진 녀인을 이 산중에 내버려둘수 없으니 들채를 만들어 녀인과 갓난애를 데리고 가도록 하였다.

의병장의 령대로 돌아갈 차비를 하면서 봉대는 식량짐들을 갈라지고 렬을 짓는 의병들에게 맥없이 말했다.

《제발 말을 내지 말아주우다. 이 일을 솔매가 아는 날엔…》

정말 그건 봉대에게 큰일이 아닐수 없었다. 왜놈들에게 우습게 붙잡혔던 수치에 이번엔 성례도 안한 총각놈이 젊은 녀인의 아이낳이를 거들어준 창피까지 겹치면 아무리 피치 못할 상황에서 목석같은 의병장의 엄명으로 벌어진 일이였다고 해도 장인될 달범령감은 물론 솔매의 마음까지 싹 달라질지 어이 알랴.

의병들이 그 마음을 알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렴 우리가 뭐 아낙네입을 가졌다구 그걸 발설할가. 하하하.》

하지만 그 일은 그날중으로 의병대아근에 쫘악 퍼졌다.

봉대가 기 딱 막히게 해산방조를 잘하였는데 꼬투리를 단 아들이더라고… 아들 낳길 원하거든 봉대의 해산방조를 받으면 틀림없다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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